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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법사의 운명을 손에 넣어버렸다 (176)화 (176/292)
  • 176화 

    거스는 그런 두 사람을 가만히 살피다가 말을 이었다.

    “문제는 그들이 떠난 뒤였습니다. 그들의 잔재주를 자주 구경하던 자들이 하나둘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거든요.”

    “실종인가요?”

    “일단은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아 실종 처리를 하긴 했습니다만, 주변인들은 하나같이 실종자들이 도시로 떠나겠다는 말을 하고 사라져 실종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던 모양입니다.”

    거스는 반쯤 타버린 궐련을 재떨이에 대충 비벼 껐다. 평소였다면 아까워서라도 꾸역꾸역 피웠을 궐련이 오늘따라 쓰게 느껴졌다. 오래전의 비극이 떠오른 탓이다.

    “수도에 대한 환상 때문이죠. 젊은이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모르간으로 가니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던 겁니다.”

    “그렇다면 이건 실종 사건이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경감님 말씀을 들어보면 실종자들이 어디로 갈지 말을 하고 사라졌다는 건데요.”

    “아뇨.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거스는 다 식어버린 차를 한입에 털어 넣곤 결론을 단정 짓듯 말했다.

    “실종자들이 프레디 뮐러의 별장 부지에서 미라가 된 채 발견되었거든요.”

    미라. 그 단어가 거스의 입에서 튀어나온 순간 시아와 라크시스, 요르문의 표정이 단번에 굳어버렸다.

    “…미라라니.”

    시아는 더듬거렸다. 그녀와 시선을 마주친 라크시스와 요르문도 할 말을 잃은 건 마찬가지였다. 미라라는 말에 떠올라 버린 끔찍한 기억 탓이다. 중세의 슈테른베슈테크 언덕에서 미라로 변해 죽어버린 수많은 기사들. 에드먼드의 친위대는 끝내 저주의 제물이 되어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들이 저주의 제물이 된 건 모두 황혼 국교회 탓이었다. 이자벨라 때문에 이단 신자가 된 친위대는 그들도 모르는 사이에 저주의 제물로 영혼이 저당 잡히고 말았다.

    사람이 한순간에 미라가 되는 걸 본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기나긴 시간을 제외하곤 사람을 미라로 만들 수 있는 건 아마 저주뿐일 터. 시아는 그제야 거스가 주민들의 실종 사건을 왜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거스가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강령술사 무리가 마을을 떠난 후, 한번은 밤늦게 별장 근처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적이 있었습니다.”

    단순한 소음 신고라고 생각했었다. 프레디 뮐러가 뤼스에 머무는 날이면 별장에서 종종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고, 소음을 처리해 달라는 민원이 자주 들어왔기에 그저 비슷한 상황일 거라고 여겼다.

    프레디 뮐러 본인도 제 별장 부지에 숨어드는 침입자가 있다며 종종 민원을 넣곤 했는데, 그때마다 서장은 말단 부하들을 시켜 순찰이나 돌고 오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서에서는 별장 주인이 여간 시끄러운 게 아니니 그런 식으로 주민들에게 보복당하는 거라며 프레디 뮐러를 조롱했었다.

    실상을 몰랐던 그때엔 거스 역시 그놈의 괴짜 영주가 밤낮을 구분 못 하고 소음을 만들어내었구나, 하며 당직이던 순경 한 명만 데리고 어슬렁어슬렁 순찰을 돌러 갔었다.

    “기껏해야 괴짜 영주가 소음을 냈거나 철없는 젊은이들이 방치된 묘지에서 작당을 벌인 것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가보니 웬 무리가 별장을 빙 둘러싸고 괴이한 의식을 벌이고 있더군요.”

    기이한 불빛이었다. 마법사는 아니었지만, 거스는 그들의 주변에서 맴도는 불빛이 마력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마력에 붉은 옷자락이 나부꼈다. 별장의 입구를 정면에 두고 선 자는 붉은 옷의 강령술사였다.

