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후기]beolene님, 됴하라님, 르미얀님, 로열밀크티님, 아람닻별님, 로펜트님, 낫자루님, adonis0226님, 달그루님, 전편 코멘트 모두 감사합니다//ㅅ!7회
올해의 운세연참 2/2
할아범은 다음날부터 점술가 할머니의 행방을 수소문하러 다녔다. 집사인 할아범이 자리를 비우긴 했지만, 저택은 멀쩡히 잘 돌아갔다. 어차피 나는 손이 많이 가는 주인이 아니고, 할아범이 워낙 고용인들 교육을 잘 시켜놓기도 했고.
마음 같아선 나도 같이 나가고 싶었지만…….
“안 됩니다. 누구랑 말이라도 섞었다가 큰일 나면 어쩌려고요? 길바닥을 헤매면서 ‘아까 내가 누구랑 말했나’ 찾으러 다닐 순 없잖아요?”
할아범의 말이 지당했으므로 그냥 얌전히 저택에 처박혀 있기로 했다.
거의 칩거 생활 중이지만, 그래도 상단 일은 술술 잘 풀렸다. 원래 연말연시에는 선물 명목으로 톡톡이 엄청 팔린다. 아마 영업부가 열심히 일하고 있겠지.
그나저나 며칠 내내 집에만 있으려니 심심했다. 혹시 몰라 고용인들과도 일절 말을 섞지 않고 있는데, 침묵 수행이나 다름없다.
톡톡으로도 대화를 하긴 하지만 대부분 사업상의 이야기고……. 지루해 죽겠다.
점술가 할머니 못 찾으면 나 올해 내내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야?
톡톡!
경쾌한 알림이 좋지 않은 상상을 지워주었다. 집무실 창가에 앉아 멍하게 창밖만 내다보던 나는 재빨리 몸을 돌려 책상으로 다가갔다.
88808880, 데이라 공작의 연락이다.
[미르아 헥센 백작님께.
안녕하십니까, 헥센 백작님. 영지로 ‘톡톡’이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한 개도 파손되지 않고 도착해 기쁜 마음입니다.
오늘은 한 가지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은행에서 대금 지불과 관련한 영수증을 보내 왔습니다. 그런데 기존에 말씀하셨던 것보다 적은 금액이 적혀 있어서 확인 차 연락을 드립니다.
대금을 지불하는 과정 중 무언가 실수가 있었던 듯한데, 빠른 시일 내에 차액을 지불하도록 하겠습니다.
혼선을 빚어 죄송합니다. 너른 이해 부탁드립니다.
데이라 공작으로부터.
^^]
몇 번 대화하지도 않았는데, 이 정중하고 격식 있는 글에 익숙해질 것 같다. 끝에 [^^] 기호는 왜 붙인 거야? 저번에 배운 거 써먹나?
그나저나 상황이 좀 이상하다.
한동안 톡톡 화면을 바라보며 상황을 파악했다. 그니까, 대금 지불이 덜 됐다 이 말이군. 대금 지불이 정확하게 안 되었는데 왜 제품이 발송됐지?
은행에서 우리 쪽에도 영수증을 보냈다. 집무실 책꽂이에 꽂힌 데이라 공작가 관련 서류철을 찾아내 영수증을 확인했다.
음, 확실히 지불이 덜 됐네.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가끔 이런 실수가 있다. 모든 서류 정리까지 기계에 맡길 수가 없으니까. 아직까지는 기술이 그만큼 발달하지 않았다.
뭐, 누구 실수든 차액 보내준다니 다행이다.
“빨리 답장해야 하는데.”
또 몸이 돌이 될세라 허둥지둥 타자기를 두드렸다. 원래 이런 건 직원들이 도맡아서 하는데, 워낙 특별한 고객이니 별 수 있나.
[안녕하세요, 데이라 공작님! 말씀하신 부분 확인했습니다. 차액은 서두르지 마시고 천천히 주셔도 괜찮습니다. 저희 쪽에서도 좀 더 잘 확인했어야 하는데 실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먼저 챙겨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너무 비굴한가? 아니야, 그래도 대귀족인데. 잡념을 털어버리고 다음 문장을 썼다.
