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마법사의 운명을 손에 넣어버렸다 (192)화 (192/292)

192화 

‘그런 별이 실제로 대지 위에 존재한다면, 대지는 흔적도 없이 검은 별 속으로 빨려 들어가 사라질 거라 했었지.’

대지가 무사한 건, 이 대지가 검은 별의 영향권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일 터다. 예컨대 머나먼 우주 같은 곳 말이다.

요르문이 -980mght라는 파장값이 애초에 대지 위에서 관측될 수 없는 값이라고 한 건 아마도 그런 맥락에서 한 말이었을 것이다.

“마류학에서 -980mght의 주기함수를 그리는 파장은 수치로만 봤을 땐 독보적으로 눈에 띄는 파장이란 말이죠. 그래서 지금껏 -980mght라는 값에 근접한 파장을 내뿜는 장소를 찾으려고 애를 썼어요. 그 장소가 바로 봉인이 있는 장소일 테니까요.”

“으응. 그렇구나…….”

아무리 갈리프도흐 출신의 의술사라고 해도 모든 방면의 학문에 능통한 건 아니었다. 시아는 흐린 눈을 하고 요르문을 내려다보았다. 수학을 싫어했던 것도 아닌데, 역시 마류학자가 하는 말을 모두 이해하는 건 쉽지 않았다.

“그런데 정작 주목해야 할 건 -980mght라는 값이 아니었어요. 우리가 주목해야 했던 건 시간에 따라 기록된 값이 주기함수를 그린다는 사실이었죠.”

요르문은 시아가 바닥에 꽃처럼 펼쳐놓은 바람장미에서 중심부에 놓인, 팔각형으로 그려진 바람장미들을 집어 들었다.

“누님. 이걸 보세요. 이게 뭔 거 같으세요?”

아까의 비유를 가져오자면, 지진의 진원지 바로 위쪽에서 그려졌을 법한 모양의 바람장미였다.

“봉인이 있는 정확한 장소에서 그려진 바람장미 아니야? 모든 방향에서 파장이 관측된 것처럼 팔방위의 수치가 거의 동일해 보이는데.”

“정확하게 보셨어요. 하지만 그게 다일까요?”

요르문은 똘똘한 제자를 가르치는 교수처럼 열정적으로 설명을 시작했다.

그 모습에 위화감을 느낀 시아의 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러고 보니 요르문은 갈리프도흐의 마류학 겸임 교수였지. 공부를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학교 밖에서까지 교수를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시아는 슬그머니 물러났다.

그러나 얼마 채 가지 못해 요르문에게 발각되고 말았다. 시아는 요르문 앞으로 질질 끌려왔다.

요르문은 연구실 한쪽 벽에 걸린 벽에 팔각형 형태로 그려진 바람장미들을 자석으로 붙여 나란히 배치했다.

“이들 사이의 차이점이 뭔지 아시겠어요?”

“크기가 다르다……?”

“네. 맞아요. 크기가 다르다는 거죠. 서로 모양은 같은데 그 크기가 다르다는 건, 이 바람장미들이 같은 장소에서 그려졌으나 그려진 시점이 달랐다는 뜻과도 같아요.”

그 후로도 요르문은 종이와 종이 사이를 뛰어넘으며 시아가 펼쳐놓은 바람장미에서 같은 모양인 것들을 골라 모아왔다. 신기하게도 바람장미는 같은 모양인데 다른 크기로 그려진 것들끼리 완벽하게 구분 지어졌다.

그리하여 아르카나에서 그려진 수십 장의 바람장미는 크게 네 개의 유형으로 깔끔하게 분류되었다. 북동쪽이 크게 그려진 것과 남서쪽이 크게 그려진 것. 동쪽이 크게 그려진 것과 마지막으로 모든 방위가 고른 값을 지닌 것으로 말이다.

“신기하네. 이렇게도 분류가 되는구나.”

“이렇게 분류된 것도 아까의 팔각형 모양 바람장미처럼 늘어놓을 수 있어요. 이런 식으로 아르카나 말고 다른 지역의 바람장미까지 다 한데 모아놓고 보면 정답이 보일 거예요.”

아르카나부터 맨덜랜드까지. 프레디 뮐러의 별장에서 중구난방으로 퍼져있던 바람장미들이 요르문의 분주한 손길에 서서히 규칙을 가진 정보로 변해갔다.

