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답장하지 마세요-6화 (6/74)
  • [작품후기]아람닻별님, 로펜트님, 됴하라님, 라바트님, 김철식님, 살구타르트님, 낫자루님, 로열밀크티님, 전편 코멘트 모두 감사합니다//ㅅ!6회

    올해의 운세연참 1/2

    깜빡, 깜빡.

    익숙한 천장이다. 나 왜 자고 있지. 술 마시고 기억이라도 잃었나?

    “헉!”

    나도 모르게 숨을 들이켜며 벌떡 일어나 앉았다. 갑자기 지난 일이 우르르 떠오른 탓이다.

    다리가 갑자기 돌로 변해서 아마 저주 아닐까 추측했었지. 할아범이 혹시 신년 운세 할머니한테서 받은 쪽지 때문이 아니냐고 물었고. 그래서 톡톡을 사용해서 데이라 공작한테 답장을 보냈는데…….

    “아가씨! 깨어나셨군요!”

    문을 열고 들어온 할아범이 나를 향해 우다다 달려왔다. 어찌나 걱정했는지 얼굴이 흙빛이었다. 나는 얼떨떨한 심정으로 다리를 움직여 보았다.

    아, 잘 움직인다.

    엄청난 안도감이 온몸을 적셨다. 조각상이 되어 죽을 뻔했던 나는 큰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 진짜 다행이다……. 혹시 나 악몽 꾼 건 아니지? 다 진짜였지?”

    “네. 무사하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몇 시간이나 잠들어 계셨다고요! 벌써 한밤중이에요!”

    어쩐지 창밖이 어둡더라니.

    너무 엄청난 일을 겪어서 그런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솔직히 지금 이 순간도 그냥 꿈인 것 같다.

    하지만 온몸이 단단해지고 기도까지 막히던 그 순간의 공포와 압박감은…….

    아마 그렇게 생생한 꿈은 없겠지.

    “설마 진짜 그 쪽지 때문이었던 거야? 나 공작한테 답장하고 나서 바로 좋아졌어?”

    할아범은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얼마 지나지 않아 몸이 원래대로 돌아오더라고요. 의식은 잃은 상태였지만, 의사는 그냥 잠든 거라고 했습니다.”

    “와, 진짜…….”

    어이가 없어서 말도 안 나온다.

    정말로 저주 받은 거야? 그 뭣도 아닌 쪽지 하나 때문에? 거기 재수 없으면 몸이 돌로 변할 수도 있다는 안내는 없었잖아!

    그 순간, 한 가지 깨달음이 내리꽂혔다.

    “그 할머니 마법사였던 거구나!”

    배신자, 내가 가게까지 새로 꾸며줬는데!

    “이제 정말 큰일 났습니다, 마법 방어 반지도 소용없을 정도면 강한 마법사일 거라고요!”

    할아범은 세상이 끝장나기라도 한 듯 좌절하며 침대 옆을 부산스레 오갔다. 할아범의 주름진 입에서는 비관이 끝없이 흘러나왔다.

    “이러다 평생 남한테 답장만 하면서 살게 생겼습니다. 하인들이 인사할 때마다 다 대답해주고, 그 사람들이 다시 인사하면 아가씨도 또 인사하고! 영원히 인사만 하다가 늙어 죽을지도 몰라요!”

    나이가 들면 바위처럼 단단하고 굳건해진다더니, 할아범을 보면 그 격언은 틀린 모양이다.

    할아범이 손을 마구 비틀며 울음기 어린 소리로 절규하는데, 이상하게 내 마음은 편안해졌다. 할아범이 내 몫의 좌절과 불안까지 다 가져가버린 것처럼. 원래 누가 너무 난리를 치면, 그걸 지켜보는 사람은 오히려 침착해지는 법이다.

    그 침착함 덕분인지, 한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아니야, 할아범. 그거 효과 지속은 딱 1년이라고 했어. 그니까 올해만 잘 넘기면 돼.”

    “이제 막 새해라고요! 해가 끝나기 전에 아가씨는 분명 멍청한 돌덩어리가 될 겁니다!”

    ……멍청한 뭐?

    “진정 좀 해봐.”

    할아범 말대로 심각한 문제긴 하다.

    마법 방어 반지를 무력화할 정도로 강력한 저주. 걸출하고 영향력 있는 마법사. 만약 그 할머니가 정말 마법사였다면, 나는 그야말로 눈 뜨고 당한 셈이다.

    하지만 할머니가 대체 왜? 나한테 무슨 원한이 있어서? 그건 지금 당장은 알 수 없겠지.

    직업상 사람과 자주 만나야 하고, 진지한 대화를 나눌 일도 많다. 그때마다 내가 ‘마지막 대답’을 하기 위해 애쓸 수는 없잖아. 하다못해 데이라 공작과의 대화만 해도…….

    헉.

    “할아범?”

    “네?”

    “나 혹시…… 공작한테 뭐라고 보냈어?”

    할아범의 표정이 방금보다 훨씬 더 나빠졌다.

