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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법사의 운명을 손에 넣어버렸다 (16)화 (16/292)
  • 16화 

    “아까 묘지에서 다 보셨으니 말씀드리는 거긴 하지만요. 사실 저랑 음, 일종의 협력관계에 있는 분이 있어요.”

    “협력이요?”

    “파리스 맨틀러 교수님이라고, 의사이신데요. 제가 그분이 해부 연구를 하실 때 거의 맨날 참관하거든요.”

    뭐? 파리스 맨틀러?

    “이 기계도 교수님의 해부를 많이 참고해서 만든 거예요.”

    메이슨은 꽤 신나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이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을 말할 땐 누구든 신나게 되는 법이었다.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을 만한 사람이 앞에 있을 땐 더더욱.

    그리고 웬만한 사람들은 발명품보단 남의 연애사라든가 사치품 같은 그런 가십을 더 좋아하지.

    ‘난 그런 걸 잘 몰랐고.’

    “사람 몸엔 전기가 통하잖아요. 마력도 마찬가지래요. 치유사의 치료가 모든 걸 낫게 만드는 것도 혈관이나 근육이나 신경 어디든 마력이 지나다닐 수 있기 때문이라는…….”

    호기심 많고 사람 몸에 관심 많다는 것으론 메이슨과 통하는 점이 있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잠깐만요.”

    “네?”

    “설마 해부학의 어머니인 갈리프도흐 의학 교수인 바로 그 맨틀러…….”

    파리스 맨틀러 여사.

    즉 대머리 독수리, 아이작 맨틀러의 조상이란 말씀이다.

    맨틀러 가문이 유서 깊은 의술사 집안이 된 것도 다 마도 시대에 서대륙 의학을 연구했던 파리스 여사 때문이었으니까.

    마도 문명의 정점에 있던 치유사는 제국의 의학 발전을 더디게 만들었다. 마력은 모든 것을 치료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플 때 치유사를 만날 수 있었던 사람은 상류층의 극소수에 불과했다. 사소한 질병으로도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파리스 맨틀러는 평생에 걸쳐 의학을 연구하고 후학을 양성해 제국 근대 의학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녀는 의술인에게 있어서 가장 최고의 영예인 히포레스 훈장의 첫 주인공이기도 했다.

    “오, 아시네요. 레이디라면 아실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었지. 아이작 밑에 있는 의술사라면 말이야.

    “로렌, 그렇게 대단한 사람입니까?”

    “네. 치유사가 없는 시대에 그분마저 없었으면 제국은 아마 온갖 질병으로 아수라장이 됐을 거예요.”

    당연히 의술사도 없었을 거구요. 메이슨에게 들리지 않게 조심스레 말했다. 다행히 메이슨은 아까처럼 시아와 라크시스가 한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진 않았던 모양이었다.

    “마침 두 분 모두 서대륙 의학을 하시니, 아마 그분도 레이디를 만나면 좋아하실 거예요. 혹시 소개해 드릴까요?”

    파리스 맨틀러는 근대 의학의 어머니로 불렸고, 그런 위인을 만난다는 건 분명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긴 했지만.

    “…좀 더 생각해 볼게요.”

    메이슨은 시아가 파리스 여사에 대한 경외심 때문에 만나기를 겁내는 줄 알고 같잖은 위로를 건넸다.

    그런 건 전혀 아니란 말씀이다. 맨틀러 교수라는 호칭이 불러온 고질적인 직장병 때문이었다.

    시아는 화제를 돌렸다.

    “어쨌건 당신이 아까 그, 뭐랄까 이상한 마스크를 쓰고 묘지에 있었던 건 정말로 해부했던 시체를 묻으려고 그랬던 거군요?”

    “맞아요! 저 억울했다니까요? 왜 내가 장의사라는데 아무도 안 믿어줘.”

    진짜 억울했던 모양이었다. 다 큰 어른의 모습을 하곤 메이슨은 아이처럼 칭얼거렸다. 천재는 순수하다던데. 이런 의미였을까.

    라크시스가 책상 한편에 놓인 역병 의사 마스크를 보며 물었다.

    “도대체 저런 마스크는 왜 쓰고 다녔습니까?”

    “아, 이거요.”

