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부> - 1. 습격 (7/16)

<2부>

1. 습격

필라헨 제국의 제도 레젠의 경비대는 두 달 넘게 비상경계 근무 중이었다. 제도 경비대 제3분대장도 이틀째 철야 중이었다. 사무실에서 이틀 철야 하여도 피곤이 머리끝까지 쌓일 텐데, 그들은 제도를 순찰하며 이틀째 철야 중이다.

분대장뿐만이 아니라 분대원들도 피곤이 덕지덕지 묻은 얼굴이었다. 인원은 한정되어 있고 순찰 지역은 많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원래 연말연시에는 자잘한 사고가 많이 발생한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10년 전에도, 제도 경비대가 창설되었을 때도 그랬다. 내년에도, 후년에도 변함없을 것이다.

물론 올해에도 사고가 많이 발생했다. 단지 사고의 규모가 달랐다.

연말연시의 들뜬 분위기는 제도 내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해가 지고 밤이 깊으면 사람들은 문을 꼭꼭 걸어 잠가 외출을 삼갔다. 간혹 밖으로 뛰어나가려는 개구쟁이들은 엄마에게 귓불이 잡혀 질질 끌려 들어갔다.

겨울이 찾아온 밤거리는 한결 을씨년스럽다. 경비대원들은 초과 근무에 찌든 몸을 이끌고 순찰을 돌았다.

“집에도 못 들어가는 게 벌써 며칠째예요. 이러다가 애들이 아빠 얼굴 까먹게 생겼습니다.”

한 경비대원이 한탄하자 바로 맞장구가 나왔다.

“저는 이러다가 이혼당할 것 같습니다.”

“이 처죽일 놈은 하필이면 연말에 지랄을 하는 거야?”

“대장님, 오늘은 집에 갈 수 있습니까?”

하나둘씩 나오는 맞장구는 점차 신세 한탄과 욕설이 되었다. 수다를 떨어서라도 피로를 잊으려는 분대원들의 심리를 분대장도 알았다. 그러나 지금은 피로를 잊으며 해이해져야 할 때가 아니라 긴장을 곤두세워야 할 때였다.

“부대에 귀환해서 기합 받고 싶냐? 좋은 말로 할 때 입들 다물어라.”

여기서 더 피로를 축적할 수 없었던 부대원들은 합죽이가 되었다.

주변이 조용해지자 겨울밤의 거리는 훨씬 더 쌀쌀하고 살벌한 기운이 감돌았다. 순찰 경로를 끝내고 본부로 돌아가서 한뎃잠이라도 자는 것을 인생 목표로 삼은 경비대원들은 묵묵히 밤거리를 걸었다.

“으아아아악!!”

정적이 깨진 건 반시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고요한 밤을 찢는 새된 비명 소리에 따분하게 하품하던 경비대원도, 반쯤 졸면서 걷던 경비대원도 일제히 경직되었다.

“히이익! 아악!”

비명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덕분에 소리가 먼 곳까지 울리는 한밤중에도 위치를 추적하기 쉬웠다.

“3시 방향이다!”

분대장이 호령하며 칼을 빼 들었다. 경비대원들은 일사불란하게 분대장을 따라 달렸다.

비명 소리의 진원지는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비명이 아닌, 피비린내가 보다 정확하게 그들을 이끌었다.

현장에 곧 도착했다. 경비대원 중 한 명이 얼른 횃불로 주변을 비쳤다.

“우아아아…….”

패닉 상태에 빠진 사내 한 명이 바지 자락을 온통 피로 적신 채 엉금엉금 기어갔다. 지나가던 술주정뱅이였는지 근처에는 술병도 나뒹굴고 있었다.

횃불의 빛이 주정뱅이의 몇 미터 앞을 비췄다. 시체이니 살해 현장이니 하는 광경에 익숙한 경비대원들도 순간 입술을 깨물었다.

으슥한 골목 사이에 찐득찐득하게 고인 붉은 웅덩이는 피였고, 쓰레기처럼 널브러진 것들은 시체였다. 부서진 마차의 틈에서 튀어나온 창백한 팔목을 횃불의 빛이 쓸었다. 인형의 팔처럼 무기력하게 늘어진 창백한 손은 기이할 정도로 희어 등골에 오싹한 소름을 돋게 했다.

먼저 냉정을 회복한 건 분대장이었다.

“당장 주변을 수색해라!”

분대원들은 훈련받은 대로 즉각 주변 수색을 나섰다. 분대장은 시체를 살펴보았다. 혈액이 응고되고 시반이 생겨 있었다. 우연히 주정뱅이에게 발견되지 않았으면 시체가 발견되는 건 더욱 늦었을 것이다.

수색하고 탐문하는 경비대원들로 인해 근방은 금세 소란스러워졌다. 그렇지만 살인마의 꼬리는 잡히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러하였던 것처럼.

제도 필라헨에는 살인귀가 날뛰고 있다.

분대장은 살인귀의 21번째 희생자로 기록될 창백한 팔을 응시했다.

연쇄살인범이 출몰했다는 급보는 한밤중이었음에도 즉시 황궁까지 직통 보고되었다.

황제 카를 5세는 갈아입을 틈도 없이 침의 위에 나이트가운만 걸친 채 침실을 나왔다. 제도 경비대장 모첼 백작이 황제를 맞았다. 카를은 정석적인 예법을 취하려는 모첼에게 손을 저었다.

“됐으니 생략하고 사건부터 보고하게.”

“희생자는 칼론 상단주의 조카딸입니다. 부검을 하지 않아 부정확하지만 추정 사망 시각은 새벽 1시 경입니다.”

“염병할.”

카를은 황제답지 않은 비교양적인 욕설을 씹었고, 모첼은 듣지 못한 척했다.

제도의 치안을 흉흉하게 어지럽히고 있긴 하나 일개 연쇄살인범에 불과하다. 그 연쇄살인범의 행적이 황제까지 직통 보고되는 이유는 간단했다.

살인귀는 개인의 쾌락을 위해 살인을 하는 자가 아니라, 명백히 정치적인 목적을 가진 자였다.

21건의 살인 중 5건은 모방범으로 추정되는 살인이다.

이를 제외한 16건의 살인은 귀족 혹은 귀족에 비견되는 부유한 평민이었다.

10건은 카를 5세의 황제파, 6건은 클레타트 후작의 후작파에 속한 자들이다. 중도파에 속하는 귀족들은 전혀 해를 입지 않았다.

황제를 비롯한 황제파에서는 이 살인귀가 후작의 부하라고 추측 중이었다. 황제파에서 보낸 살인마가 아니라는 당연한 이유가 첫 번째이고, 살해에 연루된 자들의 면면이 차이가 있다는 게 두 번째 이유였다.

살해와 연관이 있는 황제파의 10명은 파벌 내에서도 중요한 위치가 대부분인 반면, 후작파의 6명은 상대적으로 가치가 적은 이들이었다. 후작파의 6명은 황제파로 배신하도록 물밑 작업을 하던 귀족,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상인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어느 쪽이 더 피해가 큰지는 명확했다.

카를은 이를 갈았다.

“야간에는 외출을 절대 금하고 자택의 경비를 강화하도록 이르지 않았나!”

“피해자의 모친, 즉 칼론의 누이 되는 이가 레젠 외곽의 별장에서 요양 중인데 병증이 악화되었다는 급전을 받고 출타했다고 합니다.”

“거짓이었는가?”

“그렇습니다.”

모첼은 잠시 뜸을 두었다가 신중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제도 경비대의 정보가 후작에게 흘러들어가고 있는 게 9할 이상 확실하다고 봅니다.”

오늘 제도 경비대는 고의로 거짓 정보를 흘려 살인귀를 잡기 위한 함정을 팠다. 살인귀는 그것을 비웃듯이 전혀 다른 위치에서 칼론의 조카를 꼬여내어 살인을 저질렀다.

카를은 거의 짜증을 내며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신년 축일이 머지않았어. 곧 지방의 귀족들도 상경을 할 예정이란 말일세.”

“면목이 없습니다.”

모첼은 한마디의 변명도 하지 않고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

살인귀에게 죽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시기 또한 문제였다. 신년 축일과 황태자의 생일을 축하하며 레젠에서는 예년보다 성대한 행사를 치를 예정이었다. 제도 귀족만이 아니라 지방의 영주들도 대다수가 직접 상경한다.

보수적인 지방의 영주들은 친황제에 가까운 성향이다. 하나 제도를 비롯한 황제의 직할령이 안정되지 못하고 황제파의 세력이 약화된다면 후작파로 기울어질 가능성 또한 충분하다. 제도의 민심도 흔들릴 것이다.

황제와 비슷한 나이의 클레타트 후작은 선황제의 시기부터 꾸준히 세력을 쌓아 왔다. 선황제마저 남동생을 숙청하지 못했다.

‘만에 하나 상경한 영주들까지 살해당한다면…….’

카를은 아마도 발생할 확률이 극히 높은, 최악의 상황을 상상했다.

상경하는 지방 귀족 중에는 황제파의 거두인 슈벤하임 대공 프레데릭이 있다. 프레데릭은 그의 검이자 방패였으며 9년 전의 전쟁에서 황태자였던 카를의 수하로서 그 공적을 바친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자신을 지지하는 신하일뿐만 아니라 유일한 친구이다. 카를은 프레데릭이 살해당하는 걸 절대 원하지 않았다.

프레데릭 본인의 실력은 물론이거니와 수하 기사단도 제국에서 손꼽힐 정도이니 큰 염려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살인귀가 프레데릭의 목에 직접 칼날을 들이댄다면.

‘……그 자식은 그대로 죽을 것 같다고.’

카를은 길게 탄식했다.

프레데릭은 부하에게 날아오는 불티는 쳐내도, 자신에게 날아오는 불티는 막지 않는다. 자기 자신을 지키는 것에는 지극히 무기력한 사내였다.

설마 자기를 죽이려는 칼날 앞에서까지 무기력하지는 않을 거란 생각은 하지만, 우려가 깊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클레타트 후작이 누군가를 살해함으로써 어떤 이득을 얻는다면, 그에게 가장 큰 이득을 돌려 줄 희생자는 프레데릭이다. 여러 가지 이유에서 살인귀를 빠르게 색출해야 했다.

“수색 방법까지 짐이 명령할 필요는 없겠지. 최우선적으로 지원할 테니 최선을 다하게.”

“명심하겠습니다.”

묵직하고 짧게 대답한 모첼 백작은 곧 물러났다.

오늘밤에는 잠을 청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카를은 시종에게 와인을 가져오라고 명령했다.

‘프레데릭도 곧 레젠으로 오겠군.’

그의 친구에게 조금이라도 심경의 변화가 있길 바랐다. 적극적인 공세는 펼치지 않을지언정 적어도, 자기 자신을 방어하는 쪽으로.

* * *

대공령의 수뇌부가 어떤 노선으로 흘러가는지 모르는 로젤린의 눈에도 변한 공기가 느껴졌다.

무려 프레데릭이 일을 하고 있었다.

라울이 독촉하는 것도 아니었다. 순수하게 프레데릭 자신의 의지로 일을 하고 있었다. 프레데릭을 찾으려면 내성을 빙빙 배회하는 게 아니라 집무실로 직행하면 끝이었다.