[제품도 잘 도착했다니 기쁩니다. 그럼 톡톡과 함께 즐거운 나날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머잖아 답장이 왔다.
[네, 감사합니다.]
[네^^ 좋은 하루 되세요!]
[백작님께서도 좋은 하루 되십시오. ^^]
[네, 감사합니다!]
[저도 감사합니다.]
…….
아, 이 사람 진짜 왜 이래?
머리가 지끈거려서 오른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생각해보니 데이라 공작 저번에도 이러지 않았나? 그냥 끝내면 되는데 끝까지 답장해서 결국 내가 끝낸 거잖아. 그러다가 몸이 돌로 변할 뻔했다고!
화면을 노려보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또 저주가 발동되기 전에 손가락을 움직이는 수밖에.
[^0^]
이 정도 하면 그만 하라는 뜻인 줄 알아듣겠지.
아무래도 앞으로 공작이랑 연락하는 일은 피해야 할 것 같다. 이 사람이 왜 이러는지는 모르지만, 대화를 이어가고 싶거나 자기가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은 모양이다.
왜 그러지. 나처럼 저주라도 받았나? 그렇게 강력한 마법사도 저주에 걸리나?
알 게 뭐야. 손을 탁탁 털고 책상 앞을 떠나려는 순간.
톡톡!
[^^]
진짜 이 인간 뭐지?
전처럼 손가락 욕이라도 날려야 하나. 도대체 뭐라고 해야 이 공작이 더는 답장을 하지 않을까? 답장하는 꼴을 보면 자기도 더는 대화하기 싫은 것 같은데.
그냥 더 답장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말할까? 너무 유난스러워 보이지 않을까? 상대가 이렇게 대화를 끝내고 싶다는 의사 표명을 했는데, 거기다 대고 굳이 답장하지 말라고 하면 이상하잖아. 그냥 내가 답장 안 하면 되지.
문제는, ‘그냥 내가 답장 안 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었다.
한숨을 내쉬고 책상 앞에 앉았다.
[더 답장 안 주셔도 됩니다!]
[네, 백작님도 답장 안 해주셔도 됩니다.]
답장 안 해도 된다고 했잖아. 답장 안 해도 된다고! 답장하지 말라고! 나는 저주 때문이라 어쩔 수 없다 쳐도 너는 도대체 뭔데!
우다다 쏟아내고 싶은 마음을 겨우 눌러 참았다. 그리고 공작이 도저히 더 답장할 수 없을 문구를 생각해내려고 머리를 쥐어뜯었다. 이러다가 우리 밤새도록 톡톡만 하는 거 아니야? 공작이 지쳐 잠들기를 기다려야 하나?
그때, 공작이 대화를 입력 중이라는 표시가 나타났다. 아직도 할 말이 남았나 싶어 다 포기한 심정으로 화면을 노려보았다.
[잊었던 게 있어 다시 연락드립니다. 톡톡과 함께 자선 파티 초대장을 받았는데, 그날 일정이 비어 있을지 정확하게 모르겠습니다. 대리인을 보내도 괜찮겠습니까?]
또 의미 없는 글자 파티겠지 했는데, 이건 그나마 용건이 있다. 나는 잠깐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제품을 대량으로 구매한 귀족에게는 자선 파티 초대장을 함께 보낸다. 참석해서 식사도 맛있게 하시고 기부도 좀 해주시라는 의미다. 전부 내 자필로 작성해서 보내니 사실 꽤 특별한 초대장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자선 파티는 대리인을 들여보내지 않기로 유명하다. 아, 물론 직계 가족은 가능하고.
기부 받는 입장에서야 본인이든 대리인이든 와서 돈을 내주면 좋지만, 귀족들이 워낙 까다로워서. 다른 귀족이 보낸 대리인을 보면서, ‘대리인이 왔네? 나는 왜 직접 왔지? 자존심 상해!’ 이런 놀라운 생각을 하기도 한다.
