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화 (7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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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드빅은 수상하게 끊어진 전화 때문에 탐색을 잠시 정리하고는 예식장으로 향했다. 고작 수색할 저택 두 개를 남겨 두고서였다.

딱 이번만큼이라도 저번 경마장에서 비비안느에게 저지른 실수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를 우선으로 생각하고 싶었다.

그렇기에 뤼드빅은 에드문드 콜트의 정체를 폭로할 수 있는 자료를 찾지 못한 채 체포되었다.

그가 차를 도로변에 멈추고는 차창에 드리운 체포 영장을 훑었다. 그렇게 차에서 내리자마자 턱이 차의 보닛에 처박혔고, 눈이 번쩍할 새 두 손목에는 수갑이 채워졌다.

“CID 소속 경찰입니다. 뤼드빅 렉스. 당신을 탈세, 밀수, 1급 살인, 폭행, 키안 스미스의 살인 교사 혐의로 체포하겠습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으며….”

천천히 눈을 떠 보니 하늘이 너무나도 푸르러서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렇게 연행된 그는 조사실로 불려 가 윌슨 경사와 마주 보고 앉았다.

한때는 그에게 고개를 숙였던 윌슨 경사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그를 맞이했다. 서늘한 눈이 유독 그림자 속에서 더 빛을 발했다.

“앉아 계시지요. 곧 치안총감께서 오실 겁니다.”

“내 변호사를 부르고 싶은데.”

“마음대로 하시지요.”

“…부를 변호사는 있나, 자네?”

그 목소리에 윌슨 경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경례를 했다.

치안총감이 걸어 들어오며 쯧쯧 혀를 찼다. 뤼드빅의 안광이 그의 걸음걸이를 뒤쫓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치안총감은 윌슨 경사를 격려하듯 그의 어깨를 툭툭 쳐 주고는 말했다.

“자네는 이만 나가 보게나. 수고했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고, 치안총감은 윌슨 경사의 빈자리를 채웠다.

“당장에라도 이곳을 떠나고 싶은 눈치군. 이해할 만도 해. 결혼식까지 한 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지?”

“…….”

“믿는 구석이었던 아버지의 축하를 못 받을 테니 유감이야. 렉스 일가가 새벽 사이 망명했다고 들었네.”

뤼드빅의 눈빛이 변하는 걸 본 치안총감이 냉소를 흘렸다.

“아, 자네는 모르고 있었나? 그나저나 자네는 그 ‘일가족’에 포함되지 않았던 모양이로군. 여기에서 남겨진 애완견처럼 아버지의 집과 집 사이를 쏘다니며 흔적을 찾아다녔다니 말이야. 사저에 보관해 두었던 암흑가 세력에 대한 자료를 찾는 거라면….”

“…….”

“없을 텐데.”

“무슨, 말을 하시는 건지.”

뤼드빅이 이를 으득 갈며 말했다. 치안총감은 그를 위해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자네는 자넷 왓킨스가 어떻게 흔적도 없이 망명했는지 아나? 의장이 사라진 것도 비슷한 원리일 걸세. 둘 다 암흑가 수장의 작품이었을 테니. 그러면 여기서 내가 질문 하나만 함세.”

“…….”

“자네의 아버지는 무엇을 대가로 일가족의 망명을 보장받았을까?”

뤼드빅은 자신이 여태껏 찾아다니려 했었던 자료를 떠올리고는 손등에 핏줄이 불거질 때까지 주먹을 꽉 쥐었다.

이 일을 예견하고 먼저 제국을 뜬 아버지는 결국 꼬리를 자르고 저에게 독박을 씌울 생각이었던 것이다.

뤼드빅 렉스는 제 주제를 알았다. 그가 왜 자신을 양자로 입적했는지도.

하지만 정말 그날이 오자 속이 쓰렸다.

제가 물러졌기 때문이다.

오늘 비비안느의 목소리를 듣고 예식장으로 향하지만 않았더라면, 아니.

애초에 가족이 제 앞에 엘레노어 카스터를 밀어 넣든 말든 혼전에 에드문드 콜트의 정체를 폭로했어야 하는 것이다.

그는 패배의 낭떠러지에서도 정신을 차리려 노력했다.

