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2화 (6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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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나 사교 행사에 대해선 완벽한 관조자의 입장을 취했던 비비안느의 부모님은, 역시나 로열 더비에도 불참할 것을 통보했다. 비비안느는 그들이 렉스 의장 부처를 만나고 싶지 않아 해서일 거라 유추했다.

    부모님은 속 편하게 집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사용인들의 입을 통해 오늘의 승패 소식만을 전해 들을 생각이었다.

    비록 그들에게 오늘 일에 대해 단언했어도 그들만큼 걱정이 되는 것은 사실이라, 비비안느는 경마장으로 가는 길 내내 마음을 졸였다.

    역시 제일 신경 쓰이는 일은 백작저에서의 일이 또다시 렉스 부인 측 사람들에게 새어 들어갔을까 하는 것이다.

    비비안느도 사람이었던지라 그녀의 행실에 대한 이야기를 남의 입을 통해 듣는 게 그리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저번에는 고작 무도회에서 백작과 같이 춤을 춘 것뿐이었지만 이번엔 백작의 저택을 찾아가 시간을 보내고 경주마를 따내 황녀의 말과 교환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게 어떻게 와전될지는 불 보듯 뻔해 비비안느는 치맛자락을 꽉 움켜쥐었다.

    렉스 부인이 그걸 어떻게 이용할지도.

    경마장 안으로 들어가 사람들 사이에 앉아 있는 렉스 부인을 발견할 때까지 비비안느는 긴장감을 내려놓지 못했다.

    ‘일찍 왔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다들 모여 있잖아.’

    의장 관저 응접실에서의 일이 되풀이되는 건 피하려 했으나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들에게로 비비안느가 가까이 걸어가자 또 저를 언급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렉스 부인 주위에 앉아 있는 귀부인들 중 하나였다.

    “로열 더비라. 하필이면 시기가 또 이렇게 공교로울 수가 있나. 하늘이 돕긴 했다만 솔직히 영애가 이길 것 같진 않네요.”

    “맞아요. 머리 썼다는 건 인정해요. 그런데 그 집 형편에 좋은 종마를 구했겠어요?”

    다른 귀부인이 받아치자, 먼저 말했던 귀부인이 목소리를 높였다.

    “전 메르고빌 영애가 현명했다는 데에는 반대해요. 오히려 이런 우아한 방식으로 구닥다리 아드님 약혼자를 쳐 낸 렉스 부인이 찬사를 받아야 한다면 모를까. 정말 똑똑하세요, 렉스 부인.”

    “맞아요. 이런 방법을 생각해 내시다니요.”

    정작 렉스 부인의 표정은 좋지 않아 보였다. 비비안느는 그게 제가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황녀의 말을 빌려 올 거라 호언장담한 것 때문인지, 아니면 제 행동의 본질을 다른 사람들이 멍청하게도 입으로 말해 주고 있어서인지 몰랐다.

    그러면 알아봐야지.

    비비안느는 렉스 부인의 옆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어떤 방법이요?”

    그 말에 귀부인들 모두 다른 곳을 쳐다보며 목청을 고르는 척을 했다. 할 말이 없었는지 그들 중 하나가 제가 앉은 곳을 공연히 가리키며 말했다.

    “그나저나, 그 자리. 렉스 부인의 아드님께서 앉을 곳 아닌가요? 영애의 자리는 한 칸 떨어진 곳으로 알고 있는데.”

    “제가 이번 기회에 어머님과 더 친해지고 싶어서요.”

    “어머.”

    귀부인이 그런 말대답을 들을 줄은 몰랐는지 입을 벌리고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했다.

    비비안느는 한술 더 떠서 렉스 부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안 그래도 제 지혜가 많이 모자라는데, 현명하신 렉스 부인께서 제게 식견을 나누어 주실 수도 있고요.”

    그 말에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그제야 렉스 부인이 나서려는지 입을 열었다.

    “오늘 영애가 내 가문의 이름을 빌려 내놓은 말은 근사해야 할 겁니다.”

