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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법사의 운명을 손에 넣어버렸다 (179)화 (179/292)
  • 179화 

    달리아가 이상해졌다는 걸 거스가 깨달은 건 한참 후였다.

    ‘달리아. 고모님께 들었어. 며칠째 아무것도 안 먹고 있다며. 오늘은 밖에 나가지 마. 이렇게 아픈데 어딜 나가겠다는 거야.’

    ‘오라버니. 나 가야 돼. 기도드리러 가야 돼. 오늘이야. 신께서 날 부르고 있어. 날 부르고 있다고…….’

    달리아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이상한 말을 자꾸만 되풀이했다. 시그무트 아 함 카얄. 거스는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다. 다만 바짝 말라버린 동생을 걱정했을 뿐이다. 거스는 밤새도록 그녀를 간호하다 잠이 들고 말았다.

    다음 날 눈을 떠보니 달리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사용인들에게 묻자, 새벽같이 삯마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버렸다고만 대답했다. 그제야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본능적인 직감이었다. 거스는 기도를 드리러 가야 한다던 동생의 마지막 말을 떠올리며, 그녀가 다녔다던 교회에 찾아갔다.

    ‘…달리아가, 교회에 온 적이 없었다고요?’

    ‘네에. 달리아 벤슨이라는 자매님은 찾아오신 적이 없었어요. 말씀주신 애니, 벨, 안나라는 이름의 자매님도 없고요.’

    사제의 말에 거스는 무너져 내렸다.

    달리아가 사라졌다. 그녀와 가깝게 지냈다던 숙녀들은 실체 없는 유령이었다. 거스는 그길로 민병대에 달려갔다. 그러나 고작해야 밤거리 치안을 담당하던 주먹구구식 조직에서 실종자를 찾아줄 리 만무했다.

    ‘도련님. 그렇게 사라진 여자는 우리도 못 찾는다니까? 요즘 성행한다는 사이비에 빠진 거 아냐? 거기 빠져서 가정 버린 여자가 한둘이 아닌데.’

    ‘달리아는 그런 사람 아니에요! 저희 집안이 어떤 집안인데……. 그 앤 독실한 국교회 신자였다고요. 사이비 같은 걸 믿었을 리 없어요!’

    ‘푸핫! 이봐, 도련님. 여기 와서 그런 소리 하는 사람이 한둘인 줄 알아? 원래 조신한 척하는 여자가 바람피우는 법이고, 신을 믿는다는 놈이 제일 방탕한 법이야!’

    민병대는 어린 거스의 말을 더는 들어주지 않았다. 달리아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에 맨덜랜드의 벤슨 부부가 한달음에 수도로 올라왔다. 그가 가진 부와 권력을 총동원해 달리아를 찾았지만, 달리아는 어디에서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일 년이 지난 후 벤슨 부부는 결국 달리아의 장례식을 치렀다.

    ‘어떻게 이러실 수 있어요? 달리아는 제 동생이에요. 저와 똑같은 어머니 자식이라고요! 어떻게, 어떻게 달리아를 죽었다고 할 수 있으세요…….’

    ‘거스. 이젠 그만 달리아를 놓아주렴. 너라도 살아야지. 너마저 이 어미 가슴을 찢어놓으려고 그러니. 거스, 제발………’

    달리아의 장례식이 끝난 후, 거스는 폐인처럼 살았다. 아카데미도 휴학하고 본가로 돌아가서는 달리아의 방에 처박혀 나오지 않았다. 자신이 조금만 더 신경 써주었더라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휑하게 빈 화장대 한편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그 애가 교회를 갈 때마다 목에 걸었던 성녀 상이 있던 자리였다.

    벤슨 부부의 종용으로 아카데미만 겨우 졸업한 후, 거스는 망나니처럼 살았다. 실체 없는 사이비를 쫓다가 술을 마시기를 반복하며 세월을 훌훌 날려 보냈다. 벤슨 부모는 거스를 포기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난 후였다.

    3507년 모르간 광역 경찰청이 설립됐다. 독립적인 수사 기관이 생김과 동시에 제국의 분위기가 변해가기 시작했다. 훨씬 더 안전해진 데다 국민이 합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나라라니. 이젠 케케묵은 사건도 수사할 수 있었고, 법에 따라 범죄자들을 처벌할 수도 있단다. 거스가 정신을 차린 건 바로 그때였다. 그는 벤슨가의 후광과 똑똑한 머리를 이용해 경위로 경찰 생활을 시작했다.

