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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법사의 운명을 손에 넣어버렸다 (177)화 (177/292)
  • 177화 

    ‘…비슷해. 아니, 똑같다.’

    거스는 진땀을 흘렸다. 강령술사 일행이 황혼 국교회와 관련이 있는 자라면, 그들의 행동과 거취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단에서 그리하라 시켰을 테니까. 실종자를 미라로 만든 채 두고 간 것은 실수였을지도 몰랐다.

    오래전 국교회에 숨은 황혼 국교회를 각종 범죄의 배후로 지적한 탓에 신성모독과 명예훼손으로 곤욕을 치르고 좌천당했던 그였다. 하지만 거스는 여기서 멈출 수 없었다. 더는 이단에 희생되는 사람이 있어선 안 됐다. 가족을 잃은 슬픔은 가족을 잃어본 사람만이 알았다. 달리아. 이젠 생사조차 알 수 없는 가엾은 내 동생.

    하지만 그 후에도 상황은 거스를 압박하기만 했다. 뤼스를 떠난 강령술사가 어디로 갔는지 추적하다 보테나의 교회로 향한 것을 알아내고, 보테나 경찰 측에 협조를 요청했으나 보테나 경찰에선 사건 이송을 받지 않겠다며 거스를 거부했다.

    다른 지방도 마찬가지였다. 강령술사가 제국을 떠돌며 들른 지역의 경찰들은 거스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전화를 끊었다. 그쯤부터 별것 아닌 사건에 목매 전국의 서와 교회를 헤집고 돌아다니는 퇴물에 대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오래전 아르카나에서 총경씩이나 했던 자가 강등당해 뤼스에 처박히더니, 실적에 눈이 멀어 사람이 미라가 되었다느니 하는 헛소리를 하며 애먼 교회들을 뒤엎고 다닌다는 것이다.

    결국 브라이던힐 경찰청에서는 거스에게 또다시 징계를 내렸다. 이번엔 정직이었다. 그가 미친놈이라 불린 것도, 투명 인간 취급을 받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이쯤 되면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못 견뎌 자진해서 경찰을 그만둘 법도 한데, 거스는 모든 것을 감내하며 꿋꿋이 뤼스 경찰서에 붙어있었다. 그에겐 꼭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달리아를 찾아야 해.’

    또다시 징계를 받으면 그땐 진짜로 퇴출될지도 몰랐다. 거스는 그 후로 조용히 살았다. 그럼에도 그를 향한 시선은 여전했다. 경찰이란 곳은 애초에 구성원이 쉽사리 바뀌지 않는 조직이었다. 팔 년이란 세월이 지나 서장이 바뀌고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며 대우가 조금은 나아지긴 했지만, 그는 시골 서의 만년 경감으로 여전히 무시받고 있었다.

    거스가 궐련 한 대를 새로 피우며 소파에 몸을 묻었다. 지나온 세월이 가시밭길이었기 때문이다.

    시아는 눈을 끔뻑거리며 그를 쳐다보았다.

    “말씀하신 이유가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경감님, 대체 왜 그렇게까지 그 사건에 매달리신 거예요?”

    시아는 진심으로 물었다. 조직 생활을 해본 자라면 그 정도의 눈총과 수모를 감수하면서까지 한 사건에 매달리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을 터다. 제아무리 유족을 위해서라고 말은 했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을지 모른다.

    거스는 한참을 대답하지 않았다. 같은 질문을 이미 수도 없이 받았었던 탓이다. 강령술사를 쫓았던 진짜 이유를 말하면 다들 미쳤다고 했었다. 그런 게 어디 있냐며, 신성모독이 될 수 있으니 입조심하라는 조롱과 함께 국교회라는 거대 조직을 건드리지 말라는 경고도 받았다.

    하지만 눈앞의 여자는 재키 레이븐을 잡은 탐정이었다. 그녀에게라면 진짜 이유를 말해도 괜찮지 않을까.

    “…이단과 관련이 있었으니까요.”

    “이단이라니, 설마 황혼 국교회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거스의 눈이 크게 뜨였다. 처음부터 황혼 국교회라는 단어를 듣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거스는 자세를 똑바로 고쳐 앉았다.

