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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장하지 마세요-12화 (12/74)
  • [작품후기]*여러분 조만간 연참해요~~~~~! 아마도~~~~! 모레나 그쯤~~~~! 아무때나 제가 좋을떼~~~~!12회

    트릭스터와 자선 파티연참 1/2

    “자, 잠시만요오!”

    문이 거칠게 열리며 할아범이 뛰어 들어왔다. 할아범은 기다리는 사람들의 시선도 잊고 다시 문을 쾅 닫았다. 그런 다음 재빨리 나와 공작 사이에 끼어들었다.

    “우, 우리 주인님께는 다 사정이 있습니다!”

    “그게 대체 뭡니까?”

    부글부글 끓는 낯으로 되물은 사람은 공작의 기사였다. 그래, 이해한다. 내가 얼마나 미친놈처럼 보이겠어.

    “레이번 경, 그만…….”

    “공작님! 말리지 마십시오. 이건 이대로 넘어갈 수 없는 문제입니다.”

    왜 저렇게 화가 났나 싶다. 아, 솔직히 너무 창피해서 더 말하지 않고 어디 책상 밑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기사는 말리는 공작의 손도 뿌리치고 싸늘하게 따지고 들었다.

    “해명해 보시죠. 지난번에는 갑자기 톡톡으로 비웃고 욕을 하지 않나, 마법사 거리에서는 마지막으로 대답하겠다면서 소리를 지르지 않나. 도대체 공작님께 무슨 불만이 있어서 이러는 겁니까?”

    뭐야, 이 공작, 그 톡톡 보낸 걸 기사한테까지 보여줬어?

    “다 오해입니다!”

    할아범이 목청 좋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더니 공작과 기사를 번갈아 바라보며 호기롭게 말을 시작했다.

    “이야기를 들으면 두 분 다 이해하실 겁니다. 사실 우리 백작님은!”

    “백작님은?”

    “백작님은…… 으으읍…… 우우읍…… 에엡…….”

    싸늘한 침묵이 깔렸다.

    할아범은 입을 열어 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다 허사였다. 저주는 남에게 말할 수 없다는 규칙 때문에, 할아범의 입술이 풀로 붙인 듯 붙어 버린 것이다! 할아범은 온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근육을 모두 사용했지만, 한 마디도 더 뱉을 수 없었다.

    공작과 기사는 할아범의 입술만 보며 긴장하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대단한 사연이 있나 궁금한 표정이었다.

    아, 모르겠다. 내가 나서자. 그래서 이 상황에서 빨리 도망치자.

    “눈물 없인 못 들을 사연이 있습니다!”

    공작과 기사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기사가 황당하다는 투로 물었다.

    “대체 그 사연이 뭡니까?”

    “눈물 없이 못 들을 사연이라니까요. 비밀입니다. 남의 아픈 사연을 그렇게 쉽게 들으려고 하면 안 되죠!”

    오히려 당당하게 훈계했다. 앞으로 창피해서 다시는 공작과 기사 얼굴 못 볼 것 같다……. 그래도 사과는 해야겠지 싶어 말을 덧붙였다.

    “아무튼 죄송합니다.”

    훈계하다가 갑자기 사과하니, 할아범이 미쳤냐는 얼굴로 날 돌아보았다. 근데 나 진짜 미쳤다. 이미 이 사람들 앞에서 오만 미친 짓을 했는데, 더 한다고 뭐가 달라져!

    기사가 입을 벌리고 날 바라보다가 기가 찬 투로 물었다.

    “사정을 들으면 이해할 거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랬나요?”

    그건 할아범이 한 말인데.

    “그랬습니다.”

    “그럼 그 말은 취소.”

    “…….”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던 공작의 얼굴에 바스스 금이 갔다. 이번에도 참지 못하고 나선 건 기사 쪽이었다.

    “이건 다시 없을 모욕입니다! 명예를 걸고 헥센 백작가에 결투를 신청……!”

    “레이번 경, 그만.”

    기사를 막아선 건 공작이었다. 솔직히 그쪽도 간신히 정신을 수습한 것처럼 보이지만……. 어쨌든 목소리만은 침착했다.

