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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법사의 운명을 손에 넣어버렸다 (160)화 (160/292)
  • 160화 

    프레데릭 뮐러. 별칭 프레디 뮐러. 3587년에서 온 시아에겐 그저 역사 속에 등장하는 유명 인물 중 하나였다.

    “그는 다이아몬드 회사의 경영자치고 다이아몬드에 관심이 없는 사람으로 유명했죠. 광산을 발견한 후에도 마류학이나 고고학, 신화학에 몰두하여 뮐러사에선 그들의 사장을 본 일이 드물었다고 합니다.”

    “프레디 뮐러가 광산을 발견했다고요? 가문 소유의 광산으로 사업을 한 게 아니라요?”

    프레디가 당연히 대대손손 이어지는 사업을 했을 거라 생각했다. 다이아몬드 광산을 발견한다는 게 딱히 감이 잡히는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라크시스는 눈썹을 밀어 올렸다.

    “그의 방랑벽이 아니었다면 애초에 광산이 발견되지도 못했을 겁니다. 다이아몬드 광산은 그가 에이즈번에 유물을 찾으러 갔다가, 길을 잃은 바람에 우연히 발견했던 겁니다.”

    제국 서부 에이즈번은 갈리프콜 광산으로 유명했다. 광산 개발 중 기이한 자연현상을 일으키는 고대의 유물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에 서부로 향했던 프레디는, 비 오는 날 입산했다가 실종된 후 무려 나흘 만에 발견되었다. 그것도 탁구공만 한 다이아몬드를 손에 쥔 채로 말이다.

    산에서 길을 잃었다가 다이아몬드를 발견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시아는 말도 안 되는 확률을 가늠하다가, 새삼 뮐러사의 다이아몬드 장신구 초기 디자인이 영 별로였던 이유를 알아챘다.

    초대 경영자가 보석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뮐러사가 왜 경영자 교체 이후에 승승장구하게 되었는지 알 만했다. 물론 프레디의 뒤를 이은 사람이 예술에 조예가 깊었던 밀레이나였기에 더욱 그랬겠지만.

    “로드 젤마니 같네요.”

    “닮은 구석이 있긴 하죠. 아, 어쩌면 로드 젤마니도 죽은 프레디 뮐러와 아는 사이일 수도 있겠네요.”

    둘 다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괴짜이니 말입니다. 라크시스가 덧붙였다.

    “아무튼 프레디 뮐러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습니다. 마흔이 되었을까 말까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정말로 젊은 나이였네요.”

    시아가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라크시스는 깍지 낀 두 손을 책상에 올리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사실 그의 죽음은 그 자신이 자초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돌연 경비행기를 몰고 북부 지르가나로 향했거든요.”

    “그 추운 곳에 난데없이 경비행기를 몰고 갔다고요?”

    “네. 그리고 그 비행기가 결국 추락하고 말았죠.”

    시아는 경악했다. 괴짜라더니, 진짜 괴짜다운 이유로 죽었잖아.

    추락 원인은 연료통 이상으로 인한 엔진 고장이었다. 사람들은 추운 북부의 날씨 때문에 연료통에 문제가 생겼을 거라 추측했다. 그러나 당시 경찰은 엔진의 온도엔 아무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프레디 뮐러는 결국 시신으로 발견되었습니다. 하지만 비행기 추락사는 아닙니다. 비행기가 추락한 지점에서 얼마 떨어진 곳에, 발가벗은 그의 시체가 있었거든요.”

    이상한 일이죠. 그가 죽은 곳 주변엔 마정석 광산이 전부였는데 말입니다. 라크시스가 갸웃거렸다.

    “떨어지는 비행기에서 살아남은 게 놀랍네요.”

    “전 그보다 그의 시신이 헐벗은 채로 발견된 게 더 놀라웠습니다.”

    북부 지르가나의 마정석 광산은 살을 에는 추위로 유명했다. 마정석을 캐는 광부들에게 흔히 발생하는 질환이 바로 동상이었다.

    라크시스가 프레디 뮐러의 이야기를 어떻게 이리 세세하게 알고 있나 했더니, 지르가나 마정석 광산이 그의 소유여서 그랬던 모양이다. 그는 광산 근처에서 사람이 죽어서, 당시 경찰 수사에 협조했었다고 대답했다. 시아는 새삼스레 회자된 라크시스의 재력에 혀를 내두르며 설명을 덧붙였다.