고위 관료들과 회의를 하는 때도 잦았다.

로젤린은 호위기사인 동시에 일개 평기사였다. 여태 프레데릭의 호위기사는 정기사의 신분이었기에 회의에서 그를 보좌하는 게 허락되었으나 로젤린은 달랐다. 평기사인 그녀는 회의실까지 입실하지 못했다.

수확제가 있었던 대연회의 밤에, 로젤린은 대공의 호위기사로서 대공령의 정세를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자신에게 허락된 범위 안에서 정보를 모았다. 프레데릭에게 물으면 전부 알려 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하기는 싫었다.

발트란에도 슬슬 레젠의 살인귀에 대한 소문이 들려오고 있었다. 멀고 먼 곳의 소문이기에 일반 사람들은 단순한 가십으로 소비했으나 프레데릭은 다를 것이다. 그는 곧 레젠으로 상경해야 했다.

듣자 하니 살인귀에게 살해된 사람들은 귀족이나 부유한 평민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부유한 평민이라면 귀족과 닿아 있을 거야. 특정 계층만 죽이는 살인마라는 건 좀 이상해. 귀족이라면 호위병들도 있을 게 분명한데.’

머리 쓰는 건 자신이 없지만 로젤린은 생각을 거듭했다.

‘귀족에게 원한이 있는 사람이거나, 귀족 자체를 목표로 하는 사람이거나…….’

살인귀에게는 숨겨진 목적이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레젠의 정세도 복잡했다. 로젤린은 누가 황제가 되든 별 관심이 없는 대다수의 평민들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귀에도 황제 카를 5세와 클레타트 후작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는 것 정도는 들려왔다.

클레타트 후작은 남쪽의 대국인 오스완에서 결혼동맹을 맺기 위해 시집온 두 번째 황후의 소생이다.

황제가 누구이든 신경 쓰지 않는 로젤린 같은 사람들이 후작의 어머니를 알고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녀가 어렸을 적에 클레타트 후작의 모후가 마녀라는 소문이 퍼졌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이유도 한 가지 더 있었다. 로젤린의 아버지는 최초에 후작의 모후를 섬기던 기사였다.

‘발트란으로 오기 전까지도 황제파와 후작파가 대립하고 있었으니까 고작해야 몇 달 사이에 마무리되었을 리는 없지. 전하는 분명히 황제파였고.’

곧 레젠으로 상경할 프레데릭이 바쁠 이유는 충분했다.

그리고 그가 바쁜 이유는 더 있었다.

“……전하, 티파티가 너무 잦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전혀.”

프레데릭이 뭐가 문제냐는 얼굴로 으쓱했다.

티파티. 취지는 좋다. 다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프레데릭이 파티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는 게 문제였다.

그는 미혼이라서 대공가의 안주인이 없다는 핑계를 대며 티파티이니 가든파티이니 하는 사교 행사를 쏙쏙 피해 다녔다. 그런 그가 수확제 이후 안 그래도 바쁜 시간을 쪼개서 파티를 열었다.

아침에 눈이 내린 파티. 날씨가 추워진 파티. 기분이 좋아져서 그냥 하는 파티.

온갖 잡다한 핑계를 댄 파티는 수확제 이후 두 달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7번이나 열렸다. 오늘 핑계는 창밖으로 보이는 눈 쌓인 정원수가 예쁘니까 구경하는 티파티였다.

처음에는 구색을 갖추기 위해 몇몇 사람이 초청되었다. 차츰차츰 초대되는 사람의 숫자는 줄고, 이제 파티에 참석하는 사람은 단둘만 남았다.

호스트인 프레데릭과 그의 파트너인 로젤린이다.

이쯤 되면 파티가 아니라 데이트라고 불러야 옳았다.

“말했잖아. 너에게 남자로서 접근할 거라고. 당연히 데이트는 시간이 날 때마다 해야지.”

“직권을 남용하면서 파티를 여시라는 말은 아니었습니다만.”

“권력을 이럴 때 쓰지 않으면 언제 쓰나?”

“…….”

수긍할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직속상관의 권력 남용을 거부하지 못하는 일개 기사는 오늘도 나란히 앉아 차를 마셨다.

“숨 돌리는 여유가 필요해. 달고 맛있는 다과도 곁들였고. 좋아하는 여자가 옆에 있다면 금상첨화지.”

로젤린은 좋아하는 여자 어쩌고저쩌고 하는 말은 무시하며 답했다.

“확실히 맛은 있습니다.”

연신 오물거리는 그녀의 입은 디저트 스탠드의 2층에 있는 달콤한 브라우니를 해치우는 중이었다. 프레데릭이 잘 먹는 그녀를 흐뭇하게 응시했다.

“아무래도 기사단 본부에서는 먹기 힘들지.”

그는 ‘귀한 음식을 처음 먹는 사람의 놀라움과 즐거움’ 따위를 기대하는 눈치였으나 정작 당사자는 시큰둥했다.

“몇 달 전까지 많이 먹어서 별로 아쉽지는 않습니다. 본부 요리사의 솜씨도 훌륭하고요.”

“……몇 달 전까지?”

“어렸을 때는 집이 부유했고, 검투사로 있을 때도 부유한 후원자들이 많았거든요. 그분들이 자택으로 초대하실 때도 있었고 밖에서 만날 때도 있었고, 고급 음식을 접할 기회는 많았습니다.”

로젤린은 이제 프레데릭에게 검투사였던 시절의 과거도 편안하게 말하고 있었다.

귀하고 고급스러운 맛으로 로젤린의 호감도를 얻겠다는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프레데릭은 좌절했다. 좌절하면서도 그녀의 말에 반응했다.

“후원자라면 남자? 여자?”

“대부분이 여자 분들이었습니다.”

여자라는 사실에 안심하기도 전에 로젤린이 말을 이었다.

“저를 침대로 끌어들이려던 분들도 있긴 했지만요. 전부 그러셨다는 건 아니지만. 분명히 남자와 결혼도 하고 남자 정부도 있던 분이셨는데 왜 여자인 저에게 눈독을 들이셨는지는 지금 생각해도 잘 이해가 안 됩니다.”

“…….”

그러고 보니 기사단 본부의 하녀들에게 로젤린의 인기가 폭발 중이라 했다. 옆에 여자가 있다고 방심해서는 안 되었다.

“이런 질문 정말 미안하지만, 성희롱이라고 생각되면 내 뺨을 때려도 돼. ……혹시 여자랑 깊은 관계가 된 적이 있나?”

차마 여자랑 잔 적이 있냐고는 묻지 못했다. 그리고 뺨을 맞을 각오를 한 프레데릭의 뺨을 때리는 것처럼 툭 친 로젤린이 대답했다.

“키스를 당한 적은 있습니다. 후원자는 아니고 후배 검투사에게요.”

“……여자?”

“여잡니다.”

“…….”

프레데릭은 몹시 심란해졌다. 지금 눈앞에 있는 게 차가 아니라 술이었다면 배 속이 아플 때까지 들이켰을 텐데.

‘여자가 내 연적이었나? 남자로도 모자라서 여자의 접근까지 방어해야 하는 건가?’

그러거나 말거나 로젤린은 호로록 차를 마시며 한입 크기로 자른 1층의 샌드위치도 들었다.

“참, 전하. 레젠까지 전하를 호위하는 정식 명령서는 따로 내려오지 않습니까?”

고민 속을 허우적거리던 프레데릭이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그는 의아한 눈으로 로젤린을 바라보았다.

“레젠까지 호위하는 명령서라니?”

“다가오는 신년 축일에 레젠으로 상경하시는 게 아닙니까? 저도 전하를 호위하기 위해 동행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만.”

“누가 네게 그런 말을 했나?”

“보좌관님이 말했습니다.”

프레데릭은 이마를 눌렀다. 안 그래도 오늘이나 내일쯤 좋은 분위기를 잡으면서 로젤린에게 넌지시 물어보려 했는데, 라울이 다 망쳐 놓은 후라니.

“……내키지 않는다면 동행하지 않아도 된다. 네게 강요하려는 건 아니야.”

로젤린이 고개를 갸웃했다.

“전하의 호위인 제가 당연히 동행해야 하는 게 아닙니까? 제가 전하보다 실력이 뒤처지니 믿음직하지 않으실 수도 있지만 적어도 시간 벌이나 전하의 방패 역할은 충분히 수행할 수 있습니다.”

“잠깐! 네가 무능한 호위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프레데릭은 급히 그녀의 말을 끊었다.

“나는 단지 네가 억지로 레젠까지 가게 되는 건 아닐지 우려하는 것뿐이야. 아이기스에서 자리도 확실히 잡았고, 마수를 사냥하면서 발트란을 지키는 긍지를 갖고 있는 네 자리를 빼앗을 생각은 없다.”

그는 부정하고 설명했다.

사소한 데이트를 위해서는 권력 남용을 자칭하던 남자가 정작 큰일 앞에서는 멀찍이 물러난다. 소심한 건지 배려하는 건지. 로젤린은 문득 궁금해졌다.

“허락만 해 주신다면 저는 당연히 전하를 호위하여 레젠까지 동행하고 싶습니다.”

그러고는 프레데릭이 반짝거리며 부활하기 전에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호위기사인 저의 임무니까요.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뭐, 좋아. 어쨌든 같이 있는 시간은 늘어나는 거니까.”

긍정적으로 생각을 전환한 프레데릭은 결론에 만족했다. 무엇보다 레젠에 있으면 행사나 파티에 참석할 기회도 많다.

“그러니까 황궁에서도 파…….”

“레젠에서는 발트란처럼 가짜 파트너는 필요 없겠지요? 전하가 미혼이시라는 게 대공령 외부에서는 흠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응, 그렇지…….”

“말을 끊어서 죄송합니다. ‘황궁에서도’ 다음에 무슨 말을 하려고 하셨습니까?”

“……아무것도 아니야…….”

프레데릭은 울적하게 찻잔을 스푼으로 휘저었다.

말 한마디로 프레데릭을 들었다가 놨다가 하고 있다는 자각이 없는 로젤린은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겨울이라서 정원에서 직접 티파티를 열 수는 없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겨울 정원의 풍광은 꽤 근사했다.

다음 날 오전, 정식 명령서를 알렉산더에게 하달받았다. 호위기사인 로젤린을 포함하여 그녀가 소속된 아이기스 나이트 제1기사대의 일부도 호위대로 차출되었다.

아이기스 나이트는 마수를 사냥하는 기사단이다. 굳이 프레데릭의 호위대로 차출된 이유가 궁금했다. 명령서를 내린 알렉산더는 선선히 설명했다.

“페하께 진상할 예물을 비롯한 짐은 이미 레젠으로 출발을 하였네. 대공 전하의 본일행은 제국군이 순찰하는 통상적인 도로가 아니라 지름길로 가니 마수가 습격할 가능성은 아주 충분하지.”

로젤린이 레젠에서 발트란까지 올 때는 한 달 남짓한 시간이 걸렸다. 이 시간은 카트린의 상행처럼 마차에 짐을 싣고 안전한 도로로 갈 때의 일정이었다. 도로가 아닌 지름길로 가면 시간은 단축되지만 마수나 산적 등의 습격을 받을 위험성이 커진다.

