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0화 (6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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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날 저녁, 메드윅가 3번지.

    에드문드는 총리 관저로 향해 아버지를 만났다. 아버지가 그를 불러들인 명목은 식사나 같이 하자는 것이었으나 그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애초에 그렇게 돈독한 부자지간도 아니었거니와 그의 아버지는 그와 식사를 하는 데 꽤 인색했었다.

    예상대로 오찬장에 가 보니 아버지가 홀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만약 이 자리의 목적이 가족끼리 좋은 시간을 보내려는 것이었으면 어머니도 이곳에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수석 보좌관인 노먼이 문을 열어 주는 걸 보면 비즈니스 이야기를 하러 부른 게 틀림없었다.

    “고마워요, 노먼.”

    에드문드는 총리 관저 오찬장 안으로 들어가며 들고 온 와인을 노먼에게 건넸다.

    “아버지.”

    그 말과 함께 에드문드는 수상에게 눈인사를 했다. 그의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받았다.

    본래 다아트로 제국식 식사 매너라면, 노먼은 제가 건네받은 와인을 개봉해 아버지의 잔을 채워 주는 것이 맞았으나 노먼은 그러지 않았다. 에드문드는 이를 유심하게 지켜보았다. 그는 자리에 앉아 먼저 식전주를 한 모금 마시고는 말했다.

    “저를 만나고자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수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과 동시에 에드문드의 쪽 식탁에 올라온 것은 음식이 아닌, 아버지의 수석 보좌관이 건네준 가죽 파일철이었다.

    “너도 알다시피, 내가 이 자리에 너를 부른 건 어떤 일에 대해서 논의하기 위해서이다.”

    그 말을 들은 에드문드는 아버지 쪽을 한 번, 파일철 쪽을 한 번 훑고는 그걸 열어 보았다.

    가장 먼저 자신을 반겨 주는 건 사진이었다. 그것도 익숙한 말의 사진.

    “헤게모니.”

    그 경주마의 이름이 흘러나온 건 제 아버지의 입을 통해서였다.

    에드문드가 사진을 집어 들고는 그걸 더 자세히 살피자 아버지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네 소유의 말이었다고 들었다. 네가 비비안느 영애에게 선물로 주었고, 비비안느 영애는 타고 온 마차와 함께 이 말을 2황녀 전하께 선물해 드렸다지. 그게 오늘 아침의 일이었다.”

    “…….”

    “문제는 이 말을 선물 받은 황녀 전하께서 개인 비서를 시켜 말의 머리에 총을 쏘게 했다는 데서부터였지. 무려 비비안느 영애가 보는 앞에서.”

    “치명상이었군요.”

    에드문드의 시선이 피투성이가 된 말을 훑었다. 말은 고통 없이 죽었다. 수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원래 거래 조건이 그랬다더구나. 이 말이 제국의 어떤 경마에도 출전하지 않도록 할 것. 말을 죽이지 않는 방법도 많았을 텐데 2황녀 전하께서, 왜 이런 감정적인 대응을 하셨는지 황제 폐하께서는 의문스러워하시더구나.”

    “…….”

    “아마도 비비안느 영애가 2황녀 전하의 자존심을 건드린 모양이지.”

    “그래서 제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입니까.”

    에드문드는 제 아버지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는 한층 점잖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너와 비비안느 영애의 감정이 공작저에서, 꽤… 격해졌었다고 네 외숙부를 통해 들었다. 그래서 옛정으로 경주마를 내어 줬겠지.”

    “…….”

    “힘 싸움에서 흠모하는 레이디의 편을 들어 주고 싶었다는 건 알겠다만, 황실이 연관된 거라면 이건 여느 알력 다툼과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2황녀 전하와 비비안느 영애의 문제에 넌 끼어들어서는 안 되었어. 특히나, 암흑가의 내국인 책사를 찾아내려는 움직임이 나날이 거세지는 이 판국에 말이다.”

    “갑자기 그 이야기는 왜 말씀하시는지.”

    에드문드는 그렇게 말하며 아버지와 그가 치워 둔 와인병을 바라보았다. 다아트로의 식탁에서 상대가 가져온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것은 오직 단 한 가지만을 의미했다.

    불신.

    제가 근래 워낙 거리낄 것 없이 굴었으므로 제 아버지가 저를 의심하는 건 당연했다.

    그는 짧은 정적 동안 제 아버지의 얼굴을 천천히 훑었다. 그가 수상직 재임에 성공했던 몇 달 전과는 확연히 다른 얼굴이었다. 저는, 다시 한번 아버지의 용의선상에 놓여 있었다.

