소설리스트

답장하지 마세요-24화 (24/74)

*도대체 식당 계산에 왜 이렇게 집중하는 건데욬ㅋㅋㅋㅋㅋ 거기에 갑자기 트릭스터 듀오론ㅋㅋㅋㅋㅋ24회

어떤 오해는 달콤하다공작은 낯선 사람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이만큼 얼굴 보고 대화한 사람을 낯설다고 할 순 없지.

그럼 공작의 보호를 받아도 되는가?

당연히 안 된다. 애초에 왜 내가 이런 대화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데이라 공작은 실은 자의식 과잉이었나? 세상의 모든 불운한 일이 다 자기 부족함 때문이라고 믿는, 교만한 성자였던 것인가?

그때, 뒤에 서 있던 할아범이 내 어깨를 톡톡 쳤다.

“아가씨, 아가씨.”

“어엉.”

알겠어, 정신 차릴게.

가출한 어이를 붙들기 위해 공작에게 붙들린 손부터 빼냈다. 거절의 뜻을 미리 읽은 공작이 당황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본다. 손에는 여전히 공작의 온기가 남아 있어서, 심장은 때도 읽지 못하고 멋대로 요동친다.

내가 공작한테…… 음…… 인간적인 호감이 있는 건 분명하지만, 아닌 건 아니야. 이런 제안을 냉큼 수락할 수는 없다.

“물론 공작님은 낯선 사람이 아닙니다. 저한테는 너무 고마운 분이세요. 하지만 이번엔 마음만 받아야 할 것 같아요. 저는 정말로 공작님 때문에 위험에 처한 게 아니고,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있습니다.”

이 정도 침착하게 말했으면 머쓱해서라도 물러나겠지.

당당하게 공작을 바라보았는데, 그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백작님, 부디 생각보다 훨씬 더 위험한 상황임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트릭스터가 백작님께 수작을 부린 건 이번만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네? 아니요, 이번뿐인데요.”

물론 저주도 걸었지만. 젠장.

공작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백작님 저택의 고용인에게 접근해, 마법사로 만들어주겠다고 했던 마법사를 기억하십니까?”

아, 내가 공작을 단단히 오해했다는 거 말해주고 튄 그놈. 공작이 그놈을 반드시 찾아내겠다고 했는데 그 뒤로 소식을 듣지 못했다.

근데 그놈 얘기가 지금 왜 나와?

“그 마법사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몇 년 전부터 바다 건너 외국에 나가 있는 상황입니다. 확인해보니, 그때도 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다는군요. 그 말이 사실임을 확인했습니다.”

“네?”

“확신할 수는 없지만, 트릭스터가 그 마법사로 변장해 소동을 일으킨 걸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자, 잠깐.

생각을 해보자.

리리에게 접근한 불한당이 트릭스터라고 치자. 그럼 그 일에 휘말린 사람이 셋. 마나 폭주를 일으킨 리리, 그런 리리를 구한 공작, 구원자 공작의 머리를 내리친 나.

이 상황에서 트릭스터가 노린 게 ‘나’라고 확신할 수 있나? 차라리 리리나 공작을 노렸다고 생각하는 게 개연성 있지 않나? 아니, 공작 말대로 공작을 노려서 나를 노린……. 아니, 나를 노려서 공작을 노려서 나를 노린…….

아, 머리 아파.

바로 그 순간, 할아범이 내 어깨를 꽉 잡고 눌렀다. 왜 그러냐고 돌아볼 틈도 없이 할아범이 말을 가로챘다.

“생각해보니 공작님 말씀이 옳습니다. 공작님이 도와주신다면 정말 안심이 되겠네요. 그렇죠, 백작님?”

“뭐? 아니, 왜…….”

할아범이 갑자기 태도를 바꾸었다. 왜 이래, 할아범도 공작이 날 졸졸 따라다니면서 지켜줘야 한다고 믿는 거야? 그런다고 내 저주가 사라져?

나를 올려다보던 공작의 표정이 비로소 환해졌다. 그는 할아범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뜻이 통하는군요. 자랑할 만한 솜씨는 아니지만 모든 능력과 명예를 걸고 백작님을 지키겠습니다.”

제발 그런 거 걸지 마! 모든 능력과 명예를 걸긴 왜 걸어?

“정말 기쁩니다. 저희 백작님도 기뻐서 말을 잇지 못하시는군요. 하하하.”

나 빼놓고 둘이 친목과 화합의 장 만들지 말아줄래?

“자, 잠깐만요. 공작님 바쁘시잖아요. 그렇게 폐를 끼칠 수는 없죠.”

지극히 합리적인 반론이었는데, 공작은 간단히 쳐냈다.

