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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법사의 운명을 손에 넣어버렸다 (175)화 (175/292)

175화 

얼마 전 수도에서 벌어진 유람 비행선 폭발 미수 사건에 웬 메이드와 로렌 허슬러가 관련이 있다는 소식을 듣기는 했었다. 그러나 로렌 허슬러에 대한 흥미도 오래된 사건을 조사할 의욕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녀가 슈나이더 녀석이 만들어낸 가상 인물이라는 소문 때문이었다.

그래서 거스는 모르간 타임즈를 읽곤 그대로 덮어두었다. 예전처럼 로렌 허슬러를 찾아 수도에 찾아가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먼저 나타나 주다니, 원.’

“허, 참.”

거스는 떨떠름하게 일어나 시아의 손을 마주 잡았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만나서 영광입니다. 미스 허슬러.”

“말씀을 많이 들었다는 건 혹시…….”

“아, 슈나이더 녀석이 미스 허슬러의 이야기를 그렇게 하더군요. 처음엔 본인 소설 이야기를 한다 생각해서 무시했는데, 이제 보니 아니었네요.”

시아는 그녀를 소개한 이후 거스의 태도가 묘하게 바뀌었음을 알아차렸다. 별장 부지에서만 해도 잠복한 경찰을 대동하고선 여차하면 우리를 쏘려고 했었는데. 수상한 외지인 중 하나가 고대 마법사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보다 그녀가 로렌 허슬러라는 걸 알게 된 지금, 거스는 아까보다 시아에게 훨씬 더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슈나이더 경감님과 아는 사이세요?”

“알다마다요. 모르간 광역 경찰청이 처음 생겼을 때 슈나이더 녀석이 시험을 치고 순경으로 들어왔었거든요. 녀석은 제가 메이덜린에서 경정으로 근무 중에 만났던 동료였습니다. 나이가 비슷해 금방 친해졌지요.”

그렇게 대답한 거스가 잠시 머뭇거리다 말을 덧붙였다.

“제가 왜 뤼스 같은 동네에 있는진 굳이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별로 좋은 일도 아니니까요.”

거스가 말을 끊어내듯 입을 다물었다. 시아와 거스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라크시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모르간 광역 경찰청이 처음 생겼을 때 경찰이 되었다면 적어도 십 년 이상은 경찰 생활을 했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모르간 광역 경찰청에서 시험을 봤다고 했으니 애초에 거스는 수도에서 근무했던 경찰이었던 것이 확실했다.

‘그런 사람이 뤼스에 있다, 라.’

그때 시아가 라크시스에게 가만히 고개를 기울여 속삭였다.

“…슈나이더 경감님은 생각보다 진급을 늦게 하셨네요.”

십 년 넘게 근무하고도 경사에 머물렀던 슈나이더의 이야기를 하는 모양이었다. 슈나이더를 떠올려보자면 딱히 진급 욕망이 있었던 사람은 아니었으니, 만일 그가 줄곧 근속 승진만 했다면 슈나이더가 그간 경사로 지냈던 건 굳이 지적할 사항은 아니긴 했다.

하지만 거스의 경우는 달랐다. 창립 초기 구성원으로 모르간 광역 경찰청이 갓 생겨난 시절 이미 경정을 달고 있었던 자가 십 년이 훌쩍 지난 지금 뤼스 같은 소도시에서 경감으로 지내고 있다는 건, 그가 불미스러운 일로 좌천되었다는 뜻과도 같았다.

라크시스가 가만히 속삭였다.

“그렇게 따지면 거스 경감도 비슷하죠. 모르간 광역 경찰청의 시작을 함께한 사람에겐 소도시의 경감 역시 그리 높은 직급은 아니니까요.”

한편 거스는 시아와 라크시스가 귀엣말을 하든 말든 사무실 한편의 오래된 철제 서랍을 끼익끼익 열어댔다. 오름차순으로 정렬된 서류철을 한참을 뒤적거리다 그가 꺼내 온 건 팔 년 전 뤼스에서 벌어진 사건 자료였다.

