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후기]*혹시 미르아가 대답 안 할 때 "헐 쟤 대답 안 했다!"하신 분 계세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21회
알 수 없는 마음연참 1/2
음식이 차갑게 식어간다.
유릭스는 얌전히 앉아서 돌아오지 않는 헥센 백작을 기다렸다. 다정한 연인들 사이에 혼자 앉아 있으니, 자연스레 잡념이 떠올랐다.
‘너 설마 관심 있냐?’
스승 로지는 그렇게 물었다. 그때 유릭스는 이렇게 답했다.
‘네. 헥센 백작은 저와 비슷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몇 차례 만나기도 했고……. 마법 정보를 필요로 했을 정도면 큰일일지도 모르니 마음이 쓰이네요.’
‘아니, 이 멍청아. 그 관심 말고.’
‘아.’
그쯤에서 유릭스는 스승의 말뜻을 제대로 이해했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게 아닙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백작에겐 인간적인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그래?’
‘예. 게다가 백작은 저한테 아무런 관심도 없을 텐데요. 먼저 식사를 제안하긴 했지만 그건 이전에 있던 일 때문이니……. 괜히 들뜨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자기가 무슨 소리 하는지는 알고 있는 거지?’
‘네? 물론입니다.’
스승은 제자의 얼굴을 가만히 뜯어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나직한 혼잣말이 유릭스의 귀에 꽂혔다.
‘저 눈치로 까이지나 않으려나.’
다시 현재, 유릭스는 헥센 백작의 자리를 보며 진지하게 고민했다.
이게 바로 까인 건가?
유릭스는 곧장 그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헥센 백작이라면 이런 식으로 사람을 ‘까지는’ 않을 것이다. 적어도 정중하게 이 자리가 불편하다고 표현하고 아쉬운 얼굴로 사과했겠지.
눈썹 끝을 내리고 성의껏 사과하는 그 모습은 몹시 귀엽고 다정하니, 누구든 그 사과를 받아 주리라.
다른 곳으로 새는 생각을 붙들며 유릭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카운터 앞을 지나니 직원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벌써 가십니까?”
“아니요, 잠시 일이 있어서. 계산은 돌아와서 하겠습니다.”
의아해하는 직원을 뒤로하고 식당 밖으로 나왔다.
식당 뒤편을 확인하니, 헥센 백작가의 마차가 그대로 있었다. 시중을 드는 사람과 함께 왔을 테니 그쪽을 찾아볼까 고민하던 순간.
기이한 마나의 소용돌이가 느껴졌다.
‘이게 뭐지?’
스산한 바람 한 자락이 그의 다리를 한 바퀴 휘감고 갔다. 마법사가 아니라면 절대 느끼지 못할 바람이었다.
어디선가 마나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마나를 느끼지 못하는 이들은 태연한 얼굴로 거리를 지나도, 마법사라면 바로 깨달을 수 있다. 온몸이 바늘에 찔리는 듯 따끔거리고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한다.
평화로운 거리의 모습이 지독하게 이질적이다.
‘우연일까?’
화장실에 다녀온다며 돌아오지 않은 헥센 백작. 그녀를 찾으러 나오자마자 느껴진 마나의 회오리.
우연일지도 모른다. 헥센 백작은 마법사가 아니니까, 그녀가 사라진 것과 마나의 움직임은 관련 없을 확률이 높다.
그런데도 유릭스는 이끌리듯 마나를 추적했다.
좁은 골목이 나왔다. 가로등 하나 없이 어두워서, 구석구석 밤이 스몄다. 유릭스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어둠 속으로 뛰어들었다. 어쩐지 커다란 위기에 직면한 느낌이었다.
“백작님?”
미로 같은 골목을 돌며 자기도 모르게 불러 보았다. 그냥, 여기 어딘가 백작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법사는 자신의 직감을 신뢰한다. 유릭스는 발걸음을 재촉해 달리기 시작했다.
기이한 일이다. 안이 그리 넓지도 않을 텐데, 뛰고 또 뛰어도 제자리다. 대로로 벗어나 다시 방향을 잡으려 해도 길은 끝없이 늘어날 뿐. 모퉁이를 돌고, 돌고, 돌아도 길을 찾을 수 없다.
어느새 마나의 흔적은 말끔히 사라진 후였다.