    그의 아버지가 끝내 입을 열었다.

    “황실은 어떤 문제에도 여태껏 중립적인 태도를 취해 왔지만, 만일… 네게 어떠한 과오라도 생기면 이 일을 문제 삼아 널 심판하려 할 게다. 그러니, 부탁하마. 모험은 하지 말아라.”

    “생각은 해 보겠습니다.”

    에드문드는 답했다. 마침 그때 음식이 준비되었고, 아버지의 수석 보좌관이 그걸 그의 앞에 내어 왔다. 에드문드는 식탁에는 시선도 주지 않은 채 제 아버지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비비안느 영애는 어떻습니까.”

    이러한 행동이 저의 약점을 고스란히 내보이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음에도 그녀의 반응이 제일 신경 쓰였던 그는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 상태가 좋지 않은 모양이다.”

    수상은 그렇게 말하고는 표정을 탐색하는 눈으로 에드문드의 얼굴을 훑었다.

    “이전에 피를 본 적이 많이 없었는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서 방에서 나오려 하지를 않는다더구나. 그래도 황실 측에서는 메르고빌 영애에게 2황녀 전하의 말을 빌려주는 쪽으로 결정했으니 걱정할 건 없다.”

    “다행이군요.”

    그 말과 함께 그는 식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제 아버지가 음식에 수면제를 타지 않았다는 것으로 자신의 뒤를 캐던 뤼드빅 렉스의 추적이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 어림할 수 있었다.

    저는 용의선상에 재편입되었을 뿐 저들이 자신을 암흑가 보스라고 점찍은 것은 아니었다. 에드문드는 식사가 끝날 때까지 아버지가 사람을 시켜 자신을 연행하려 할 경우를 생각해, 긴장을 내려놓지 않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후 포만감을 느끼며 저택으로 돌아온 에드문드는 응접실에 손님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곳에 걸어 들어갔다.

    마침 이카로스가 저를 기다리고 있었다.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으니 간언을 할 모양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이카로스가 입을 열었다.

    “메르고빌 저택 사용인들을 통해 들은 말이 있어서 급하게 들렀습니다만, 정말 보스께서는 비비안느 영애에게 총을 주고 보스를 쏘게 할 생각이셨습니까?”

    “그렇다면.”

    “그 총 안에 들어 있었던 건 공포탄이 아니라 실탄이었고요.”

    “그랬을지도.”

    “거기다가 굳이, 엘레노어 카스터 양을 치워 내 해결할 수 있는 일을 2황녀를 자극하면서까지 메르고빌 영애의 편을 들어 주셨고요.”

    “…….”

    “황실만큼은 성역이라는 걸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저희가 감히 건드려서는 안 되는 분들입니다. 나중에 보스의 정체가 드러나기라도 하면… 그때는 어쩔 겁니까. 분개한 황실 일원들이 어떻게든 보스를 묻으려 혈안이 될 텐데 왜 그런 리스크를 감수하냐는 말입니다.”

    “내가 비비안느 메르고빌을 신경 쓰니까.”

    “…….”

    “마침 아버지도 똑같은 걸 염려하더군. 걱정할 것 없어.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이카로스는 여전히 해명이 필요하다는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에드문드는 이만 무시하고 제 방으로 걸음을 옮길까 하다가 나직이 읊조렸다.

    “살렌너 호텔의 무도회장에서 비비안느 메르고빌을 데려다주던 날, 그 여자의 방 안으로 모형 글라이더를 날렸었어.”

    “예, 알고 있습니다.”

    “그 여자가 그걸 받아 보고 어떤 얼굴을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얼핏 그걸 잠시 바라보고 서 있었어. 그러니까… 기분이 좋더군.”

    비비안느의 모든 신경이 제게로 향했다는 사실만으로 에드문드는 특별한 감정을 느꼈다. 온 자극에 무뎌져 있는 그에게는 정말 오랜만에 느껴 보는 감정이었다.

    “잘해 주고 싶어. 어디에 가서 다쳐 오지 않았으면 좋겠고. 그 잘난 자존심 지켜 주고 싶고.”

    비비안느가 결혼식을 강행하겠다면 그는 그녀를 상처 주고야 말 것이다.

    그는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 줄 수 있으나 그녀를 놓아주는 것만큼은 할 수 없었으므로.