“그간의 노력이 모두 물거품으로 돌아간 셈인가? 다시 그 자료들을 모으기에는 돈도, 시간도 없을 텐데. …어차피 자네에게 협조했던 이들도 모두 에드문드 콜트의 사람이었으니 뭐 부질없겠지만.”

그 말을 듣고 뤼드빅은 실소했다. 역시 이거였나.

에드문드 콜트 백작은 저를 손바닥 위에 두고 가지고 놀았던 것이었다.

엘레노어 카스터를 보내 어머니를 자극하고, 이대로는 일이 성공해도 신부가 바뀔 거라는 위기감을 느끼게 해 폭로를 유보하게 만들었다.

뤼드빅은 애써 정신을 차리려 하며 자문했다.

비비안느 메르고빌이 제게 기회를 주겠다는 듯 행동한 것도 모두 이날을 위해서였을까?

그렇든 아니든 정답은 영영 모를 것이다.

패배의 쓰라림을 음미하기도 전에 치안총감이 말을 이었다.

“경시청은 자네를 기소할 걸세. 그리고 자네가 그 대단한 변호사를 찾아가 얼마를 쏟아 가며 항소하든 자네 아버지는 자넬 지켜 줄 수 있는 곳에 더는 없겠지.”

다아트로 제국에는 타국과는 다르게 검찰이 없으므로 경시청이 기소권을 독점한다.

그러니 치안총감이 이렇게 말했다면 기를 쓰고 그를 법정에 보내겠다는 것이다.

그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늙은이가 훈수 좀 두자면, 엘레노어 양은 에드문드 콜트 백작이 자네에게 관대하게 베풀어 준 망명 선택지인 동시에….”

치안총감이 조사실 책상 위에 놓인 파일을 열어 오려진 오늘 자 신문 1면을 흔들었다.

“…암흑가가 이런 물밑 작업을 완성할 때까지 시간을 벌어 줄 수단이었지.”

언론.

여론.

그러고는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스모킹 건(Smoking gun, 결정적 단서), 캐롤리나 러셀라의 유서.

여론은 뒤집혔고, 뤼드빅 렉스는 결국 압도적인 열위에 놓이게 되었다.

“신문 기사의 헤드라인은 읽어 봤나? 기자들은 자네가 악당이 되어 주기만을 기다렸던 것 같더군.”

치안총감이 말하며 다른 손으로 작년의 기사를 들어 올리자, 두 헤드라인 사이의 극명한 대비가 드러났다.

하나는 작년에 화제가 되었던 수상 아들로 위장한 요원의 첩보 작전을 다룬 기사였다.

에드문드 콜트로 위장한 요원의 사진이 1면에 있었다.

하나는 캐롤리나 러셀라의 유서를 담은 기사였다.

그 유서 옆에는 눈을 까맣게 칠한 자신의 사진이 놓여 있었다.

선과 악.

그 명료한 대비.

이 두 얼굴 중 누가 암흑가 수장인지 고르라 하면 길거리의 어린아이도 제가 있는 쪽을 고를 것이다.

치안총감이 거봐라는 듯 말했다.

“그러게 진즉 그 샹프니야 여자를 잡았어야지, 백작이 자네가 내뺄 수 있었던 기회를 줬을 때. 아니지. 자네는 애초에 메르고빌가와의 파혼을 진행했어야 하네.”

“치안총감께서는 어찌 이 모든 걸 잘 알고 계시는지.”

뤼드빅은 분노를 억누르며 뇌까렸다.

“나도 암흑가의 수장과 모종의 거래를 했으니까.”

대답은 바로 돌아왔다.

“정보국이 아닌 경시청 측에 자네를 넘겨 달라는 거래를 했었다면 이해할까? 암흑가 측은 희생양이 필요했고, 우리는 마침 실적이 필요해서 합의를 봤지.”

“오만한 생각들이십니다.”

뤼드빅은 마음속으로 암흑가와 경시청을 마음껏 비웃으며 말했다.

“제가 그 과정 내내 조용히 있을 것 같습니까? 그깟 자료들, 빼앗아 버리셨지만 유감스럽게도 제 머릿속에 다 있습니다. 밑바닥에서 이 자리까지 올라온 제 기억력이 그렇게 후질 거라 생각하셨다면 실망이군요.”

