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답장하지 마세요-14화 (14/74)

*내일 자정쯤 연참합니당!!!14회

알 수 없는 마음연참 1/7

내 인생은 끝났다.

아마 조만간 거리에 나앉게 되겠지. 불쌍한 할아범에게 퇴직금도 못 챙겨주고. 우리 상단 직원들이라도 공작가에 채용시켜 달라고 하면 데이라 공작이 받아줄까?

할아범은 집무실에 앉은 내 어깨를 두드렸다.

“괜찮을 겁니다.”

그 말에 도저히 맞다고 대답할 수가 없다.

먹구름이 내 위에만 머무르며 비를 뿌리는 것 같다. 자꾸 춥고, 온몸이 식은땀 때문에 축축하고, 무섭고, 혼자가 된 기분이다. 할아범마저 곁에 없었다면 진짜 엉엉 울었을지도 몰라.

리리는 정신이 들자마자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시혜의식에 젖은 건방진 마법사 놈과 마주친 이야기, 데이라 공작이 끼어들어 상황을 중재한 이야기, 그런데 갑자기 몸이 이상해졌다는 이야기까지.

리리를 곤란하게 했던 마법사 놈도 찾아내서 앞뒤 사정도 들었다.

‘아, 그 사람이 아니었어도 내가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괜히 나서서 잘난 척은…….’

요는, 이상한 놈 하나 때문에 마나 발작을 일으킨 리리를 데이라 공작이 구해주었다는 거다. 그 이상한 놈은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도망가서 종적을 감추었다. 개새끼.

아니, 내가 알았겠어? 마법사도 아닌 내가 어떻게 ‘마나 인공호흡’ 어쩌고를 알겠느냐고! 상황이 너무 오해할 만한 상황이지 않았냐고!

발을 쾅쾅 구르자 할아범이 걱정스럽게 물어 왔다.

“아가씨? 단주님? 괜찮으시죠?”

“아니이이…….”

두 손에 얼굴을 묻으며 좌절을 감추었다.

뭐가 어찌 되었든 나는 도자기로 공작 머리통을 깬 거다. 불행 중 다행으로 공작은 죽지 않았지만, 지금도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사건 직후 공작은 바로 수도의 자기 저택으로 이송되었다. 공작의 기사는 핏발이 선 눈으로 내게 삿대질을 하다가 돌아갔다. 나는 떠나는 공작의 마차를 바라보며 돌처럼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이틀이 지났다.

그야말로 피가 바짝바짝 마르고 일이 손에 안 잡힌다.

공작가에 병문안을 요청했는데, 간단히 무시당했다. 공작이 깨어나면 따로 연락을 준다고는 하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그냥 이렇게 앉아서 기다리고만 있자니 미칠 노릇이다.

“연락 온 거 없지? 공작 깨어났다든가, 그런 거 아직이지?”

“네, 그러네요.”

“진짜 막막하다.”

할아범의 얼굴도 어둡다. 당연히 걱정되겠지.

그때, 밖에서 누군가 노크했다. 혹시 공작가에서 사람이 왔나? 나도 모르게 허리를 바짝 세우고 자세를 바로 했다.

“들어오세요.”

누가 오나 했는데, 뜻밖에도 리리였다.

리리는 내 책상 앞으로 다가와서 울적하게 눈을 내리깔았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깜짝 놀라 나도 반쯤 일어섰다.

“뭐, 뭐야? 왜 그래? 몸에 문제 생겼어?”

“아니요…….”

“그럼 왜? 아파? 의사가 괜찮을 거라고 했는데!”

이 비극 중에도 좋은 소식이 하나 있다면, 리리.

의사는 리리가 마법사가 되었다고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마법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몸에 너무 많은 마나가 있는데, 그게 빠져나갈 통로가 없어서 아팠던 거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데이라 공작이 마나 인공호흡을 통해 길을 제대로 열어준 덕에, 이제 리리도 마나를 다룰 수 있게 된 것이다.

리리는 앞으로 점점 더 건강해질 테고, 훌륭한 마법사가 되겠지. 어쩌면 마법 학교에 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데이라 공작은 리리의 은인이기도 하다. 결국 난 친구 은인 머리통을 깨버린 게 된다.

“죄송해요, 주인님.”

갑작스러운 말에 깜짝 놀랐다.

고개를 들어 보니 리리의 녹색 눈에 눈물이 가득했다. 뭐라고 대답도 하지 못하고 바라만 보니, 리리의 흰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린다. 우는 사람 보고 이런 생각 하면 안 되지만, 어찌나 아름다운 광경인지 심장이 아프다.

“괜히 저 때문에……. 제가 거기서 붙들리지만 않았어도……. 아니, 애초에 거기를 지나가지 않았더라면…….”

“아니야, 아니야.”

재빠르게 일어나 리리를 꼭 안았다. 마르고 연약한 리리의 몸이 울음 때문에 사정없이 떨렸다. 마음이 부서질 것처럼 아팠다.

“네 잘못이 아니야……. 리리, 울지 마. 우린 괜찮아.”

“저 때문에 상단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아니, 주인님이…….”

“절대 안 그래.”

리리의 두 어깨를 잡고 내게서 떼어냈다. 짐짓 호기로운 척 씩 웃었다.

“우리 상단 생각보다 힘없지 않아. 공작이 마음먹고 공격해도 그렇게 쉽게 쓰러질 일 없어. 알잖아, 사람들이 톡톡 얼마나 좋아하는지.”