“저는 트릭스터를 잡기 위해 수도에 왔습니다. 바쁘지만, 트릭스터는 백작님 주위를 맴돌고 있으니 백작님과 함께 있는 것이 더 좋을 듯합니다. 사실은 제 목적을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 그런가? 아니, 나는 왜 여기서 설득당하고 있지?

공작은 애틋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당부했다.

“그러니 부디 거절하지 말아 주세요.”

“얘기가 왜 이렇게…… 아, 이게 아닌데…….”

“당연히 거절 안 합니다!”

할아범이 목청 좋게 외쳤다. 이럴 때 보면 하나도 안 늙은 것 같다.

공작은 그제야 안심한 듯 바닥에서 일어났다. 그 정도 꿇어앉아 있었으면 다리 안 저린가 몰라. 그러나 공작은 휘청거리지도 않고 내게 손을 내밀었다.

“물론 아침 식사도 거절하지 않으시겠죠?”

둥글게 휘어지는 눈이 시원하고 다정하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밥은 먹어야지. 복잡한 생각을 밀어 놓고 그의 손을 잡았다. 심장이 또 나댄다. 제발, 아무 의미 없는 접촉에 이렇게 나대지 말아 줄래?

심장을 타박하며 마지막 대답을 챙겼다.

“네……. 감사합니다.”

이제 대답만은 절대 안 까먹어야지. 어휴.

-

아침 식사를 마치고 함께 차까지 마시면서, 공작과 이야기를 끝냈다.

처음에 공작은 자기가 내 저택에서 머물거나 내가 자기 저택에서 머무는 방법을 제안했다. 내 저택에 머무는 공작이라니……. 뭔가 심장에 해로울 것 같아서 거절. 내가 공작 저택에서 머무는 것도 너무 부담스러워서 거절.

그래서 결국, 사람이 많은 장소에 갈 때만 함께하기로 합의를 봤다. 자선 파티 때도 그렇고 나인피스에서도 그렇고 사람이 많을 때 슬쩍 접근했으니까.

내 마차에 등을 기대며 탄식했다.

“아, 진짜 공작 때문 아닌데.”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할 줄 알았던 할아범이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정말 공작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할아범, 왜 그래? 아까도 갑자기 공작 제안 받아들이고. 말이 안 되잖아, 내가 공작 만난 것보다 트릭스터 만난 게 더 빠른데.”

“아가씨, 책 안 봤죠? 트릭스터 책.”

마법 정보상에서 선물이랍시고 준 그 책? 안 봤다. 그때 마차에서 할아범만 열심히 본 것 같다.

할아범이 자기 가방을 주섬주섬 뒤지더니 얇은 책을 꺼냈다. 설마 이걸 매일 갖고 다닌 거야? 트릭스터 박사 되겠어, 아주.

“읽어보세요.”

“읽고 말고 할 게 없다니까 참.”

“아가씨는 지금 상황의 심각성을 몰라요.”

모르긴 뭘 몰라.

일단 할아범의 따가운 시선을 피해 책을 펼쳤다. 어린애 동화 같은 삽화와 함께 글자가 박혀 있었다.

[한때 트릭스터는 농담과 장난의 신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트릭스터는 한 가지로 규정할 수 없는 존재다. 신이기도 하고 악마이기도 하며, 교활한 어린애면서 천진난만한 노인이기도 한 트릭스터는 불가사의하고 위험한 존재다.]

“거기 말고요. 좀 더 넘겨서.”

“알았어.”

몇 장 더 넘기자 할아범이 거기요, 거기, 하고 페이지를 짚어 주었다.

[트릭스터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때로는 목표물의 주변을 초토화하기도 한다. 목표물의 가족, 친구는 물론이고 아직 목표물과 만나기 전인(그러나 만날 예정인) 사람도 마구 짓밟는다.

트릭스터의 예지는 무척 섬세하다. 각자가 어떤 운명으로 엮이게 될지 쉽게 짐작한다. 실제로 트릭스터는 목표물과 단 한 차례도 만난 적 없는 사람을 이용해 목표물을 살해하기도 했다.]

응?

으으응?

“사…… 살해? 뭐야, 트릭스터가 나나 공작을 죽이려고 한다고?”

물론 이미 두 번이나 돌이 되어 죽을 뻔했지만.

“물론 그것도 중요하지만, 아가씨 저주도 트릭스터 짓이잖아요. 애초부터 데이라 공작을 노리고 아가씨에게 저주를 건 거라면? 목표물과 만날 예정인 사람도 막 짓밟는다잖아요! 아가씨는 진짜로 공작 때문에 이 지경이 된 건지도 모릅니다!”