    특유의 날카로운 감 덕분에 거스는 무서운 기세로 실적을 쌓았다. 승진도 초고속으로 이루어져, 거스는 몇 년 만에 아르카나 경찰서에서 총경을 다는 기염을 토했다. 그가 맡은 사건은 대부분 뒤탈 없이 해결되었고, 범인 검거율도 높아졌다. 집에 돌아가지도 않고 서에서 먹고 자며 일에 몰두한 결과였는데, 주변인들은 거스가 드디어 달리아의 망령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그가 매일같이 서에 박혀있었던 건 오래전 달리아와 어울렸다던 미지의 교회 여인들을 찾기 위함이었다. 그 여자들을 찾으면 사라진 여동생의 행방을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애니, 벨, 안나. 단서라곤 그 이름이 전부였지만 거스는 결국 그녀들의 실체를 알아내고 말았다.

    ‘…국, 교회가 이단이었다고?’

    황혼 국교회의 신도. 그녀들이 이단이라는 것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건 제국 국교회의 절반 이상이 이단에 먹혀 그들의 거점으로 쓰이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수도에서 벌어지던 크고 작은 범죄에 황혼 국교회라는 이단이 연루되어 있었다.

    검거된 살인마와 납치범의 대부분이 황혼 국교회의 신자였다. 사이비에 미친 사람처럼 교주를 부르짖거나 신을 찾지 않아 지금까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그들은 모두 신의 뜻에 따라 사람을 해해야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범죄를 저질러오고 있었다.

    거스는 달리아가 황혼 국교회에 의한 희생자였음을 알게 되었다. 달리아와 비슷한 방식으로 납치되어 실종된 피해자가 여럿이었기 때문이었다. 거스는 윗선에 이 사실을 보고했다. 이토록 상황이 심각하니, 틀림없이 모르간 광역 경찰청이 직접 나서서 대대적인 수사가 이루어질 터였다.

    그러나 돌아온 건 날벼락 같은 강등과 좌천이었다.

    ‘거스 벤슨 총경. 제발 자중하게. 자넨 유능한 데다 앞날이 창창하지. 앞으로 경무관에 치안감까진 해봐야 하지 않겠나. 이대로 경찰 생활을 끝내고 싶은 건 아니겠지?’

    경무관의 말에 거스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면 강등까진 당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거스는 경찰이 되어서 어떻게 범죄를 외면할 수 있겠냐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결국 거스는 내쳐졌다. 강등이란 게 말이 좋아 징계지, 사실상 제 발로 걸어 나가라는 말과도 같은 뜻이었다. 하지만 강등을 당해놓고도 거스는 물러서지 않았다. 뤼스에서 벌어진 미라 사건에 또다시 뛰어든 것이었다.

    회상을 마친 슈나이더가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 거스 경정님도 참 한 고집 하시는 분이셨죠. 솔직히 메이덜린에서 같이 근무하던 시절엔 경정님 때문에 고생도 좀 했습니다. 그래도 본인도 함께 고생해야 된다는 성격이셔서 마냥 밉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이젠 고생을 사서 하고 계시네요. 전 솔직히 거스 경정님이 국장까지 오르실 거라 생각했거든요.

    - 이젠 은퇴 전까지 그냥 조용히 지내셨으면 좋겠어요. 어쨌든 한때 같은 서에서 일했던 사이인데,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 안쓰럽기만 하니까요.

    “그렇습니까.”

    슈나이더의 목소리엔 진심 어린 걱정이 묻어있었다. 그의 입을 통해 듣게 된 거스의 삶은 예상보다도 더 힘겹고 가슴 아픈 일들로 점철되어 있었다. 시아는 그제야 거스가 왜 그렇게 이단에 집착하게 됐는지 알게 되었다.

    그도 황혼 국교회에 희생당한 피해자의 가족이었기 때문이었다.

    뤼스를 떠나기 전 거스가 건네준 사진 속엔 스물도 채 안 되어 보이는 달리아 벤슨이 거스와 함께 환하게 웃고 있었다.

    시아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말아쥔 주먹 위로 힘줄이 새하얗게 질려 도드라졌다.