가로축과 세로축을 그려 한참을 막대그래프처럼 바람장미를 분류해 벽에 붙이던 요르문이 마침내 손을 툭툭 털고 뿌듯하게 팔짱을 꼈다.

“이제 좀 보이시나요?”

“…네가 왜 주기함수가 중요하다고 했는지 알겠어. 프레디 뮐러는 단순히 봉인의 위치만을 찾아둔 게 아니야. 한발 나아가 봉인이 언제 파괴될지까지 알아냈던 거였어.”

시아는 요르문의 분석력에 감탄했다.

세로축의 기준은 지역이었다. 지르가나, 술란, 에이즈번……. 총 여덟 개의 지역이 바람장미의 개수가 많은 순서대로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나열되어 있었다.

가로축의 기준은 다름 아닌 시간이었다. 시아는 시간의 경과를 따라 점차 커져가는 바람장미를 훑었다.

요르문이 만든 분류표는 전체적으로 역삼각형을 그리고 있었다. 시아와 함께 요르문의 바람장미 분석을 듣고 있던 라크시스가 첨언했다.

“프레디 뮐러는 사도의 반지를 통해 마도 시대의 종말을 보았다고 했지. 그러니 봉인이 카얄의 공격을 받지 않고도 자연스레 파괴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고.”

요약하자면 죽은 프레디 뮐러는 봉인의 위치를 알아냈을 뿐만 아니라, 봉인이 불안정해지다 저절로 파괴될 시점도 알아냈던 것이었다.

시아의 머릿속에 의문이 떠올랐다.

‘하지만 프레디 뮐러는 마법사도 아니었다 했는데. 라크시스도 어쩌지 못했던 봉인의 파괴를, 대체 프레디 뮐러는 무슨 수로 막으려고 했던 걸까?’

봉인이 어디에 있는지, 언제 파괴될 지를 알아도 정작 파괴를 막을 수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게 아닐까.

라크시스가 말했다.

“어쨌든 프레디 뮐러는 죽기 직전 첫 번째로 파괴될 봉인을 찾아 북부로 향했었던 거군. 그게 너와 내가 마정석 광산에서 찾아냈던 팔 년 전의 바로 그 봉인이었다는 거지.”

요르문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시아가 반문했다.

“라크. 그렇지만 정작 프레디 뮐러에겐 봉인의 파괴를 막을 힘이 없었잖아요. 지금까지 찾았던 봉인들을 생각해 보면, 제가 제때 처리하지 못했던 봉인은 모두 속수무책으로 터져버렸고요.”

오토마톤의 심장만 해도 그랬다. 라크시스조차 그를 막지 못해 온몸으로 폭발의 여파를 견디며 저택을 지켰다. 이번에 시아에게 건넨 봉인도 마찬가지였다. 라크시스에겐 급격하게 가속화된 불안정화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만일 시아가 없었더라면 기껏 봉인을 먼저 찾아놓고도 카얄에게 좋은 일을 해줬을지 몰랐다.

그녀의 지적은 타당했다. 라크시스는 곰곰이 팔 년 전의 경비행기 추락 사고를 되짚어 보았다.

“…이제 알겠군요.”

“뭐가요?”

“팔 년 전 경비행기 추락 사고에서 발견됐던 이상한 점들 말입니다.”

경비행기가 추락한 지점에는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었다. 제아무리 연소되기 쉬운 연료들이 비행기를 채우고 있었다곤 하나, 경비행기가 추락한 정도로는 마을 하나를 통째로 날려버릴 만큼의 폭발이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그나마 거주민 수가 적었던 추운 북부라 다행이었지.’

팔 년 전 사고 당시 지르가나 마정석 광산의 주인으로서, 광산 근처 인부 숙소에서 살던 광부들이 폭발에 휘말려 죽었던 것에 대해 유가족에게 일일이 보상을 했던 라크시스는 그 피해 규모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후에 황실에서 파견한 마법사들과 함께 조사에 나선 라크시스는 경비행기의 잔해에서 극도로 중첩된 보호마법 덕에 온전하게 보존된 고응축 마정석 여러 개와 추락의 여파로 터져버린 마정석의 잔해를 다수 발견하게 된다.

경비행기를 몰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프레디가 추락 지점에서 벗어난 곳에서 헐벗은 채로 발견된 탓에, 당시엔 프레디 뮐러가 왜 마정석을 비행기에 싣고 북부로 왔느냐에 대해 마법사들끼리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그러나 경찰이 개입해 연료통 폭발로 사고를 마무리하는 바람에 논쟁은 그대로 일단락되었다.

