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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법사의 운명을 손에 넣어버렸다 (218)화 (218/292)

218화 

라크시스는 시아의 손바닥을 조금 더 지분거리다 놓아주었다.

“어떻게 된 건지 설명이 필요하겠는데.”

“안 그래도 궁금했다고요. 보험사정관과 조수 설정이라더니… 푸른 훈장의 기사는 또 뭐고, 방금의 취조는 어떻게 된 거예요?”

다분히 즉흥적인 판단이었다. 시아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던 건 미안했지만, 설명을 늘어놓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우선 맨덜랜드 경찰은 이단과 손을 잡았다고 봐도 무방해요. 하지만 그건 지시를 내리는 윗선에 해당하는 문제고.”

“스미스 경감님은 아니란 소린가요?”

“서에 근무하는 대부분은 그저 총경의 지시에 따라 움직일 뿐이었어요. 성녀상의 존재를 몰랐던 것도 그 때문이었어요. 아, 물론 핀리 스미스의 기억에 따르면요.”

라크시스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유령선이 그렇게나 자주 출몰하는데, 야간에 순찰을 돌던 경찰이 그 광경을 한 번도 보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되지도 않고요.”

그건 그러네.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면 두 번째 시간 여행 때, 공동묘지에서 정신을 차렸던 날에도 슈나이더 경감은 야간 순찰을 돌다가 자신을 발견했었다.

여기라고 경찰이 순찰을 안 하는 건 아니었겠지.

“핀리 스미스는 유령선을 자세히 봤던 사람이었어요. 데이먼 포드만큼은 아니어도 저주와 미라의 존재를 눈치챌 정도로는요.”

“그래서 윗선에 보고를 했던 거군요. 그런데…….”

시아는 이어질 말이 예상 간다는 듯 말꼬리를 흐렸다.

“못 본 걸로 하라는 답이 돌아왔죠. 아는 척도 말고 관심 갖지도 말라는 총경의 말에 그는 서장실에서 그대로 돌아 나왔어요.”

라크시스는 핀리 스미스의 기억에서 보았던 장면을 떠올렸다.

고루한 얼굴로 시가를 뻑뻑 피워대는 총경 앞에서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고개를 푹 숙인 핀리 스미스. 그의 정수리에 매서운 일갈이 쏟아졌다.

‘거스 벤슨처럼 되고 싶나?’

맨덜랜드 출신으로, 모르간 광역경찰청의 간부가 될 뻔했던 거스 벤슨의 일화는 여전히 유명했다.

핀리는 거스 벤슨이라는 이름에 움찔거렸다. 그 사람처럼 가진 것을 모두 내다 버리고 이단을 쫓을 용기는 나지 않았다.

‘아닙니다. 총경님.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그의 시선에선 마룻바닥의 무늬만 보일 뿐이었다.

라크시스는 핀리 스미스의 머릿속에서 본 것들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래서 핀리 스미스는 처음엔 모르간 광역경찰청에 몰래 수사 협조공문을 보냈죠.”

“그런데 모르간도 마찬가지였군요.”

“다시 말하지만 모르간 경찰도 윗선이 문제였어요. 거스 벤슨의 경우를 되짚어보면 알겠지만 말이에요. 어쨌든 모르간 광역경찰청에서도 맨덜랜드의 문제에 협조해 줄 수 없다며 핀리 스미스의 요청을 거절했죠.”

시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생각해 보면 자신은 모르간에서 슈나이더 경감 같은 경찰을 만난 적도 있었다.

다소 불퉁하긴 해도 슈나이더는 맡은 바 의무는 열심히 하던 경찰이었고, 심지어 재키 레이븐의 배후에 황혼 국교회가 있단 사실을 알아내어 라크시스에게 여러 가지 정보를 건네주기도 했다.

재키 레이븐 검거 이후 일약 유명인이 되어 메이덜린 서의 얼굴이 되고, 작가로 이름을 날리느라 이단 찾기엔 다소 소홀해지긴 했다만, 애초에 슈나이더는 적당히를 추구하는 경찰이었다.

그러니 무탈하게 직위를 유지하고 있겠지.

시아는 허탈한 듯 말을 뱉었다.