왜 그렇게까지 꼬였는지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 못 하겠지만, 이제 그냥 그러려니 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배우자 혹은 직계 가족만 대리인으로 참석 가능합니다!]
공작의 조부모는 진작 세상을 떠났고, 부모는 영지에서 손을 떼고 유랑 중이라고 들었다. 아직 미혼이라 배우자도 없고 당연히 자식도 없으니, 보낼 대리인이 없을 것이다.
[네, 알겠습니다. 일정을 확인해보고 가능하다면 직접 참석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것 봐. 내가 뭐랬어.
어차피 초대는 초대일 뿐이니 꼭 오지 않아도 되지만, 내내 영지에만 있던 데이라 공작이 우리 파티에 참석해 준다면 도움이 많이 될 것이다. 아마 기부금도 많이 낼 것 같고. 그가 낼 기부금의 액수를 짐작해보니 저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부디 시간이 허락해 만나 뵙는 영광이 허락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감사합니다!]
[네, 친절한 안내 감사드립니다. 좋은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공작님도 좋은 하루 되세요^^]
[네^^]
[감사합니다.]
[저도 감사합니다.]
붕 떠올랐던 기분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얘 또 시작이야!
-
결국 나는 한밤중에 돌아온 할아범을 퀭한 얼굴로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진짜 이 공작은 미친놈이 분명하다. 이렇게까지 답장에 집착하는 이유가 대체 뭐지. 정말 나처럼 저주에라도 걸렸나?
결국 나는 [.] 한 글자를 전송해 공작의 입을 막을 수밖에 없었다. 진짜로 무서웠던 건, 공작이 점 하나 받은 후에도 답장을 입력하려고 했다는 사실이다. 화면에 나타난 [상대가 대화를 입력 중입니다]를 보고 진짜 앉은 자리에서 졸도할 뻔했다.
다행히 대답하지 말라는 내 강력한 뜻을 알아먹었는지 답장은 더 오지 않았지만. 앞으로 대화를 끝내고 싶으면 계속 점 하나만 보내야 하나.
“단주님, 뭔가 알아왔습니다!”
그래도 할아범의 밝은 얼굴만이 내 기쁨이다. 아, 이 빌어먹을 저주. 처음엔 못 풀면 일 년 참아야지 했는데, 공작의 미친 짓 때문에 더는 못 견디겠다.
“그때 단주님이 받은 그 쪽지 있잖습니까. 저주를 풀려면 그걸 태워야 한답니다.”
“헉, 진짜? 그렇게 간단하다고?”
발가벗고 물구나무서서 동네라도 한 바퀴 돌아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쪽지 한 장만 태우면 된다니! 할아범의 얼굴도 무척 환했다.
“예에! 쉽죠?”
“응! 너무 잘 됐다. 그럼 그 쪽지 어딨어?”
할아범이 퐁 입을 벌렸다.
“예?”
“그 쪽지 어딨냐고. 그때 내가 마차에서 할아범한테 줬잖아, 갖다 버리라고.”
“…….”
할아범이 식은땀을 흘리며 눈을 깜빡거렸다. 그러더니 어울리지도 않게 윙크를 하며 깜찍하게 외쳤다.
“그래서 갖다 버렸죠!”
아, 혈압. 이 젊은 나이에 고혈압으로 죽는 것인가. 내 묘비에 새겨다오, ‘꽃다운 청춘이 고혈압 때문에 지다.’
쪽지가 없어서 화가 난 건지, 그걸 갖다 버려 놓고 나한테 쪽지만 태우면 된다고 해맑게 말한 할아범 때문에 화가 난 건지, 그냥 막막하고 답답해서 열 받는 건지 감이 안 온다. 그래서 나는 무작정 외쳤다.
“그럼 아무 소용없잖아! 왜 그렇게 신나서 얘기한 거야!”
“버린 거 까먹어서 그랬죠!”
“왜 이렇게 당당해?”
“단주님이 버리라면서요!”
절규하며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두 다리를 구르며 우는 듯 좌절했다.
나 올해 진짜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야? 응? 그런 거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