    “음, 동사자의 일부가 옷을 벗은 상태로 발견되는 일은 종종 있어왔어요. 극심한 저체온증에서 살아남기 위해 마지막으로 몸부림친 결과라고나 할까요.”

    라크시스가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듯 되물었다.

    “이상하군요. 추운데 어째서 옷을 벗어버리는 겁니까?”

    “최대한 체온을 보존하려다 보니 생기는 일이에요. 물론 저도 알게 된 지 얼마 안 되는 사실이지만요.”

    체온이 내려가게 되면 사람은 주요 장기를 보호하기 위해 말단의 모세혈관을 수축한다. 혈액을 중심부에 두어 열 손실을 막으려는 것이다. 하지만 지나친 수축으로 인해 근육의 긴장이 계속되면, 어느 순간 근육이 힘을 잃고 모세혈관이 확장되고 만다.

    그러면 그때 중심부에 몰려있던 뜨거운 피가 한 번에 사지로 퍼져나가게 되고, 그걸 덥다고 착각한 저체온증 환자는 옷을 벗어던지게 되는 것이다.

    이후의 결과는 뻔했다. 안 그래도 추운 환경에서 저체온증은 가속화되고, 환자는 금방 사망에 이르게 된다.

    추리소설의 단골 소재로 쓰이는 헐벗은 동사자에 대한 비밀이었다. 그러나 라크시스는 굉장히 놀랍다는 표정이었다.

    “신기하네요. 결국 뇌의 착각으로 인한 현상이었다는 말이군요.”

    “네, 뭐 그렇죠. 그래서 헐벗은 동사자에 대한 조사는 그가 왜 헐벗고 죽었느냐보다, 왜 그가 홀로 추운 환경에 남겨져 있었냐에 초점이 맞춰져야 되는 게 맞는 거고요.”

    추리소설에서 수사관이 했던 말을 그대로 읊었더니, 라크시스의 눈이 두 배로 휘둥그레졌다. 모든 걸 알고 있는 고대 마법사가 이런 걸로 놀란다는 게 낯설다. 그와 자신 사이에 칠십 년의 간극이 있다는 게 새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어쨌든 후계가 없었던 프레디 뮐러 때문에 한동안 뮐러가의 재산 분할 문제로 한동안 제국이 떠들썩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유언장이 발견되면서 문제가 일단락되었죠.”

    [뮐러사의 지분을 가장 많이 가진 사람에게 경영과 재산 관리를 맡긴다.]

    “그 사람이 밀레이나 로드리치였군요.”

    “그렇습니다.”

    뮐러가의 비극적인 이야기는 몰랐다. 칠십 년 후에서 온 시아에게 뮐러는 그저 상앗빛 박스로 유명한 다이아몬드 회사였다. 세인트 밀레이나 돔의 예술감독인 밀레이나 로드리치가 자신의 예술적 감각을 십분 발휘해, 경영자가 죽고 망해가던 다이아몬드 회사를 구사일생으로 살린 이야기만 건너건너 알고 있을 뿐이었다.

    “아마 미스 헬렌은 죽은 프레디 뮐러의 최측근의 자녀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컨대 비서나 집사 같은 자 말입니다. 프레디 뮐러가 죽고 얼마 안 가 그의 비서와 가까운 고용인들이 저택에 침입한 괴한에게 모조리 살해당했거든요.”

    “살해당했다면…….”

    문득 뮐러가의 참극과 겹쳐 드는 장면이 있었다. 두 번째 시간 여행에서 만났던 무명의 발명가. 한밤중에 그의 연구실로 날아가던 차탈의 올빼미. 메이슨의 연구실을 뒤집어놓고, 역병 의사 마스크에 있던 작은 봉인 조각을 가져갔던 남자.

    시아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카얄의 짓이겠네요.”

    “저도 전에는 뮐러가의 사건이 그저 비극이라고만 여겼는데, 이 반지를 보고 깨달았습니다.”

    라크시스는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카얄은 뮐러가에 숨은 봉인의 존재를 알았던 겁니다. 메이슨의 연구실을 습격했을 때처럼 봉인을 찾아다녔던 거겠죠.”

    검은 코트의 마법사에게 습격당했던 메이슨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목격자는 필요 없다. 그래서 그 많던 뮐러가의 사람들을 죄다 죽여버린 걸까.

