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4화 (9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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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문드는 비비안느의 손길에 결국 이성을 잃어버렸다. 문제가 될 게 있다면 그가 지금 서 있는 장소가 정원 분수대였다는 것이다.

이대로 그나 비비안느, 둘 중 하나의 방으로 가기에는 사용인들에게 드러내 놓고 두 사람의 관계를 과시하는 것 같았고 두 응접실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저택 본관의 응접실은 이미 식사를 마친 세노윅 방계와 선대 공작이 쓰고 있었다. 저택의 별채처럼 여겨지는 사저의 응접실, ‘크림슨 룸’은 선대 공작 부인과 셸던 모자의 차지였다. 문밖으로 흘러나온 목소리만으로 그건 자명했다.

그래서 에드문드와 비비안느, 두 사람은 점잖게 다과나 즐기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사용인들에게 전시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면 사저의 그림 구경이나 할까요.”

결국 비비안느가 사저의 유명한 화랑이나 거닐자는 제안을 했다. 에드문드는 별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는데.

그랬는데….

“언제 봐도 네 몸은 예뻐.”

왜 사저의 마구 보관실에서 그의 무릎 위에 그와 마주 본 채 앉았는지 모를 일이었다.

에드문드의 구둣발 앞에 비비안느의 블라우스가 떨어져 있었다. 장소는 어두웠으나 그녀의 흰 살결만큼은 그에게 선명히 보였으리라.

비비안느는 그의 말에 괜히 부끄러워져 팔짱을 끼고는 몸을 움츠렸다. 에드문드는 여체를 아슬아슬하게 가리는 그녀의 긴 머리카락을 어깨 뒤로 넘기고는 그녀를 감상했다.

“그림 구경하기로 했었잖아요. 결혼 전까지는 공작저 사용인들이 낯 붉힐 일은 하지 말자고.”

비비안느의 부은 입술이 그에게 목소리를 속살거렸다. 에드문드가 낮게 웃는 목소리, 그리고 그가 제 팔짱 낀 팔을 가슴으로부터 떼어 놓으려 움직인 것이 퍽 자극적이었다. 그가 움직이자 그녀의 본능을 끌어 올리는 체향이 밀려들었다.

“조각을 구경하는 게 더 재밌는 것 같아서.”

그 말만으로 결국 그가 이겼다. 그녀가 방심한 사이에 그의 손이 그녀의 상체를 아슬아슬하게 가리던 팔짱을 풀었다.

굳은살 박인 손이 그녀의 맨등을 쓸어 올리며 육감을 자극했다. 그가 가까이 다가가 그녀의 살갗을 베어 물자 그녀의 입술 사이로 숨이 새었다.

“그러고 보니까 옛 기억이 나는데.”

그는 집요하게 제가 물었던 것을 지분거리다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동자에 비친 비비안느의 얼굴은 잔뜩 달아올라 있었다. 그의 손이 그녀의 허벅지를 천천히 쓸자 그녀의 허리가 통 튀었다.

“어느 정숙한 귀족가 아가씨께서, 여기서 무언갈 원하지 않았던가.”

그의 손길이 천천히 올라가 그녀의 허리를 쓸어올렸다.

“너무나도 원해서, 내게 투정도 부렸잖아. 해 달라고.”

그는 다시 고개를 숙여 비비안느의 유백색 몸에 입을 맞추었다. 매끄러운 굴곡이 바깥의 화랑에 놓인 고전적 여신 조각상 같았다. 비비안느의 등을 끌어당기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가자 그녀 입술 사이로 앓는 소리가 났다.

“이제는 내가 네 남편이 될 거고, 네가 내 아내가 될 텐데. 공작 부인을 비롯해 보는 눈도 없고. 걸릴 것도 없지 않나?”

그가 뻐근한 몸을 달래려는 시동을 걸며 몸을 소파 쪽으로 천천히 물렀을 때, 앞으로 기울어져 오던 비비안느가 그의 어깨를 짚고는 말했다.

“있어요.”

“있어?”

에드문드가 한쪽 눈썹을 찡그렸다. 비비안느는 상기된 볼을 하고서도 언제 그의 기세에 휘말렸냐는 낯으로 부연했다.

“네. 부모님이요.”

“세상에 너라는 축복을 내려 준 분들?”

그렇게 말하며 그가 다시 분위기를 잡으려 한 것과는 무색하게 비비안느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공작님께는 메르고빌 후작 각하와 후작 부인이시겠죠.”

“…….”

“물론 부모님을 거스르고 공작님과 이대로 결혼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건 아가씨의 성미에는 맞지 않겠지.”

“그렇죠?”

“왜 의문형이야.”

“공작님께 고귀해 보이고 싶어서 품위에 집착한 건데, 정작 제 체면을 살려 주고 있는 게 공작님이라는 게 의식되어서요.”

“에드문드라고 불러 봐.”

그 주문에, 비비안느는 할 말이 없어졌다.

마지막으로 그를 에드문드라 불렀을 때, 그는 도리어 제게 용서를 구하라 하지 않았나. 그 생각을 하면 아직도 그의 어깨를 세게 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비비안느는 입을 열었다.

“왜요?”

“네가 내 이름을 부르는 걸 듣고 싶어서.”

“싫어요.”

“왜.”

“그냥 싫어요.”

비비안느가 자리를 뜰 양 무릎으로 선 채 그를 올려다보자 그의 손이 그녀의 허벅지 안쪽을 쓰다듬었다.

“이래도?”

그가 물어 오자 비비안느는 얄궂은 제 남자의 손길을 느끼며 그의 어깨를 짚고, 그를 내려다보았다.

“네.”

“그러면 내가 네 부모님 마음을 돌려놓을 수 있다고 해도?”

“공작님은 한다고 하면 하는 사람이니까, 어떻게 할지는 의심이 안 되는데. 그것보다는 더 노력하셔야 할 거예요.”

“그럴 거라고 약속하지.”

“…믿을게요.”

비비안느가 속삭였다. 곧 그의 손이 위로 향해 그녀에게 파고들었다.

“그럼 지금은 네가 하고 싶었던 다른 걸 할까.”

이번에도 대답 대신, 비비안느는 단단한 어깨를 짚은 손을 내려 그의 타이를 끌어당겼다. 자극이 강해지자 그녀의 눈이 자연히 감겼다. 그녀는 정각을 알리는 괘종시계 소리를 몇 번 들었는지를 잊을 만큼 이곳에서 언젠가 그에게 원했던 것을 차고 넘치도록 얻어 냈다.

그 정도가 너무 과해 방으로 돌아가는 길이 두려워질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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