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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장하지 마세요-5화 (5/74)
  • [작품후기]이제부터 여주 읽씹 금지... :D5회

    올해의 운세내 꼴을 보고 몇 초 정도 기절한 듯 말이 없던 할아범은 제자리에서 폭탄처럼 튀어 올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할아범이 부른 수도 의원들이 속속 달려왔다.

    외알 안경을 쓴 나이 든 의사, 막 수습 딱지를 뗀 젊은 의사, 그리고 상단 직원들 건강을 관리해주는 빨간 머리 의사까지.

    “허, 이거 참…….”

    “이런 건 처음 봐요. 대체 무슨 일인지…….”

    “아무래도 의사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네요.”

    그나마 쓸모 있는 말을 한 사람은 상단 소속 의사였다. 그녀는 도수가 높은 안경을 소매에 대고 슥슥 문지르며 진단했다.

    “마법 같은데요?”

    막연하게 짐작은 했다. 근데 다른 사람 입으로 들으니 진짜 좌절이네.

    나도 모르게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으으으, 분노에 찬 신음을 터뜨리면서 발을 구르려고 했지만, 회색 돌로 변한 다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옆에 있던 할아범만 의사를 재촉했다.

    “마법이라니? 그게 무슨 소린가?”

    “몸이 안 좋아서 생긴 병이 아니라는 거죠. 생각해 봐요, 사람 다리가 갑자기 돌이 되는 병이 있단 소리 들어 본 적 있어요?”

    고개를 들어 보니, 할아범이 나 대신 머리를 흔들었다. 그 얼빠진 얼굴을 들여다보던 의사가 나를 돌아보며 확인했다.

    “단주님, 어디서 질 나쁜 마법사라도 잘못 건드린 거 아니에요?”

    마법사, 그 최악의 이름.

    마법의 힘이 어디에서 최초로 시작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마법사 자신조차도. 그냥 무작정 힘을 가지고 태어나는 자들이 있을 뿐이다.

    다행히 큰 힘을 가진 마법사는 제국과 가문의 통제를 받지만, 문제는 통제와 법망을 이리저리 피해가는 시답잖은 놈들. 그들은 알량한 능력으로 장난질을 치거나 갑질을 일삼는다. 심심풀이로 변비 저주를 걸거나…….

    아무튼, 난 아는 마법사도 없고 마법사 잘못 건드린 적도 없는데!

    “그런 적 없어. 요즘 누구랑 싸운 적도 없고, 마법 방어 반지도 잘 끼고 다닌다고.”

    왼손을 까딱까딱 움직여 새끼손가락에 낀 은반지를 보여주었다. 혹시 몰라 구입한 후 몇 년 내내 목욕할 때 빼고는 한 번도 빼지 않은 반지였다. 웬만한 저주는 무력화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그때, 갑자기 할아범이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허어억!”

    못 들으려야 못 들을 수가 없을 정도로 큰 소리였다. 나와 의사가 동시에 할아범을 돌아보았다. 할아범은 나를 향해 방정맞게 손을 팔랑거리며 외쳤다.

    “그거! 아가씨, 그거요, 그거!”

    “그거?”

    “아 그거 있잖아요! 그거그거!”

    도대체 뭘 떠올렸기에 자꾸 ‘그거’라고만…….

    “아!”

    갑자기 깨달음이 찾아왔다! 나는 할아범과 마주보며 손가락을 흔들었다.

    “그거! 그거…… 그, 그 할머니한테서 받은 쪽지! 축복 또는 저주 그거!”

    “네, 그거 말입니다!”

    “…근데 그게 뭐?”

    대충 뭐 항상 마지막으로 대답해라 그런 거였는데.

    그게 재미로 보는 운세 같은 게 아니라 진짜 마법의 힘이 깃든 축복과 저주의 종이였을 수도 있다. 근데 그거 때문에 내 다리가 이렇게 됐다기엔 좀 이상하지 않아?

    할아범은 간절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우다다 물었다.

    “혹시 마지막으로 대답 안 한 거 아닙니까? 예?”

    “아, 아니, 그걸 어떻게 일일이 기억해…….”

    오늘 내가 누구랑 대화했지? 할아범이랑, 의사랑, 어…… 그게 다인데?

    비장한 마음으로 할아범과 의사를 번갈아 보다 선언했다.

    “좋아, 그럼 내가 마지막으로 말할게.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말아봐. 자, 대화 끝!”

    그러자 놀랍게도!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젠장할.

    함께 침묵하며 1분쯤 기다렸을까. 의사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나와 할아범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먼저 밖으로 나갔다. 내 저주를 의식해서인지 인사도 제대로 건네지 않고서.

    할아범이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퍽퍽 쳤다.

    “아, 더 생각해 봐요!”

    “진짜 그게 다라니까? 나 여기서 내내 일만 했잖아. 계속 톡톡만 사용했는데 다른 사람이랑 대화했을 리가…….”

    잠깐만.

    할아범과 눈이 마주쳤다. 지금 우리 둘이 똑같은 생각 한 거지? 그렇지?