    시아는 한참을 말없이 앉아있었다. 라크시스는 그런 시아를 침묵으로 위로했다.

    “그런데 라크는 왜 미스 헬렌을 뮐러가 고용인의 자식이라 생각한 거예요? 죽은 프레디 뮐러의 딸일 수도 있잖아요.”

    “그에겐 자식이 없었거든요. 프레디 뮐러는 애초에 혼인조차 하지 않았던 탐사광이었습니다.”

    라크시스의 말에 따르면, 이제 뮐러가와 관련된 사람은 거의 남지 않았다고 한다. 가주와 그의 사람들이 모조리 죽어버린 데다가 당시 사건의 목격자도 없었던 탓에, 경찰에서도 더는 조사를 할 수 없어 수사를 그대로 종결시켰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뮐러가와 관련된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파괴된 봉인을 품은 가주의 반지와 함께.

    뮐러가의 반지와 미스 헬렌. 죽은 프레디 뮐러와 카얄.

    “신기한 일이죠. 이렇게 갑자기 단서가 나타나 저들끼리 맞춰지고 있다는 것 말입니다.”

    시아는 라크시스의 은근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그의 표정이 수상했다. 입술을 꾹 닫은 채 눈알을 데구루루 굴린다. 한껏 솟은 광대엔 의욕이 가득하다. 아까까지만 해도 내가 대중 앞에 나서겠다 선언한 탓에 걱정이 산더미 같은 얼굴이었는데.

    “미제로 남은 뮐러가의 사건이 다시금 세상의 조명을 받고 있잖아요? 우리가 운이 좋은 건지, 아니면 잘못 휘말린 건지 모르겠지만요.”

    라크시스가 아닌 척 은근하게 운을 띄웠지만, 시아는 그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단박에 알아차렸다. 호기심이 동한 거다. 고고한 귀족으로 하여금 내러 지구 뒷골목에 거침없이 발을 들이도록 만드는, 마법사 특유의 호기심이 동해버린 것이다.

    “라크, 또 혼자서 계획을 세우고 있었죠? 거짓말 할 생각은 말아요. 딱 보면 아니까요.”

    “거짓말 한 적은 없습니다. 당신에게 공조를 요청할 참이었거든요.”

    “말이나 못 하면.”

    라크시스가 시아의 손을 슬쩍 붙잡았다. 성녀 상을 쥐고 기도하듯, 얼핏 간절해 보이기까지 하는 얼굴로 시아의 시선을 자꾸만 빼앗았다.

    “어차피 미스 헬렌에 대해 알아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에 대한 연장선으로 프레디 뮐러의 죽음도 조사해 보자는 거죠.”

    시아는 그의 도화선이 어느 지점에서부터 불붙었는지 단박에 깨달았다.

    “제가 아까 했던 말 때문에 그러죠? 헐벗은 동사자의 비밀 말예요.”

    “당신 말이 맞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당시의 기자들도 그가 헐벗은 차림으로 발견됐던 것에만 초점을 맞췄지, 그가 어떻게 추락하는 비행기에서 살아남아 광산 근처까지 갔는지에 대해선 그렇게까지 신경 쓰지 않더군요.”

    부정도 하지 않았다. 라크시스는 그가 왜 프레디 뮐러의 죽음을 궁금해하는지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워낙 괴짜 같은 데다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탐험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보니, 당시 사람들도 프레디가 뜬금없이 북부에 간 것 자체를 이상하다고 여기진 않았다고 한다. 그럼 그렇지, 라는 반응을 보이며 프레디 뮐러가 프레디 뮐러다운 죽음을 맞이했다고만 쑥덕거렸다 했다.

    “당시엔 저도 그의 죽음을 조사해 보려 하진 않았습니다만, 지금 생각해 보니 왜 하필 북부에서 명을 달리하게 됐는지 궁금하긴 하더군요. 그것도 사인이 비행기 추락사가 아닌 동사라는 게 의외의 점이고요. 마침 이렇게 단서가 나타났으니…….”

    시아는 피식 웃었다.

    “알았어요, 알았어. 이번에도 도와달라고 할 거죠?”

    “아직까진 어떻게 도와달라고 할진 모르겠지만요. 일단 미스 헬렌을 만나봐야 뭐라도 결과가 나오지 않겠습니까?”

    이번에도 사양하지 않는다. 뮐러가의 사건에 어지간히 꽂힌 모양이었다. 재키 레이븐 때도 그러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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