그럼 공작은 이걸 알고 있어서 날 지켜준다고 한 거구나. 그냥 선량한 자의식 과잉이라 그런 줄 알았더니.

“아무리 그래도 너무 비약 아니야?”

“리리한테 접근한 놈도 트릭스터일 수 있다고 했을 때 이 늙은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십니까? 위험 상황이라는데, 비약이든 아니든 상관없어요.”

“당연히 상관있지! 공작이 나를 지키네 어쩌네 했잖아. 상식적으로 공작이 날 왜 지켜? 내가 공작한테 고용되면 모를까.”

“만에 하나라는 게 있는 거 아닙니까! 위험에 대비하는 게 뭐가 나빠요. 공작이 먼저 나서준다고 한 걸 고맙게 생각하고, 그냥 받아들이자고요. 예? 아가씨 죽기엔 너무 젊은 나이잖아요. 가도 제가 먼저 가야죠……. 으흑흑.”

할아범이 갑자기 슬픔에 찬 표정으로 손수건을 꺼내더니 눈가를 닦았다. 당황스럽게 왜 울고 그래.

왠지 미안하고 머쓱해져서 고개를 끄덕였다.

“뭐 말을 또 그렇게 해. 알겠어, 알겠다고. 어차피 내가 싫다고 해도 공작이 물러나지 않을 것 같던데.”

“예, 그니까 그냥 공작이 도와준다고 할 때 기뻐하자고요.”

할아범은 손수건을 착착 접어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방금 우는 척한 거야? 따지기도 전에 할아범이 불쑥 말을 덧붙였다.

“어차피 아가씨도 공작한테 관심 있잖아요. 잘 됐죠, 뭐.”

“뭐? 아니야! 그냥 인간적인 호감이라고!”

“선톡도 했으면서.”

“진짜 인간적으로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뿐이야! 실제로도 진짜 좋은 사람이잖아, 할아범도 동의하면서!”

“예에. 모쪼록 행복하십쇼.”

억울해. 세상에 내 편은 아무도 없어. 엄마랑 아빠가 살아계셨다면 내 말이 맞다고 해줬을 텐데. 으흑흑.

“하늘에 계신 두 분도 기뻐하실 겁니다. 저렇게 돈 많고 좋은 남자가 사위라니.”

…엄마 아빠, 아니죠? 엄마랑 아빠는 내 말 믿죠? 진짜 인간적인 호감이에요. 그리고 공작은 날 좋아하지도 않는다고요. 지켜준다는 낭만적인 말도 다 책임감 때문에 하는 소리라고요.

음, 갑자기 이유 없이 화가 치미는군. 마음도 없으면서 그렇게 절절하게 지켜주네 어쩌네 하는 건 반칙 아닌가. 진짜 어이가 없어서.

“그만해, 할아범.”

어차피 공작은 나 안 좋아해. 참나.

[작품후기]가벤님, 딩또님, 쏨쏨이네님, 다네미님, 누에삐오님, 애수5님, 비인강님, 잉여잉여07님, 레미시아님, 꾸잉아잉님, DElzeno님, dreamkid님, 김뭄님, 레드벨벳카롱님, 화학고자인화학과님, 레티엘님, bluestblue님, 백탁선크림님, 아아아어어님, 로판의마당발님, S느루2님, 밈보윔보님, 낫자루님, 또이이잉님, 모라별님, 레이dk님, 죽은새님, 염소자리님, 372님, 김몽실님, 고희님, ERTAF님, 하느님님, HETH5622님, 강여름님, 그리하여님, 라삐네님, blackkit님, wild chick님, Pem님, 별똥별0ㅅ0님, 도롱뇽악어님, 뽀뿌리님, 켠G님, 석류가님, 소설같은삶님, Jnancy님, rinireu님, hihihu님, CleverTrick님, 당분중독자ㅋ님, 이미있는닉네임님, 로열밀크티님, SweetSweet님, 뉘시님, 안녕나는누구게님, 수퍄님, beolene님, skql5님, pato님, 개인의결함님, fffwok님, 루루슈아님, vll님, 떼아이수님, 몽뿌님, 연어킬러님, 또롱이언니님, 김형서님, 티르베히6님, 라우니주님, 별비내리는님, 장동우킬러님, 너와나는토깽이님, udes님, MidnightB님, 상큼한바람님, 카인G크리티카님, 아아아아야님, 빛의피날레님, Likry님, 로베리안님, wjrmaxhd님, 0스텔라0님, 박하맛박하님, 달빛사람B님, 바삭한바게트님, 몽쉬2님, 로펜트님, 뿌라굴라님, 사이브런님, dkwl6482님, 눈ㅅ눈님, 전편 코멘트 모두 감사합니다//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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