    “여부가 있겠어요, 어머님.”

    비비안느가 싱긋 웃자 다들 시선을 돌렸다. 몇몇은 날씨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대화 상대가 없었던 그녀는 하늘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며 그들의 말에 공감했다.

    로열 더비가 열리는 날은 유독 날씨가 좋았다. 하지만 날씨보다 더 큰 눈요깃거리는 단연 관중석 상석의 황족들이었다.

    확성기를 타고 퍼지는 경마 해설자의 말에 비비안느도 사람들을 따라 황족들이 있는 곳을 훑었다.

    “아! 2황녀 전하께서 두 분 폐하와 입장하십니다.”

    황족을 볼 일이 그렇게 많지 않았던 다아트로 제국 귀족들은 경외의 눈빛을 담고 그들을 올려다보았다.

    황궁 마구간에서의 일이 아니었다면 비비안느도 마찬가지로 그랬겠으나, 이제 2황녀는 그녀에게 공포만 안겨다 주는 존재였다.

    “2황녀 전하께서 손을 흔들어 주시는군요. 영광입니다. 아, 그런데 2황녀 전하 곁에 새로운 얼굴이 보이는군요. 저분은 황녀 전하의 연인일까요.”

    비비안느는 그 순간 2황녀의 옆에 있는 뜻밖의 인물을 바라보았다.

    ‘에드문드.’

    그간 비비안느는 2황녀가 왜 그렇게 자신에게 잔인하게 굴었는지를 생각했었다.

    자존심이 긁혀서일 거라고 당연히 결론지었는데, 그게 아니라 만일 질투심 때문이다면.

    애초에 그녀가 원했던 건 명마 ‘헤게모니’가 아니라 그 명마의 소유주였던 모양이었다.

    자신을 부른 건 넌지시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떠보고 싶었던 거고.

    마침 2황녀가 자신이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비비안느는 재빨리 제 구두코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저 높은 단상 위에 있는 2황녀가 바라본 건 수많은 관중일 텐데도 그날 마구간에서 일어났던 일이 생각나 시선을 마주할 수 없었다.

    “비비안느 영애.”

    그때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비안느 영애!”

    비비안느는 화들짝 놀라 목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보았다.

    렉스 부인 옆에 앉은 귀부인이 아까와는 다른 표정을 하고 말했다.

    “지금 마침 6번 경주마 ‘네메시스’를 소개하는 것 같네요. 2황녀 전하께서 비비안느 영애를 위해 빌려주신 것이라 하던데, 사실인가요?”

    “아.”

    비비안느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귀부인은 기대 어린 낯이었다.

    “네. 2황녀 전하께서 제게 빌려주셨어요.”

    비비안느는 가까스로 답했다. 긍정적인 반응인 것을 보면 그날 황실의 마구간에서 있었던 일이나 자신이 저 명마를 얻어 온 과정에 대해서는 소문이 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황실이 얽힌 일이니 그쪽에서 손을 써둔 것 같았다.

    ‘2황녀가 에드문드를 남몰래 좋아하고 있었다면 설명이 돼. 황실은 구설수가 많은 남자를 황녀의 남편감으로 인정하지 않을 테니까.’

    비비안느가 안도하고 있을 때 신난 귀부인이 렉스 부인에게 말했다.

    “황가와의 인맥을 둔 며느리라니. 이쪽도 꽤 나쁘지 않았군요.”

    렉스 부인은 팔짱을 낀 채 석연치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저 말이 로열 더비에서 이겨 준다면, 내 면도 서고 얼마나 고마운가요. 두 가문 간의 결합이 더 공고해지도록 해야겠지요.”

    “감사합니다, 렉스 부인.”

    “감사는요. 오히려 능력 있는 며느리를 들이게 되는 내가, 고마워해야 하는 게 맞지요.”

    렉스 부인의 목소리 끝에는 비릿한 기색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잠깐 옆으로 자리를 옮겨 주어야 하겠어요.”