“새삼 카얄이 대단하다고 느끼네요.”

“그는 권력의 구조를 아주 잘 알고 있죠. 음지에 숨어서 제국을 원하는 형태로 주무르기에 최적인 방법을 선택한 겁니다.”

“…인간의 생리를 잘 알고 있는 거겠죠. 사람이 어떻게 하면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게 되는지, 어떻게 하면 행동을 멈추게 되는지 말예요.”

카얄은 힘들이지 않고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었다. 개인을 움직이는 건 욕망이고, 무리를 움직이는 건 제약이니까.

아스타와 다무스를 무너뜨리기 위해 케드릭 7세와 이자벨라를 선택하고, 음지를 장악하기 위해 경찰의 간부를 선택했다. 그 밑의 수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주인 혹은 상사의 말에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

하다못해 자신도 상사인 의술원 원장의 말이라면 들을 수밖에 없는데…….

시아는 한숨을 폭 쉬었다.

“그래서 스미스 경감님이 황제 폐하께 편지를 보냈다는 말씀이세요?”

“보내는 건 자유니까요. 물론 제대로 황궁에 도착했다 한들 폐하께서 읽진 않으셨겠지만요.”

핀리 스미스의 선택은 절반은 현명했고, 절반은 어리석었다.

모르간 광역경찰청에 협조를 거절당한 이후 경찰이 이단에 장악당한 것을 알아챈 것까진 좋았으나, 그다음으로 한 일이 황제에게 편지를 보낸 것이었기 때문이다.

황제는 표면상으론 권력에서 물러난 사람이었다. 핀리 스미스의 편지는 은쟁반에 오르지도 못했겠지만, 만일 편지가 제대로 도착했다 해도 황제가 대외적으로 해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면 차라리 기자를 만나 유령선 사건을 공론화하는 게 빨랐을 겁니다. 누구처럼 제 목숨 아까운 줄도 모르고 황혼 국교회의 소식을 날라줄 기자라면 스미스 경감을 기꺼이 도와주었겠지요.”

“…데이먼 포드 같은 기자, 말이죠?”

“이젠 척하면 척이군요.”

“설마… 데이먼 포드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던 게 스미스 경감님 때문이었나요?”

라크시스는 가볍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핀리 스미스는 데이먼 포드를 아예 모르더군요.”

그렇다면 데이먼 포드는 대체 어디서 자꾸 기삿거리를 얻어오는 걸까. 시아는 아침에 라크시스가 보여줬던 신문을 떠올리며 골머리를 앓았다.

상황을 보건대 경찰에선 기자들에게 입도 벙긋 안 하는 모양이었는데…….

라크시스는 비스듬히 팔짱을 끼며 말했다.

“여론만큼 정치가들이 불편하게 여기는 것들도 없죠. 요즘은 가멜인과 관련된 일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이들도 있어서.”

시아는 문득 역사의 단편을 떠올렸다. 가멜인과 관련 있다, 라. 비단 가멜인뿐만 아니라 공장 노동자부터 어린 일꾼들, 여자들을 비롯하여 기득권과 거리가 먼 모든 이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던 격동의 시기가 있었다.

‘그게 딱 지금쯤일 텐데.’

종말로부터 몇 년 전, 그러니까 바로 지금 이 시기의 제국에선 공장 노동자를 필두로 한 시위가 수십 차례 이어지며 노동시간 보장법과 아동 노동법, 투표권 보장법 등이 차례로 제정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 시위 중 가장 처음으로 성공한 시위는 바로 메이덜린의 공장지대에서 벌어진 메이덜린 시위였다.

“혹시 메이덜린 시위와 관련된 사람들인가요?”

“메이덜린 시위라니, 처음 듣는군요.”

시아의 되물음에 라크시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시아는 갸웃거렸다.

“아직 아닌가. 몇 년도였는진 정확히 기억이 안 나네요.”

“제가 모르고 있다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겠지요. 크고 작은 시위야 가끔 일어나긴 하지만.”

“노동시간을 법으로 보장해 달란 시위였어요. 열두 살 미만인 아이들의 노동을 금지하라 주장하기도 했고요.”

