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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장하지 마세요-8화 (8/74)
  • [작품후기]*하 너무 가볍고 너무 신난다... 여러분 너무 좋네요 뭔가 가벼운 느낌이라 심신마저 환해지는 느낌ㅋㅋㅋㅋㅋ 여주 파이팅~!8회

    트릭스터와 자선 파티연참 1/2

    남의 톡톡 대화를 훔쳐보는 건 예의가 아니다. 게다가 그 ‘남’이 그냥 남이 아니라 모시는 주군이라면? 더더욱 안 될 말이다. 톡톡을 몰래 보는 건 주군의 책상 서랍을 뒤져 편지를 뜯어 읽는 일과 비슷한 배신행위다.

    데이라 공작의 기사인 레이번도 그 사실을 잘 알았다. 그러나 그는 밤늦도록 헥센 백작과 대화하는 공작의 모습을 보았기에, 둘의 이야기가 궁금해 죽을 것 같았다.

    ‘지난번에 보니 백작도 보통 이상한 게 아니던데……. 혹시 순진한 주군을 농락하고 있다면?’

    충직한 레이번 이셋은 진지하게 고민했다.

    신의를 지켜 주군의 톡톡을 그냥 둘 것이냐, 아니면 약간의 재량을 발휘해 백작의 속셈을 알아낼 것이냐!

    레이번은 공작의 책상 앞을 서성거리며 치열하게 갈등했다. 그리고 결국 호기심이, 아니, 백작의 속셈을 알아내야 한다는 의무감이 승리했다.

    “이건 진짜 불순한 의도가 있어서가 아니야.”

    레이번은 재빠르게 톡톡을 자기 쪽으로 돌렸다. 화면을 두드리자, 이제까지 대화를 나눈 상대의 목록이 나타났다.

    기계의 성능을 시험해보고자 가신들과도 몇 번 대화를 나눈 모양이었다. 레이번은 그쪽에 관심을 두지 않고 헥센 백작의 이름을 찾았다.

    [미르아 헥센 백작(00000001)]

    몇 번 조작하자 백작과의 대화 내역이 나타났다.

    [바쁘실 텐데 더 답장 안 주셔도 됩니다~]

    [네, 백작님도 답장 안 주셔도 괜찮습니다.]

    [네네, 감사합니다!]

    [네, 저도 감사합니다.]

    [^^]

    [^^]

    [혹시 톡톡에 대해 더 문의할 사항 있으세요?]

    [아니요, 없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자꾸 답장을 주셔서 혹시 더 궁금한 점이 있나 해서 여쭤봤어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네.]

    [.]

    레이번은 침을 삼킨 후 화면을 껐다. 그리고 톡톡을 원래 있던 모양대로 잘 놓아두었다.

    레이번이 보기에, 헥센 백작과 자신의 주군은 그야말로 창과 방패였다. 결국 헥센 백작이 먼저 성의 없는 점을 보내 대화를 마무리했는데, 이해할 수 없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둘 다 대화를 끝내고 싶었던 건 분명한데, 도대체 왜 서로 답장을 하는지. 주군이야 원래 좀 예의 바른 편이지만 헥센 백작은 또 왜 저렇게까지 답하는지.

    ‘점 하나 보낼 시간에 그냥 무시하면 되잖아?’

    아무래도 둘 다 이상해. 레이번은 고개를 끄덕이며 결론을 내렸다.

    -

    좁은 길을 가는데 마차 두 대가 마주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둘 다 귀족의 마차라면?

    내 경우, 그냥 내가 비킨다. ‘평민 출신 귀족’은 아직까지 반쪽짜리 귀족 취급이라, 문제 만들기 싫으면 그냥 비켜주는 게 맞다.

    근데 저 마차는 자기가 비켰다. 왜지?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창문으로 마차에 박힌 문장을 살폈다. 커다란 방패를 가로지른 두 개의 마법 완드, 공정과 중립을 상징하는 천칭저울.

    “데이라 공작이네?”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자 맞은편에 앉았던 할아범도 그쪽을 확인했다.

    “그러게요. 왜 비켜줬을까요? 저쪽도 우릴 알아봤을까요?”

    “글쎄, 하여튼 이상한 사람이야.”

    네가 먼저 비키라고 고집부리면서 체면도 잃고 길바닥에서 싸우는 귀족들을 생각하면, 데이라 공작은 정말 대단한 별종이다.

    “비켜줬으면 됐지. 더 서 있지 말고 먼저 지나가자.”

    집사가 마부석 쪽을 툭툭 쳤다. 마차가 다시 달그락거리며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공작가의 마차 뒤로 길게 이어진 행렬이 보였다. 아마 수도로 따라온 기사와 고용인이겠지. 사람은 꽤 많은 것 같은데 치장이 화려하지는 않았다.

    “수도로 온다더니 진짜 왔네.”

