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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장하지 마세요-17화 (17/74)
  • 17회

    알 수 없는 마음연참 4/7

    선톡?

    선톡이라고?

    “할아범, 무슨 소리야!”

    나도 모르게 책상 맞은편에 있는 할아범의 팔을 찰싹 때렸다.

    선톡은 선-톡톡의 줄임말로, 상대에게 먼저 톡톡을 보내는 일을 뜻한다.

    세상 모든 일에는 이면이 있는 법. 선톡은 단순히 ‘먼저 톡톡을 보내는 행위’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 안에는 뭔가 간질거리는 설렘, 구애의 긴장, 호감을 표하는 용기, 대충 그런 것들이 들어 있다.

    달콤한 마법 스프 같은 거지. 물론 원치 않는 관심은 스프가 아니라 똥물이겠지만.

    “선톡이라니, 이건 그런 게 아니야. 안부 인사랄까?”

    “아가씨가 공작 안부가 왜 궁금한데요?”

    궁금할 수도 있지 거 되게 따지네.

    굳이 설명하자면, 공작이 어제 너무 잘해줘서 좀 감동했다. 어젠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할아범 앞에서 엉엉 울었지만, 자고 일어나 아침을 맞이하니 침착함이 돌아왔다.

    그래, 너무 창피해하고 미안해할 거 뭐 있어. 앞으로 잘해주면 되잖아. 그리고 공작은 좋은 사람이 분명해. 친하게 지내서 나쁠 거 없잖아!

    “그냥 잘 잤냐고 물어보는 거야. 어제 봤더니 아직도 붕대를 감고 있더라고. 자기 말로는 몸에 큰 문제는 없다는데, 진짜 괜찮은지 궁금하잖아.”

    “그래요?”

    할아범이 다시 눈썹을 까딱했다. 그러더니 꼬장꼬장하게 팔짱을 끼고 고개를 기울였다.

    “상대방도 그냥 안부 인사라고 생각할까요? 점심부터 선톡하는데?”

    “공작은 그런 착각하는 사람 아니야.”

    딱 잘라 단언했다.

    아마 공작은 ‘선톡’이라는 단어조차 모를 것이다. 큰 용건 없이 톡톡으로 먼저 말을 거는 행위가 어떻게 해석되는지 전혀 모르리라 확신한다. 그러니까 오해 받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지.

    “공작은 다른 사람이랑 다르거든. 아무튼 뭔가 좀 달라.”

    “그래도 안 보내는 게 좋을 거 같은데……. 편지를 보내시든가…….”

    끝까지 토를 다는 할아범을 향해 상쾌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내가 톡톡 판매자인데 어떻게 편지로 연락해? 그냥 안부만 묻는 거야. 걱정하지 말라고.”

    할아범은 묘한 눈으로 날 쳐다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돌아서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는데, 뭐라고 하는지 전혀 못 들었다. 혹시 나를 향한 말이었을까 싶어 얼른 대답했다.

    “아무튼 알았어, 할아범!”

    할아범이 나를 홱 돌아보았다. 그러더니 억울한 목소리로 외쳤다.

    “자식 키워봤자 소용없다더니!”

    쾅, 문이 닫혔다.

    왜 저래. 어안이 벙벙해서 한동안 문만 바라보았다. 잠시 후, 갑자기 문이 열리고 할아범이 고개를 내밀었다.

    “바람 때문입니다.”

    “…….”

    “대답이요, 아가씨.”

    “어, 그래…….”

    할아범이 살짝 문을 닫고 나갔다.

    아무래도 할아범도 뒤늦게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는 모양이다. 왜 저렇게 감정이 오락가락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건 선톡 아니라니까 참.

    난 공작한테! 절대! 아무 감정도 없다고!

    “자, 그럼.”

    가볍게 긴장을 털어내며 톡톡 앞에 앉았다.

    [공작님, 안녕하세요. 헥센 백작입니다.]

    이건 아니야. 공작이 처음에 보낸 톡톡 같아. 말하자면, 공문서 같다는 거지.

    [편안히 주무셨습니까?]

    너무 딱딱해.

    [잘 잤어요?]

    …이렇게 보내면 진짜 오해 받을 것 같다.

    [안녕하세요! 상처는 괜찮으신가 하여 연락드립니다. 붕대는 언제 푸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무난한가? 그냥저냥 무난한 것 같기도 하고.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가벼우면서도 정중하게, 정중하면서도 딱딱하지 않게, 적당한 호의와 감사가 묻어나게 보내야 한다. 그러려면 어떤 표현이 좋을까. 톡톡의 모토는 가볍고 쉬운 의사소통인데, 이럴 때는 대화보다 더 어렵게 느껴진다.

    아무래도 상대의 반응을 바로 확인할 수 없어서겠지.

    고심 끝에 문장을 골랐다.

    [안녕하세요, 공작님!]

    [어제는 정말 감사했습니다. 몸도 편치 않으신데 제가 괜히 폐를 끼친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붕대는 다 푸셨는지, 상처는 괜찮으신지 궁금하여 연락드립니다.]