    메이슨이 마스크의 텅 빈 부리 안쪽을 내밀자 매캐한 향기가 훅 번졌다. 시아와 라크시스는 동시에 눈썹을 찌푸렸다. 맡아본 적이 있었으나, 시아에게는 낯설었고 라크시스에겐 익숙한 바로 그 향이었다.

    잘게 썰어 불에 그을린 잎들이 반짝이는 자그마한 돌에 짓이겨져 깊게 쑤셔진 채 있었다.

    “…샤샤리아 중독자로군.”

    “중독은 아니에요. 스스로 조절할 수 있거든요.”

    “원래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중독자이지.”

    마치 경험담처럼 들리는데.

    시아만 그런 생각을 한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메이슨이 그녀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고대 마법사님도……?”

    라크시스의 매끈한 미간이 구겨졌다. 그가 시아를 보며 변명했다. 새파란 눈동자가 초조하게 흔들렸다.

    “로렌. 전 아니에요.”

    “전 아무것도 안 물어봤는데요.”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지난번에 아르카나 뒷골목의 술집에 갔을 때 이미 눈치챈 지 오래였다. 안 해봤다고 하기엔 샤샤리아를 너무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 걸 하고도 멀쩡한 건 고대 마법사의 방대한 마력 때문인가.

    그러고 보니 메이슨의 눈 밑이 퀭하니 어두워 보였다.

    단명한 비운의 천재 발명가라고 알려진 이유가 중독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라크시스는 갑자기 아무렇지 않은 척 메이슨에게 힘주어 말했다. 아니, 난 그쪽에게 아무것도 안 물어봤다니까.

    “앞으로 저런 마스크를 쓰고 시체를 묻는 일은 하지 않는 게 좋겠어. 재키 레이븐으로 오해받기 싫으면 말이야.”

    “사실 그런 오해를 사려는 의도도 살짝 있었지만요.”

    도대체 왜?

    “시체 도굴꾼들은 위험해요. 시신 값이 상당하다 보니까 그, 시신을 만들어서 파는 도굴꾼도…….”

    요약하자면 최근 몇 년 사이 파리스 맨틀러 교수를 필두로 한 의사들이 끊임없이 후학을 양성하면서 의사 교육에 필요한 해부용 시신의 수요가 크게 늘었다는 것이다.

    죽은 환자를 연계된 장의사에게 넘겼다가 곧바로 받아오는 건 예삿일이었다. 대학 측에서 도굴꾼에게 먼저 접선하기도 했다.

    시체 도굴꾼들은 날이 갈수록 횡행했다. 시체를 얻기 위해서 위험한 짓도 서슴지 않았다. 내러 지구의 노숙자들이 종종 실종되는 것이 바로 그들의 짓이라는 소문이 있을 만큼.

    “재키 레이븐의 악명을 이용해서 그들을 피해 다녔다는 말이네요.”

    “그렇죠.”

    그런데 그런 악명높은 범죄자는 대부분 본인 범죄에 대한 프라이드가 높았다. 자신을 사칭한 사람이 있는 걸 알면 위험해질지도 모른다.

    내가 형사나 심리학자라서 아는 건 아니었다. 재키 레이븐은 후대에도 유명했다. 특유의 범죄 수법과 끝까지 밝혀지지 않은 정체 탓에 소설과 연극까지 등장하고 말았지.

    “조심하세요. 재키 레이븐은 본인을 사칭하는 사람을 가만히 두고 볼 성격은 아닐 테니까요.”

    “탐정님의 말이니까, 믿을게요.”

    “제 말이니까 믿으란 건 아니고요. 진심으로 걱정하는 거예요.”

    라크시스가 조용히 기침 소리를 냈다.

    “음, 로렌.”

    그가 코트 안주머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 들곤 기다란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렸다. 벌써 자정이 넘었어?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흘러있었다.

    본연의 목적을 달성할 때였다.

    “미스터 비렌체. 어쨌거나 저희는 당신에게 의뢰를 하러 온 사람들이에요.”

    “아, 그러셨었죠! 레이디, 어떤 발명품을 원하시나요?”

    발랄한 메이슨의 목소리에 라크시스의 나직한 음성이 겹쳐 들리듯 머릿속을 맴돌았다.

    ‘광룡의 봉인은 생각보다 작은 크기일 겁니다.’