    그러니 그 전만큼은 이 새로운 감각을 만끽하고 싶었다. 비비안느를 그녀의 좁은 세상으로부터 지켜 줄 수 있는 일들을 해내어, 그녀가 자신을 조금이라도 더 생각하게 하고 싶었다. 그렇게 저택 안 그녀의 실루엣을 바라보며 느꼈던 감각을 느껴 보고 싶었다.

    …이상하게도 기분이 좋아지는 그 느낌을.

    “렉스 가문만을 상대로는 승리하시겠지만, 황실을 비롯한 다아트로 전체를 상대로는 쉽지 않으실 겁니다.”

    “그건 해 봐야 아는 거겠지.”

    그 말을 남긴 채 에드문드는 고개를 돌려 자리를 떴다.

    생각을 가라앉히고자 제 방으로 돌아오자 평소보다 더 넓어 보이는 실내가 저를 반겼다. 에드문드는 비비안느가 있었던 그대로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방을 묵묵히 걸었다.

    침대에 앉자, 그녀를 끌어안는 것만으로 그간의 불면증이 해결되었던 것이 기억났다. 그때 오랜 시간 동안 잠을 자고 눈을 뜨니 그가 깔고 누운 이불이 반 접혀 몸을 덮고 있었다.

    비비안느가 작은 손으로 덮어 주었을 것 같아서 괜히 피식 웃음이 새었다.

    그는 접힌 이불을 한번 손으로 쓸어 보고는 권총을 올려 둔 사이드 테이블 쪽으로 걸어갔다. 총신을 손에 감아 보고는, 해머가 내려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 눈을 뜨자마자 비비안느에게 말과 마차를 보내느라 여태껏 간과했던 것이었다.

    “그 총 안에 들어 있었던 건 공포탄이 아니라 실탄이었고요.”

    이카로스의 말을 곱씹던 그는 그 총을 그대로 반대쪽 벽으로 겨눴다.

    그가 방아쇠를 당기자 타앙, 하는 소리와 손이 얼얼할 정도의 반동이 느껴졌다.

    에드문드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벽 쪽으로 다가갔다. 주위를 훑던 그는 곧 그가 찾으려던 걸 발견할 수 있었다.

    총알이 파괴적으로 벽의 한 부분을 부수고 말았다.

    제 심장을 꿰뚫을 수도 있었던 것이었다.

    ‘…….’

    비비안느가 저를 원하지 않는다면 더 살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녀가 주는 감각을 맛본 후부터, 끝없는 권태가 그를 집어삼키는 삶으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럴 바엔 이 삶을 끝내는 것이 나았다.

    그래서 그녀의 손에 권총을 쥐여 주었다.

    그는 그녀의 빈껍데기만을 가지고 싶지도, 더 이상 그녀의 몸만을 원하지도 않았으니까.

    그녀를 얻어 내 봤자 그녀가 저를 아주 조금도 사랑하지 않아 줄 거면 가지는 의미가 없었다. 그렇게 제 마음을 강요하면 서로의 상처가 늘 것이고, 그 끝이 파멸뿐이라면 그는 제가 먼저 세상을 떠나는 게 맞다고 결론지었다.

    이왕이면 그녀의 손에 직접 죽어 없어지는 쪽이 나을 테다.

    하지만 그녀는 그를 죽이지 않았다.

    그렇게 제가 싫고 질렸다는 말을 증명하지도, 그녀의 약혼자가 이기기를 바란다는 걸 실행에 옮기지도 않았다. 그녀의 손이 아니더라도, 저를 죽일 생각이 있었다면 그 잘난 약혼자의 힘을 빌려서라도 끝을 낼 수 있었으리라. 그 기회를 저버린 건 비비안느였다.

    그러니 이제 그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녀가 그를 아주 조금이라도 원한다면, 아니. 그의 죽음 앞에서 망설일 만큼의 작은 애정이라도 갖고 있다면 그녀는 자신의 것이 되어야 마땅했으니까.

    세상의 제약 따위는 제가 부수면 될 것이고.

    그녀가 저를 믿지 못해서 피한다면 그는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그녀를 찾아내고 결국엔 자신을 택하게 할 것이었다.

    많은 게 엇갈렸고 되돌이킬 수 없다면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바꾸고 바꾸어 그녀를 다시 제 앞에 데려다 놓을 생각이었다. 제가 그녀를 위해 뭘 할 수 있는지 직접 보여 줄 생각이었다.

    물론 그 잘난 절차는 꼭 지켜 드릴 테니.

    그녀는 1년 전 그랬듯 저를 원해 주기만 하면 되었다.

    이제야 그것이 그가 그녀에게 바라는 전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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