    세 번을 끊어 보내고 초조하게 답장을 기다렸다.

    공작은 답장을 빨리 보내는 편이다. 처음 연락했을 때도 그렇고 그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톡톡을 늘 들고 다니지는 않을 테니 그동안 책상 앞에 많이 앉아 있었던 거겠지. 오늘도 그러지 않을까?

    10분이 지났다.

    20분이 지났다.

    …왜 답장 안 오지?

    그때, 할아범이 안으로 들어왔다. 지난번보다 더 두꺼운 샌드위치가 내 책상에 놓였다. 할아범은 곧장 자리를 뜨지 않고 내 톡톡 화면을 넘겨다보았다.

    “답장 안 오네요?”

    “바쁜가 보지.”

    심드렁한 척 대답하니 할아범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벌써 점심이니까요. 식사 중일 수도 있고.”

    그 말을 들으니 갑자기 마음이 놓인다.

    아니, 왜 마음이 놓이지?

    답장이 바로 안 와서 초조한 건 아니다. 혹시 공작이 아직 마음이 안 풀렸나 해서 그런 거다. 절대 뭐 아쉬운 게 아니라고.

    그러고 보니 공작은 점심을 어떻게 먹을까. 공작이 나처럼 책상에 앉아서 샌드위치를 씹는 모습은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다. 식당에서 코스 요리라도 즐기겠지. 매번 그렇게 먹을 순 없을 테니, 어떤 날은 간단하게 리조또 같은 걸 먹기도 할까?

    무슨 음식을 좋아하나. 뭘 자주 먹는지 알면 감사의 의미로 식사라도 대접할 텐데.

    “아가씨? 아가씨!”

    “어, 어?”

    못 들었나 보다. 할아범에게 고개를 돌리자, 의심스러운 표정부터 눈에 들어왔다.

    “뭘 그렇게 생각하세요?”

    “어…….”

    왠지 공작의 점심 메뉴를 궁금해 했다고 하면 안 될 것 같다. 나는 관자놀이를 긁으며 대충 대답했다.

    “나야 자나 깨나 상단 생각뿐이지.”

    톡톡!

    어, 답장 왔다!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척 톡톡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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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빌어먹을 놈들!

    당장 우리 지원 부서에 연락해서 이따위 스팸 톡톡 좀 안 오게 하라고 해야겠다. 도대체 어디서 이렇게 내 정보가 팔린 거야. 내가 어디서 톡톡 번호 함부로 적은 적 있나?

    기운이 쭉 빠져서 자리에 앉았다. 내 톡톡을 보던 할아범이 짧게 충고했다.

    “답장이요.”

    “누가 말 걸 때 처음부터 무시하면 대답 안 해도 괜찮았잖아. 톡톡도 똑같지 않을까? 일단 대화를 시작 안 하면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그런가요?”

    “기다려 보고 몸 이상해지면 답장하자.”

    설마 스팸에까지 답장해야 하는 건 아니겠지. 톡톡으로는 실험해본 적이 없으니 마침 잘된 일이다.

    할아범과 함께 한참을 기다렸지만 몸이 돌로 변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공작도 답장하지 않았다.

    젠장.

    신경 안 써. 누가 신경 쓴대? 무슨 사정이 있겠지. 공작이라고 매번 톡톡을 빨리 확인할 수는 없잖아. 점심 다 보내고, 오후에나 답장이 올지도 모른다. 아니면 아직 회복이 덜 되어 잘 수도 있고.

    그렇게 늦은 오후가 되었다. 답장은 없었다.

    슬슬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점심에 보냈는데 시간은 이미 다섯 시. 확인하고도 남았을 시간이다.

    내가 보낸 톡톡 내용을 여러 번 들여다본다. 뭐 실례될 표현이 있었나? 어제 혹시 기분이 나빴나?

    괜히 먼저 연락했네. 이렇게 무시당할 줄 알았으면 그냥 나도 신경 안 쓰는 건데. 설마 내가 자기한테 관심 있어서 연락한 줄 아는 거 아니야? 참나, 어이가 없어서.

    저녁이 되었다.

    답장은 없었다.

    저녁을 먹고 방으로 돌아왔다.

    역시 답장은 없었다.

    톡톡을 확 뒤집어버렸다.

    샤워하고 잠이나 자야겠다. 앞으로 내가 먼저 연락하나 봐라.

    욕조에 물을 받는 수고를 하기는 싫고 하녀를 부르기도 싫어서, 그냥 간단히 샤워만 했다. 거품을 내어 머리를 감고 야무지게 세수도 하고.

    씻으니까 공작 생각도 사라지는 것 같다. 그래, 오늘 너무 신경 썼지. 이젠 공작이 답장하든지 말든지 관심 없다. 괜히 연락하면 무의미하게 인사하면서 얘기만 길어지는데, 잘 됐다, 잘 됐어!

    물을 잠갔다. 간단히 몸을 닦고 나가려고 하는데, 그 순간 환청처럼 들리는 소리.

    톡톡!

    …공작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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