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후기]라바트님, 델리케이트님, 오뚜기카레님, 무우차님, 고양이버찌님, 아람닻별님, 전편 코멘트 모두 감사합니다//ㅅ!9회
트릭스터와 자선 파티연참 2/2
잘 다듬어진 금빛 머리카락에 바다처럼 짙푸른 눈동자.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옆얼굴이 잘 벼린 칼처럼 날카롭고 서늘하다. 짙고 선명한 눈매는 정성껏 그린 듯한 느낌을 주었는데, 맑은 날의 밤하늘처럼 깨끗했다. 휘지 않고 똑바로 선 콧날과 굳게 다문 붉은 입술, 희고 말끔한 피부까지.
게다가 슬쩍 보니 새까만 제복 차림이다. 끈이나 체인을 달지 않은 단출한 견장을 보니, 마법사 제복이다. 하기야, 마법사가 아니고서야 무엇 하러 마법 정보상을 찾아오겠냐마는.
슬쩍 허리춤을 살피니 묵직한 검도 매달려 있다. 이건 좀 의외다. 마법사는 대부분 검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 예장용 검이려나? 그렇게 보기엔 좀 수수한데.
“흠, 흠.”
아, 너무 빤히 봤나?
뒤쪽에 섰던 또 다른 남자가 노골적으로 헛기침을 한다. 저쪽도 확실히 정체를 알겠다. 입은 걸 보니 딱 모범 기사님이다.
마주친 눈을 슬쩍 피했다. 괜히 후드도 몇 번 끌어내렸다.
마법사 남자가 접수대로 성큼 다가간다. 남자의 얼굴과 차림을 살핀 직원이 신분증까지 확인한 후 환하게 미소를 짓는다.
“오셨네요! 바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조금 늦었습니다. 수도에 좀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괜찮습니다. 딱 좋을 때 오셨는데요, 뭘.”
직원은 과하게 친절했는데, 굽실거리는 느낌마저 들었다. 확실히 생긴 것도 그렇고 차림도 그렇고 범상치 않다. 높은 마법사인가 보지?
할아범이 못마땅한 얼굴로 남자와 직원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물러나려 했다. 뭐, 좀 기다리면 어때. 중요한 문제니까. 그냥 내 옆에 앉아서 기다리라고 해야지.
“할아범, 됐으니까…….”
“먼저 오셨습니까?”
와, 목소리도 엄청나.
말의 내용을 파악하기도 전에 음성에 감탄하고 말았다. 뭔가…… 비 그친 숲의 참나무 같은 목소리다. 그니까 뭐냐면…… 낮고 부드러운데 심지가 꼿꼿한 느낌?
보이는 옆얼굴은 여전히 차가운데, 어조는 다정했다. 할아범이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에. 먼저 예약한 분이 있다고 하더군요.”
“아, 그러셨군요. 죄송합니다.”
그렇게 말한 남자가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할아범의 고용주가 나라는 걸 알아차린 모양이다.
정면에서 본 얼굴은 옆얼굴과 완전히 달랐다. 옆얼굴은 냉정하고 다소 무감하게까지 보였는데, 정면은 친절하고 순했다. 유감을 표하듯 약간 내려간 눈썹 탓일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저 얼굴, 놀라울 정도로 완벽한 대칭을 이루고 있다. 어떻게 아느냐고? 그냥 보면 안다.
“레이디?”
“네? 아, 네.”
방금 뭐라고 한 거야? 얼굴 감상하느라 못 들었다. 할아범이 남자 옆에서 눈을 부라리며 눈치를 줬다.
잘생긴 걸 어쩌라고?
“다시 한 번 실례했습니다. 저희가 늦었으니, 먼저 들어가시죠.”
“아니, 그럴 필요까지는…….”
“고맙습니다, 신사분!”
할아범이 내 말을 뚝 끊고 끼어들었다. 그러더니 빠른 걸음으로 내게 다가와 일어나라고 재촉했다.