탁, 소리가 나며 서류철이 책상 위로 떨어졌다. 거스는 조악한 소파를 바짝 끌어다 앉으며 타자기 옆에서 뒹굴던 싸구려 궐련을 집어다 물었다.

“별장 주인의 의뢰를 받으셨다 했는데, 사실 뮐러가의 별장은 주인이 없어진 지 오래입니다. 프레디 뮐러가 팔 년 전에 죽었거든요.”

“네, 알고 있어요. 저희는 새 주인의 의뢰를 받아 뤼스에 온 거예요.”

새 주인. 대가 끊긴 가문의 별장에 새 주인이 어디 있는가. 그 폐가가 경매로 넘어갔다거나 누군가 헐값에 사들였다는 얘기는 듣도 보도 못했다. 거스는 궐련에 불을 붙이려다 말고 되물었다.

“…새 주인이라 하시면.”

“곧 대대적으로 발표되겠지만, 사실 미스터 프레디 뮐러에게는 따님이 있었거든요. 그분에게 아버지의 죽음을 조사해 달란 의뢰를 받은 거고요.”

거스는 입에 물고 있던 궐련을 떨어뜨렸다.

“그 괴짜, 아니 죽은 프레디 뮐러에게 가족이 있었단 말입니까? 거참. 세상일은 정말로 알다가도 모르겠군요.”

“경감님께선 여기에 꽤 오래 계셨었나 봐요.”

“…오래 있긴 했지요. 그자가 살아있을 때에도 여기서 일을 하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미스 허슬러의 지적에 새삼 옛일들이 떠오르고 만다. 그래, 프레디 뮐러가 죽기 일 년 전쯤이었다. 흉흉한 사건들이 수도를 점령하여 하루가 멀다 하고 사람이 죽고 실종되던 그때. 황혼 국교회라는 이단이 국교회로 교묘하게 위장한 채 수많은 범죄의 배후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들을 조사해야 한다고 소리 높여 주장했던 적이 있었더란다.

‘거스 벤슨 총경. 제발 자중하게. 자넨 유능한 데다 앞날이 창창하지. 앞으로 경무관에 치안감까진 해봐야 하지 않겠나. 이대로 경찰 생활을 끝내고 싶은 건 아니겠지?’

가족을 생각하게. 경무관이 시가를 깊게 빨아들이며 했던 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스는 징계를 받고 이곳 뤼스로 발령이 나게 되었다. 그저 경찰의 의무를 다했을 뿐인데 정직이라니. 숨죽이고 지내면 조만간 다시 수도로 올 수 있을 거란 경무관의 말과 달리, 일 년이 넘도록 거스 벤슨에겐 아무런 인사이동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던 도중 사건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붉은 옷의 강령술사. 그들이 뤼스에 찾아온 건 프레디 뮐러가 죽기 한 달 전쯤이었다.

‘얌전히 지내랬더니 또 뒤를 들쑤시고 다녔던 겐가. 나도 더 이상 자네를 봐줄 수가 없어. 잘리지 않은 걸 감사히 여기게, 거스.’

들쑤시긴 뭘 들쑤셨다고. 경찰이라면 응당 해야 했을 수사를 한 것뿐이었다. 뤼스로 발령받은 경찰로서 뤼스에서 벌어진 일들을 조사한 것이 전부였는데 거스는 어느샌가 조직의 눈엣가시가 되어있었다. 동료라고 믿었던 사람들이 자신의 감시역이라는 것도 그때 처음 깨달았다.

이를 악물고 어떻게든 수사를 해나가려 했지만 그 순간마다 경무관의 우울한 목소리가 자꾸 귓가를 맴돌았다. 가족을 생각하게. 가족, 그 한 단어가 수렁처럼 발목을 붙들었다. 그렇게 거스는 죽은 듯이 시골에 처박혀 세월을 보냈다.

팔 년이 지난 지금, 수상한 외지인이 폐가를 드나든다는 마부의 신고가 있기 전까지 말이다.

거스는 떨어뜨린 궐련을 집어 들어 불을 붙였다. 매캐한 연기가 구름처럼 번져나갔다.

