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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장하지 마세요-1화 (1/74)
  • 1회

    올해의 운세열일곱 살 때 축제에서 점술가를 만났다. 나이 지긋한 부모님을 모시고 구경 온 내게 그녀가 쿠키 하나를 내밀었다. 안에 쪽지가 든, 포춘 쿠키였다. 어깨너머로 본 건 있어서 쿠키를 반으로 쪼개 운세를 확인했다.

    [커다란 슬픔이 닥치겠지만, 좌절하기는 일러요.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겁니다.]

    운세는 정확했다. 그 해 가을, 부모님이 며칠 간격으로 돌아가셨다. 낙엽이 쌓인 땅에 부모님을 묻으며 오래 울었다. 나이 들어 나를 낳으셨기에 예견된 이별이었으나 슬픔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일찍 고아가 된 셈이었지만, 부모님이 일으켜 세운 상단과 막대한 유산이 나를 지켜주었다. 일찍부터 경영을 배웠고 충직한 가신들도 나와 함께해 큰 어려움 없이 일어날 수 있었다.

    열여덟 살이 된 다음해, 점술가를 찾아갔다.

    작년과 똑같은 축제, 똑같은 자리에 앉은 늙수그레한 점술가가 바구니를 내밀며 포춘 쿠키를 고르라고 했다. 망설이지 않고 하나 골랐다.

    [운의 흐름이 좋지 않습니다. 무리하게 일을 추진하기보다는 신중함이 어떨까요?]

    혈기 넘치는 열여덟 살이 그런 미신적인 조언을 새겨들을 리 없었다.

    나는 사업을 마구 확장했고, 몇 차례 쓰디쓴 실패를 맛보았다. 그 무렵에 사람도 많이 잃었다. 상단이 휘청거릴 무렵에는, 체면도 잊고 내로라하는 귀족들에게 허리를 굽히며 투자를 비느라 성가셨다.

    열아홉, 스물, 스물하나에도 운은 영 좋지 못한 방향으로 흘렀다.

    [운이 미약하고 하는 일마다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습니다.]

    [현상유지가 최선입니다. 눈부신 발전을 이루지 않아도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지금은 둥지를 지킬 때입니다. 사방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소소한 악재가 겹쳤고, 나는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법을 익혀야 했다. 상단에서 일하는 이들에게 봉급을 제대로 주느라 쩔쩔맨 적도 많았다.

    그렇게 맞이한 스물두 살.

    마침내 운이 내 편에 섰다.

    [오랜 어둠이 지나고 찬란한 새날이 밝았습니다. 낮의 태양도 밤의 달도 당신의 편. 둥지에서 나와 날개를 활짝 펴고 높은 곳으로 비상하세요!]

    새로운 사업 아이템에 대한 구상이 끝난 참이었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남은 돈과 투자액을 긁어모아 신사업에 들이부었다. 하는 일마다 안 되던 시기라 많은 사람이 나를 말렸지만 듣지 않았다.

    이번에도 망하면 그냥 다른 일 해서 빚 갚고 살지 뭐. 솔직히 그런 홀가분한 심정이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변변한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몇 년을 흘려보낸지라 좀 지치기도 했다.

    물건을 출시한 날, 초조한 심정으로 반응을 기다렸다. 시장 상황을 살피러 간 집사 할아범이 밤늦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망했나?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그런데도 이상하리만치 편안했다. 어쩌면 몇 년 내내 불운을 겪으며, 차라리 시원하게 망할 수 있는 순간을 기다려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때, 집무실 문이 열리고 땀에 젖은 할아범이 허둥지둥 뛰어 들어왔다. 늦겨울이라 해도 날이 쌀쌀한데 왜 저렇게 땀을 흘리나. 한가한 질문을 하기도 전에 그가 외쳤다.

    “돼, 됐습니다.”

    “뭐가 돼?”

    망할 준비 다 됐다는 건가.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되물었는데 할아범이 쿵쾅거리며 다가와 내 책상을 쾅 내리쳤다.

    나이도 많은데 힘도 좋았다. 하마터면 잉크통이 그대로 엎어질 뻔했다. 위태롭게 흔들리는 잉크병을 붙잡은 순간 할아범이 버럭 소리쳤다.

    “매진됐다고요! 추가 주문서도 수천 장 더 들어왔습니다!”

    “…….”

    뭐지. 내가 너무 간절한 나머지 환청을 들었나? 아니, 나 환청 들을 정도로 간절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그때 할아범이 갑자기 책상을 빙 돌아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나를 일으켜 세워 있는 힘껏 끌어안았다.

    “대성공입니다, 대성공! 우린 살았다고요!”

    할아범을 마주 안지도 못하고 그냥 멍하게 굳어 있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솔직히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는데 이게 되다니?