음, 호의를 너무 여러 번 거절할 필요는 없겠지?
“그래, 할아범. 빨리 가자. 고맙습니다.”
남자 쪽으로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 남자가 마주 머리를 숙이며 답했다.
“아닙니다.”
접수대 직원을 따라가려는데 할아범이 내 팔을 잡아당겼다. 그러더니 내가 앉았던 자리로 가 앉는 남자를 가리키며 뭐라고 입을 벙긋거렸다.
“뭐라고?”
“대답이요, 대답.”
“…….”
빌어먹을 저주.
나는 남자 쪽으로 몸을 돌려 다시 인사했다. 방금 인사 다 끝내 놓고 또 인사를 챙기면 아주 생뚱맞은 인간으로 보이겠지.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양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법사와 기사가 동시에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의아하고 당황스러운 표정이다. 나는 반쯤 해탈한 심정으로 돌아섰다.
“저야말로 불편을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원하시는 일이 잘 되기를 바랍니다.”
아, 왜 또 대답해. 나는 내 앞에 서서 기다리는 집사에게 미쳐버리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인 후 뒤로 돌았다.
“감사합니다.”
“네, 레이디.”
“그럼 이만.”
“네.”
왜 자꾸 대답하는데! 나는 남자가 못 들었으면 하는 심정으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짧게 답했다.
“네…….”
마법사는 나를 아주 이상한 사람으로 인식한 듯했다. 피해의식이 아니라 진짜다. 어리둥절한 낯으로 고개를 약간 기울이기까지 했다고!
그런데도 남자는 엷은 미소를 띠며 친절하게 마지막 대답을 챙겼다.
“어서 가보시지요, 레이디.”
“네,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야, 그거 내 대사거든?
너무 어이가 없어서 입을 헤 벌리고 남자를 쳐다보았다. 아니, 데이라 공작과 버금가는 강적일세. 보통 이렇게까지 대답을 하나? 그 정도 의미 없이 주고받았으면 그냥 끝낼 법도 한데, 끝까지 자기가 대답하네.
상황을 지켜보던 할아범이 답답한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그냥 대답하고 도망가 버리죠?”
그래, 그래야겠다. 작정하고 입을 열려는 순간.
“레이디, 무슨 문제 있습니까?”
마법사 옆에 있던 기사가 의심스러운 얼굴로 말을 걸었다.
저런 표정 짓는 것도 이해가 간다. 얼마나 이상해 보이겠어. 근데 저 마법사도 만만찮게 이상하다고!
이제 기사한테도 대답해야 하는 건가 싶어, 머리가 지끈거리고 갑자기 화가 치민다. 사람들이 왜 이렇게 적당히를 몰라. 나는 왜 운세 보러 갔다가 괜히 저주 쪽지 뽑아가지고. 아니, 애초에 이 시간에 여기 오지 말걸.
“아니요, 문제는 없는데요.”
기사에게 답하는 목소리가 절로 짜증스러워졌다. 저쪽은 날 또라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어쩔 수 없다. 나도 사정이 있다고!
“그런데 왜 계속 안 가고 계십니까? 저희가 양보하지 않았습니까?”
“자꾸 대답하시니까 그렇죠.”
짜증 때문에 시비조로 대꾸하자, 마법사의 얼굴에도 살짝 금이 갔다. 어지간히 당황한 모양이다. 기사는 기가 찬 표정으로 물었다.
“그냥 인사가 아닙니까?”
“저도 인사했잖아요. 그쪽이 대답 안 하시면 되죠.”
“아니, 그게 무슨…….”
미치고 팔짝 뛰겠네. 억누른 답답함이 단번에 폭발했다. 그냥 미친놈 하자!
“제가 마지막으로 대답할 거라고요! 그니까 둘 다 대답하지 마!”
[작품후기]*창과 방패의 대결 :D 낄낄낄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