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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장하지 마세요-3화 (3/74)
  • 3회

    올해의 운세연참 1/2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에 쪽지를 이리 뒤집어 보고 저리 뒤집어 봐도, 적힌 건 그게 다였다. 나는 쪽지를 팔랑팔랑 흔들며 할아범에게 물었다.

    “이게 뭐 같아?”

    “네?”

    할아범은 미신에 자기까지 끌어들인다는 표정으로 쪽지를 받아갔다. 문장을 읽는 눈에도 어쩐지 영혼이 없다.

    “친절한 사람이 되라네요. 좋은 축복이군요. 흐아암.”

    “저기……. 너무 그렇게 대놓고 하품하지 말아줄래?”

    할아범이 마차만 타면 조는 건 알고 있었지만, 너무 편하게 하품하네. 할아범은 신경도 쓰지 않고 쪽지를 돌려주었다.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이런 거 그냥 재미로 보는 거고, 아가씨도 안 믿는다면서요.”

    “그건 그런데.”

    그래도 괜히 찜찜한 게 사람 마음 아닌가.

    잠시 고민하다가 마음을 가볍게 바꾸기로 했다. 그래, 이게 뭐 중요해. 어차피 올해 운세는 최고라는데.

    나는 쪽지를 할아범에게 건넸다.

    “그럼 이건 할아범이 버려줘.”

    “네, 그러죠.”

    할아범은 쪽지를 받아 구기더니 재킷 안주머니에 대충 집어넣었다.

    마차는 머잖아 저택에 도착했다. 화려하게 꾸민 정원을 가로질러 현관으로 들어서니, 각자의 일을 하느라 분주하던 사람들이 꾸벅꾸벅 인사한다. 대충 받아주고 바로 집무실로 올라갔다.

    새해 첫날, 첫 번째 일을 끝냈으니 이제 나머지 일을 할 차례!

    나는 책상에 앉아 깍지를 꼈다. 상단주 보좌도 겸하고 있는 할아범이 몇 장의 편지를 들고 왔다. 진짜 할아버지처럼 꼬장꼬장하면서도 한가하게 늘어졌던 할아범의 얼굴도 진지하게 바뀌었다.

    할아범은 들고 있던 편지 중 하나를 내 책상에 내려놓았다.

    “특별한 고객이 있네요.”

    “특별한 고객? 황실보다 특별해?”

    “네. 방금 드린 거 데이라 공작가에서 온 주문서입니다.”

    와, 진짜?

    반갑게 편지를 뜯었다. 최신 의사소통 기구 ‘톡톡’을 만들긴 했지만, 높으신 귀족들은 특별 고객이라 편지로 첫 번째 주문서를 접수한다. 우리 쪽에서 접수가 완료되면 내가 연락을 준다.

    “하나 보내드렸지?”

    주문서를 접수하면 샘플로 톡톡을 하나 보내준다. 그래야 그걸로 나랑 연락도 하고, 톡톡히 얼마나 편하고 좋은지 알 수 있을 테니까.

    할아범이 믿음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지금쯤이면 데이라 공작도 받았을 겁니다. 그건 선물이라고 해뒀습니다.”

    “응, 잘했네. 공작 번호는?”

    “88808880번이요.”

    “바로 연락할게. 와, 뭘 이렇게 많이 주문했어?”

    주문서에 적힌 희망 수량을 보니, 이 정도면 공작가 식구들에게 죄다 돌릴 모양이다. 그게 아니고서야 한 번에 백 개 넘는 물건을 주문할 이유가 없지. ‘톡톡’은 우리 상단 독점 판매라, 야금야금 사들여 유통에 나서려는 것도 아닐 테고.

    주문서의 글씨가 몹시 특이했다. 글자 하나의 가로와 세로 길이가 정확하게 일치했다. 글씨가 너무 반듯해서 정사각형 벽돌을 쌓아 놓은 것처럼 보인다.

    아마 공작이 직접 적진 않았을 테니……. 거기 보좌관은 글씨를 참 반듯하게 쓰네.