    “잘 아시는군요. 하긴 알고 계시니 이곳까지 오셨겠죠. 재키 레이븐도 이단의 신자였다고 들었습니다.”

    시아는 눈을 도르륵 굴렸다.

    “전 재키 레이븐이 이단과 관련이 있는 줄 몰랐어요. 다른 의뢰를 받아 수행하던 중에 우연히 잡게 된 거였죠.”

    다른 의뢰라는 게 틀린 말은 아니지. 어쨌든 일기장의 시아 켈튼이 내게 부탁한 거였으니까.

    “다른 의뢰라 하심은… 역시 프레디 뮐러와 관련이 있는 내용이겠군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미스터 뮐러와 관련이 아예 없진 않지만요. 하지만 헨리 던로를 잡을 땐 미스터 뮐러의 존재조차도 몰랐는걸요. 미스터 뮐러의 죽음을 조사하게 된 건 그분의 따님인 미스 뮐러의 의뢰를 받았기 때문이고요.”

    거스는 살짝 실망한 눈치였다. 그가 강령술사의 뒤를 쫓았듯 시아가 오랫동안 프레디 뮐러의 죽음을 쫓아왔을 것이라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그렇습니까.”

    “황혼 국교회에서 찾는 물건과 제가 의뢰받았던 물건이 같았거든요. 그들의 손에 들어가기 전에 물건을 찾았어야만 했죠. 이단의 존재를 알게 된 것도 그 때문이었어요.”

    시아의 답을 가만히 듣고 있던 라크시스가 다리를 길게 꼬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래서 그렇게 잠복까지 하면서 우릴 의심했던 거로군.”

    속내를 이야기해 주진 않았기에 거스의 자세한 사정은 몰랐다. 다만 그가 목격했던 저주를 생각하면 그가 외지인을 경계하던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가족을 잃은 슬픔을 말하는 것을 보니 분명 개인사도 얽혀있을 터다.

    “…이해해 주십쇼. 그 옛날의 강령술사 무리와 꼭 닮은 외지인이 최근 들어 뤼스에 다시 찾아온 바람에 그만.”

    시아는 거스의 사과를 듣다가 멈칫했다. 잠깐, 다시 찾아왔다고?

    “팔 년 전의 강령술사가 이곳을 다시 찾았단 말씀이신가요?”

    “예. 동일 인물이라고 확인된 건 아닙니다만, 붉은 옷을 입은 여인 하나에 따라다니는 남자 셋이라는 점이 팔 년 전의 그 무리를 연상시킨 탓에 따로 조사를 하고 있었죠.”

    “따로 조사를 하신다 하심은.”

    거스는 잠시 뜸을 들이다 대답했다.

    “…사실 강령술사 사건은 상부에서 종결시킨 사건입니다. 미라로 발견된 자 외에 실종자가 더 있는데도 수사가 강제로 마무리되었죠. 이번에 외지인이 뤼스에 온 이후론 제가 독단적으로 수사를 시작한 거고요.”

    시아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머리가 멍했다. 독단적으로 수사를 시작했다니. 아무리 봐도 혼자 나서서 해결될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서의 경찰들이 먼저 나서서 거스를 도와줄 것 같지도 않았다. 게다가 이미 종결된 사건이라 하지 않았는가.

    ‘이거 잘못하다간 발목 잡히겠는데.’

    그러나 거스는 이미 시아를 그와 같은 편이라고 인식한 듯했다.

    “미스 허슬러께선 재키 레이븐을 검거하신 분이니 아실 겁니다. 제국을 어지럽히는 범죄자의 배후에 이단이 있단 사실을요.”

    “전 잡고 나서야 알았다니까요…….”

    “전 오래전부터 황혼 국교회의 뒤를 쫓았습니다. 국교회인 척 교묘하게 실체를 숨기고 사람을 모아 죄 없는 이들의 목숨을 빼앗는 그 사악하기 짝이 없는 범죄자 집단을요.”