마수의 습격에 대비하여 아이기스 나이트도 호위대로 편성하는 게 대공령의 관례였다. 모든 대공이 프레데릭처럼 아이기스 나이트 출신은 아니니 말이다.

“전하가 있으시니 큰 위험은 없겠지만 대비는 만전을 기해야지.”

알렉산더에게 일정에 대한 간략한 브리핑을 받았다. 호위대가 모두 확정되면 정식으로 브리핑이 있을 예정이라고 했다.

그 후 프레데릭의 호위를 서는 통상적인 근무로 돌아왔다.

본래 귀족의 호위기사는 적어도 수 명이 교대로 근무한다. 한데 프레데릭의 호위기사는 그녀 한 명뿐인 데다 아이기스 나이트로서의 임무도 병행하느라 근무 시간은 오후뿐이다. 이전의 호위기사였던 체임트 경은 반나절 근무하는 그녀와는 달리 한나절 근무했다고 들었다.

어지간한 위험이 프레데릭에게 위협이 되지는 않겠으나, 호위기사가 고작 몇 시간 근무해도 괜찮은지 가끔 걱정이 되기도 한다.

“로젤린.”

오늘 프레데릭은 회의도 갖지 않고 집무실에서 내내 서류만 보았다. 로젤린도 소파에 가만히 앉은 채 평소처럼 주변을 경계했다. 그녀의 근무시간이 끝나도 프레데릭은 대공저로 귀환할 낌새가 없었다.

인사하고 본부로 귀환하려는데 프레데릭이 넌지시 말을 던졌다.

“내일부터는 회의실까지 동행해도 된다.”

“신분이 문제 된다고 하시질 않았습니까?”

“원칙적으로는 그렇지만 현재 내 호위기사는 너 하나뿐이니까.”

“알겠습니다.”

이전과 바뀌었으나 명령은 명령이다. 로젤린은 담담히 대꾸했다. ……근데 왜 프레데릭이 이유 없이 웃고 있는 걸까.

싱긋거리는 프레데릭의 미소가 의심스럽긴 했으나 일단은 물러나왔다.

로젤린은 의심의 답을 이튿날 해소할 수 있었다.

“회의실까지 동행하시게 되었다고요?”

옷감을 정리하며 로젤린과 수다를 떨던 이사벨이 놀라워했다. 프레데릭과 술 내기를 하여 이사벨의 집에서 신세를 지게 되었을 때 로젤린은 에밀리아의 수련을 봐 주었다.

조카가 생각나기도 하고 오랜만에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재미도 느꼈다. 그 인연으로 로젤린은 시간이 날 때면 라울의 집을 종종 방문하여 에밀리아를 만났다. 자연히 이사벨과도 친분이 깊어졌다.

오늘은 비번인 날이라 이른 시간부터 에밀리아에게 검술을 가르쳐 줄 수 있었다.

로젤린의 검술 기반은 아버지와 작은오빠에게 배운 가문의 검술이었다. 그후 콜로세움에서 철저히 실용적으로 다듬어졌다. 발트란에서는 검술에 밴 살기가 많이 빠졌다. 이제 에밀리아를 가르치면서 그녀 자신의 실력도 돌이켜 보는 중이었다.

로젤린은 꾸준히 앞을 바라보며 기사로서의 자신을 갈고닦았다.

“이상한 일인가요? 그야 제가 고작 평기사의 신분이니 각료 회의에 참석하지 못한다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만.”

“이상한 일이라기보다는…….”

재봉에 무지한 로젤린이 보기에는 똑같은 색으로 보이는 라임색상의 실크 두 필을 각각 양손에 들고 있던 이사벨이 문득 미소했다.

“실은 엊그제였던가, 저녁 늦게 대공 전하께서 찾아오신 적이 있거든요. 요즘 많이 바쁘시다고 라울에게 들어서 무슨 일로 오셨나 걱정했더니 글쎄, 그분이.”

생각만으로도 웃음이 터지는지 이사벨이 입술을 가렸다.

“연애시절에 라울이 언제 가장 멋있게 보였는지 물어보시더군요. 뜬금없는 물음이라 무슨 의도이신가 했는데 바로 이것 때문이었군요?”

그녀는 여전히 영문을 몰라 하는 로젤린에게 마저 설명했다.

“연애시절에 멋지게 보였던 때가 일하는 모습이었거든요. 라울이 좋아하는 간식을 들고 사무실을 찾아갔는데 제가 부르는 소리까지 못 들을 만큼 일에 열중하는 모습이 참 좋았지 뭐예요. 전하께 바로 그 경험을 말씀드렸었어요.”

겨우 로젤린도 이해되었다.

헛웃음을 머금었다. 일하는 모습이 제일 멋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제대로 일하는 모습을 보여 주겠다는 거다.

“유치하긴 하지만 귀여우시네요.”

“예에…….”

로젤린은 애매하게 얼버무렸다. 유치한 건 맞지만 프레데릭이 귀엽다는 말에는 절대 동의하지 못하겠다. 그녀보다 열 살가량 연상이라 프레데릭과 라울보다도 나이가 많은 이사벨의 눈에는 귀엽게 보일 때도 있겠지만.

의문 하나를 해소하니 또 다른 의문이 하나 더 생겼다.

‘각료 회의라면 기밀 사항이 의논될 텐데 일개 평기사인 내가 들어도 되는 걸까. 신임해 주신다는 건 기쁘긴 한데…….’

프레데릭을 배신할 마음은 추호도 없으나 타인이 그녀의 진심을 믿는 건 별개의 문제다. 일개 평기사를 중요 회의에 들였다는 것으로 프레데릭이 구설수에 오르게 되는 건 아닐지 걱정이었다.

그녀보다 나이도 많고 경험도 풍부한 프레데릭을 걱정한다는 것도 우습다면 우스운 상황이었다.

“로젤린 언니! 준비 다 끝났어요!”

듀발 가에서 제일 친해진 사람은 당연히 에밀리아였다. 로젤린의 앞에 오면 빨갛게 굳은 얼굴로 ‘메이어 기사님’하고 또박또박 호칭하던 에밀리아가 이젠 가장 친근하게 그녀를 대했다.

이사벨의 작업실 문을 쪼르륵 열고 들어와 재촉하는 에밀리아의 머리를 짓궂게 헝클어트렸다.

“놀러 갈 때만 빠르지.”

“헤헤.”

에밀리아가 어깨를 움츠리며 웃었다. 오늘은 로젤린도 비번인 김에 그녀의 검을 주문하러 대장간에 가기로 했다. 마음 같아서는 제자나 다름없는 에밀리아에게 검을 선물하고 싶었지만 월급 받기 전이라 돈이 없었다.

“일하시는 데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에밀리아와 다녀올게요.”

“다녀오겠습니다아!”

“우리 애 때문에 고생이 많으세요. 에밀리아, 한눈 팔지 말고 메이어 경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

이사벨의 배웅을 받으며 두 사람은 거리로 나왔다. 목적한 대장간은 서쪽 성문 근처였다. 라울의 집에서 도보로 가기에는 먼 거리다. 익숙한 로젤린이야 상관없지만 어린 에밀리아는 힘들 것이다.

“진짜 봉피를 타도 되나요?”

그동안 로젤린이 타고 오는 건 봤지만 직접 타게 되는 건 처음인 에밀리아다. 걱정 반, 기대 반으로 눈을 반짝반짝 빛내는 에밀리아의 허리를 로젤린이 덥석 들어 안았다.

“히야아아.”

묘한 감탄을 지르는 에밀리아를 봉피의 안장에 앉힌 로젤린도 뒤에 올라탔다.

“무지 높아요!”

“나도 말에 처음 탔을 때는 높다고 생각했지.”

“언니도 말에 처음 탄 적이 있어요?”

동경이 담긴 순진한 질문에 로젤린은 그만 웃음을 터트렸다.

“당연하지. 사실 지금도 말을 잘 타는 건 아니야. 예전보다는 훨씬 나아지고 있지만. 에밀리아도 기사가 되면 기마술을 배우게 될 거야.”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며 천천히 말을 몰았다. 6일에 한 번 있는 장터가 열린 성문 근처는 북적북적했다. 성내의 거주민뿐만이 아니라 성 밖의 거주민들까지 - 주로 농민이다 - 많은 사람들이 오갔다.

“실례하겠습니다.”

먼 곳까지 뚱땅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대장간들이 모인 골목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로젤린은 북쪽에서 세 번째 위치에 있는 대장간으로 들어갔다. 라울이 수소문하여 알려 준 대장간이었다.

슬슬 진검을 들어도 괜찮다는 판단을 했지만 에밀리아는 아직 성장기의 어린아이다. 성인의 신체 사이즈에 맞춰 제작되는 검을 들기에는 무리다.

에밀리아가 쓰기에 적합한 새 검을 대장간에 주문하고 착수금을 지불했다. 이사벨에게 받은 돈은 착수금을 지불하고도 넉넉하게 남았다.

“돌아가기 전에 장터에 들러 볼까? 사고 싶은 건 있니?”

“으응.”

에밀리아가 주저하며 로젤린의 눈치를 살폈다.

“언니, 저기에 있는 칼 한 자루만 더 사면 안 될까요?”

아이의 손끝은 대장간에 즐비하게 걸려 있는 롱 소드 한 자루를 가리키고 있었다.

“넌 아직 롱 소드를 쓰기에는 일러. 기초를 닦고 있는 지금 자세가 잘못 굳어지면 엄청 고생할걸?”

“직접 휘두르지는 않구요! 갖고 있기만 할게요. 그냥 갖고 싶어요오…….”

인형을 탐내듯이 롱 소드를 탐내는 에밀리아를 보던 대장장이도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이 꼬마 검사님의 언니 되시우? 한 자루 사 주시질 그러우. 어른이 될 때까지 얌전히 갖고 있기만 한다질 않수.”

“언니는 아닙니다만…….”

로젤린은 조금 난감하게 뒷목을 문질렀다. 에밀리아의 부모도 아닌 자신이 쉽게 결정해도 될지 모르겠다.

“정 그렇다면 좋아. 남은 돈으로 롱 소드를 살게. 단, 집에서 부모님이 반대하시면 없던 일로 하는 거다?”

“반대 안 하실 거예요! 제가 설득할게요!”

설득 같은 단어를 언제 배웠는지, 에밀리아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흥분했다. 칼 한 자루를 더 팔게 된 대장장이도 즐거워하며 에밀리아가 가리켰던 롱 소드를 벽의 진열대에서 꺼냈다.

“여기 있소. 꼬마 검사님을 응원하는 의미에서 할인을 해 드리리다. 오늘 주문한 검은 5일 후에 찾으러 오시오.”

금세 칼 두 자루를 갖게 된 에밀리아는 마냥 신났다. 대장간을 나올 때까지 떨떠름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던 로젤린이지만 아이가 즐거워하니 그녀도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이들의 투정을 너무 들어주면 버릇없이 자란다는 말은 들었지만 어쩔 수 없다. 레젠에 있는 엠마도, 바로 여기의 에밀리아도 아껴 줄 수밖에 없는 사랑스러운 아이들이었다.

