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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비비안느는 자신의 저택 앞 정원이 그새 얼마나 더 아름다워졌는지 천천히 만끽할 수 있는 호사를 누리며 귀가했다. 그렇게 마차에서 내리고서, 저택 앞에 서 있는 어머니를 만나고야 비비안느는 이게 얼마나 제정신이 아닌 일이었는지를 깨달았다.
그녀 등 뒤의 마차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표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완벽한 귀부인이 어처구니없어 보이는 기색을 겨우 감추려 하는 그 낯이라고 해야 할까.
비비안느는 제 옆에 있는 에드문드를 힐끔 훑고는 어머니에게 설명했다.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이건 다 제 약혼자의 사업을 도우려는 거였어요.”
물론 후작 부인은 그걸 곱게 듣지는 않았다.
“…얼마짜리인지 가늠도 안 갈 저 비싼 마차에 몸을 싣고 네 약혼자가 아닌 사람과 귀가하는 걸 두고 하는 말이냐.”
“어머니. 제 약혼자에게는 제가 다 설명할게요. 별다른 문제가 없을 거라고 약속드릴….”
“한때 렉스가 현금을 손에 넣게 될 일이 있었습니다.”
마침 목소리 하나가 끼어들었다.
후작 부인과 비비안느의 시선이 에드문드에게로 향했다. 둘다 호의적인 시선은 아니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그걸로 뭘 해야 할지 잠시 고민을 했습니다만, 마침 아버님께서는 부유한 사위를 좋아하신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
“그래서 한때 다아트로의 황제가 썼다는 마차를 사서 레이디를 집으로 모셨습니다. …이렇게 나름대로 애를 써 보는 중입니다만, 마음에 차지 않으신 모양입니다.”
비비안느는 그 순간 이게 오롯이 마차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선상 파티서부터 이어진 그의 기행을 모두 일컫는 말임을 눈치챘다. 그녀의 어머니 또한 짐작은 하고 있었는지 표정에 비릿한 기색이 섞였다.
“그 노력이라는 것에 저 정원도 포함된 거라면, 꽃은 참 고맙게 받았네. 우리 딸아이가 렉스가 차남과 결혼할 때 부케를 만드는 데 쓰겠어.”
“…….”
“내 딸아이마저도 렉스가와 약혼을 유지하기로 결정하게 되어, 유감이야. 이만 시간이 늦었으니 자네는 가 보게.”
그 말을 남기고 후작 부인은 뒤돌았다. 비비안느가 시선을 옮겼을 때 에드문드는 묵례하고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가 현관의 문 안으로 들어가려 했을 때, 그가 몸을 바로 하고 말했다.
“부유한 사위를 원하셨으니, 얻으실 겁니다.”
“…….”
“하지만 레이디 메르고빌의 몸이 더 다치는 일은 없어야 할 겁니다.”
제 다리를 언급하는 것이리라.
사람들 앞에서는 그걸 모르는 척해 주고는, 춤출 때마저 그녀의 이런 치부를 완벽한 리드로 가리게 해 준 뒤 그는 그 이야기를 꺼냈다.
“자네, 내게 협박을 하는 건가?”
후작 부인이 뒤돌아 에드문드에게 말했다.
그러고는 그에게 대답할 틈도 남기지 않은 채 예의 그 고고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럴 수도 있겠지. 여기에 있는 사람 모두 자네가 누군지, 무엇인지 아는데.”
“…….”
“그러니 우리가 가문의 경호원이 홀로 돌아오는 건 눈감아 줄망정, 자네의 더한 월권을 용납할 생각은 없네. 내 딸이 오늘은 약혼자의 사업차 자네와 어울렸다지만, 앞으로 처신을 잘할 테니 자네와 만나는 것도 이게 마지막이겠군.”
후작 부인의 시선이 비비안느에게로 향했다. 그렇게 눈치를 주는 것을 마지막으로 어머니가 저택 안으로 향하자 비비안느도 뒤따랐다.
어머니의 말이 옳았다.
아무리 에드문드의 말이 설득력 있게 들릴지언정, 그녀는 제가 스스로 뤼드빅을 골랐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었다. 비비안느는 제가 오늘 에드문드에게 직접 했던 말을 기억했다.
“앞으로는 저희 만나지 말아요, 백작님.”
그러면 그 말을 지켜야 할 것이다.
비비안느가 순순히 방 안으로 돌아가자 저택 안에서 지켜보고 있던 그녀의 오빠 또한 제 방으로 돌아갔다. 아버지가 그녀를 불러내는 일도 없었다.
그렇게 비비안느가 텅 빈 방에서 시녀를 기다리며 앉아 있을 때였다.
비비안느는 방의 창문이 텅, 하고 흔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처음에는 잘못 들은 건가 싶었는데 창문은 다시 한번 텅, 텅 하고 울렸다.
마지막으로 창문에서 저런 소리가 났을 때를 기억했다. 그건 그녀의 약혼 발표 연회 2주 전, 뤼드빅과 독대했을 때였다. 그때 창문을 흔든 건 그저 바람이었다. 비비안느는 또 바람이 부나 싶어서 소리가 나는 쪽으로 걸어가 창문을 열었다.
그때 그녀는 저 멀리에서 창문에 조약돌을 던지고 있던 뜻밖의 사람을 발견했다.
집 측면 쪽 도로에 주차된 랭스턴 옆에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에드문드 콜트 백작이 아직 떠나지 않고 그곳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운전기사가 그에게 무언가를 건네자, 그는 그걸 손에 쥐어 조작하고는 이쪽으로 날렸다.
비비안느는 반사적으로 창 옆으로 움직여 서 있다가 시선을 옮겨, 방의 바닥에 떨어진 물체를 바라보았다.
그건 목재 모형 글라이더였다.
‘…….’
비비안느는 가까이 가 그걸 집어 들고는 확인했다. 어렸을 때와 같이 글라이더에는 편지가 매여 있었다. 종이에는 에드문드의 필체로 ‘잘 자, 다치지 말고.’ 하고 적혀 있었다. 비비안느가 재빠르게 다시 창문으로 돌아갔을 때, 백작의 리무진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비비안느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에드문드가 어떻게 이걸….’
그러니까 그는 어떻게 그녀의 추억 한 조각을 알고 있는 걸까.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성역이었던 그녀의 좋은 시절 기억 속을 기어코 헤집고 들어오는 그 남자가 참 야속했다.
이제 자신은 그를 믿을 수 없는데도, 그는.
비비안느는 자리에서 일어나 모형 글라이더를 벽난로에 던졌다.
그쪽에 시선을 두지 않으려 노력하며 그의 필체가 담긴 쪽지는 화장대 서랍에 숨겼다.
그때 시녀들이 돌아와 그녀에게 인사했다. 그중에는 그녀의 다리를 치료할 이방인 의사도 섞여 있었다.
에드문드가 메르고빌 저택에서 일하도록 시킨 이겠지, 비비안느는 그렇게 추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