    거스의 눈동자가 묘한 결의로 빛나기 시작했다. 이런 눈빛, 본 적이 있었다. 그녀를 실험체로 쓰려던 요르문과 그녀를 아르카나 중앙역의 귀신이라 오해했던 루드윅에게서였다.

    “미스 허슬러. 당신도 이단에게 협박을 받았겠지요. 그러니 내내 숨어지냈던 것이 아닙니까?”

    “…네. 그런 셈이죠.”

    시아는 이제 거스에게 반박하기를 포기했다. 라크시스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그도 고개를 가만히 저었다. 그는 이왕 이렇게 붙잡힌 거 자세한 사정이나 들어보자고 했다.

    “재키 레이븐 이전에도 놈들은 여러 방식으로 사람을 죽여왔어요. 아르카나의 유흥가와 뒷골목에서 사람이 없어진 건 대부분 놈들 탓이죠. 하지만 윗선 중 누구도 제 말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재키 레이븐이 잡혔을 당시 빈민 구제원 원장이 벌였던 또 다른 살인 사건을 생각하면, 황혼 국교회에서 저주의 제물을 확보하려 든 건 아마 상당히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일일 터다.

    “미스 허슬러께서는 의뢰받은 물건을 찾아다니신다고 하셨죠. 그것도 이단에서 찾아다니는 물건을 말입니다.”

    그때, 라크시스가 거스의 말을 끊어냈다.

    “거스 벤슨 경감. 그쪽을 위해 충고 하나만 하도록 하죠.”

    “예?”

    “붉은 옷의 강령술사를 너무 파헤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그쪽의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으니 말이죠.”

    시아는 라크시스의 충고가 진심임을 알아챘다. 황혼 국교회가 카얄과 관련된 이상, 홀로 그들의 뒤를 쫓았다간 언제 미라가 될지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찾으러 다녀도 고대 마법사와 자신이 있는 이쪽에서 찾으러 다녀야 피해가 없을 터였다.

    하지만 거스는 굴하지 않았다.

    “제 신분을 잊으셨나 봅니다. 전 경찰입니다. 위대하신 황제 폐하의 명을 받아 제국의 치안을 지키는 경찰이란 말입니다. 그런 제게 수사를 하지 말라니 참 무례하시군요.”

    의외로 격한 반응이 그에게서 튀어나왔다. 그렇게 모진 대우를 받아왔음에도 경찰이라는 자부심이 남아있다는 건 대단하다면 대단한 일이었다. 라크시스는 그런 거스를 묵묵히 바라보다 대답했다.

    “우선 경감의 명예를 실추시킨 것에 대해선 사과하죠. 수사를 하지 말란 뜻은 아니었습니다만. 단지 강령술사가 그쪽이 상대할 수 없을 만큼 위험하기 때문에 한 충고였을 뿐입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 두 분께선 강령술사에 대해 아시는 것이 있군요. 이단이 위험하다는 것도 알고 계시는 듯하고요.”

    거스가 일어났다. 뭐, 뭐야. 갑자기 일어나 다가오는 거스에 시아는 당황했다. 그는 시아와 라크시스 앞에 멈춰 섰다. 옷매무새를 다듬고 바지를 추켜세우더니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경감님, 왜 이러세요. 일어나세요, 네? 일단 자리에 앉아서 마저 이야기하세…….”

    “팔 년 전 뤼스에서 일어난 사건 일지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어차피 뮐러가의 별장에서 일어난 사건이든 강령술사 사건이든 윗선에선 신경도 쓰지 않을 테지요. 미스 허슬러가 필요로 하시는 자료는 무엇이든 드리겠습니다.”

    당황한 시아가 거스를 일으키려 했으나, 그는 꿈쩍도 않았다. 새치로 뒤덮인 회색 머리가 힘없이 떨렸다. 고개를 숙여 얼굴이 보이진 않았으나, 얼핏 울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 점이 시아를 두 배로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거스는 주먹을 말아쥐었다. 주름진 손등에 하얗게 힘줄이 돋았다.

    “대신 두 분께서 알고 계신 이단에 대한 정보를 제게도 공유해 주십시오. 이렇게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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