    “라크. 봉인을 찾으면서 동시에 카얄을 제거해야 할 이유가 또 하나 늘었네요.”

    모든 일의 원흉. 광룡 카얄. 그가 마력을 보강한답시고 인간을 제물로 쓰지 않았더라면 황혼 국교회가 사람을 납치하는 일도, 죽이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라크시스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황혼 국교회가 아니었다면 미스 달리아 벤슨이 실종될 일이 없었을 테니까요.”

    - 그래서 물어보실 건 다 물어보신 건가요? 어이쿠, 잠시만요. 아, 그래. 금방 바꾸겠다고 전해. 하하, 죄송합니다. 밖에서 절 찾고 있군요. 서장님 호출이라는데 이 시간에 갑자기 웬일이시지. 아무튼 먼저 끊겠습니다. 그럼 이만.

    라크시스에게서 대답이 없자, 주절주절 떠들어대던 슈나이더가 도망치듯 전화를 끊고 사라졌다. 마치 할 말이 끝났으니 쓸데없는 전화는 여기서 그만하겠다고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서장의 호출이 있다는 것도 핑계일 가능성이 높았다.

    허둥지둥 인사를 하며 사라지는 모습이 왜인지 눈에 훤하다. 전화를 멋대로 끊어버렸는데도 슈나이더가 얄밉지 않았다.

    처음 만났을 땐 이렇게까지 허물없는 사이가 아니었는데. 시아는 새삼스럽게 마도 시대에서 그녀가 보낸 시간이 상당함을 느꼈다.

    ‘슈나이더 경감님이 허물없게 구는 상대는 내가 아니라 라크인 것 같지만.’

    그래도 공동묘지에서 발견된 수상한 탐정일 적보다는 지금이 더 가까운 사이이긴 할 것이다. 무엇보다 그녀는 앨런 어셔 연작의 주요 인물 중 하나가 아니던가. 시아는 다시 한번 슈나이더가 저지른 만행을 떠올리며 헛웃음을 흘렸다.

    그때였다.

    “누님, 이거 한나절 가지고는 어림도 없겠어요.”

    요르문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앓는 소리를 냈다. 그의 손에 들린 마류 탐지기에서는 이상한 고주파음이 높낮이를 달리하며 계속 이어졌다. 옮겨 그린 바람장미 위에는 수식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메이슨은 진이 빠져 바닥에 주저앉은 채였다.

    “프레디 뮐러라는 작자 말이에요. 급하게 도망치느라 묘실 지하에 연구 자료를 모두 놓고 갔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아니었어요.”

    신화학 서적에 적혀있던 지명과 바람장미의 지명이 일치한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었다. 아르카나나 뤼스처럼 구체적인 지역을 꼽아둔 데다, 검은 별의 파장이라며 프레디 뮐러가 계산해 둔 데이터값이 있어 봉인의 정확한 위치를 찾는 일이 금방 끝날 줄로만 알았다.

    “정말로 중요한 정보는 모두 빠져있었다구요. 하긴 프레디 뮐러는 바람장미만 수백 개를 그리면서 인생 절반을 봉인의 위치만 찾아다녔을 텐데, 그걸 고작 몇 시간 만에 알아내려고 한 게 잘못이죠.”

    요르문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라크시스는 그런 요르문 주변에 널브러진 종이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가 인상을 찌푸렸다.

    “…파장이 관측되는 범위가 너무 넓군.”

    “라크, 이 학자들이 괜히 봉인의 위치를 단순한 지명으로만 적어둔 게 아니었어. 아르카나가 좀 넓어? 아르카나 중에서도 정확히 어디에 봉인이 있는지는 학자들도 몰랐다는 거야.”

    시아가 물었다.

    “하지만 프레디 뮐러는 봉인의 위치를 알아냈다고 하지 않았어? 일지에는 그렇게 적혀있었잖아.”

    “프레디는 알았겠죠. 수년 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며 매일같이 마력을 측정했을 테니까요.”

    요르문이 시아에게 바람장미 하나를 내밀었다. 거의 완벽한 팔각형에 가까운 그래프가 잉크로 잔뜩 칠해져 있었다. 모든 방위에서 똑같은 수준의 마력이 감지된 장소라는 건 그곳이 마력의 진원지, 즉 봉인이 있는 장소라는 말과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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