“그렇게 좋아?”

“완전 좋아요!”

아이가 들기에는 무거울 텐데 양손으로 롱 소드를 안고 있는 에밀리아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봉피의 고삐를 잡고 걸어가던 로젤린은 장터 쪽으로 고갯짓했다.

“예정에 없던 롱 소드까지 사느라 남은 돈은 없지만 구경이나 하고 가자.”

“사실은 언니가 구경하고 싶었던 거죠?”

“이런, 들켰잖아.”

에밀리아가 키득키득 웃으면서 달려갔다.

“사람 많으니까 조심해! 넘어지지 말고! 길 잃지 말고!”

“언니도 저 잃으면 안 돼요!”

벌써 저만큼 멀어진 에밀리아가 외쳤다. 엠마처럼 사방팔방을 휘젓고 다니는 사고뭉치는 아니지만 에밀리아도 충분히 장난꾸러기였다. 활기가 넘치는 아이들이기에 로젤린은 더욱 즐거웠다.

에밀리아를 놓치지 않도록 주의하며 슬슬 장이 열리는 골목을 걸었다. 성벽에서 꽤 가까운 곳이다. 사람 구경과 장터에 내놓은 물품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은 잘 흘러갔다. 레젠에서도 물리도록 본 장터 구경이지만 발트란으로 장소가 바뀌었다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즐거움이 있었다.

신나게 구경하고 온 에밀리아는 어느 틈인지 로젤린의 손을 잡고 나란히 걷고 있었다.

“로젤린 언니, 진짜 남은 돈이 한 푼도 없어요?”

“대장간에서 탈탈 털었어.”

“에이, 아쉽다. 저쪽 옆 골목에 꼬치구이를 파는 노점이 있는데 정말 맛있어요. 참새고기라는데 진짜 참새일까요?”

“노점에서 대대적으로 광고하는 종류는 경험상 거짓말이 많더라고. 다음에 놀러 오면 같이 먹자.”

“네! 다음에 또 와요!”

다음에도 같이 오자는 말이 기쁜지 에밀리아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방싯방싯 웃는 뺨이 겨울 공기로 빨갛게 아려 있었다.

아이를 데리고 너무 오래 찬 공기를 쐬었다. 오랜만에 보는 장터 구경도 좋지만 이러다 에밀리아가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이다.

“이제 슬슬…….”

이제 슬슬 집으로 돌아가자, 라는 말을 하려고 할 때였다.

로젤린은 퍼뜩 고개를 올렸다. 공기가 기이하게 술렁인다. 역겨운 짐승의 냄새가 희미하게 풍겼다. 익숙하지만 ‘이 장소’에서는 익숙해서는 안 될 짐승의 비린내에 그녀는 경악했다.

“에밀리아! 당장 저 가게 안으로 들어가! 밖으로 나오면 안 돼!”

영문을 몰라 하는 에밀리아를 무턱대고 근처의 음식점 안으로 밀어 넣고 봉피에 올라탔다. 동시에 성문 밖에서 찢어지는 비명이 터졌다.

“쿠아아아!”

비명은 이내 짐승의 포효에 덮였다.

마수의 습격이었다.

북쪽의 검은 황야에 촘촘히 깔린 알람 마법 지대를 우회하여 발트란을 습격하는 마수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 있을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 이것이 현실이다.

로젤린이 해야 할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을 규명하는 게 아니라, 현실에 맞서는 것이다.

쿵쿵쿵쿵!

지축을 뒤흔드는 요란한 굉음을 내며 마수 떼들이 몰려왔다. 박쥐처럼 거대한 피막의 날개에 뾰족한 주둥이를 가진 ‘황소박쥐’라는 별칭의 마수다. 별칭처럼 개개의 크기가 황소처럼 크지만 무척 날렵하다.

대개의 마수가 그렇듯이 성질 또한 흉포했다.

“우아아악!”

비명 소리는 성문 밖부터 들려왔다. 이십 여 마리의 마수들은 성문 밖을 오가던 사람들을 밟고 물어뜯고 집어삼키며 보다 먹잇감이 풍부한 성내로 향했다.

성내는 아비규환이었다. 공황 상태에 빠진 군중은 제어되지 않는다. 성문은 밀려드는 사람들로 인해 도르래를 올려 닫을 수조차 없었으며, 문을 닫아야 할 병사들도 난생처음 목격하는 마수의 잔학함으로 공포에 질려 있었다.

뒤늦게 사태를 알아챈 성내의 사람들도 도망치려고 악을 썼다. 가판대가 뒤집어지고 장막이 찢어졌다.

부모를 잃어버린 아이의 울음소리, 공포에 질린 비명 소리, 가족과 동행을 찾는 애탄 외침이 혼란스럽게 뒤엉켰다. 마수에게 당해 죽는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도망치다 넘어져서 밟혀 죽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큭……!”

로젤린은 사람들을 밟지 않고 말을 몰아 마수들이 몰려오는 성문 쪽으로 가기 위해 애를 썼다. 본능적으로 도망치는 인파의 무리를 반대로 거슬러 올라가려니 더욱 힘들었다.

“엄마아!”

정신없이 도망치는 인파의 끄트머리에서 어린 소년이 한 중년 사내에게 퍽 떠밀려 나뒹굴었다. 사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갔다. 소년은 울상이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사람들에게 밀리느라 도망치지도 못하고 있던 참이다. 사람을 잡아먹는 무시무시한 괴물이 곧 쫓아 올 것이다.

겁에 질린 소년은 버둥거리며 일어나려 했으나 늦었다. 작은 몸 위로 어둑한 그림자가 드리우고 피비린내가 나는 찐득거리는 숨결이 느껴졌다.

“히이이…….”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어느새 성문 안으로 진입한 황소박쥐가 “크르르.”하는 소리를 내면서 주둥이를 딱딱 부딪쳤다. 붉은 선혈이 섞인 피가 소년의 몸 위로 한 방울 뚝 떨어졌다. 이미 사람의 맛을 알고 있는 마수다. 침과 함께 떨어진 손가락 하나가 소년의 어깨에 튕기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공포로 떠는 소년의 동공이 크게 확장되었다. 그 동공까지 삼키려는 듯 황소박쥐가 주둥이를 쩍 벌렸다. 침이 고인 송곳니에는 찢긴 사람의 살점까지 끼여 있다. 황소박쥐 떼의 선두에서 인간의 고기 맛을 가장 많이 맛본 마수의 송곳니가 탐욕스럽게 빛났다.

망연하게 떠진 소년의 눈동자가 차츰 커지는 황소박쥐의 송곳니만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타핫!”

등 뒤에서 날아온 칼날이 마수의 뒤통수를 꿰뚫으며 입천장으로 튀어나왔다.

“도망쳐! 어서!!”

“으아아아!!”

소년은 그제야 비명을 지르며 네 발로 엉금엉금 기어 도망쳤다. 간신히 이름 모를 소년을 구한 로젤린은 황소박쥐를 꿰뚫은 바스타드 소드를 뽑았다. 정확히 뇌를 직격당하여 즉사한 황소박쥐의 몸체가 나뒹굴었다. 봉피가 콧김을 뿜으며 황소박쥐의 두개골을 발굽으로 밟아 으깼다.

이어 황소박쥐 떼들이 속속들이 성문 안으로 진입했다. 성문 근처에 있는 사람이라고는 시체와 로젤린뿐이었다.

동족의 피 냄새에 흥분한 황소박쥐가 더욱 높이 포효했다. 거대한 피막의 날개를 펼친 모습은 흉흉한 위압감을 준다. 그러나 로젤린은 검투사로서, 또한 아이기스 나이트로서의 경험으로 놈의 날개가 큰 위협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끼에에에!”

황소박쥐가 달려들었다. 핏물이 떨어지는 바스타드 소드의 칼날이 황소박쥐의 두툼한 목을 길게 베었다. 동시에 왼손에 든 칼집으로는 옆에서 달려드는 놈의 주둥이를 방어했다. 양손을 모두 고삐에서 놓고 있음에도 하반신은 든든하게 안장에서 버티고 있다. 로젤린은 그동안 지속되었던 기마술 훈련에 감사했다.

칼날에 깊숙이 벤 황소박쥐의 상처에서 핏물이 튀었다. 놈은 고통에 비명을 지르면서도 육중한 몸체를 크게 뒤틀었다.

“엇!”

기우뚱 균형을 잃은 로젤린의 몸이 허공으로 떴다. 순간 당황하였으나 곧 유연하게 다리를 움직여 낙법을 취했다. 그리고 바닥에 발을 딛자마자 바스타드 소드를 양손으로 쥐고 황소박쥐의 몸체에 칼날을 쑤셔 박았다. 복부에 박혔다가 옆구리로 튀어나온 칼날의 궤적을 따라 핏물이 튀고 벌어진 상처로 내장이 쏟아졌다.

피 웅덩이에서 나뒹구는 놈의 목을 한 번 더 베어 확인 사살한 그녀는 숨을 돌릴 틈도 없이 허리를 크게 젖혔다. 입에 걸린 칼집을 으적거리며 깨물어 부서트린 황소박쥐가 노리고 있었다.

“젠장! 너도 주둥이에서 냄새 나!”

로젤린은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고, 익숙해지고 싶지도 않은 짐승의 비린내에 욕설을 퍼부으며 바스타드 소드를 휘둘렀다.

곁눈질로 살펴보니 봉피도 무사했다. 마수와의 전투에 익숙한 흑마는 이리저리 날뛰면서 마수의 흉포한 공격을 피해 날뛰고 있었다.

겨우 혼자서 마수 떼의 앞을 버티고 있지만 로젤린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녀가 모든 마수를 처리할 필요도 없고 모든 짐을 혼자 짊어질 필요도 없다. 시간을 벌고 있으면 아이기스 나이트들이, 그녀의 동료들이 출병할 것이다.

로젤린은 동료들을 믿었다.

세 번째 황소박쥐가 쓰러졌지만 그녀 혼자 모든 마수를 유인하는 건 불가능했다. 몇 마리는 로젤린에게 주의를 기울이며 달려들었지만 대부분의 마수는 작은 인간 한 마리 따위는 지나치며 성내를 쿵쿵 뛰어갔다. 미처 피하지 못하고 숨어 있던 한 명의 노인이 마수에게 발각되었다.

로젤린은 얼굴에 온통 튄 마수의 체액을 닦지도 못하고 뛰어갔으나 이번에는 한 발 늦었다.

끔찍한 비명 소리와 함께 노인의 머리가 황소박쥐의 주둥이에서 으적으적 씹혔다. 지켜야 할 사람을 지키지 못하고 눈앞에서 놓친 분노가 눈앞을 하얗게 태웠다.

“개자식이!!”

횡으로 크게 휘두른 칼날이 황소박쥐의 날개 피막을 찢으며 등허리에 박혔다. 탄탄한 근육에 칼날이 꽉 물렸다. 황소박쥐가 비명을 내지르며 반대편 날개로 로젤린을 후려쳤다. 뒤로 뒹굴어 공격은 피하였으나 검을 놓쳐 버렸다. 깊이 박힌 칼날이 쉽게 빠지지 않았다.