    공작이 푸른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솔직히 버럭 할 것 같아서 좀 움찔했다. 결투 말고 날 직접 때리고 싶어서 기사를 말린 건 아니겠지?

    곧 그 그림같은 입술이 열렸다.

    “백작님 말씀이 옳습니다. 내밀한 사정을 듣게 해달라 고집을 부려서는 안 되겠지요. 이유가 있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뭐?

    공작 뒤에서 갑자기 후광이 나타났다.

    성자, 성자다! 무조건 내 편이어야 할 할아범조차, 공작의 자비와 이해심에 감탄한 표정이었다. 이 상황에 불만이 있는 사람은 단 하나, 공작의 기사뿐.

    그때 공작이, 예의 그 비 그친 숲과 같은 청량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백작님의 마음을 이해합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든 자기만의 사연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니까요. 그렇지요?”

    일단 무작정 고개를 끄덕였다.

    “아, 예에…….”

    “솔직하게 말씀해주시는 용기에 감탄했습니다. 오히려 저희가 실례를 저지른 것 같군요. 이해해 주시겠습니까?”

    기사가 얼빠진 얼굴로 주군을 노려봤다. 눈빛이 고스란히 읽힌다. ‘도대체 저 백작의 어디가 솔직했는데요?’ 그래, 나도 같은 생각이다.

    할아범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할아범은 급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내가 해야 할 말을 대신 해주었다.

    “물론입니다. 저희 역시 공작님의 크나큰 이해심에 감동을 금할 길이 없군요. 그렇지요, 백작님?”

    아무래도 이 공작은 착하거나 멍청하거나 착한 멍청이거나 셋 중 하나…….

    “악!”

    딴생각하는 내 발을 집사가 콱 밟았다. 구두 신은 발을 밟다니, 이렇게 잔인한 일을! 어쨌든 그 덕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다, 당연하죠. 공작님은 정말 친절하시네요. 어…… 정말 어떻게 그렇게 놀라운 성품으로 영지를 다스리시는지…….”

    “예?”

    “아, 아니, 제 말은, 영지의 모두가 공작님의 너그러운 성품을 알았으면 한다는 뜻이죠. 이해해 주신다니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이 정체 모를 대화가 마무리되었다. 가장 수치스러웠던 일은, 공작이 나가기 전에 나와 대충 이런 대화를 주고받았다는 것이다.

    “그럼, 모쪼록 파티를 충분히 즐겨 주시기 바랍니다. 경품 추첨과 경매에도 꼭 참석해 자리를 빛내 주시길 부탁드려요.”

    “감사합니다. 백작님의 얼굴도 다시 뵐 수 있길 기대하겠습니다.”

    “물론이죠. 그럼 밖에서 뵙겠습니다.”

    “네, 그럼.”

    “네, 조심히.”

    “백작님께서도.”

    “공작님, 얼른 가시죠.”

    “네, 감사합니다.”

    진짜 돌이 되어 죽든 혈압 올라 죽든 둘 중 하나다.

    그러나 겨우 수습해 놨는데, 이번에도 내가 마지막으로 대답할 거니까 입 다물라고 소리칠 수는 없었다. 나는 짜증을 억누르며 공작을 바라보았다.

    “네. 대답 안 하셔도 됩니다.”

    “아, 네, 제가 또…….”

    “네네, 알겠으니까.”

    공작은 또 무의식적으로 입을 벌렸다가 내 살벌한 표정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기사는 내가 눈으로 욕하는 걸 알았는지 또 울컥해 달려들려 했다. 야, 나한테 그러지 말고 네 주군 대답 좀 말려 봐라.

    공작과 기사가 마침내 떠나고, 할아범이 십 년은 늙은 얼굴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더니 손수건을 꺼내 식은땀을 닦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나 어땠어? 많이 미친놈 같았어?”

    “네.”

    “엄청 무례했지?”

    “말이라고 하세요?”

    거 참 단호하네.

    “근데 저 공작도 이상하지 않아? 대답에 되게 집착해.”

    “원래 성격이 그런가 보죠. 사정이 있거나.”

    “아, 뭔 사정?”

    “저쪽도 우리 사정 이해해 줬잖아요. 그냥 넘어갑시다. 네?”