“프레디 뮐러의 죽음을 조사하러 별장에 오셨다, 라. 그런 거라면 무너져 가는 폐가를 기웃대시던 게 이해가 되긴 하는군요. 프레디 뮐러가 죽기 직전 그 별장을 중심으로 뤼스에 흉흉한 사건이 발생했었거든요.”

“흉흉한 사건이라면…….”

“아마 그가 죽기 한 달 전쯤이었을 겁니다. 뤼스에 붉은 옷의 강령술사가 찾아온 것이요.”

옛 사건을 되짚어 나가는 거스의 눈빛이 궐련의 연기처럼 천천히 흐려졌다. 시아는 독한 연기를 참아내며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엔 유랑극단이나 집시 무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도 그들은 그렇게 마을을 돌며 잔재주를 부리고 생계를 이어나갔거든요.”

그가 뤼스에 경감으로 부임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당시 뤼스 경찰서에선 비록 좌천되었으나 한때 아르카나 경찰서에서 총경까지 지냈던 그를 경감으로 대하는 것을 매우 어려워했다. 그 덕분에 거스는 서장 저리 가라 하는 기세로 경찰서를 활보하며 이 사건 저 사건에 기웃거리며 다녔는데, 붉은 옷의 강령술사가 뤼스에 방문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사실 강령술이라는 게 비과학적이지 않습니까. 차라리 마술을 부린다면 모를까, 죽은 영혼을 불러내고 악령을 소환한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죠.”

그들은 과거 공동묘지였다는 별장 부지 옆 교회에 머물며 광장에서 잔재주를 부렸다. 죽은 할아버지의 영혼이 나타났다든가, 유령이 머리 위를 맴돌고 있어 불러냈다든가 하는 말을 하며 조악한 마법으로 바람을 일으키고 돌멩이를 튕겨 그럴싸한 사기를 치곤 했다.

그들의 잔재주에 이끌린 사람들은 종종 강령술사가 머무는 교회로 가서 괴이한 의식을 구경하기도 했다. 강력한 악령을 불러오는 의식이라나 뭐라나. 교회 측에서 그런 의식을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긴 했지만, 당시엔 그 점을 그렇게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두운 제단 한가운데 촛불을 켜고 괴상한 주문을 외면서 악령을 불러낸다 하니 사람들이 호기심에 너도나도 강령술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실제로 악령을 봤다며 호들갑을 떤 사람들 때문에 강령술사의 인기는 나날이 높아졌다.

국교회를 믿는 나라에서 저런 짓거리라니. 그러면서도 당시 거스는 그들이 그저 조악한 마법을 사용하는 사기꾼들이라고만 생각했다.

“사기꾼이지만 마을 사람들이 유흥거리처럼 즐기니 내버려 두었습니다. 교회에서도 그들을 별달리 제재하지 않아 안심했던 것도 있었죠. 그자의 강령술을 보고 더러 기절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만, 대체로 심약한 노인이나 어린아이들이 그런 반응을 보여 대수롭지 않게 넘겼습니다.”

거스가 한숨을 쉬며 궐련 연기를 길게 뽑아냈다. 시아는 그의 회상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기절이라니. 게다가 노약자가 기절했다 했으니 더 위험한 거 아닌가. 기절이라 했으니 불법 약물이나 호흡기 압박, 과도한 스트레스 등의 원인일 가능성이 컸다. 시아는 질겁했다. 의술사의 입장에서 노약자의 기절이란 자칫 뇌사나 사망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칠십 년 전의 상식과 그녀의 상식이 많이 다른지, 이곳의 누구도 이를 지적하지 않았다.

이는 마도 시대엔 노인과 어린아이가 쓰러지는 일이 흔하다는 방증과도 같았다.

거스의 말에 반박하려 입을 연 순간 매캐한 연기가 시아의 호흡기를 훅 강타했다. 캑캑거리며 기침을 할 뻔한 순간, 시아는 순식간에 공기가 상쾌해졌음을 알아차렸다. 이런 적이 또 있었는데. 곁눈질을 하니 라크시스가 눈썹을 까딱이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문제라도? 그가 입 모양으로 말했다. 시아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라크시스와는 이젠 척하면 척인 사이가 되었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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