“제기랄.”

실수다. 로젤린은 입술을 깨물었다. 황소박쥐는 발로 쿵쿵 내려찍기도 하며 날개에 뾰족이 튀어나온 발톱으로 공격하기도 했다. 아슬아슬하게 공격은 피하였으나 공격 수단도 방어 수단도 모두 잃어버린 채다.

‘어떡한담.’

무작정 피하기만 하느라 그녀는 자꾸자꾸 밀리고 있었다. 그녀가 한 발 밀릴수록 황소박쥐들은 한 발 더 깊숙이 성내로 진입한다. 이 한 마리에 오랜 시간을 보내고 있을 수도 없었다. 그녀를 지나쳐간 다른 마수들도 많았다.

‘어떻게든 칼을 뽑아야 해.’

황소박쥐가 날개를 휘두르는 사정거리는 바스타드 소드의 사정거리보다 크다. 그 안으로 파고들어 깊이 박힌 칼을 뽑는 것은 위험한 도박이었다. 하지만 하지 않을 수 없는 도박이다.

초조하게 성내로 진입하는 황소박쥐들을 눈으로 좇은 로젤린은 결심하고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때 한 줄기 외침이 있었다.

“로젤린 언니! 받으세요!”

언제 올라간 건지, 인근 건물 위의 옥상에서 에밀리아가 외쳤다.

“에밀리아? 너……!”

위험하다고 말하려는 때 에밀리아가 품에 안고 있던 롱 소드를 던졌다. 로젤린은 다급히 낙하하는 칼을 낚아채어 잡았다. 무기가 있으면 그 후는 어렵지 않다. 틈만 보던 로젤린은 순식간에 황소박쥐의 목을 깊숙이 찔러 베었다.

삐이이익!

검지와 엄지를 입술 사이에 넣고 휘파람을 불었다. 이리저리 날뛰고 있던 봉피가 금세 주인의 부름을 받고 달려왔다. 달려오는 말의 안장을 짚고 단숨에 올라탄 그녀는 성내로 진입 중인 마수를 앞질렀다.

봉피를 양옆으로 거칠게 몰자 마수들의 주의가 쏠렸다. 성내로 진입하는 속도가 느려졌다. 로젤린은 마수 한 마리를 상대하기보다 공격을 피해 날뛰면서 주의를 끄는데 집중했다.

한 무리의 군인들이 진입하는 함성소리가 들렸다. 경갑을 착용하는 아이기스 나이트가 아니었다. 발트란의 경비대였다.

원군이라면 원군이랄 수 있는 부대다. 그러나 로젤린의 얼굴에는 낭패감이 어렸다. 마수를 상대하는 훈련을 받지 않는 일반인이 늘어 봤자 공황 상태만 확산될 뿐이다.

“신이시여…….”

실제로도 함성이 경악과 공포로 바뀌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병사들은 정면에서 보이는 낯설고 흉측한 마수의 모습과, 인간 세상의 것이 아님을 드러내는 기이한 공기와 그들에게 잡아 먹혀 죽은 처참한 시체를 목격했다.

폴암(창의 한 종류)과 카이트 실드(역삼각형의 방패)를 쥔 손이 벌벌 경련했다. 그나마 훈련을 받은 병사이기에 비명을 지르면서 도망치지 않았다. 병사들의 공황 상태를 수습하고 명령을 내려야 할 지휘관의 얼굴도 허옇게 질려 있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건, 병사들이 성내로 진입하는 통로를 가로막고 있기에 병사들을 몰살하지 않으면 마수도 진입할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즉, 병사들은 황소박쥐들의 발을 아주 잠시 붙잡을 싱싱한 고깃덩어리가 되었다는 뜻이다.

‘그렇게 놔둘 수는 없어!’

공포에 질린 인간들의 몰살은 순식간이다. 로젤린은 눈앞에서 그녀가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죽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황소박쥐들의 시선을 끌며 사방으로 날뛰던 로젤린이 외쳤다.

“마수를 두려워하는 건 당연해! 그러나 제군들은 발트란을 지키는 병사다! 무력한 고깃덩어리가 되어 가족과 친지가 마수의 사냥감이 되는 것을 보고 있을 참인가! 제군에게는 방패와 창이 있다! 놈들을 공격할 수 없다면 방어하면서 버텨! 곧 아이기스 나이트가 도착할 테니까!”

“……전군 밀집 방어 대형으로!”

그녀의 일갈에 지휘관이 정신을 차렸다. 로젤린은 병사들이 벌벌 떨리는 손으로도 방패를 들어 앞을 가로막고, 방패 사이로 창날을 올리는 방어 대형을 진열할 동안 마수를 상대했다.

“끼아아아!”

조금 무리하여 황소박쥐 한 마리를 더 사냥했다. 대가로 그녀도 어깨에 상처를 입었다. 최소한의 보호구조차 갖추지 못한 상황인지라 공격을 피하기 위해 애썼으나 병사들이 진열을 갖출 동안 황소박쥐들의 주의를 끌려면 어쩔 수 없었다.

필요 이상으로 날뛴 봉피도 차츰 지쳐가고 있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버티자.

이윽고 몇몇 황소박쥐들이 경비대의 진형에 쾅쾅 부딪혔다. 비명 소리가 사방에서 터졌다. 지휘관은 목이 터져라 병사들을 독려했다.

오직 방어에만 치중하는 진형은 버티고 있었으나 상대는 인간의 군대가 아닌 마수 떼다. 귀퉁이라도 뚫린다면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다. 로젤린은 롱 소드를 꾹 쥐었다. 지금은 무리해야 할 때였다.

“이럇!!”

봉피가 앞발을 높이 들어 올리며 투레질했다. 병사들에게 밀려가는 마수 떼들에게 전속력으로 달려가며 크게 점프했다.

쿵! 발굽으로 마수의 머리와 등을 가격하며 올라탄 봉피가 그대로 마수 떼들의 위를 내달렸다. 좁은 길목으로 진입하느라 황소박쥐들이 밀집해 있기에 가능했다. 짓밟히는 황소박쥐들이 비명을 지르며 날개를 허우적거렸다. 짓밟히지 않은 황소박쥐들은 동족들의 몸 위를 밟고 달려가는 로젤린을 공격했다.

로젤린은 롱 소드를 양옆으로 휘두르며 공격을 방어했다. 치명상은 막았지만 사방에서 쏟아지는 공격을 완전히 막아 내는 건 불가능했다.

봉피가 다시 바닥으로 내려왔을 때는 그녀도 말도 피투성이였다. 자잘한 상처와 마수의 피로 온통 뒤범벅이었다. 숨이 가빴다. 마수와 단순히 전투하는 게 아니었다. 동료도 없이, 다른 사람을 지키며, 홀로 싸운다는 긴장감이 그녀를 평소보다 지치게 했다.

이젠 콜로세움에서 어떻게 혼자 마수를 사냥하였는지 그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

로젤린은 고개를 올렸다. 익숙한 느낌이다. 익숙한 함성이다.

먼 곳에서부터 들려오는 우렁찬 함성에 호응하듯이 롱 소드를 높이 치켜들며 기합을 외친 로젤린은 망설임 없이 황소박쥐 무리로 돌진했다. 그녀의 동료들이 오고 있었다. 그녀는 이제 두려울 것이 없었다.

아이기스 나이트가 도착했다.

아이기스 나이트의 본부는 북문 근처에 위치해 있다. 거리가 멀어 경비대보다 출병이 늦었으나, 아이기스 나이트가 도착하자 마수 떼는 어렵지 않게 몰살되었다.

마지막 마수가 쓰러졌지만 승리의 함성은 없었다. 그저 좋아하기에는 희생된 민간인들이 많았다. 차라리 인파에 밟혀 죽은 사람은 시체라도 보존했다. 그러나 황소박쥐에게 공격당하여 죽은 사람은 갈기갈기 찢겨 시체를 수습하기도 어려웠다.

뒤늦게 따라와 대기하고 있던 의료반들이 부상당한 기사와 병사를 돌보았다. 로젤린은 아직까지 피가 흐르는 상처를 치료 받을 틈도 없이 주변을 헤집었다.

“에밀리아! 에밀리아! 무사하니?!”

롱 소드를 던져 준 이후 에밀리아가 보이지 않았다. 건물에 몸을 숨기고 있었으면 크게 다치지는 않았을 거라고 믿지만 사람들이 워낙 공황 상태였으니 걱정되었다.

“로, 로젤린 언니!”

몇 분이 지나서야 에밀리아가 건물에서 달려 나왔다. 소녀는 피로 흠뻑 젖은 로젤린의 몸도 아랑곳 않고 온몸을 내던지듯이 그녀를 끌어안았다.

“막, 사람들도 죽고, 마수가, 너무 무서워서…… 으아아앙!”

말도 제대로 잊지 못하고 연신 떨면서 울음을 터트리는 에밀리아를 꼭 끌어안았다.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에밀리아에게 옷에 있는 피 흔적은 로젤린에게서 묻은 피였다.

“널 지킬 수 있어서 다행이야.”

로젤린은 에밀리아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마음껏 울도록 내버려 두었다.

마수들이 몰살당하고 겨우 가족의 안부를 찾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통곡 소리가 하나둘씩 올라오고 있었다.

로젤린과 경비대가 발을 묶는 건 성공하였으나 피해가 전무한 건 아니었다. 초반에 황소박쥐의 습격으로 민간인 사상자도 발생하였고, 경비대의 피해도 적지 않았다. 그렇지만 마수 떼가 성내로 깊숙이 진입했다는 가정에 비하면 피해가 비교적 경미하다.

피해를 막는 일등공신이 된 로젤린은 상처의 응급 처치를 끝내자마자 회의석에 출두했다.

있을 수 없는 마수의 습격이 발생했다. 사태가 수습되는 즉시 내성에서 중진들을 소집한 긴급회의가 개최되었다. 프레데릭과 윌리엄을 비롯하여 군부와 내정직의 수장들이 두루 모인 긴급회의에서 로젤린은 당시의 경험을 진술했다.

신고가 접수된 시각과 경비대의 출동 시각, 습격한 마수의 종류와 개체 등의 상세한 내용은 이미 발트란 경비대장이 보고한 후다. 로젤린은 그녀가 경험하였던 전투를 짤막하게 설명했다.

“……그리하여 마수가 성내로 진입하는 걸 막기 위하여 전투를 하였습니다. 이상입니다.”

“수고했다.”

길지 않은 보고가 끝나자 프레데릭이 짤막하게 치사하며 손짓했다. 보고를 끝낸 로젤린은 회의장 밖으로 나가는 대신 프레데릭의 뒤에 시립했다. 호위기사의 위치다.

경비대장과 로젤린의 보고가 끝나자 회의실 안은 술렁술렁했다.

“마수가 지능적으로 알람 마법을 우회하여 공격하는 게 가능합니까?”

“뿐만 아니라 확인되는 마수의 경로는 정확히 발트란 방향입니다.”

마법사는 아니지만 마수와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의 부서장인 위그가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서문부터 마수의 남은 흔적을 역으로 추정한 결과 마수들은 발트란 방향으로 직진하였었다.