    렉스 부인이 말하자, 비비안느는 고개를 돌려 제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는 쪽을 바라보았다.

    뤼드빅이 제 양어머니의 말을 못 들었다는 듯 비비안느의 옆자리를 채웠다.

    렉스 부인이 한마디 하려고 했을 때.

    “어머, 새신랑 될 렉스가 차남 아니야…!”

    귀부인들이 호들갑을 떨자 렉스 부인은 입을 다물고는 고개를 돌렸다.

    “어머니.”

    뤼드빅이 렉스 부인에게 눈인사했다.

    비비안느는 그가 렉스 부인을 ‘어머니’라고 불렀다는 것에 놀라면서도 그 말을 할 때 그의 목소리가 얼마나 차가운지를 실감했다.

    “잘 왔구나. 수상 각하와 이야기는 했니?”

    이런 자리에서도 일 이야기를 꺼내는 걸 보면 렉스 부인과 뤼드빅은 가족이 아닌 비즈니스로 뭉친 상대 같았다.

    렉스 부인이 응접실에서 직접 말했던 대로였다.

    ‘렉스 부인이 뤼드빅에게 오늘 수상 각하와 이야기를 했는지 물어보는 거면, 에드문드에 대한 추적이 얼추 마무리가 되었다는 걸까.’

    비비안느는 걱정스럽게 상석이 있는 쪽을 올려다보았다가, 뤼드빅이 고개를 앞쪽으로 기울인 탓에 에드문드를 시야에 담지 못했다. 비비안느가 햇빛 때문에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뤼드빅을 바라보자 그가 시선을 교환하는 대신 손을 잡아 왔다. 그는 비비안느 너머에 있는 양어머니를 바라보며 말했다.

    “…하려고 했습니다만, 총리 관저로 향하는 길에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져서 말입니다.”

    “왜. 일에 문제라도 생겼니?”

    뤼드빅이 대답하기 전에 렉스 부인이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엘레노어 양은. 같이 담소를 나누고 싶으니 너더러 데려와 달라고 하지 않았니?”

    “제가 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뤼드빅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비비안느가 한층 어색해진 분위기에 그에게 잡힌 손을 빼려 하자 뤼드빅이 더 강하게 옭아매 오며 깍지를 꼈다.

    “전 제 약혼자에게밖에 관심이 없는데, 자꾸 엘레노어 양을 제게 밀어 대시니 저도 화가 나서 말입니다. 이대로 제 폭로가 성공하면 그때는, 엘레노어 양과 평생 대화를 나누고 싶으니 아예 결혼식장에도 같이 가라 하실 텐데. 왜 굳이 서두르겠습니까?”

    그가 툭 내뱉은 말들에 귀부인들은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뤼드빅은 건조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로열 더비에서 제 약혼자가 승리를 가져오면 저와의 결혼을 승낙하실 거라 들었습니다. 그게 약속이었으니, 지켜 주셔야 할 겁니다. 6번 말이 이기면 결혼이 먼저고, 폭로가 그다음입니다. 그렇게 마음을 바꾸었으니 메르고빌 영애와의 결혼도 최대한 빠르게 진행하실 거라 이해해 주시면 됩니다.”

    “두 사람 사이가 언제 그렇게 좋아졌대?”

    귀부인 중 하나가 말했다. 그 너스레에 뤼드빅은 입만 부드러이 휘어 사교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솔직히 비비안느는 뤼드빅이 제 말을 끝내 듣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한 건으로 비아냥거릴 거라 생각했기에 이런 반응에 조금 놀랐다.

    ‘다른 경마장에서 입장 차이로 언쟁한 이후로 처음 만나는 건데.’

    제가 백작저로 향했다는 소식을 듣지 못해서일까 아니면 그새 마음이 풀린 걸까.

    비비안느는 마지막 순번의 말이 출발대 안으로 들어가는 걸 바라보았다.

    “이게 얼마짜리 경마래.”

    한 귀부인이 옆에서 자문하며 읊조렸다.