“그러고 보니 자네, 렉스가 사업 계약서에 비비안느 영애의 서명을 빌리지 않았나?”

치안총감의 말에 뤼드빅은 얼어붙었다.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 찰나 치안총감이 노련하게 말을 이었다.

“다행히도 에드문드 콜트 백작이 그 부분은 이미 손을 써 두었지. 올해의 약혼 발표 연회에서였나? 백작이 영애를 수상 관저에 데리고 가서 자네의 희생양으로 소개했다더군. 서명도 자네의 위압에 의해 이름만 빌려준 것으로 수상께 설명하게 했다고 들었네.”

“…….”

“재판이 끝나면 자네는 사형당할 걸세.”

그 말을 마친 치안총감이 파일에서 팔랑, 하고 무언가를 꺼냈다.

백지로 된 진술서였다.

“서명하게나.”

“…….”

“이곳에 무슨 말이 쓰이든 혼자 다 안고 갈 것이라는 서약이라네.”

뤼드빅이 핏빛처럼 붉은 눈으로 치안총감을 바라보았다.

치안총감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부연했다.

“대신 순순히 서명한다면, 비비안느 영애는 피해자로 남겠지. 반대로 자네가 백작을 폭로한다면 비비안느 영애를 포함한 셋 모두 진창으로 빠지는 거 아니겠나.”

“…….”

“속되게 말해, 자네가 말단이라는 게 밝혀져 형량 덜 받으면 그동안 누가 영애를 지켜 준단 말인가. 진실? 진실이 밝혀져도 세상이 자네에게 등을 돌린 판국에 누굴 상대로 거래를 해 보겠다는 거지? 수상이 너 같은 더러운 놈을 상대로 진실과 자유를 맞바꿔 줄 것 같나.”

“…….”

“백작의 정체가 드러나면 나 또한 이 자리에 없을 것이고, 자네 약혼자의 처분은 언제든지 이해관계에 따라 바뀔 수 있어. 그 와중에 비비안느 영애는 레이디의 몸으로 고된 심문을 받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백작을 살려 두면 백작은 무조건 영애를 지킬 거다.”

그 말에 뤼드빅은 실소했다. 그러고는 다시 한번 생각한다.

비비안느 메르고빌도 이 일을 알고 있을까.

제 마음을 알아채고 철저한 계산하에 폭로를 유예하게 했을까.

그리하여 제가 감언에 홀려 체스판의 끝에 거의 다다르고도 죽어 버린 기물이 되어 버린 걸까.

모르겠다.

그는 기억들을 되짚어 보며 생각했다.

그때 비비안느와 보냈던 크고 작은 순간들을 생각하면 좋았다는 기억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비비안느가 저와 그녀를 ‘우리’라고 불러 주었을 때.

제게 친절하게 대해 주면 된다고 친히 일러 주었을 때.

로열 더비가 끝나고 그녀와 봄이 온 길거리로 드라이브를 갔을 때.

그때 들었던 고맙다는 말.

그녀의 친구들에게 제대로 된 식사를 대접할 수 있었을 때.

그녀와 말없이 걸으며 보았던 밤거리.

그 순간들은 틀림없이 찬란했다.

그러니 되었다.

배신이건 아니건 상관없었다. 이제야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 그 여자 때문이다.

모든 게.

아버지의 양자로서 살아온 삶의 시작부터 그 삶을 포기하게 만든 지금까지도.

그는 망설임 없이 펜을 집어 들어 백지 진술서에 제 이름을 서명했다.

“고맙네.”

그리고 치안총감은 곧 자리에서 일어나 바깥으로 나갔다. 경관들에게 연행되어 유치장으로 걸음을 옮기던 뤼드빅은 문득 창밖을 훑었다.

그곳에는 수많은 인파들이 몰려와 있었다. 캐롤리나 러셀라 추종자 놈의 사건을 빌미로 저의 재수사를 촉구하는 그 행렬들이겠지.

그새 수가 더 는 것 같아 보였다. 구호 소리가 어찌나 큰지 여기까지 들릴 정도였다.

그 광경을 본 뤼드빅은 잠시 피로한 눈을 감았다.

저의 완벽한 패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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