“하지만 검은 황야에서 출몰하는 마수도 발트란으로 남하하질 않소?”

“검은 황야 인근에서 마수들이 흥미를 가질 만한 생물체가 있는 곳이 발트란이니까요. 게다가 출몰한 마수들이 전부 북문으로 진격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오늘의 마수는 서문으로 목표를 확실히 잡았지요.”

“마수가 인간의 생활 방식을 알고 있다는 겁니까?”

지지부진한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원형 탁자에서 프레데릭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윌리엄도 한마디를 보탰다.

“근처에서 인간의 냄새를 맡거나 기척을 감지했다면 가능하지 않소? 서문이 개방되어 있으니 왕래도 가장 많이 되는 곳 아니오.”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하나 어떻게 균열에서 출몰한 마수가 알람 마법에 걸리지 않고 서문 근처까지 당도하였는지, 그 원인을 밝히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번 사태는 발트란의 보안에 구멍이 뚫린 일이었다. 마법 협회와 협력하여 조사를 한다면 진상을 규명하는 시간이 단축되겠으나, 마법 협회는 다양한 국적의 마법사들이 소속된 단체이다. 제국민이 아닌 외부의 사람에게 약점이 노출된다.

회의장 안을 오가는 소리는 커졌으나 추측은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차라리 마수를 개조했다고 하시질 그럽니까.”

자조적으로 나온 영무관의 말에 회의실에는 헛웃음이 넘실거렸다. 가능하지 않다고 치부하는 웃음이다.

회의 내도록 잠자코 있던 프레데릭은 짧은 한숨을 쉬었다.

‘충분히 가능하지.’

일부 측근들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일전 마수 떼의 대대적인 출몰에 인위적인 조작이 가하여졌다. 사람의 손으로 한 번 가능하였으니, 두 번째도 충분히 가능하다.

프레데릭은 이번 사태도 우연이 아니라는 걸 확신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확신의 근거가 되는 ‘인위적인 조작’은 현재 비밀로 부치고 있는 사안이었다. 오늘처럼 마수 몇 마리의 기습이 아니다. 자칫 아이기스 나이트가 궤멸되었을지도 모를 만큼 위급하였던 사태였다.

이곳에는 보는 눈과 입이 많다. 섣부르게 공표해야 할 사안이 아니었다.

‘썩은 재규어 떼와는 무관한 방향에서 이번 사건이 충분히 인위적인 가능성이 있다는 방향으로 끌어가야 해.’

어떻게 하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을지 고민하는데, 로젤린이 뒤에서 허리를 숙였다.

“전하, 인간이 마수를 개조하거나 훈련하는 건 가능합니다.”

귓가에서 들려오는 속닥거림에 살짝 소름이 돋았다. 순간 로젤린이 자신의 마음을 읽은 것만 같았다. 착각이라는 건 알지만 생각이 통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니 기분은 좋았다. 가려운 곳을 긁어 주는 느낌이기도 하고.

프레데릭은 탁자를 가볍게 두드렸다.

계속 침묵만 지키던 대공이 행동을 취하자 전원의 이목이 순식간에 쏠렸다.

“내 호위기사가 이번 사태에 관한 의견을 발언할 테니 경청 바라오.”

이목은 이제 로젤린에게 쏠렸다. 수확제의 대연회로 인해 로젤린의 외모 자체는 전원의 눈에 익었다.

갑작스러운 집중으로 인해 로젤린은 순간 당황하였으나 이내 차분히 말문을 열었다.

“마법사가 아니어서 정확한 원리는 알지 못하지만 인간이 마수를 개조하였을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뭣이?”

회의실에 술렁거림이 번졌다. 로젤린은 설명을 이어 갔다.

“저는 과거에 레젠의 검투사였습니다. 검투사의 주된 상대는 마수이고요.”

프레데릭은 무심코 감탄성을 뱉을 뻔했다.

그렇다. 로젤린은 검투사였다. 발트란의 사람처럼 생존을 위하여 습격하는 마수를 격퇴하는 게 아니라, 순전히 금전과 유희를 위하여 마수와 겨루었다.

마수를 오직 위협과 생존의 대상으로 여기는 발트란의 사람은 알지 못한다. 레젠의 콜로세움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로젤린이 그것을 설명했다.

“과거 최초로 마수와 겨룰 당시에는 단순히 생포한 마수를 콜로세움에 풀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은 약간 다릅니다. 생포한 마수를 풀기도 하지만 마수를 극적으로 개조하거나 간단한 훈련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콜로세움에 비하여 몸집이 거대한 마수를 소량화하거나, 야생동물을 길들이는 것처럼 마수를 굶기어 흉포성을 극도로 자극하는 경우입니다.”

발트란의 사람은 마수를 유희의 대상으로 삼는 행위를 경멸한다. 그렇기에 마수를 인간의 잣대로 길들이거나 개조한다는 가능성에는 전혀 생각이 미치질 못했다. 레젠과 왕래가 활발한 인근 도시도 아니므로 더욱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다.

설명이 끝나자 회의실에는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흐름은 프레데릭이 생각하였던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발트란에서 평생을 산 사람들은 마수를 인위적으로 이용한다는 발상을 떠올리기 힘들지.’

고정관념과 선입견을 고치기 힘들다는 산증인이 바로 자신이 아닌가.

로젤린을 남자로 착각하고 혼자 삽질하였던 기억이 떠올라 프레데릭은 얼굴을 붉혔다. 잊을 만하면 기억나고, 잊을 만하면 기억나니 죽겠다.

프레데릭은 쪽팔린 기억을 떨칠 겸 로젤린에게 질문했다.

“약물을 이용하여 마수를 자극하거나, 또는 마취시키는 방법도 가능한가?”

“예, 실제로 경기가 시작되는 것과 동시에 마취가 풀리도록 한 마수와 싸웠던 적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마취시킨 마수를 직접 발트란 서문 인근까지 옮겨 두었을 가능성도 있군. 한 마리가 황소만한 크기이니 상인의 짐마차로 가장하면 불가능한 건 아니야.”

브류나크 나이트의 기사단장인 포스터지 경이 턱수염을 쓸었다.

“적어도 발트란을 직접 노리는 세력이 있는 건 확실하군요.”

프레데릭은 고개를 끄덕였다.

“설사 우연이더라도 한 번 발생한 사태이니 추후의 대비는 해 두어 야겠지. 앞으로는 발트란 경비대도 아이기스 나이트와 연계하여 마수를 상대하는 훈련을 해야 하지 않겠소? 이번은 요행히 메이어 경이 현장에 있었지만 다음번에도 운이 좋으리란 보장은 없으니까. 적어도 아이기스 나이트가 도착할 때까지 방어할 수 있도록 마수에 대한 공포심을 지우는 최소한의 훈련이 필요하다고 보오.”

발트란 경비대 전원에게 새로운 훈련 메뉴가 추가되는 일이다. 예상 밖의 어마어마한 예산이 투입될 게 분명했지만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목표가 정하여졌으니 구체적인 사안은 아랫사람이 해야 할 일이었다.

경비대의 새 훈련 외에 피해를 입은 지역과 사상자들에 대한 보상 및 치안을 안정시키는 방안도 틀을 잡았다.

회의는 긴 시간 이어졌다.

마수를 사냥하고 부상까지 입은 몸으로 휴식을 취하지 못하여 로젤린은 피로했다. 그렇지만 내색 없이 프레데릭의 뒤에 시립했다. 이것은 호위기사로서의 직무였다.

휴식 시간도 없이 몇 시간 내내 이어지던 회의가 마침내 끝났다.

로젤린은 제일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프레데릭의 뒤를 따라 회의실을 나왔다. 인적이 없는 복도로 나오자마자 프레데릭은 기지개를 크게 켰다. 회의실 내의 진지한 표정은 사라지고 평소의 장난기 어린 얼굴이 돌아왔다.

“지루했지?”

“아닙니다. 제 일이니까요. 모처럼 전하의 호위기사다운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일을 안 한다는 걸 노골적으로 꼬집으면 가슴이 아프지.”

프레데릭이 전혀 상처 입지 않은 표정으로 웃었다.

“대공저에서 저녁을 먹고 가지 않겠나? 오늘 고생 많았으니 특별히 보양식으로 준비해 달라는 부탁을 하고 나왔다.”

“근무시간 끝났습니다. 전하의 파트너 시간도 끝났고요.”

“알아. 그러니까 이건 데이트지.”

당장이라도 로젤린의 손등에 키스라도 할 것 같은 태도로 프레데릭이 말했다.

“난 지금 네게 데이트 신청을 하는 거야.”

“……전하의 자택에서 보양식을 함께 먹는 게 데이트입니까?”

썩 내켜하지 않는 로젤린을 보던 그는 헛기침을 한 번 했다.

“사실은 부상을 입었는데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바로 회의까지 참석했으니 많이 힘들 것 같아서. 나 혼자 멋대로 한 짐작이니 언짢았다면 사과하마.”

로젤린은 무심코 자신의 상처를 바라보았다. 그녀 자신도 미처 고려하지 못하고 있던 부상을 언제부터 생각하고 있었는지.

로젤린이 침묵하자 프레데릭이 변명처럼 서둘러 말을 이었다.

“으음, 기숙사로 돌아가면 쉴 수야 있겠지만 제대로 좋은 식사를 하는 건 대공저가 더 낫지 않겠나?”

프레데릭의 마음은 알고 있다. 알고 있으므로 더욱 로젤린은 쉽게 그의 데이트 아닌 데이트에 응하지 못했다. 이런 배려를 받을 자격이 자신에게 있을까.

“강요하지는 않겠다만, 나에게 데이트라는 이름의 동정이나 적선을 해 주는 건 어떻게 생각하나?”

일부러 장난기를 담은 목소리가 로젤린을 둘러쌌다. 이것 또한 프레데릭의 배려. 끝까지 거절하면 프레데릭은 계속 마음을 쓰게 될 것이다.

로젤린은 표정을 풀며 희미하게 미소했다.

“딱 식사만 하겠습니다.”

프레데릭이 환하게 웃었다.

“좋지. 아무 짓도 안 할 게.”

그녀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한 프레데릭의 농담 섞인 장담이었다. 결과적으로 그 장담은 현실이 되었다.

그는 풍족한 저녁 만찬의 마지막 메뉴로 디저트를 먹다가 잠이 들어 버렸다.

로젤린은 우유 푸딩을 스푼으로 듬뿍 푸며 맞은편에 앉은 프레데릭을 바라보았다. 식탁에 팔을 괸 채 졸고 있었다. 처음에는 장난이라도 치는 게 아닌가 의심했는데 진짜 조는 게 맞았다.

‘먹다가 졸 정도로 피곤하셨으면 혼자 일찍 드시고 쉬시면 되었을 텐데.’

그만큼 피곤한 사람이 자신을 위해 일부러 시간을 내고 식사를 하였으니.

로젤린은 마지막으로 남은 푸딩을 목구멍 안으로 꿀꺽 넘겼다.

“전하.”

대답은 없었다.

“전하, 올라가서 씻고 주무셔야지요.”

역시 대답은 없었다.