    톡톡으로 대화했잖아! 어쩌면 이 저주는 그것조차 대화로 치는지도 모른다. 데이라 공작이 계속 답장을 하는 바람에 내가 먼저 그냥 대답 안 했는데, 설마 그거 때문에?

    후다닥 손을 뻗어 톡톡을 가까이 끌어 오려 했다.

    바로 그 순간.

    “아아아아악!”

    갑자기 허벅지에 이어 엉덩이, 허리까지 돌로 변했다. 우드득, 우드득, 이상한 소리와 함께. 나는 미친 듯이 펄쩍거리며 돌이 된 부분을 퍽퍽 두드렸는데, 손만 더럽게 아팠다.

    “아가씨, 서둘러요! 빨리빨리!”

    “아, 알았어!”

    석화 진행이 너무 빨랐다. 나는 가슴을 지나 점점 팔까지 마비시키는 석화를 이겨내려 버둥거리며, 겨우 타자기 버튼 하나를 눌렀다. 굳어가는 팔을 움직이느라 식은땀까지 삐질삐질 흘렀다.

    옆에서 발을 동동거리던 할아범이 내가 전송한 글자를 보고 입을 벌렸다.

    “이, 이건 안 돼요! 다른 거!”

    어쩌라는 거야. 이제 시야도 흐려진다. 나는 손을 바들바들 떨며 억지로 다른 버튼을 눌렀다. 할아범이 안 된다면서 또 비명을 질렀다.

    근데 어떡하지, 나 아무래도 진짜 돌덩이가 되어가는 것 같아…….

    “안 돼……. 더 못 움직이…….”

    겠, 어…….

    흐릿해지는 시야로 할아범의 우는 얼굴이 들어왔다. 팔이 뚝 떨어지며 전송 버튼이 눌렸다. 나는 까무룩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근데 만약에 나 이렇게 죽으면 웃기겠다.

    답장 안 해서 죽다니, 진짜 가문의 수치다.

    -

    데이라 공작은 분주한 오후 시간을 보냈다. 내내 영지에서만 지내다가 수도로 올라가려니, 챙길 것도 많고 돌볼 사람도 많았다. 그래서 얼마 전 받은 기계가 톡톡! 하고 울리는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했다.

    공작은 밤이 되어서야 한숨 돌리고 책상 앞에 앉을 수 있었다. 충직한 기사이자 공작의 전반적인 생활도 돕는 레이번이 다가와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그래. 좀 피곤할 뿐이야.”

    “쉬엄쉬엄 하시죠. 어차피 톡톡도 주문했으니, 영지에 무슨 일이 생겨도 금세 아실 수 있으니까요.”

    “그건 그렇지. 이게 생각보다 편하고 유용하더군. 왜 유행이었는지 알 것도 같아.”

    공작은 책상 한편에 올려둔 톡톡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 장식도 없었지만, 그래서 더 깔끔하고 세련되어 보였다.

    그때 레이번이 슬쩍 고개를 내밀며 공작의 톡톡을 확인했다.

    “그거 어떻게 쓰는 겁니까? 실제로 쓰는 건 몇 번 못 봐서.”

    내내 영지에만 머무니 레이번도 견문을 넓힐 기회가 없었다.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 공작은 흔쾌히 톡톡을 작동시켜 주었다.

    “이렇게 화면을 한 번 두드리면 켜지는데……. 아, 마침 연락이 와 있네.”

    화면에 새로운 연락이 왔음을 알리는 편지봉투 표시가 떠 있었다. 공작은 그 작은 봉투를 톡 눌러 확인했다.

    화면에는 딱 두 개의 문자만 떠올라 있었다.

    [ㅋ]

    [ㅗ]

    공작이 고개를 모로 기울이며 중얼거렸다.

    “이게 무슨 뜻이지?”

    레이번은 입을 딱 벌리고 대답하지 못했다. 사실, 레이번은 공작의 머릿속에도 똑같은 생각이 떠올랐으리라 확신했다.

    ‘갑자기 비웃었어……?’

    참으로 당황스럽기 그지 없었다. 물론 더 당황스러운 건 그 다음이었다.

    ‘그런 다음 손가락 욕?’

    레이번도 편지를 통해 친구들과 연락할 때 가끔 써먹은 욕이었다.

    혹시 공작이 불쾌하지 않을까 싶어 재빨리 표정을 살폈는데, 놀랍게도 귀한 공작 각하는 레이번과 같은 생각을 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하기야, 바른 생활 귀족인 그가 이런 저급한 욕을 알 리 없지만.

    레이번은 크게 웃으며 수습에 나섰다.

    “하하하! 아마 잘못 보낸 게 아닐까요?”

    “그래, 그렇겠지? 잠결에 잘못 누르기라도 한 모양이야. 나도 이러지 않게 조심해야겠어.”

    순진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주군을 보며 레이번은 다짐했다.

    수도에 가면, 한밤중에 손가락 욕이나 날리는 이 미친 상단주를 조심해야겠다. 아무래도 보통 또라이가 아닌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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