라크시스는 흐음, 하며 턱을 매만졌다.

“당신이 기억하는 걸 보니 메이덜린에서 벌어진 시위는 꽤나 성공적인 결말을 가져온 모양이군요.”

“아무래도 워낙 크게 벌어진 시위다 보니까요. 그 후에 이어진 시위도 어떻게 보면 성과를 거뒀다고 할 수 있죠.”

그러나 그것을 과연 오롯한 성과라고 할 수 있을까.

시아의 눈동자가 어둡게 가라앉았다. 메이덜린 시위를 비롯한 수많은 시위 이후, 공장에선 더 이상 아이들을 고용할 수 없게 되었다. 아이들이 일을 하지 못하게 되자 가계의 소득은 줄어들었다. 이후 아이들이 공장이 아닌 거리로, 뒷골목으로 내몰리게 된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아이들이 공장 대신 아카데미에 다니게 된 건 반세기가 지난 후의 일이었다.

라크시스가 말했다.

“그래서 시위와 관련된 이들이냐고 물었던 거군요. 제가 가멜인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이들이 있다고 했잖아요?”

그러곤 라크시스는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시아가 정답을 말할 것이라 확신하는 눈으로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아는 울적해진 와중에도 부리나케 머리를 굴렸다. 생각을 하자 가라앉은 기분도 좀 나아지는 듯했다.

여론과 정치가와 가멜인. 메이덜린 시위와도 관련 있을 법한 자들…….

시아는 금방 답을 도출했다.

“…노동당이군요.”

라크시스는 미소 짓는 것으로 긍정의 대답을 대신했다.

“지금 노동당은 공격적으로 표를 긁어모으고 있죠. 하원을 본격적으로 장악하고 있고요. 표가 된다면 그들은 누구라도 기꺼이 그들 편으로 인정할 겁니다.”

가멜이 제국의 식민지가 된 지도 벌써 수십 년. 가멜 출신의, 혹은 가멜 혼혈의 노동자들은 어느덧 제국 본토의 산업을 지탱하는 중요한 인력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시기의 노동당은 이들의 표로 몸집을 불려 나가고 있었다.

가멜인의 피가 섞인 사람들이 유령선 사건을 알게 되었다면 분명 분노하며 수사를 요구했을 것이다.

자고로 여론이란 무엇보다도 강력한 권력이다. 일이 이렇게 커져 버리면 제아무리 이단과 손잡은 경찰 간부도 어쩔 수 없이 유령선 수사에 착수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스미스 경감님이 기자에게 연락하는 게 나았을 거라고 했던 거군요?”

“아무리 카얄이라도 제국민 전부를 제거하는 건 불가능할 테니까요.”

황혼 국교회의 계획을 방해하는 소수를 제거하는 거라면 몰라도, 제국 전체를 등지고 계획을 꾸미긴 힘들 거란 뜻이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황혼 국교회의 만행을 제국 전역에 알려서 카얄과 그 무리들이 활개 치지 못 하게 했다면 되는 게 아니었을까?

하지만 시아는 곧 그 생각을 거두었다.

황혼 국교회가 활동하지 못한다고 해서 카얄이 순순히 광룡으로의 부활을 포기할까?

만약 황혼 국교회가 세상에 드러나 버리게 된다면 카얄은 틀림없이 꼬리를 자르고 숨어버릴 것이다. 그리고 어디선가 또 다른 황혼 국교회를 만들어 마력을 수급하겠지.

카얄은 마력을 보충할 수단을 필요로 했고, 그렇기에 두 번 다시 방해받지 않도록 지금보다 더 깊고 음침한 곳에 숨어서 일을 꾸밀 터였다.

시아는 문득 눈앞의 남자가 황제도 어쩌지 못한다는 고대 마법사라는 사실을 상기했다. 라크시스가 마음만 먹었다면 황혼 국교회의 실체를 세상에 까발리는 것쯤이야 진작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그러지 않았던 건…….

‘기껏 찾은 카얄이 다시 숨어버릴까 봐 그랬던 거였구나.’

시아와 눈이 마주친 라크시스가 빙그레 웃었다. 그녀가 하고 있는 생각을 짐작한다는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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