    라크시스의 저택에 초대받았던 첫 번째 시간 여행. 한밤의 정원에서 일기장을 다 읽고 난 그가 그렇게 말했다.

    일기장 속 시아 켈튼의 행적을 봤을 때 카얄이라는 작자가 같은 고대 마법사인 라크시스의 눈을 피해 봉인을 파괴한 것을 보면 아마도 쉽사리 찾아내기 힘든 형태일 것이라는 것이다.

    애초에 누구도 인지하지 못했던 봉인이었다. 시아도 라크시스도 일기장이 아니었다면 알아채지 못했을 테니까.

    그런데 본인이 한 봉인을 모를 수가 있나? 고대 마법사씩이나 된다는 사람이?

    라크시스는 봉인을 찾을 수 있는 단서는 오로지 시아만이 쥐고 있다고 했다. 그녀가 시간 여행을 통해 도착한 곳엔 광룡의 봉인이 있을 테니까.

    ‘그리고 메이슨 비렌체 저 남자도 단서일 테지.’

    공동묘지에서 마주쳤던 역병 의사 살인마가 발명가 메이슨 비렌체였던 건 정말 행운이었다.

    마도 시대의 발명엔 자고로 마정석이 쓰이는 법. 하지만 메이슨 비렌체가 누구인가. 마정석이 범람하는 시대에 갈리프콜 비행선을 고안한 사람이 아닌가.

    봉인의 범위가 한순간에 좁아졌다.

    이런 속도 모르고 회색 더벅머리 남자는 순박한 표정으로 의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진지하게, 메이슨이 믿을 수 있도록.

    다시 한번 사설탐정 로렌 허슬러의 가면을 썼다.

    “마정석을 이용한 발명품을 전부 보여주세요. 미스터 비렌체.”

    그런데 저를 보는 라크시스의 표정이 묘한 건 기분 탓일까.

    * * *

    ‘너무 많잖아!’

    이미 만든 것, 구상 중인 것, 만들기 시작하면 되는 것. 도대체 어디서 가져오는 건지 메이슨은 설계도며 완성품, 샘플까지 끊임없이 들어 나르고 있었다.

    너무 큰 건 가져올 수 없어서 직접 지하에 내려가서 봐야 한다나 뭐라나. 메이슨이 그렇게 말하기 전까지 이 건물에 지하가 있는 줄도 몰랐다.

    이런 건 예상 못 했다고.

    그가 후대에 유명해진 건 고온 액화 갈리프콜을 동력원으로 사용하는 발명품들을 만들어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마정석 범벅이 아니라!

    아기 다루듯 발명품을 조심스럽게 들고 계단에서 올라오던 메이슨을 붙잡았다.

    “마정석을 이렇게 많이 쓴다고요?”

    “마도 시대잖아요? 동력원으론 마정석만 한 게 없는걸요.”

    당신, 갈리프콜 발명가 아니었어? 면전에 대고 그렇게 외치고 싶은 걸 애써 꾹 참았다.

    라크시스는 와중에 태연하게 산더미 같은 설계도를 하나씩 훑어보고 있었다.

    “로렌. 미리 말해줄 걸 그랬네요.”

    “뭐를요?”

    “이 건물, 지하 삼 층까지 있어요.”

    지하 삼 층이라고? 소리 없이 머리를 쥐어뜯었다. 어느 세월에 이걸 다 확인하냐고.

    라크시스의 눈치가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한마디 했다.

    “로렌. 무슨 생각으로 마정석 발명품을 다 보여달랬던 건가요.”

    “미안해요. 제가 실수했어요.”

    마법사가 아닌 시아는 마력을 감지할 수 없었다. 광룡의 봉인 자체는 라크시스가 찾아주기로 한 거였다. 그녀가 벌인 판을 라크시스가 치우는 셈이었다.

    미안한 마음에 집게손가락을 머리 양쪽에 안테나처럼 세우며 농담 삼아 물었다.

    “그런데 그 레이더로 광룡의 봉인은 감지할 수 없나요?”

    “레이더요? 그게 뭔가요?”

    아, 아직 없던가. 라크시스가 처음 듣는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하, 요르문의 마류 탐지기 같은 거려나요.”

    보아하니 칠십 년 후에나 존재하는 물건인 것 같았다. 라크시스는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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