    “연락 가능 시간은…… 아무 때나 괜찮다네. 한가한가?”

    “아뇨, 그건 아니고, 답장이 늦어도 이해해 달랍니다.”

    “그래, 공작 각하라 이거지.”

    어쨌든 알짜 고객이니 불평할 마음은 없다.

    책상에 놓인 귀여운 톡톡을 내 앞으로 바짝 끌어당겼다.

    톡톡은 언뜻 보면 그냥 직사각형 모양의 노트 같지만, 절대 노트 따위가 아니다. 글자가 표시되는 메인 화면, 아래 달린 앙증맞은 타자기(고객 손 크기에 따라 타자기 크기 조절 가능), 그리고 독창적인 디자인까지.

    그야말로 이 시대 최고의 유행 아이템!

    내 톡톡 위에는 작고 귀여운 고양이 세 마리가 올라앉아 있었다. 한정판 모델로,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특별 디자인이다. 황제는 강아지파라 다음엔 강아지 버전을 만들기로 했다.

    타자기에 손가락을 대고 톡톡, 번호를 입력한다. 그러면서 할아범에게 슬쩍 손을 흔들어 보였다.

    “문제 생기면 다시 부를게.”

    “네. 점심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그냥 샌드위치나 먹을래. 아! 잔소리 하지 말고.”

    선수를 가로채자 할아범이 불퉁하게 입을 비죽거렸다. 그러더니 대답도 하지 않고 휙 나가 버린다.

    할아범은 가끔 책상에 앉아 샌드위치나 먹는 나를 보며, 왜 식사 제대로 안 하느냐며 구박한다. 귀찮은 걸 어떡해.

    88808880을 누르고, 입력 버튼까지 톡!

    머잖아 화면에 글자가 떠오른다.

    [유릭스 데이라 공작(88808880)과 연결합니다. 이전 대화 내역을 모두 불러옵니다.]

    [대화 내역 복원 중…… 복원 결과 0]

    잠시 화면을 바라보다가 주저 없이 첫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데이라 공작님! 당신을 더욱 빠르게, 유쾌하게, 가볍게 만들어줄 최고의 친구 ‘톡톡’에서 연락드립니다.]

    [저는 헥센 상단주 미르아 헥센입니다. 주문서 관련해서 연락 드렸습니다. 확인 후 편하실 때 답신 부탁드립니다^^]

    이제 편지를 주고받거나 살롱에서 담배를 나눠 피우며 점잔 빼던 시절은 갔다. ‘톡톡’은 의사소통 방식 또한 획기적으로 바꿔 놓았다.

    무거운 격식은 벗어던지고, 가볍고 산뜻하게! 기호도 막 쓰고, 어?

    잠시 화면을 바라보며 기다렸는데, [상대가 대화를 입력 중입니다]라는 글자가 떴다. 답장 늦을 수도 있다더니 바로 확인한 모양이네.

    그러고 나서도 한참 시간이 흘렀다.

    …….

    …….

    …….

    뭐야. 이 정도면 쓰다 자는 거 아니야?

    확인해 봤지만 상대가 대화를 입력 중이라는 글자는 그대로였다. 체감상 10분도 넘게 지난 것 같은데, 도대체 언제…….

    그때, 톡톡! 하는 알림이 들렸다.

    뭘 쓰는데 이렇게 오래 걸렸대?

    [미르아 헥센 백작님께.

    안녕하십니까, 헥센 백작님. 저는 데이라 공작입니다. 헥센 상단의 제품 ‘톡톡’을 구입하고자 이렇게 연락을 드립니다.

    먼저, 샘플 제품을 제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최근의 기술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지라, 지난 몇 년간 톡톡을 사용해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고맙고 기쁜 마음으로 제품을 수령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주문서에 적었듯, 톡톡 150개를 구매할 계획입니다. 전부 제 영지에 있는 가신과 기사의 몫으로, 이후 만족도에 따라 추가 구매를 할 의향도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백작님의 답장을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데이라 공작으로부터.]

    …톡톡으로 공문서를 보내는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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