리리의 얼굴에서 의심과 희망이 엇갈렸다. 거짓말을 하는 느낌이라 마음이 편치는 않지만, 일단은 리리를 진정시키는 게 우선이다.

“그리고 공작도 사정을 잘 설명하면 이해해 줄 거야. 우리 친하거든.”

“…정말요?”

“응. 우리 톡톡도 완전 많이 해.”

물론 대부분 쓸데없는 인사의 반복이지만, 그래도 말 자체는 맞으니까.

리리는 그제야 안심한 듯 서럽게 울음을 터뜨리며 내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정말 다행이에요. 얼마나,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요…….”

그래, 나도 정말 걱정이야.

속마음은 안으로 삼켜버렸다.

리리는 점점 건강해질 거라고 했지만, 아직은 아니다. 불안정한 몸에 충격을 줄 필요는 없다. 모르는 척 리리를 안고 등을 쓰다듬었다.

옆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할아범이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낸다.

“잘 쉬고 있어. 응? 마나 때문에 당분간 몸이 불안정할 거라고 했잖아. 나중에 마법 학교도 보내줄게. 우리 상단 전속 마법사 할 거지, 그렇지?”

“당연하죠!”

리리는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울음을 그쳤다. 그러더니 나를 보며 비장하게 말했다.

“저한테 뭔가 능력이 생긴다면 꼭 주인님을 위해서만 쓸 거예요.”

“너무 든든하다. 우리도 이제 마법사 빽 생기는 건가?”

농담조로 물으며 분위기를 풀었다.

리리의 얼굴에서 슬픔과 불안이 싹 가신다. 일단 리리를 돌려보내고 공작가 연락을 계속 기다려야겠다. 공작이 눈을 떠야 직접 찾아가 사과를 하든 빌든 하지.

그때, 리리가 내 얼굴을 보며 물었다.

“공작가에 찾아가실 거죠? 제가 같이 갈까요? 어쨌든 제 일이기도 했으니까…….”

“아, 아니야. 나 혼자 가는 게 나을 것 같아.”

공작가에서 무슨 대접을 받을지 모른다. 리리를 데려갔다가 기절이라도 하면 큰일이지.

“공작이랑 둘이서만 잘 얘기할게. 친하다니깐. 걱정하지 마.”

리리는 순진하게도 내 말에 완전히 넘어갔다. 나와 공작이 톡톡을 많이 주고받은 사이라는 말을 주저 없이 믿어버린 모양이다.

“공작님이 주인님과 친구였다니 정말 다행이에요. 주인님 친구라면 분명 좋은 사람이겠죠. 꼭 이해해줄 거예요.”

나도 진짜 공작이랑 나랑 친구였으면 좋겠네.

그래도 리리는 한결 편해진 얼굴로 돌아갔다.

할아범과 둘만 남은 방에는 침묵뿐이었다.

문제가 심각하다. 우리한테 아무리 돈이 많아도, 상대는 공작이다. 게다가 엄청난 힘을 가진 마법사이기도 하다. 귀족과 마법사 양쪽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며, 돈도 우리 못지않게 많다.

아마 고소당하겠지? 버틸 수 있을까? 공작이 모든 법조계를 뒤흔들어 나를 공격한다면? 어쩌면 상단을 빼앗길지도 모른다. 신분도 이쪽이 불리하다.

좋지 않은 예감 때문에 진땀이 났다.

내내 초조하게 기다렸는데, 그날도 공작가에서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사흘째 되던 날.

마침내 공작가에서 사람이 도착했다.

-

미쳐버릴 것 같다.

마침내 공작의 침실 앞에 섰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뛴다.

나를 여기까지 안내해준 공작의 기사는 눈을 번뜩이며 적의를 감추지 않았다. 그래도 공작과 둘이 만나겠다고 하니 물러가 주기는 했다.

아, 으, 너무 긴장돼. 분명히 할 말을 다 정리하고 준비해 왔는데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쿵쾅거리는 심장을 꾹 누르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문손잡이를 쥐었다. 차갑고, 딱딱하다. 나를 기다리고 있을 공작의 마음처럼. 꺼지라고 박대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천천히 문을 열었다.

안의 공기는 무척 따뜻하고 포근했다. 수수한 꾸밈이라 침대가 바로 눈에 들어왔다. 공작은 그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머리에 감은 붕대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혈색도 그리 좋지 않은 것 같다. 아직도 심하게 아픈 걸까.

“저, 공작님. 안녕하세요…….”

표정을 확인할 용기가 없어서,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겨우겨우 침대 가까이 걸어갔다. 다리가 덜덜 떨렸다. 꼴사납게 비틀거리지나 않았는지 모르겠다.

데이라 공작 앞으로 다가가면서 가져온 편지봉투를 꺼냈다. 말로 시작하면 엄청나게 더듬을 것 같아서 준비했는데, 망설여진다.

혹시 진지한 사과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어쩌지?

그때 공작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게 뭐죠, 백작님?”

뜻밖에도 차갑지 않은 목소리였다. 머리끝까지 화가 나진 않은 것 같다는 느낌이, 내게 용기를 주었다.

나는 너무 꽉 쥐어 구겨진 편지봉투를 내밀었다. 목소리가 저절로 기어들어 갔다.

“바, 반성문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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