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답장하지 마세요-4화 (4/74)
  • [작품후기]아람닻별님, 로열밀크티님, Reinette님, 나붓한님, beolene님, 라바트님, 르미얀님, 오늘의비타민님, 돼지고래님, 전편 코멘트 모두 감사합니다//ㅅ!4회

    올해의 운세연참 2/2

    화면을 가득 채운 글자를 확인하고 헛웃음을 치고 말았다.

    데이라 공작은 완벽하게 격식을 차렸다. 앞서 내가 한 격의 없는 연락이 오히려 민망하게 느껴진다.

    장단을 맞춰 줘야 하나, 아니면 그냥 내 색깔대로 밀고 나갈까.

    고민 끝에 손을 좀 더 가볍게 하여 톡톡 타자기를 두드렸다.

    [네, 친절한 말씀 감사합니다! 공작가에 톡톡을 제공하게 되어 저희도 무척 기쁘답니다^0^]

    [톡톡 개당 가격은 확인해 보셨는지요? 대량으로 구매하시는 만큼, 20퍼센트 정도 할인이 들어갑니다. 대금 지불은 현금으로도, 어음으로도 가능합니다.]

    [청구서는 우편으로 보내 드릴까요, 아니면 톡톡으로 전달해 드릴까요?]

    이렇게 보냈는데 다음엔 답장이 어떻게 올까. 잠시 검지로 책상을 두드리며 기다렸다.

    당연한 소리지만 나는 데이라 공작과 만난 적이 없다. 얼굴도, 목소리도 전혀 모른다. 그래도 몇 가지 아는 게 있다.

    첫째, 공작은 마법사 가문에서 태어나 마법의 힘을 물려받았다.

    둘째, 공작은 중앙으로 진출하지 않고 자신의 영지에만 머무르고 있다. 이유는 아무도 모르지만, 마법사는 대부분 정쟁에 휘말리는 일을 꺼린다고 들었다.

    셋째, 특이하게 마법사인데 검도 함께 쓴다. 일종의…… 마검사? 왜 검과 마법을 함께 배웠는지는 듣지 못했다.

    공작에 대한 정보를 복기하는데 답장이 도착했다.

    [빠른 답변에 감사드립니다.

    대금 지불은 현금으로 하겠습니다. 제가 조만간 수도로 올라갈 계획이긴 하지만, 그 전에 제품이 영지에 도착했으면 합니다. 은행을 통해 상단으로 곧장 대금을 지불하면 빠른 시일 내에 제품 발송이 가능합니까?

    말씀하신 청구서는 우편과 톡톡 양편으로 모두 받아 보고 싶습니다.]

    오, 이번엔 좀 덜 딱딱하네. 적어도 자기소개를 반복하진 않았다.

    나는 빠르게 답장을 보냈다.

    [네, 지불은 현금으로, 청구서는 우편과 톡톡 양편으로! 잘 확인했습니다.]

    [지불이 확인되는 대로 톡톡을 발송하겠습니다. 파손되지 않도록 잘 포장한 후, 주문서에 적어 주신 주소로 보내드립니다. 혹시라도 제품을 받아보신 후에 문제가 확인된다면 언제든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그 후에는 사무적인 대화의 반복이었다. 대금을 치를 정확한 날짜를 조율하고 주소를 재확인했다.

    대강의 일이 끝났다고 판단되어 시계를 보니 30분이나 지나 있었다. 그래도 톡톡 덕분에 일하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예전이었으면 공작가에 직접 찾아가거나 몇 주에 걸쳐 편지를 주고받아야 했을 텐데.

    “으으아!”

    찌뿌둥한 몸을 풀기 위해 기지개를 켜며, 마무리 인사를 건넸다.

    [‘톡톡’의 고객이 되신 것을 환영합니다. 앞으로도 따뜻한 관심 부탁드리며, 보내주신 사랑에 보답하는 헥센 상단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타이밍 맞게 노크 소리가 들렸다.

    집사 할아범이 한 손에 접시를 들고 들어왔다. 접시 위에는…… 입을 찢어지도록 크게 벌려도 먹기 힘들 듯한 샌드위치가 놓여 있었다. 포크와 나이프까지 들고 온 걸 보니, 샌드위치를 스테이크처럼 썰어 먹으라는 모양이다.

    질린 얼굴로 접시를 받자 할아범이 그나마 좀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식사 잘 챙기셔야죠, 아가씨.”

    “으응…….”

    대충 먹고 남기지, 뭐.

    “남기시면 안 됩니다.”

    “…….”

    내가 애도 아닌데 이런 관리를 받아야 할까?

    진지하게 고민하는데 갑자기 공작으로부터 답장이 왔다.

    [네, 감사합니다.]

    뭘 또 답장을 주고 그래. 참 예의 바른 공작님이다. 그냥 무시하고 샌드위치를 썰려는데, 할아범이 슬쩍 참견했다.