    데이라 공작은 내내 영지에만 머물렀다. 물론 여행도 다니고 견문도 넓혔겠지만, 이렇게 공식적인 행렬까지 거느리고 영지를 떠나온 건 처음이다.

    그는 강력한 마법사이자 유서 깊은 마법사 가문 출신이라, 여러 마법사를 관리하고 통제할 의무가 있다. 드넓은 영지 돌보랴, 말 안 듣는 잔챙이 마법사 다루랴, 얼마나 바쁠까.

    그런데도 굳이 수도에 올라온 이유가 뭐지? 뭐, 내 알 바는 아니지만.

    “아가씨, 도착했습니다.”

    할아범이 열어준 문으로 내렸다. 그러자마자 마법사 거리 특유의 향긋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 인위적인 향은 언제 맡아도 별로라니까.

    “사랑의 묘약 싸게 팝니다!”

    “마시기만 하면 호랑이 기운이 펄펄펄! 늑대랑 싸워도 이깁니다!”

    “투명 물약이 하나 사면 하나 더!”

    사랑의 묘약, 육체 강화 음료, 투명 물약……. 듣기에는 신기하고 대단하지만, 효능은 사실 그저 그렇다. 사랑의 묘약은 그냥 심장이 좀 빨리 뛰는 약이고, 육체 강화 음료는 몸이 뜨거워지며, 투명 물약은 놀랍게도 그냥 물약 색이 투명하다는 소리다.

    이 마법사 거리에는 대단한 마법사가 없다. 파는 물건도 다 거기서 거기고.

    대단한 물건을 팔고 싶어도 법 때문에 그럴 수가 없다. 생각해 보시라, 아무데서나 불을 만들어낼 수 있는 마법 기구나 진짜 몸이 투명해지는 물약을 팔았다간 세상이 어떻게 될지.

    “여기서 진짜 정보를 얻을 수 있겠어?”

    붉은 로브에 달린 후드를 눌러 쓰며 미심쩍은 투로 물었다. 할아범은 눈에 띄지 않도록 작게 대답했다.

    “그래도 다 마법사들입니다. 허가증도 가지고 있다고요.”

    “그건 그런데, 저주 전문은 아니잖아.”

    “아, 일단 따라와 보세요. 누가 말 걸어도 대답하지 마시고요.”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끄덕였다가, 내가 마지막 대답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알겠다고 소리 내어 답했다.

    지난 며칠 동안 할아범과 이리저리 실험하며 알아낸 게 있다. 애초에 사람과 말을 섞지 않으면 대답할 필요가 없다. 할아범이 나에게 혼자 왈라왈라 떠들 때 그냥 무시하면, 꼭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다.

    아마 톡톡도 그렇지 않을까? 상대가 말을 걸었을 때 대답하지 않으면 무시해도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것까지 신경 써야 한다니 불편해 죽겠네.

    그래도 정말 돌이 되어 죽을 수는 없으니, 입을 꾹 다물고 있어야지.

    평범한 시장처럼 왁자지껄하고 밝은 분위기의 마법사 거리를 한참 걸으니, 잘 꾸며진 가게가 하나 나타났다. 고개를 들고 간판을 읽었다.

    [세상의 모든 마법, 레이버]

    “믿을 만한 정보상이라고 합니다. 저주에도 일가견이 있다고 하는데, 본인이 직접 와야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있다고 해서요.”

    “그래? 허탕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새해라 할 일도 많은데 언제까지 이렇게 신경 쓰며 다녀야 할지.

    할아범이 앞장서서 나무문을 열었다. 딸랑, 종소리가 났다. 내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은 없겠지만, 혹시 몰라 후드를 더 깊게 눌러 썼다.

    할아범이 접수대에 가서 뭐라고 말하는 동안, 나는 조용히 주변을 살폈다. 전반적으로 무척 따뜻하고 정겨운 분위기였다. 안에는 훈기가 가득했고 장작 타는 소리도 났다. 정보를 파는 가게라고 해서 되게 음습할 줄 알았더니.

    가만히 앉아 있으니 접수대의 대화가 들렸다.

    “죄송하지만 좀 오래 기다리셔야 할 것 같은데요……. 이 시간에 예약 손님이 있어서요.”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요?”

    “글쎄요, 그건 저희도 정확하게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간단하게라도 안 되겠습니까? 어차피 그 예약 손님 아직 안 온 것 같은데.”

    “죄송합니다, 하지만…….”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하니 이미 두 시 반이었다. 아마 두 시 예약이었을 것 같은데, 참 늦게도 오네. 어차피 할아범이 알아서 할 일이라 그냥 발만 까딱거리며 시간을 죽였다.

    그때, 다시 한 번 종소리가 울렸다.

    돌아보니 남자가 둘 서 있었다. 앞장선 쪽이 확 눈에 들어왔다.

    …엄청 잘생겼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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