    이곳에 앉아 있는 돈깨나 있다는 경마광들의 돈과 제 결혼까지 걸려 있으니 그렇게 말하는 이유도 알 만했다.

    ‘그나저나 뤼드빅은 하루빨리 에드문드의 정체에 대해 폭로하고 싶어 하는 줄 알았는데. 그간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을까.’

    물론 의장 부인이 그에게 엘레노어를 신붓감으로 밀어 대니 폭로를 인질 삼아 저와 결혼부터 하겠다는 논리는 이해했다.

    그런데 그가 그 희생을 하는 이유는 뭘까.

    그때 경마 해설자의 목소리가 확성기를 통해 다시 한번 터져 나왔다.

    “네! 출발대 문이 열립니다. 오늘도 힘찬 출발이로군요. 6번, 6번 ‘네메시스’ 앞으로 치고 나갑니다. 역시 아름답군요. 강력한 경쟁자인 ‘헤게모니’도 출전하지 않았으니, 이대로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우승도 어렵지 않겠습니다.”

    비비안느는 초조하게 6번 말을 눈으로 좇았다.

    이제 자신의 운명은 저 말발굽에 달려 있는 것이었다.

    비비안느는 무엇이라도 쥐고 싶어서 땀이 배어나는 손으로 뤼드빅의 손을 쥐었다. 그가 저와 나눠 낀 반지로 추정되는 금속 질감이 느껴졌고, 그가 저를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으나 비비안느는 계속해 눈앞 경주로에 집중했다.

    ‘네메시스’가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 비비안느는 안도하며 눈을 감았다.

    “네, 역시! 네메시스! 오늘도 로열 더비에서 눈부신 성과를 보여 줍니다.”

    쩌렁쩌렁한 경마 해설가의 목소리가 그녀의 귀를 터질 듯이 울렸다.

    그 순간 의장 부인은 더 볼 것도 없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비비안느의 앞을 지나쳤다. 6번 말이 우승해서 기쁜 기색은 전혀 아니었다.

    “어머님.”

    비비안느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불렀다.

    의장 부인이 못마땅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뒤돌아봐 자신을 마주했다. 제가 그녀의 시험을 통과하길 바라지 않았다는 얼굴. 비비안느는 가슴이 따끔거렸지만 태연히 말했다.

    “제 화술도 엘레노어 영애에 비해 부족하지 않을 거라 생각해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의장 부인이 헛웃음을 흘리고는 뒤돌아 걸어 나가려 할 때, 누군가 그녀의 앞을 정중히 가로막았다.

    복장을 보아하니 경마장의 직원인 듯했다.

    “비키거라.”

    렉스 부인이 성가시다는 듯 말하자, 정중하게 예를 표한 경마장 직원이 대답했다.

    “렉스 부인의 이름으로 케이터링 서비스를 예약해 둔 것이 있어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야외 잔디 정원으로 안내해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애프터눈 티와 연어 요리, 다양한 디저트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 모두 모시는 걸로 예약되어 있는데, 맞습니까?”

    그 말에 렉스 부인이 비비안느를 바라보았고, 비비안느는 뤼드빅을 바라보았다. 그 정적 속에 일행인 귀부인의 말이 끼어들었다.

    “사려 깊어라. 누구 생각이었나요?”

    뤼드빅을 바라보는 비비안느의 표정에 해명을 하라는 기색이 섞이자, 그는 고개를 저으며 그녀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난 아냐.’ 하고 읊조렸다.

    기다렸다는 듯 경마장 직원이 덧붙였다.

    “2황녀 전하께서 친절을 베푸셨습니다. 뤼드빅 렉스 님과 레이디 비비안느 메르고빌의 결혼을 축하한다 하시더군요.”

    “…안내하게.”

    렉스 부인의 어투는 상당히 누그러져 있었다. 예약한 이가 뤼드빅이나 비비안느였다면, 그녀는 제 기분이 내키지 않아 자리를 박차고 나갔겠지만 상대는 제국의 2황녀였다.