    “답장 보내시죠? 큰 고객인데.”

    “그냥 감사하대. 굳이 답할 필요 없잖아?”

    “그래도 귀족들 성격 아시잖아요.”

    으, 진짜.

    좀 짜증스럽긴 하지만 할아범 말도 맞다.

    콧대 높은 귀족들은 ‘평민 출신 백작’인 나를 상대하며 이상한 자존심을 내세웠다. 톡톡으로 이야기를 나눌 때, 내가 먼저 대화를 끊으면 괴상할 정도로 싫어했다. 무시 받는 기분이라나, 뭐라나.

    아니, 어차피 서로 용건 끝났는데 뭘 또 답장이야!

    그러나 나는 자본의 노예. 으흐흑. 먹여 살릴 상단 식구가 대체 몇이며…….

    “아가씨?”

    “아, 알았어!”

    처연한 내면연기를 집어치우고 막 자른 샌드위치를 우걱우걱 씹었다. 자판기를 두드리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다.

    [네, 공작님.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이제 됐지?

    슬슬 배가 고프긴 하던 참이라 샌드위치를 마저 먹으려는데, 또 톡톡! 알림이 울렸다. 화면에 글자가 떠올라 있었다.

    [네, 백작님도 좋은 하루 되십시오.]

    뭐야? 그래도 일단 답장은 했다. 으, 내가 평민 출신만 아니었어도.

    [감사합니다^^]

    톡톡! 또 답장.

    [네^^]

    …….

    이 공작 대체 뭐지?

    그래도 웃는 기호까지 사용한 걸 보면 이제 톡톡에 적응이 된 모양이다. 황당한 와중에도 웃는 기호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슬쩍 내 톡톡을 넘겨다본 할아범의 얼굴에도 의아함이 스쳤다. 나는 더 답장하지 않고 샌드위치를 마저 먹기 시작했다. 할아범도 이만하면 충분하다 여겼는지, 답장을 보내라고 재촉하지 않았다.

    근데 할아범은 점심 먹었나?

    “할아범, 나 점심 먹고 좀 쉴게.”

    “네, 그럼 필요하면 부르세요.”

    “어엉.”

    간단히 대답하고 할아범을 내보냈다. 나이도 있는데 자기 식사나 잘 챙기는지 몰라.

    샌드위치를 먹고(좀 남겼다),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도 켜고, 집무실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기분전환도 했다. 점심을 먹어서 그런가 잠도 쏟아져서 소파에 늘어져 잠시 쪽잠도 잤다.

    상단주인데 이렇게 한가해도 되나 싶겠지만 실제로 일은 다른 사람들이 한다. 나는 까다로운 귀족들 상대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 고민하고, 일 잘못되면 책임지고, 그런 일만 하면 되니까.

    새삼 우리 상단도 자리를 잡았다는 게 느껴진다. 믿을 만한 직원들, 돈을 갈퀴로 긁어 모아주는 메인 제품, 평화로운 나날…….

    그래, 감사하고 열심히 일하자!

    의욕이 충전되어 다시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았다. 특별한 주문서를 몇 개 더 들여다보고, 디자인팀에서 제안한 새로운 디자인을 전부 검토했다. 황제가 은근슬쩍 희망한 강아지 디자인 시안이었는데, 마음에 차는 게 별로 없었다.

    의자를 빙빙 돌리며 종이에 손으로 그린 시안을 들여다보다가 뚝 멈추었다.

    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아. 디자인팀에 연락해서 얘기해야겠다. 황제는 지금 비글을 기르지만, 기르다 죽은 코커스패니얼을 더 그리워한다고! 그러니 이번 디자인은 비글 말고 코커스패니얼 위주로!

    의자를 당겨 책상 가까이 앉으려는 순간.

    “어?”

    갑자기 등골이 오싹했다. 목 잘린 귀신과 마주친 것처럼. 순간적으로 누가 내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 느낌까지 들었다.

    휙 뒤를 돌아보았는데, 아무도 없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다시 의자를 책상 가까이 붙였다. 아니, 붙이려고 했다.

    “응?”

    다리가 왜 안 움직이지?

    뭐지? 다리 저린가? 아니, 그것도 아니다. 다리에 아무 느낌이 없다. 마치 다리가 돌로 변한 것처럼, 힘을 줄 수도 없고 하다못해 아프지도 않다. 발가락 끝부터 무릎까지 완전히 감각이 없다!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허리를 숙여 내 다리를 확인했다. 바지자락을 슬쩍 걷은 순간.

    “으아아아아아악! 할아범! 할아버어어엄!”

    내 목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할아범이 단숨에 뛰어 들어왔다. 강도라도 들었나 싶어 혼비백산한 얼굴에 대고 쩌렁쩌렁 외쳤다.

    “내 다리가 돌이 됐어어억!”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