    하긴, 그건 그래. 나도 굳이 물고 늘어질 이유는 없지. 간단히 타협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

    “나 어떻게 알아봤을까. 후드도 잘 쓰고 있었던 것 같은데…….”

    “아가씨 인상이 너무 강렬해서 하관만 보고도 알아봤나 보죠……. 솔직히 잊기 쉬운 짓을 한 건 아니잖아요.”

    그래, 나 같아도 가게에서 자기가 마지막으로 인사할 거라고 발 구르는 놈 보면 못 잊겠지.

    이리저리 시간이 가니 벌써 경매를 진행할 시간이다. 할아범은 저주받은 나를 위해 특별한 경매를 준비했다. 그래도 많은 사람 앞에 나설 생각을 하니 긴장된다. 이놈의 저주만 아니었어도.

    방금 일로 수명이 십 년은 줄어든 것 같다. 솔직히 공작이 왜 내 무례를 용서해 줬는지 모르겠다. 식은땀을 닦으며 늘어져 있으니, 할아범이 안쓰러운 듯 내 어깨를 토닥였다. 물론 쉬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빨리 나갈 준비 하자고요. 돈줄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

    데이라 공작의 기사 레이번은 모욕에 취약한 타입이었다. 그는 다소 다혈질이었고, 앞서나가는 성향도 있었다. 공작이 제때 말리지 않았다면 정말로 헥센 백작가의 기사와 결투를 벌였을 것이다.

    “왜 그냥 넘어가 주시는 겁니까? 저 백작이 공작님을 모욕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않아. 정말로 사정이 있는 것 같았어.”

    “사정 있으면 욕하고 소리 질러도 됩니까? 예?”

    “레이번 경, 진정해.”

    데이라 공작은 차분히 경매장으로 걸어 나가며 그를 말렸다. 기사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끔거린 탓이었다.

    평소라면 파티장이 워낙 시끄러워 이 정도 목소리는 소음에 묻혔겠지만, 지금은 유난히 사방이 조용했다. 헥센 백작가가 특별히 준비한 경매 테마 때문이었다.

    ‘침묵의 경매.’

    서로 말을 걸지 않고, 침묵을 고수하며 진행하는 경매. 심지어 경매사조차 제품 소개 외에는 일절 말을 하지 않는다.

    경매에 참여하려는 이들이 잔뜩 모인 홀은 그야말로 쥐 죽은 듯 고요했다. 가끔 소리를 낮추어 작게 속닥거릴 뿐 큰소리는 전혀 없었다.

    레이번도 분위기를 읽고 작게 속삭였다.

    “혹시 헥센 백작가와 긴밀히 협력할 일이라도 있습니까?”

    공작은 조용히 자기 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러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야, 경. 헥센 백작은 어쩌면…… 나와 비슷한 사람일지도 몰라. 나도 그런 면이 있다는 걸 알지 않나.”

    공작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는 레이번도 알았다.

    공작 역시 마지막 답장이나 마지막 대답에 집착하는 면이 있었다. 하지만, 하지만 레이번이 보기에 공작은 그래도 상식적인 선이었다. 자기가 마지막으로 대답할 테니까 입 다물라고 소리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레이번이 그래도 이런 무례를 그냥 넘겨선 안 된다고 항변하려는 순간.

    “서로 이기려 드는 세상에서, 비슷한 사람을 만난 게 얼마 만인지. 잠깐이지만 반가웠어.”

    “앞구르기 하면서 봐도 그건 공작님 착각…….”

    “경도 편견을 버리고 헥센 백작을 바라봐. 마음이 여리고 정직한 사람인 것 같으니.”

    “마음이 여리고 정직…… 아니, 아까 눈으로 욕하는 거 못 보셨…….”

    “경은 가끔 사람을 너무 박하게 판단해. 헥센 백작은 그런 사람이 아니야.”

    레이번은 더 이상의 대꾸를 포기하고 자기 의자에 등을 기댔다.

    맘대로 하십쇼, 그렇게 마음에 들면 결혼하든가.

    [작품후기]하홍홍홍님, 아람닻별님, 라바트님, 고양이버찌님, 낫자루님, beolene님, 상큼한바람님, 로펜트님, 전편 코멘트 모두 감사합니다//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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