유릭스는 막막한 심정으로 멈춰 섰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어느새 별이 총총 떠올라 있었다. 갑자기 불안함이 밀려왔다.
만일 다 착각이었다면?
헥센 백작은 그저 화장실에 오래 머물렀을 뿐일지도 모른다. 그녀가 돌아와 빈자리를 본다면? 말도 없이 가버렸다고 생각할 테니 당연히 불쾌할 것이다.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무척 초조했다.
그게 아닌데. 헥센 백작이 걱정되어서 찾으러 나온 것인데. 혹여 그녀에게 실망을 안기지는 않을까. 그처럼 선량하고 정직한 사람에게…….
바로 그 순간, 쩌렁쩌렁한 고함이 유릭스의 걱정을 불살랐다.
“공작님! 공작님, 나 도와줘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유릭스는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몸을 틀며 거세게 외쳤다.
“백작님!”
“공작님! 대답! 대답했어! 이것도 대답으로 쳐줘어어!”
유릭스는 몰랐지만, 그가 그 대답을 들었기 때문에 미르아는 목숨을 건졌다.
유릭스는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모퉁이를 딱 하나 돌았을 뿐인데, 어처구니없게도 바로 백작의 모습이 나타났다. 마치 운명의 인도처럼.
어둠 속에서 일순, 백작의 몸이 돌처럼 보였다.
머리카락 하나하나까지 다 돌처럼 굳어 있었다. 유릭스는 눈을 깜빡여 환각을 지워내려 했다. 그리고 그 순간.
백작의 몸이 스르르 허물어졌다.
유릭스가 허둥지둥 달려가 쓰려지는 그녀의 몸을 받아 안았다. 몸은 따뜻했고 말랑했다. 분명한 사람의 몸이었다.
놀라기는 한 모양이다. 어둠 속이라 해도 사람 몸이 돌이 되었다 착각하다니.
안도의 한숨을 내쉰 유릭스가 백작의 상태를 살폈다. 심장은 제대로 뛰고 있지만, 몸이 차가웠다.
유릭스는 자기 코트를 벗어 헥센 백작의 몸을 덮어 주었다. 그리고 깊이 생각하는 대신 얼른 백작을 고쳐 안았다.
왜 여기에 와 있는지, 왜 쓰러졌는지는 모르지만 의원에게 보이는 게 우선이었다.
한없이 작고 가볍게 느껴지는 백작을 안고, 그는 골목 밖으로 나갔다.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바로 길이 나타났다.
‘트릭스터 짓인가?’
이 정도 장난을 칠 존재는 트릭스터뿐이다. 수상한 마나의 흐름, 끝없이 이어지던 골목,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 일이 끝나자 곧장 원래대로 돌아온 시공간.
만일 정말 트릭스터의 짓이라면…….
유릭스는 자신의 품에 고개를 기대고 쓰러진 백작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그가 가만히 생각했다.
백작은 자신 때문에 이 일에 휘말린 것이다.
끈적끈적한 죄책감이 유릭스의 몸으로 쏟아졌다.
트릭스터는 자신을 잡으려 드는 유릭스를 유인하기 위해, 백작을 미끼로 사용한 게 분명하다. 이렇게 말갛고 정직한 사람을 잔혹한 장난에 끌어들이다니.
유릭스는 분노와 경멸로 눈을 빛냈다. 트릭스터가 마나 한 줌 느끼지 못하는 비마법사를 이용할 줄은 몰랐다. 생각보다 훨씬 더 질 나쁜 괴물이다.
식당으로 돌아가 백작의 마차를 찾았다. 마차 안에서 졸고 있던 집사는 문을 두드리자마자 번쩍 눈을 뜨고 달려 나왔다. 그리고 바로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악! 아가씨! 단주님!”
“무사합니다.”
정중하게 이야기했으나 집사는 반쯤 정신을 잃고 헥센 백작의 작은 몸을 흔들기 바빴다.
“아가씨, 왜 그래요! 또 대답 안 한 겁니까? 아가씨, 아가씨!”
“좀 진정하고.”
이대로 뒀다가는 끝이 없을 것 같아서, 유릭스가 집사의 어깨를 잡았다. 그런 다음 침착한 목소리를 꾸몄다.
“일단 내 저택으로 모셔가겠습니다. 서둘러 몸 상태를 확인해야겠군요.”
“예?”