    “별장을 둘러싸고 무릎을 꿇고 있던 자들은 다름 아닌 실종자들이었습니다. 그 중심엔 마을을 떠났다던 강령술사가 있었죠. 다들 뭔가에 홀린 것처럼 몸을 축 늘어뜨리고 주문을 외고 있었어요. 마치 조종이라도 당하는 것처럼…….”

    강령술사의 손짓에 실종자들이 꼭두각시 인형처럼 일제히 하늘을 우러르며 기도를 하다 만세를 외치곤 고개를 바닥에 처박았다. 독실한 신자처럼 정체 모를 신을 부르짖으며 벌떡 일어나더니, 돌연 사지를 기괴하게 꺾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거스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날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게 머릿속에 그려졌다. 실종자들이 서있는 자리를 따라 별장을 감싸고 서서히 바람이 불었다.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주문이 섬뜩하게 공명하며 귓전을 때렸다. 그들의 목소리가 하나 되어 울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낡고 작은 별장의 모습이 끊겨버린 필름을 억지로 이어붙여 영사한 듯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 돌아오길 반복하는 것이 아닌가.

    감히 엿봐선 안 되는 장면을 본 것 같았다. 낡고 작은 별장의 모습이 오래된 묘실과 자꾸만 겹쳐 보였다. 중간중간 거대하게 우뚝 선 건물의 모습이 이질적으로 시야에 끼어들어 뇌를 혼란하게 만들었다.

    마치 별장에 숨겨진 비밀을 억지로 캐내려는 듯했다. 그래, 프레디 뮐러도 아마 그 안에 있었을 터다. 무엇 때문에 외지인의 표적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거스는 강령술사가 노리던 것이 별장 안의 프레디 뮐러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러나 거스는 나서지 못했다.

    불길했다. 그들의 의식은 마법사도 아닌 일개 경찰이 감히 나설 수준이 아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지원을 더 데려오는 건데. 하지만 인원이 더 있었어도 이 상황이 해결되진 않았을 것이다. 거스는 고목을 붙들고 몸을 숨겼다. 지금은 프레디 뮐러를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자칫하다간 거스 본인도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치직, 치지직― 눈이 아팠다. 별장의 모습이 거대한 별장으로, 오래된 묘실로 보일수록 머리가 어지러웠다. 사람들이 주문을 외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거스는 나무 뒤에 겨우 버티고 서서 식은땀을 훔쳐내며 모든 것을 목격했다.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눈에 증거를 담는 것뿐이었다. 뒤돌아보니 따라온 순경은 이미 기절한 지 오래였다.

    몸을 기괴하게 꺾던 사람들이 돌연 멈춰 섰다. 붉은 옷의 강령술사가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든 것이다. 동시에 사람들이 외쳤다.

    ‘시그무트 아 함 카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전신에 돌던 긴장감과 공포가 한순간에 분노로 변했다.

    ‘달리아!’

    시그무트 아 함 카얄. 그것은 여동생 달리아, 그 애가 실종되기 전 마지막으로 줄곧 중얼거리던 말이었다.

    그 순간 거스의 이성이 끊어졌다. 그가 경찰이 된 계기. 실종된 여동생이 남긴 유일한 단서가 귓가에 닿았기 때문이었다.

    ‘경찰이다! 당장 그만둬! 머리 위로 손 올려!’

    리볼버를 장전하며 무작정 의식의 한가운데로 달려나갔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그 자리에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아찔한 상황이었다. 폭풍처럼 휘몰아치기 시작한 바람 사이에서 별장을 빙 둘러싼 실종자들의 고개가 일제히 삐걱거리며 거스를 향했다.

    세찬 바람에 머리카락이며 옷자락이 미친 듯이 나부꼈다. 그럼에도 석상처럼 꿈쩍도 않고 서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붉은 옷의 강령술사가 천천히 뒤를 돌았다.

    ‘경감님. 이건 약속과 다른데.’

