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1화 (10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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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드윅가 3번지.

    콜트 수상과 그의 아내, 알리사 콜트 부인은 관저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관저의 문이 열리자 수첩을 든 기자들이 눈을 번뜩이고, 카메라 플래시가 여기저기서 반짝였다.

    “총리 각하, 해외로 도피한 렉스 의장이 엠머하임 공화국의 간부들과 내통한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메르고빌 영애와 각하의 아드님이 같이 관저에 방문한 건 무슨 이유에서였습니까?”

    “두 분께서 꽤 깊은 사이처럼 보이던데, 이에 대해 한 말씀 해 주시겠습니까?”

    수상은 대답하지 않고 문 앞에 꼿꼿이 서 있는 경호원을 지나쳐 걸음을 옮겼다.

    금방 그의 운전기사가 문을 열어 주었고, 콜트 부인이 먼저 차에 탔다. 두 사람을 태운 차량은 금방 출발했다. 운전기사가 기자들로 그득한 거리를 벗어나며 물어왔다.

    “어디로 모십니까?”

    “먼저 황궁으로 가겠네. 그다음에 내 아내를 세인트 마르텔 병원으로 모셔 주게나.”

    “예.”

    꼿꼿하게 앞을 바라보고 있는 수상의 모습 뒤로 기자들이 비추었다. 그 모습이 점점 작아지자 차 안의 정적 속에서 알리사 콜트 부인이 입을 열었다.

    “있잖아요, 니콜라우스.”

    수상은 고개를 무심코 돌렸다가 아내의 진지한 표정에 놀란 얼굴이 되었다.

    “병원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모양이지?”

    “아뇨. 병원엔 아무 문제 없어요. 자꾸만 우리 아들이 데려온 그 레이디 생각이 나서요.”

    “왜. 마음에 들지 않아?”

    “아뇨. 그 반대에요.”

    콜트 부인은 당치도 않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 영애, 내색은 않고 있었지만 겁에 질려서 우리 눈치를 살피고 있었잖아요. 내가 그 영애를 내치면 이제는 어떻게 되는 걸까, 하고 의식하면서 행동하는 게 눈에 밟혀서요.”

    “그래.”

    수상은 아들과 함께 인사를 하러 온 비비안느 영애를 잠시 회상했다. 겉으로는 의젓하고 침착해 보였지만 그 이면에는 동요가 있었다. 수상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그 아가씨도 아까 우리가 봤던 기자들을 뚫고 왔을 테니 질문 세례에 놀랐겠지. 우리가 구설수로부터의 보호막이 되어 줄지, 우리 아들 사이를 가로막는 장벽이 될지 걱정했을 거고.”

    수상이 아내를 흘깃 살핀 뒤 물었다.

    “이런 말을 하는 걸 보면, 당신은 조금 더 구김살 없는 애를 며느릿감으로 원하는 건가?”

    “아뇨! 그럴 리가요.”

    알리사가 거세게 부정하자 수상은 웃었다. 수상의 미소를 훑은 알리사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당신은 정말 짓궂어요. 이렇게 나를 놀리니 말이에요. 난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그 아가씨와 어떻게 가까워질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있었어요.”

    “그럼 그 아가씨가 싫은 건 아니고.”

    “물론이죠. 당신이 말했잖아요. 메르고빌 영애가 마냥 어리고 여러 보여도 나를 닮은 강인한 구석이 있다고.”

    “그럼. 스물두 살의 나이에 귀족 영애의 삶을 박차고 가문 밖으로 뛰쳐나갔으니 말이야.”

    “그러게요. 그런 영애를 어떻게 싫어하겠어요.”

    “방금 말한 게 작년의 일이었고, 올해에는 출가한 뒤 샹프니야에서 외식업체들의 메뉴를 번역하는 일을 했었다지. 내가 그 이야기도 했었나?”

    “그럼요. 몇 번이나 들었죠. 영애가 원한다면 통역이나 번역을 전문적으로 배워볼 수 있게 도울 생각이에요.”

    “그래. 당신이라면 그 영애가 정신적으로도 메르고빌 가문에서 독립하게끔 잘 도와줄 거야. 당신도 보수적이기로 이름난 세노윅 가문을 박차고 나온 귀족 영애였으니까.”

    “그러게요. 당신을 만나서 이제는 콜트 부인이 되었죠.”

    처녀적 이름은 알리사 세노윅, 현재는 알리사 콜트 부인이 된 그녀가 오래전 기억을 떠올리며 향수에 젖었다. 그러다 그녀는 무엇이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그런데 아까 에드문드와 단둘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던데, 그게 뭔지 알려 주시지 않을 건가요?”

    “아, 별것 아니었어. 에드문드가 사돈이 될 메르고빌가를 위해 작은 부탁을 드리고 싶다는 말이었지.”

    “부탁이요? 무슨 부탁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정확히는 황제 폐하께 제 요청을 전해 달라는 거였어. 그러니까….”

    그때 마침 차량이 황궁의 정문 앞에 도착해 멈추었다. 수상은 온정 넘치던 표정을 갈무리하고는 아내에게 말했다.

    “다녀와서 말해 줄게. 이따가 관저에서 이야기할 시간이 충분할 테니 말이야.”

    알리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곧 시종이 문을 열어 주어 수상은 차량 밖으로 걸어 나가 앞으로 향했다. 콜트 부인만을 실은 차는 세인트 마르텔 병원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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