    “우리 불쌍한 아가씨……. 일찍 부모님 잃고 얼마나 애쓰셨는데, 이제야…… 이제야 아가씨 노력이 빛을 봅니다…….”

    할아범은 갑자기 눈물까지 찔끔거렸다. 실감도 안 나는데 할아범이 울기까지 하니 좀 당황스러워서, 습관처럼 등만 다독거려주었다.

    그럼 이제 사람들 봉급 걱정 안 해도 되는 건가? 보너스도 줄 수 있겠네? 여기저기 가서 돈 좀 투자해 달라고 굽실거릴 필요도 없어. 투자자들한테 배당금도 두둑이 챙겨주고, 앞으로도 계속 상단을 꾸려갈 수 있는 거구나!

    그제야 눈물이 났다.

    “아가씨, 울지 마세요…….”

    “자기가 먼저 울어 놓고, 흐어엉…….”

    “흐어어어어엉…….”

    “으엉엉엉!”

    그래, 인정한다. 솔직히 그땐 할아범도 나도 감정과잉 상태였다.

    그래도 뭐 어때, 망해서 우는 것보단 잘 돼서 우는 게 백배 낫지!

    그 뒤로 우리 상단 메인 제품은 그야말로 날개를 단 듯 팔려나갔다. 심지어 황실에서도 다량 구매했고, 황실 독점 디자인도 생겼다.

    이쯤에서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상단을 몇 년째 먹여 살리고 있는 이 대단한 제품을.

    제품의 이름은 ‘톡톡.’

    ‘톡톡’만 있다면, 편지를 보내기 위해 우체국에 갈 필요가 없다. ‘톡톡’에 달린 작은 타자기에 대고 글자 그대로 톡톡, 손가락만 움직이면 된다. 원하는 문장을 입력한 다음 전송 버튼을 누르면, 상대가 가진 ‘톡톡’에 글자가 그대로 표시된다.

    도대체 언제까지 종이와 잉크에 묶여 있을 건데? 응? 편지는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다. 무엇보다도 급한 일이 생겼을 때 바로바로 알릴 수가 없으니, 부모의 부고를 늦게 접하거나 애인의 오해를 제때 풀어주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러니 ‘톡톡’이 미친 듯이 팔려나간 건 당연했다.

    이제 제국 사람들은 ‘톡톡’ 없는 삶은 상상도 못한다. 아무리 늦어도 10분 안에 답장을 받는 삶에 익숙해진 것이다.

    나는 그야말로 돈방석에 앉았다. 황실에선 나한테 작위까지 줬다. 상단이 휘청거릴 땐 내가 직접 찾아가 무릎을 꿇어도 콧방귀만 뀌던 귀족들이 이제는 줄을 서서 한정 모델을 예약하게 해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다. 그동안에도 점괘는 최고였다. 올해 연말도 호화롭게 보낼 수 있겠네. 나는 다리를 쭉 뻗고 앉아 한가로운 티타임을 즐기며 인생을 누렸다.

    “할아범.”

    갑자기 지난 일을 떠올리니 기분이 너무 좋아져서, 불쑥 할아범을 불렀다. 차를 따라 주던 할아범이 ‘톡톡’처럼 바로 대답했다.

    “네, 단주님.”

    할아범은 참 제멋대로다. 자기 기분에 따라 나보고 아가씨랬다 주인님이랬다 단주님이랬다 오락가락한다. 물론 나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세상이 원래 이렇게 아름다웠나?”

    “나 원 참.”

    “내년 운수도 끝내줄 거야.”

    아름답고 화려하게 꾸민 온실은 한겨울에도 따뜻하고 안락하다. 장작 난로를 피워 놓고 온실용 소파에 늘어져 있으니 낙관만 가득하다.

    으, 기분 좋아. 난방비 아끼려고 종종거리던 날이 까마득하게 멀어진다.

    “올해도 그 점쟁이한테 가시려고요?”

    할아범은 못마땅한 듯 물었다. 나는 소파에 늘어진 채 손을 흔들었다.

    “당연하지.”

    “이제 그만 가시죠? 이만큼 성공했는데.”

    “그러니까 더 가야 해.”

    “너무 운수에 휘둘리는 거 아니에요? 점 같은 건 그냥 재미로 보는 거예요.”

    “재미? 재미라니? 우리 상단의 성패가 거기 달렸는데!”

    그 뒤로도 할아범은 한참 잔소리를 했다. 하지만 할아범이 뭐라고 말하든, 나는 새해 축제가 시작되자마자 점쟁이 할머니에게 달려갈 거다. 이번에도 느낌이 좋다.

    타닥타닥, 장작 타는 소리가 평화롭고 명랑했다. 이대로 잠들면 좋은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다. 스르르 눈을 감자 잠이 다정하게 어깨를 감싸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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