    기이한 불빛과 바람. 역광 속에서 강령술사가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동시에 강한 빛이 망막을 찔렀다. 마력이 요동치며 속이 울렁거렸다. 거스는 그대로 기절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땐.

    ‘……!’

    강령술사 무리는 온데간데없어졌고, 아침 햇살이 내리쬐는 별장 부지엔 실종자들이 미라가 된 채 그대로 죽어있었다.

    【 또 다른 싸움 】

    거스의 말을 들은 시아와 라크시스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라크, 아까 별장을 나설 때 정령이 했던 말 기억나요?”

    “별장의 마법을 파훼시키려 했던 젊은 여인 말씀이시죠. …아마도 그자가 지금 거스 경감이 말하고 있는 강령술사인 것 같습니다.”

    프레디 뮐러의 별장을 노렸던 카얄의 수하를 이렇게 또 찾아내다니. 예상치 못한 수확에 두 사람은 의미심장한 시선을 주고받았다.

    거스는 말을 이었다.

    “눈을 뜨자마자 곧장 서로 돌아와 서장에게 알렸습니다. 수도로 갔다던 젊은이들은 실종된 것이 맞았고, 마을을 떠난 줄 알았던 강령술사에 의해 미라가 되어 지난밤 사망했다고요. 강령술사가 노리던 건 처음부터 프레디 뮐러였고, 지금 그가 무슨 짓을 당했는지 알 길이 없어 현장에 인원을 대동해 당장 가보아야 한다고 했었죠. 그 후 실종자 가족에게도 이 일을 알리고, 곧바로 강령술사의 뒤를 쫓았습니다만…….”

    거스는 가라앉은 눈으로 그날의 일을 떠올렸다.

    ‘하, 어제 당직이 자네였던가?’

    자신을 본 척도 하지 않고 시가를 피워대던 서장. 서에 찾아오는 유족들을 상대하며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는 싸늘한 눈빛으로 자신을 보던 서의 동료들. 사람이 이렇게나 죽었는데도 기사 하나 나지 않던 고요한 마을.

    ‘아르카나에서 총경까지 했으면서 이런 시골에 처박혀 있는 이유를 알겠구먼. 눈치가 없으면 조용하기라도 해야 하는데, 쯧.’

    거기다 오래지 않아 별장 주인인 프레디 뮐러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죽은 장소는 뤼스와 전혀 관계없는 북부의 지르가나. 그러나 그가 북부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곳은 이곳 뤼스의 별장이었다. 조사 결과 강령술사가 별장에서 의식을 치르던 그날, 프레디 뮐러가 새벽에 피난이라도 가듯 삯마차를 잡아타고 황급히 별장에서 떠났다는데, 그 사실 역시 아무도 지적하지 않았다.

    괴이한 의식과 수상한 외지인. 미라가 된 실종자와 프레디 뮐러의 죽음. 별장을 중심으로 벌어진 참극은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사소한 사건으로 마무리되기엔 지나치게 규모가 컸다.

    그러나 모든 정황이 별장에서의 사건을 덮어두려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거스는 그제야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그 후에도 저는 홀로 수사를 이어나갔습니다. 매일같이 서에 와서 울부짖던 유족들을 외면할 수가 없었죠. 가족을 잃은 슬픔을 어떻게 그냥 묻어두라 하겠습니까.”

    거스는 굴하지 않고 강령술사의 뒤를 캤다. 조사 결과 놀랍게도 그들 일행은 지금까지 제국 곳곳의 교회에서 머물며 강령술을 해오고 있었다. 여관도 많은데 하필 교회라니.

    그때, 번개처럼 머리를 스쳐가는 기억이 있었다. 교회를 기반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집단, 바로 이단 황혼 국교회였다. 그들은 이단의 표식을 교묘하게 위장하곤 각 지역의 교회를 통해 신도들을 모았다. 그러곤 신도들을 그대로 세상에서 사라지게 만들거나,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이고 납치하는 용도로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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