    아, 미쳤다. 분명히 내가 뭐 입력했을 때 할아범 얼굴이 안 좋았는데. 나한테 막 이것만은 안 된다면서 말리지 않았나? 나 도대체 뭐라고 썼는데?

    그래봤자 손가락에 힘도 제대로 안 들어가서 막 힘들게 눌렀으니, 대단한 말은 아니었겠지?

    할아범이 내 침대 옆 서랍장에서 톡톡을 꺼내 왔다. 그런 다음 데이라 공작과의 대화를 복원했다.

    [대화 내역 복원 중…… 복원 결과 43]

    그리고 차례로 나타나는 글자.

    [ㅋ]

    [ㅗ]

    장담하는데 나 입술까지 보라색일 듯.

    묻는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나…… 나 공작 비웃은 거야?”

    할아범이 비통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 다음에 갑자기 욕한 거야……?”

    끄덕끄덕.

    멍하게 입을 벌리고 톡톡 화면만 바라보았다. 데이라 공작이 더 답장하지 않은 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다.

    자, 해결책을 생각해 보자.

    첫째. [죄송합니다. 기계 오류로 전송이 잘못 된 것 같습니다.]

    둘째. [사실 그건 환영한다는 말을 줄인 거예요! 톡톡의 문화입니다^^]

    “으아아악!”

    막 톡톡을 산 사람한테 기계에 하자가 있다고 할 수도 없고, 줄임말 운운은 진짜 개소리고!

    “차라리 솔직하게 말할까? 나 저주받았다고? 데이라 공작 마법사잖아. 바로 이해하지 않겠어?”

    기똥찬 해결책은 아니지만 그래도 솔직한 게 최고 아닌가. 좋은 방법 아닐까 싶어서 물었는데, 할아범은 침통하게 고개를 저었다.

    “안 되죠. 원래 자기 저주 다른 사람한테 얘기할 수 없잖아요. 그게 저주의 효력 중 하나고요.”

    망할 놈의 저주.

    “그럼 할아범은? 할아범은 내 저주 알잖아.”

    “아마 제가 그 쪽지를 같이 봐서 그렇겠죠. 공작한테는 말 못 할 겁니다.”

    아, 그럼 어떡해!

    나는 눈을 부라리고 톡톡이 깨지도록 화면을 노려보았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이미 보낸 글자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다음에 만들 땐 꼭 이미 보낸 내용 삭제하는 기능도 추가해야지.

    때 아닌 다짐을 되새기고 있는데, 할아범이 측은한 얼굴로 위로했다.

    “어쩌면 공작은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를 수도 있어요……. 톡톡 유행 시작된 게 몇 년 전인데, 자기 영지에만 있느라 올해 되어서야 처음 구입했잖아요. 이런 대화에 익숙하지 않을 테니 그냥 잘못 보냈나보다 생각하겠죠.”

    참으로 그럴듯한 추리였다.

    그래, 공작은 톡톡 사용 문화에 대해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글자를 끊어 보내지도 않고, 정말 편지를 쓰듯 한 번에 보내지 않았나. 나중에 [^^] 기호를 사용하긴 했지만, 그건 날 따라한 것 같았고.

    갑자기 마음이 편안해졌다. 답장도 오지 않았으니, 아마 공작은 내가 잘못 보냈나보다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몸에 힘을 빼고 다시 털썩 침대에 누웠다.

    “할아범 천재인 것 같아.”

    “그렇죠?”

    어느새 패닉 상태에서 벗어난 할아범이 뒤늦게 의연한 척 고개를 끄덕였다. 참 감정도 풍부하고 기복도 심한 사람이야. 하지만 그래서 할아범이 편하고 좋다.

    “너무 신경 쓰지 말자. 그리고 데이라 공작 왠지 좋은 사람인 것 같았어.”

    뭔가 다른 귀족들과는 느낌이 달랐다.

    몇몇 사람은 톡톡이 편지보다 뒤떨어지는 의사소통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가볍기 그지없어서, 상대의 인품을 제대로 엿볼 수 없다는 것이다. 글쎄, 진짜 인품은 편지에서나 톡톡에서나 늘 나타나는 거 아니겠어?

    그런 의미에서 나는 몇 마디 주고받지도 않은 그 대화에서 공작의 인품을 느꼈다.

    “그래요?”

    할아범이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날 쳐다보다 덧붙여 물었다.

    “그 사람이 대형 고객이 될 것 같아서 좋게 보이는 건 아니고요?”

    “…….”

    뭐, 아니라고 할 순 없지. 사업의 세계에선 돈 많이 주는 사람이 제일 아니겠어?

    그렇게 탈 많은 하루가 저물었다. 말도 안 되는 저주에 걸려버렸지만, 그래도 올세 운세만큼은 최고였다.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눈을 감고, 잠깐 부모님의 얼굴을 떠올렸다. 두 분이 살아 계셨다면 내 저주를 알고 뭐라고 하셨을까.

    두 분은 돌아가셨으니 나는 영원히 이 질문의 답을 모르겠지.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리고 잠을 청했다. 일단 내일부터 저주를 풀 방법부터 알아봐야겠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