어떻게 한담. 곤란해하는 로젤린에게 식사 시중을 들던 노집사가 조용히 속삭였다.

“하인들을 불러서 주인님을 모시겠으니 메이어 경께서는 개의치 마십시오.”

“그럴 것 없습니다. 제가 모시고 가겠습니다.”

그녀가 직접 프레데릭을 업고 가겠다는 말에 노집사는 놀라서 말렸으나 로젤린은 생각을 거두지 않았다. 하인들이 어설프게 부축해서 가는 것보다 그녀가 업는 게 나았다.

이미 업고 거리를 달린 적도 있으니 계단을 올라가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집사의 놀란 시선 속에 프레데릭을 가뿐히 업을 때까지 그는 깨지 않았다. 그녀에게 업혔다는 사실을 알면 프레데릭이 쪽팔려 죽을 것이라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한 집사는 그녀를 프레데릭의 침실까지 안내했다.

프레데릭이 자기에 편하도록 겉옷을 벗기고 허리띠를 푸는 건 집사가 했다.

침실에서 나온 집사는 로젤린에게 다시금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별거 아닙니다.”

그냥 잠든 사람을 업어서 데려온 것뿐인데 과하게 고마워하여 로젤린은 민망해졌다. 집사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비단 오늘만이 아닙니다. 주인님께서 근래 많이 바쁘신데, 메이어 경과 짧은 만남을 가지실 때만 겨우 망중한을 취하십니다.”

잔잔한 감사를 표하는 그 말에 어떤 대답을 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어졌다. 로젤린은 머뭇거리다가 “……그러시군요.”라며 애매한 대답을 흘렸다.

그녀는 프레데릭이 잠든 침실의 방문을 바라보았다. 정 피곤하면 티파티를 할 시간에 낮잠을 자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녀도 프레데릭이 굳이 시간을 쪼개는 이유는 알고 있으니까.

‘……다음에 또 티파티를 하신다고 하면 그냥 쉬시라고 말씀을 드려야겠어. 과로로 쓰러지시기라도 하면 큰일이야.’

로젤린은 생각의 방향을 억지로 프레데릭의 과로로 바꾸며 돌아섰다.

그렇지만 그녀가 충고할 기회는 오지 않았다. 엊그제가 올해에 프레데릭과 로젤린이 가진 마지막 티파티가 되었다.

다음 날부터는 프레데릭이 더 이상 억지로 시간을 낼 수도 없을 만큼 바빠졌기 때문이다.

“티파티…….”

서류 더미에 파묻혀 중얼거리는 그를 못 본 척하며 로젤린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프레데릭의 심란함과는 상관없이 여전히 푸른 하늘이었다.

* * *

프레데릭이 가볍게 손뼉을 쳤다.

“오늘 긴밀히 경들을 청한 건 이미 대부인의 귀에 들어갔을 테니, 대부인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밀담을 나누어 보도록 하십시다.”

작은 웃음이 담화실 안을 휘돌았다.

장난기 섞인 프레데릭의 말처럼 담화실에 모인 사람들은 그의 최측근 심복들이었다. 호크만 백작, 양대 기사단인 아이기스 나이트, 브류나크 나이트의 기사단장들, 보좌관인 라울, 그리고 로젤린이다.

내일은 레젠으로 출발하는 날이다. 출발하기 전의 마지막 날에 프레데릭은 최측근만 따로 불러 만남을 가졌다. 평소의 회의와는 달리 오늘은 인원도 적고 한결 편안한 분위기였다. 중앙의 테이블에는 다과까지 준비되어 있다.

로젤린은 이전까지 그녀가 참석하였던 회의처럼 오늘도 프레데릭의 뒤에 시립했다.

“마침 어제 레젠에서 새로운 소식도 받았으니 이참에 같이 얘기해 봅시다.”

프레데릭의 말을 받아 라울이 서류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발트란에 드나드는 상인들로 인하여 소문이 돌고 있으니 여러분들도 이미 아시겠지만, 레젠에 연쇄살인마가 있습니다. 모방범으로 추정되는 살인을 제외하고 총 16건의 살인 중 10건이 황제파, 5건이 후작파에서 살해됐습니다. 살해당한 자들의 경중으로 보아 연쇄살인마는 후작파의 소행이리라고 확신합니다.”

카를 5세로부터 은밀히 전달받은 연쇄살인마에 대한 정보를 정리한 서류를 넘기며 라울은 설명했다.

민간인에게는 연쇄살인마로 알려져 있지만 현장에 남은 흔적으로 볼 때 실제로는 최대 5인으로 구성된 암살단이었다. 개중 한 명의 검술이 출중한 데다 항상 타깃을 직접 살해하고 있기에 암살단의 우두머리라고 판단되었다.

라울은 살해당한 자들의 인적사항을 하나씩 읊었다.

설명을 들으며 로젤린은 조금 착잡한 기분이 되었다. 거론되고 있는 클레타트 후작은 죽은 아버지의 주군이었던 남자다.

클레타트 후작의 모후는 선선황제, 즉 현 카를 5세의 조부인 카를 4세와 결혼동맹을 위해 오스완에서 시집온 왕녀였다. 그리고 그 왕녀는 선대 메이어 남작이 최초로 섬긴 주인이었다.

카를 4세의 두 번째 황후가 된 왕녀의 소생 중 무사히 성장한 사람은 클레타트 후작 한 명 뿐이었다. 선대 메이어 남작은 대를 이어 클레타트 후작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로젤린의 어머니도 오스완에서 왕녀를 시중들기 위해 온 시녀였을 정도다.

‘만약 아버지가 후작님을 배신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그분을 섬기고 있겠지.’

그렇게 되었다면 로젤린 또한 아버지와 큰오빠를 도와 후작의 아래에서 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프레데릭의 집무실에서 클레타트 후작에 대한 정보를 듣는 게 아니라, 아버지의 곁에서 슈벤하임 대공에 대한 정보를 듣고 있었을 것이다.

‘전하와 적이 되어 있었겠군.’

가만히 생각해 보았지만 프레데릭과 적대하는 자신의 모습은 전혀 상상되지 않았다. 아버지가 지금까지 생존해 있으리란 가정보다 더욱 터무니없는 모습처럼 느껴질 정도다.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클레타트 후작은 과거에 아버지의 주군이었던 사람이다. 로젤린도 과거에 후작을 가까이에서 만난 적이 있을 만큼 군신의 사이는 돈독했다. 그래서 그 후작을 속인 아버지 때문에 그녀도 일말의 죄책감을 갖고 있었다.

이렇게 대적하는 진영에서 후작의 정보를 접하고 있으니 묘한 씁쓸함이 감돌았다.

‘하지만 단지 그뿐이야.’

로젤린은 씁쓸함을 삼키고 마음을 다잡았다. 부질없는 가정이다. 그녀의 현재는 여기에 있다. 바로, 프레데릭의 한 걸음 뒤에.

프레데릭의 호위기사로서 그의 뒤에 선 로젤린은 잠깐의 동요를 지웠다. 그녀는 그의 기사였다.

“……이상이 현재 대략적인 레젠의 정세입니다.”

라울의 설명이 끝나자 호크만 백작이 팔짱을 낀 손가락을 톡톡 두드렸다.

“클레타트 후작이 이번에야말로 행동을 개시할 생각인 듯하군요.”

프레데릭도 고개를 끄덕였다.

“황태자 전하께서 무사히 성장하고 있으시니 초조해지질 않겠소. 폐하께서도 두 번은 당하지 않으실 테니 말이오. 내가 후작이라도 내년을 넘기지 않을 거요.”

“시간을 끌수록 불리해지는 건 후작이지요.”

긴 설명이 이어지는 내내 차를 세 잔이나 비운 포스터지 경이 질문했다.

“전하께서는 근래 대공령에서 발생한 마수의 이상 행동이 후작과 관계가 있다고 여기십니까?”

“우선 지도부터 보지, 라울.”

프레데릭이 눈짓하자 라울이 탁자에 지도를 한 장 펼쳤다. 군용 지도가 아니었기에 훈련 받지 않은 로젤린도 지리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필라헨 제국 전도다.

작은 갈색 말 2개가 프레데릭의 손에 의해 발트란 주변에 놓였다.

“두 차례 발생한 마수의 이상 행동은 규명된 마수의 행태와는 명백히 다르오.”

프레데릭은 회의에 들어가기 전에 주제와 대략적인 안건이 무엇인지 로젤린에게 항상 알려 주었다. 그녀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하기도 하고, 또한 그녀에게 설명하며 머릿속으로 한 번 더 정리를 했다.

프레데릭에게도 도움이 되고, 그의 호위기사로서 정보를 알고자 하는 로젤린에게도 득이 되는 시간이었다.

이번에도 로젤린은 썩은 재규어 떼의 습격이 우연이 아니라는 걸 미리 들었다. 회의에 모인 사람들도 알고 있는 내용이어서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아도 모두 이해했다.

프레데릭의 손가락이 색이 다른 말들을 지도에 올렸다. 검은색, 푸른색, 붉은색의 말은 각각 발트란의 대공 직속 기사단, 제도 레젠의 황제 친위대, 클레타트 후작령의 군대를 뜻했다.

아이기스 나이트의 기사단장 알렉산더가 제법 먼 거리에 떨어져 있는 발트란의 말과 후작령의 말을 가리켰다.

“썩은 재규어 떼의 출몰이 인위적인 조작이었다는 사실은 알았습니다. 한데 마수로 아이기스 나이트를 공격한들 의미는 없습니다. 아이기스 나이트는 마수와의 전투에 특화된 소규모 기사단입니다. 전쟁에서는 전술적인 가치가 거의 없습니다. 발트란이 직접 수성전으로 돌입하지 않는 이상 아이기스 나이트가 전쟁에 차출될 리는 없습니다.”

맞는 말이었다. 아이기스 나이트의 기사단장이니만큼 알렉산더는 누구보다 기사단의 장단점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

마수를 대적하기 위하여 창설하고 훈련을 받는 아이기스 나이트다. 기사 각각의 무용은 훌륭하지만 총원이 200명도 되지 않는 소규모 기사단이다. 장교 교육을 받은 정기사도 아닌 평기사다. 전쟁에서는 큰 전력이 되지 않는다.

전원이 기마병이니만큼 별동대로서 운용이 가능은 하다.

그러나 설사 진짜 전쟁이 터진다고 해도 아이기스 나이트는 전선으로 출병하는 게 아니라 발트란에서 마수를 방어해야 했다. 인간의 세상에 전쟁이 발발했다고 마수가 형편을 봐줄 리는 없으니 말이다. 실제 9년 전의 전쟁에서도 아이기스 나이트는 발트란을 이탈하지 않았다.

알렉산더만이 아니라 포스터지도 동의했다. 로젤린도 알렉산더의 반론을 들으며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아이기스 나이트로서 받는 훈련은 ‘전쟁’이 아니라 ‘전투’ 훈련이다. 그것도 오직 마수에 한정된 전투 훈련.

프레데릭이 어깨를 으쓱했다.

“던 경의 말은 맞소. 다만 여기에서 관점을 전환해 보는 건 어떻겠소? 만약 아이기스 나이트가 썩은 재규어 떼의 습격 당시에 전멸했다면?”