집사가 얼빠진 얼굴로 되물었다. 유릭스는 인내심을 가지고 반복했다.
“몸 상태를 확인해야 하니까요. 상처는 없지만 혹시 모르는 일입니다.”
“아니, 왜…… 왜 우리 단주님이 공작님 저택으로 갑니까?”
“그야…….”
걱정되니까.
유릭스는 자신의 마음을 알고 깜짝 놀랐다.
걱정이야 당연하지만, 너무 자연스럽게 자신의 저택으로 데려가려 했다. 왜 그랬을까. 백작도 당연히 자기 저택이 있는데.
정말 이상한 일은 따로 있었다. 집사로부터 지당한 말을 들었는데도, 여전히 백작을 공작 저택으로 데려가고 싶다는 것.
유릭스의 입이 저절로 열렸다. 지극히 합리적인 이유가 튀어나왔다.
“아무래도 마법과 관련된 일로 정신을 잃은 것 같습니다. 내가 마법 질병을 다룰 수 있으니 일단은 내 저택으로 가는 게 맞지요.”
“그, 그렇습니까?”
집사는 멍하게 입을 벌리고 되물었다. 집사 또한 비마법사인지라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유릭스는 백작의 몸을 다시 고쳐 안으며 자기 마차로 향하며 덧붙였다.
“함께 가시죠.”
“물론입니다!”
집사는 헥센 백작가의 마차도 버리고 따라왔다. 그렇게 유릭스는 얼렁뚱땅 백작을 자기 마차에 태워 데려가는 데 성공했다.
마차는 바로 출발했다. 유릭스는 백작을 길게 눕히고, 머리는 제 허벅지에 기대게 했다.
백작의 얼굴을 내려다보니, 안색이 나빴다. 창백한 뺨과 핏기 없는 입술. 얼굴에 흩어진 까만 단발머리 때문에 더 파리해 보였다. 악몽이라도 꾸는지 미간에 주름이 가 있었다.
유릭스는 자기도 모르게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앓는 아이를 달래듯이.
한참을 쓰다듬으니 백작의 얼굴이 점차 편해졌다. 그녀는 온기를 찾아 유릭스의 품으로 파고드는 듯 뒤척이며 고개를 저었다. 비 맞아 떨다가 사람의 손에 기대는 작은 새처럼.
그 모습을 내려다보는 유릭스의 심장이 쿵 떨어졌다. 갑자기 마차가 느리게 움직이는 듯하고, 세상의 소리가 사라지고, 헥센 백작과 단 둘이 남은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가까이 있는 건 처음이다. 문득 그 사실을 자각했다. 심장이 허락도 없이 마구 날뛰었다.
…이게 무슨 마음이지?
그는 저택에 도착할 때까지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작품후기]모태솔로몬님, 아아아아야님, ㅎㅎ1314님, 꾸잉아잉님, 한은지님, 쏘니사랑님, 안녕나는누구게님, MidnightB님, lotis님, 군만두굽는중님, delideli님, 데인져러스님, 사찬님, OLIVIAN님, udes님, 쥬썅님, 블리나블리님, 고양이버찌님, 로베리안님, 김몽실님, DElzeno님, 낫자루님, 뮤트203님, 하늘꿈꾸기님, lcanUcan님, 아직은청춘님, 매래진주님, 아람닻별님, 지니지니얍님, 689님, 소설같은삶님, 강여름님, 김유연님, Stella0623님, 새참나무님, 너와나는토깽이님, Brianna님, 티르베히6님, wild chick님, bblee0419님, 이리이리왕님, 벌써나이가님, 파카파카님, 곰구미님, 씰버라이트님, Nalgi님, 진데렐라님, 아아아어어님, 하얀과꽃님, 분유님, 에이라니아님, 달빛별비님, 카인G크리티카님, 가끔씩만님, 애수5님, 김철식님, 뿌잉뽀잉99님, 칼라뽕님, 단애호박님, pato님, 뉘시님, beolene님, fffwok님, 아이린 르 루나시스님, 또롱이언니님, 신나는콩나물님, 인류의시발점님, 아리루님, vavaciva님, 개인의결함님, 이미있는닉네임님, Nyxiz님, Likry님, 장동우킬러님, hayeon1015님, S느루2님, 로펜트님, 라바트님, 로열밀크티님, 전편 코멘트 모두 감사합니다//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