    렉스 부인의 등 뒤로 귀부인들끼리 숙덕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까 6번 말 이야기 나왔을 때는 설마 했는데, 진짜인가 봐요. 2황녀 전하께서 케이터링 서비스까지 손수 예약을 해 주셨다니.”

    “메르고빌 가문이 황가와 연이 닿아 있는지는 또 몰랐네요…. 유서 깊은 가문이라더니, 그건 맞았나 봐요.”

    “이제 좀 비비안느 영애가 진짜 귀족 중의 귀족 같아 보인달까요? 다시 보이네.”

    비비안느는 왠지 저 들으라고 하는 소리가 아니꼬워서 뤼드빅의 손을 잡고 당겼다.

    렉스 부인을 따라 나가자는 신호였다. 그는 놀란 얼굴을 했지만 비비안느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의장 부인을 뒤따를 준비를 했다. 그는 제 손목을 원하는 대로 쥐고 당기건만 저는 그럴 권리가 없단 말인가.

    그때 경마장 직원이 말했다.

    “아, 그리고 2황녀 전하께서 비비안느 영애를 따로 만나길 원하셨습니다. 이 쪽지에 쓰인 곳으로 가시면 될 겁니다. 저는 이만 렉스 부인을 안내해 드려야 하니, 가는 길을 모르신다면 저와 같은 예복을 입은 사람을 찾아 어떻게 가는지 물으시면 될 겁니다.”

    그 말과 함께 곧 비비안느 쪽으로 쪽지가 건네어졌다. 뤼드빅이 비비안느에게 말했다.

    “같이 가.”

    “황녀 전하께서는 레이디 비비안느를 혼자 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면 어쩔 수 없죠. 먼저 갈게요.”

    비비안느는 경마장 직원과 뤼드빅에게 번갈아 말했다.

    경마장 직원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으로 걸음을 옮기자 렉스 부인이 뒤따랐다.

    비비안느도 길을 막지 않기 위해 움직이려는데 뤼드빅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비비안느가 뒤돌자 뤼드빅이 말했다.

    “끝나고 만나. 얘기 좀 해.”

    비비안느가 쉽게 대답하지 못하자 뤼드빅이 제 뒷머리를 긁으며 조금 더 거칠어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날 다른 경마장에서의 일, 사과하려는 거잖아.”

    그제야 비비안느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걸음을 옮겼다.

    2황녀가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는 상상도 되지 않았다.

    에드문드에게서 떨어져라? 그 남자는 이제 제가 가질 테니, 서로 연락하지 말아라?

    그런 거라면 확실히 대답해 줄 수 있으니 다행이었다.

    비비안느는 아까 그 경마장 직원과 같은 복식을 입은 이를 만나 쪽지에 있는 장소를 안내받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목적지는 경마장 지하의 프라이빗 룸인 것 같았다.

    언젠가 뤼드빅과 엘레노어가 대화를 나누었던 장소와 비슷해 보였다.

    인적이 드물어지고 그녀가 지하의 복도에서 걸음을 옮길 때쯤, 비비안느는 괜히 불길한 느낌에 휩싸여 그에게 질문했다.

    “저, 궁금한 게 있어서요.”

    대답은 곧장 돌아왔다.

    “편하게 여쭈셔도 됩니다.”

    “케이터링 서비스를 예약하면 경마장 직원이 와서 직접 안내를 해 주나요? 수많은 인파에서 얼굴도 모르는 예약자를 어떻게 찾아내죠?”

    “예, 레이디. 그런 이유로 케이터링 서비스는 예약 후 본인이 잔디 정원으로 직접 향해서 예약 확인 절차를 거쳐야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이 말로 비비안느는 아까 그 직원은 가짜였으며 이 직원이 진짜라는 걸 깨달았다.

    “더 궁금한 게 있으신가요?”

    앞서 걷는 이가 사무적인 목소리로 물어왔다.

    “아니요.”

    그녀는 프라이빗 룸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얼추 짐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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