“그야 브류나크 나이트가 출병…… 아!”

알렉산더가 무릎을 탁 쳤다.

아이기스 나이트가 전멸했다면 다음 차례는 브류나크 나이트이다. 브류나크 나이트는 아이기스 나이트와는 정반대로 마수를 대적하는 훈련을 받지 않는 기사단이다. 패닉에 빠진 기사와 병사들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을 게 분명했다.

호크만이 묵직하게 신음했다.

“적어도 일이 년으로 회복할 수 있는 피해가 아니었겠군요.”

“게다가 현재 외국에서 대공령을 노릴 나라도 없소.”

프레데릭의 손이 지도 너머, 필라헨 제국의 국경 밖의 그려지지 않은 부분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슈벤하임 북쪽 검은 황야 너머에 있는 얼음왕국과 서남쪽의 제이드왈 왕국이었다.

“폐쇄적인 얼음왕국이 넓은 황야를 건너 마수의 습격마저 감수해 가며 발트란을 공격할 이유가 없고, 제이드왈은 내전으로 여유가 없지. 이득을 보는 건 후작이요. 만에 하나 후작이 반란군을 일으킨다면 대공령의 군대가 후방을 칠 테니까.”

클레타트 후작령은 레젠의 서북쪽에 있다. 위치상으로 제도를 중심으로 한 황제 직할령과 슈벤하임 대공령의 사이다. 북쪽에서 슈벤하임 대공령의 군대가 남하하며 공격할 수 있는 위치였다.

황제와 후작의 내전이 발발하면 지방의 군세를 갖고 있는 대영주들의 대부분은 사태를 관망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에 슈벤하임 대공 프레데릭은 절대적인 친황제파다. 클레타트 후작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황제의 패였다.

전쟁과 내전.

그 단어들을 떠올리자 로젤린의 등골에 오싹한 소름이 돋았다. 그녀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전율을 의아해하며 팔뚝을 문질렀다. 지금은 잡념에 젖을 때가 아니라 프레데릭의 말을 경청해야 할 때였다.

“메이어 경, 한 가지 질문을 해도 되겠는가?”

포스터지가 로젤린을 돌아보았다. 회의에 몇 차례 참석하면서 로젤린은 프레데릭의 호위기사로서 뿐만이 아니라 마수의 전문가로서도 조언을 했다. 그녀는 현재 마법사를 제외하고 발트란에서 마수를 가장 잘 안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만약에 마수를 훈련하여 발트란이나 특정 지역 및 사람을 공격하는 건 가능한가?”

로젤린은 과거의 경험과 교류하였던 마법사들을 돌이켜보며 신중하게 생각한 후 대답했다.

“특정 사람을 공격하는 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수의 피나 체액을 특정인에게 듬뿍 묻혀서 그 냄새를 맡는 마수의 공격성을 자극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특정 지역을 공격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이유는?”

“마수의 훈련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기껏해야 굶겨서 흉포해지도록 하는 게 한곕니다. 마수의 야성은 야생동물처럼 조교로 길들이거나 제거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여태껏 시도하였던 마법사들도 실패하였고요. 뇌를 개조하거나, 아예 새끼 때부터 키워도 불가능하다는 확답은 못하겠으나, 그 경우에는 소모되는 시간과 자원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리라 판단합니다.”

마수를 길들이는 건 불가능하고, 가능하더라도 비효율적이라는 로젤린의 대답에 포스터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마수에 대비한 발트란의 방어는 평소와 같이 아이기스 나이트에 일임해도 되겠군.”

“하지만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라울이 못내 불안한 기색으로 대답했다.

“한 번 균열을 자극하였으니, 두 번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가능성은 있겠지만 확률은 적을 거야. 발트란이 완전히 무너지는 건 후작도 바라는 바가 아닐 테니까.”

프레데릭이 시원스럽게 부정했다.

“썩은 재규어 떼로 인한 피해에서 아이기스 나이트는 회복하지 못했다. 아마 며칠 전에 있었던 황소박쥐의 공격은 발트란이 직접 공격당하였을 때 아이기스 나이트의 대응 속도 등을 관찰하기 위한 목적이었을지도 모르겠군. 아무튼 차후에 썩은 재규어 떼와 비슷한 규모의 습격이 또 발생한다면 아이기스 나이트는 확실히 전멸한다. 발트란과 아이기스 나이트는 검은 황야에서 마수가 제국으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방어벽이야. 그 방벽이 무너지면 제국은 혼란해지고 대공령의 남쪽에 위치한 후작령도 피해를 입겠지.”

“아이기스 나이트의 전멸을 노린 건 최초의 습격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닙니까.”

“그때는 전하가 있으셨으니까요.”

여전히 안도하지 못하는 라울의 말에 반박한 건 로젤린이었다. 제가 한 말에 제일 놀란 로젤린은 흠칫 입술을 가렸다. 회의에서는 언제나 조용히 있으려고 했는데 무심코 생각이 튀어 나가 버렸다.

놀란 눈으로 로젤린을 돌아다본 프레데릭이 이내 싱글싱글 웃었다.

“맞아, 내가 발트란에 있으면 발트란은 무너지지 않지만 난 곧 레젠으로 가지.”

포스터지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전선에 유능한 지휘관이 존재하는 것과 부재하는 건 천지차이지요.”

“다른 사람도 아닌 포스터지 경에게 칭찬을 들으니 매우 부끄럽소.”

“만약 프레데릭 님께서 귀환하신 뒤에 또 균열이 조작된다면요?”

웃음소리로 분위기가 너그러워졌으나 라울은 안심하지 못한 태도였다. 프레데릭이 그의 걱정을 가볍게 일축했다.

“그건 그때 가서 다시 고민하도록 하지.”

불안한 눈치이기는 했으나 당장 급한 사안이 있다는 건 라울도 알았다. 그는 조용히 말을 거두었다.

프레데릭이 발트란에 놓여 있던 검은색 말을 남쪽으로 움직였다.

“뭐, 그러니 발트란 인근 요새에 주둔하는 브류나크 나이트 중 예비 병력인 2개 연대를 남쪽으로 배치하는 건 어떻겠소?”

“대공 전하의 직속 기사단이 배치되는 걸 알면 영주들의 반대가 극심하지 않겠습니까.”

호크만의 우려도 프레데릭은 쉽게 해결했다.

“아이기스 나이트의 일부를 대대 단위로 나눈 브류나크 나이트에 각각 배치하면 되질 않겠소? 예상외의 규모로 마수가 습격했다는 건 영주들도 알고 있으니 마수의 습격을 대비하여 순찰 중이라는 핑계가 좋을 것 같군. 겸사겸사 진짜 마수를 대적하는 훈련도 하기로 하고.”

눈 가리고 아웅이나 다름없었으나 표면적인 이유로는 충분했다.

포스터지가 물었다.

“기사단의 배치는 어느 수준으로 하면 됩니까?”

“소집령이 떨어지면 샤렌에 3일 내에 집결할 수 있도록.”

프레데릭이 말을 놓은 샤렌은 슈벤하임 대공령의 최남단 도시이다.

수년 전 사렌은 테토 남작가의 영지였다. 테토 남작의 혈족이 단 한 명도 남지 않아 양자를 입양하여 대를 잇고자 하였으나 대영주인 프레데릭이 승인하지 않았다. 그리고 테토 남작의 사망 이후 샤렌은 대공의 직할령이 되었다.

“상세한 병력 배치는 포스터지 경에게 일임하겠소. 후에 사후 통보나 레젠으로 보내 주시오.”

“막중한 임무가 맡겨졌군요.”

짐짓 포스터지가 과장되게 말했다. 사람들도 저마다 웃으면서 한마디씩 건넸다. 회의의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았으나, 평소의 각료 회의보다 부드럽고 유쾌한 분위기였다.

프레데릭의 뒤에서 로젤린도 희미하게 미소했다.

일하는 모습, 좀 멋있긴 하다.

다음 날 오후, 프레데릭의 일행이 발트란을 출발했다. 거창한 배웅과 행사 따위는 동원하지 않은 조촐한 출발이었다.

프레데릭을 호위하는 아이기스 나이트는 전원 제1기사대다.

프레데릭, 로젤린, 라울을 비롯하여 제1기사대장인 사무엘과 10명의 기사였다. 아벨과 부상이 나아 복귀한 맥스도 포함되었다. 친한 동료와 동행하게 되어서 로젤린도 부담을 덜었다.

기사단 외 20명의 일반 호위 병력만을 대동한 단출한 일행이었다. 레젠에 있는 대공저를 경호할 병력도 예물 등을 실은 마차와 미리 출발하였으므로 프레데릭을 경호할 인원이면 충분했다.

호위병까지 전원 기병이었으며 짐도 짐마차가 아닌 짐말로 옮겼다. 레젠까지 가는 여정을 최대한 단축하기 위한 조치였다.

기동성을 위해 짐을 최소화하였기 때문에 식량도 도중에 들르는 도시에서 조달했다. 노숙을 하게 될 때도 병사들은 익숙하게 야영 준비를 했다. 로젤린은 그저 프레데릭의 곁을 호위하기만 하면 되었다.

남쪽으로 갈수록 날씨도 조금씩 덜 추워졌다. 편안한 여행이었다.

“이판사판이다! 죽여! 죽이라고!!”

“우아아아악!”

도적들의 함성과 비명 소리와,

“저녁 식사는 지켜라! 스튜를 담은 솥에 피가 튀면 내 손에 죽는다!”

여유롭기까지 한 기사의 호령이 우렁찬 편안한 여행이었다.

피 냄새에 흥분한 흑염룡의 갈기를 쓸어 달래며 프레데릭은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초저녁에 뜬 달이 아름답다. 이름 모를 도적의 머리가 하늘로 날아가며 기다란 피의 궤적을 밤하늘에 그렸지만, 역시 아름다운 달이었다.

“달이 아름답군.”

프레데릭의 곁에 서서 칼을 빼 들고 있던 로젤린은 주변을 경계하며 짤막하게 대답했다.

“예.”

기사들과 호위병들이 완벽하게 산적들의 습격을 막아 내고 있다. 드러누워서 싸움 구경을 해도 될 정도였지만 호위기사로서 그녀는 방심하지 않았다.

프레데릭만이 한가하게 수작을 걸었다.

“너도 아름다워, 로젤린.”

로젤린의 대답은 역시 단호했다.

“저도 압니다.”

“……후후. 역시 쉽게 넘어오지 않는군. 남자는 강적일수록 불타오르는 법이지.”

프레데릭이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웃었다. 처참한 비명 소리가 배경음악이라는 단점은 있으나 달빛 아래의 미남은 확실히 볼 만한 구경거리였다. 문제는 그 모습을 봐야 할 로젤린이 그에게 등을 돌리고 경계 중이었지만.

우연찮게 프레데릭의 방향으로 쏘아진 화살을 칼로 쳐서 떨어트린 로젤린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전하, 집중할 수 있도록 최소한 전투 중에라도 조용히 해 주시면 안 될까요?”

“…….”

너 시끄러우니까 입 닥치라는 말에 프레데릭은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평화로운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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