사고가 그렇게 마무리되어 다행이긴 했었다. 만일 세간에 마정석 이야기가 알려졌다면 프레디 뮐러는 괴짜가 아닌 테러범으로 불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프레디 뮐러가 몰았던 경비행기에는 강력한 마력이 응축된 마정석이 실려있었습니다. 어지간한 타운 하우스에서 일 년 내내 쓰고도 남을 양의 마력이 담긴 마정석이었죠.”

“그런 걸 싣고 북부로 갔었다고요?”

시아는 경악했다. 불티 하나도 용납되지 않는 것이 비행기인데. 그러다 시아는 로렌시아호에 있었던 수많은 불들을 떠올렸다. 주방의 조리용 불부터 다이닝 테이블에 올라온 은촛대까지. 그러고 보니 클럽의 남자들이 피우던 파이프에다가 행사용 폭죽까지 잔뜩 싣고 있었잖아.

마도 시대의 공학은 참 대단하구나. 시아는 벌렸던 입을 조용히 다물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프레디 뮐러는 나름 봉인의 파괴를 늦춰보려 애를 썼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요?”

“그는 봉인의 본질을 알고 있었죠. 검은 별을 품은 사도의 껍데기라는 것을 말입니다.”

라크시스는 턱을 매만졌다.

“아마 마정석의 마력으로 봉인을 보강하려 했던 거겠지요. 별 소용없는 방법이긴 한데, 마법사가 아닌 인간이 떠올릴 수 있는 방법으론 나름 그럴듯하긴 하군요.”

그렇게 한바탕 바람장미와의 전쟁이 끝났다. 시아는 앓는 소리를 내며 기지개를 켰다. 마류학과 마도 공학에 있어 교수급의 지식을 가진 두 사람 사이에 끼어 설명을 듣다 보니 뇌가 하얗게 불타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실제로 요르문과 라크시스 모두 갈리프도흐에서 교수로 있었으니, 시아는 교수 둘에게 속성 강의를 들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시아는 몰랐다. 제 전공 분야도 아닌데 교수의 설명을 듣는 족족 이해하고 되묻는 것도 대단한 일이라는 것을.

시아가 박수를 치며 주위를 환기했다.

“어쨌든요. 그래서 남은 봉인의 위치는 어떻게 찾을 수 있죠? 결국 그걸 알아내기 위해서 바람장미를 분석해 온 거잖아요.”

“그걸 지금부터 하자는 거죠. 전 지금부터 여기서 나온 정보를 누님의 일기장과 조합해 볼 거예요.”

“…내, 일기장?”

오랜만에 대화 속에 소환된 물건에 시아가 당황하여 헛기침을 했다. 그녀의 일기장 앞부분에는 의술원의 대머리 독수리, 아이작 맨틀러 교수 욕이 잔뜩 쓰여있었다. 요르문과 라크시스도 진작 알고 있었던 사실이다.

하지만 그걸 또 보여주고 싶진 않단 말이야! 두 사람에게 일기장을 보여줄 생각을 하니 수치스러워 죽을 것 같았다. 시아의 귀가 새빨개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요르문은 앞으로의 계획을 읊어나가기 시작했다.

“어쨌든 누님의 일기장에도 봉인의 위치가 나와있는 셈이잖아요? 시간 여행의 도착 예정지가 기록된 거니까요.”

요르문의 물오른 설명이 거침없이 이어졌다. 그는 양손을 쫙 펼쳐 보이며,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

“지금까지 소재가 파악된 봉인은 총 일곱 개죠. 그중 오토마톤의 심장을 제외한 나머지 여섯 개를 우리가 찾았고요.”

“요르문. 안 그래도 봉인의 개수 때문에 할 말이 있었는데 말이야.”

“봉인은 여덟 개니 앞으로 하나만 더 찾으면 돼요. 바람장미에 나와 있던 여덟 개의 지역을 하나씩 걸러내고 남은 지역을 조사하다 보면 마지막 봉인이 있는 장소도 금방 특정할 수 있을 거예요.”

시아의 목소리는 요르문에게 묻혔다. 그의 설명은 거침없이 이어지는 중이었다. 시아는 차마 요르문이 말하는 데 끼어들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는 얼굴로 눈알만 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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