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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의 절차는 언제나와 같았다.
호텔 정복을 차려입은 도어맨이 걸어 나와 그들의 차량 문을 열어 주었고, 그러자마자 벨맨이 기다렸다는 듯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벨맨은 그들의 초대장조차 확인하지 않고는 물러났는데, 그 태도는 꼭 이 호텔 전체가 비비안느와 뤼드빅의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느껴지게 했다.
살렌너 호텔 안은 그 어느 때보다 붐비고 있었다. 가면을 쓰고 있는데도 일행끼리는 서로 누구인지 안다는 듯한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구석의 원탁에서는 아는 얼굴을 만났는지 기쁘게 이야기를 하는 무리가 보였고, 그중에서는 웃으며 부채를 펄럭거리고 카드 게임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몇몇은 포이어(foyer, 손님 대기실)의 더 깊숙한 곳으로 향하기 위해 무리 지어 걸음을 옮겼다. 호텔 리셉션이 있는 공간에서 우측에 있는 아케이드 문을 넘나들면 되는데 그 너머에는 일반적인 티 룸의 몇 배 정도 되는 공간이 호화롭게 펼쳐져 있다고 한다.
그곳의 화려함은 꼭 귀족들의 지상 낙원이라고 했다.
많은 극작가들이 영감을 찾기 위해서 만년필 한 자루와 수첩을 들고는 그 자리에 앉아 시가를 태운다고.
이 열기를 폐부에 들이니 살렌너에 도착한 게 실감이 되었다.
“지금 몇 시예요?”
비비안느는 아케이드에서 시선을 옮겨 뤼드빅을 흘끔 바라보며 물었다. 뤼드빅은 재킷 주머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어 훑고는 답했다.
“오후 여덟 시 이십오 분. 5분 일찍 왔어.”
“더 일찍 올 걸 그랬어요. 그쪽이 이야기하려던 사람들한테 말 걸려면 지금이 가장 적기인 것 같아서.”
“그래. 당장 5분 뒤에 댄스홀로 올라가야 한다니 유감이군.”
“지금이라도 아케이드 넘어서 사내들 흡연실로 가 보세요.”
“5분인데 뭐.”
뤼드빅은 그렇게 대답하고는 귀부인들이 모여 앉은 앞쪽으로 턱짓했다.
“포커 좋아해, 메르고빌?”
“즐기진 않아요. 품위 있게 져 주는 방법만 알아서요.”
“유감이네. 나는 꽤 하거든.”
뤼드빅이 앞으로 걸어가 테이블에 앉은 한 귀부인의 어깨를 가볍게 쳤다. 그가 무어라 말하자 귀부인의 반가면 아래 휘어지는 입매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자 경계의 기색을 내비치던 나머지 테이블 사람들의 기세가 한풀 꺾인 게 느껴졌다.
그때 뤼드빅이 자신이 있는 곳을 훑자 테이블에 앉은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았다.
비비안느가 가까이 가 그들에게 인사하자 환영의 언사가 쏟아졌다. 마침 호텔 로비의 직원이 뤼드빅이 합석할 수 있도록 의자를 가져와 주었다. 뤼드빅이 처음에 말을 건 귀부인 쪽 패를 살피고는 훈수를 두자 곧 그녀의 입에서 까르륵 소녀 같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녀는 5분도 더 되지 않아 책상 위에 있는 모든 돈을 쓸어 담았고, 뤼드빅은 모든 귀부인들의 박수 속에서 겸양을 떨며 담배를 물고 의자에 깊숙이 기대었다.
뤼드빅이 이만 비비안느에게 자리를 양보하려 했을 때, 호텔 직원이 내려와 이제 댄스홀로 올라가도 좋다는 말을 꺼냈다.
그러자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걸음을 옮겨 층계를 올랐다.
“엘리베이터 탈래?”
뤼드빅은 그 사람들을 한 번, 비비안느를 한 번 훑고는 말했다.
“됐어요. 유난 같잖아요.”
비비안느는 고개를 저으며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층계를 거의 다 올랐을 때쯤 그냥 뤼드빅의 말대로 할걸, 하고 생각했다.
에드문드 콜트 백작이 댄스홀로 향하는 계단의 끝에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연히 주변을 훑다가 그와 시선이 마주친 비비안느는 몸을 움찔하고는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
그 뒤로는 온 신경이 그를 의식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태연히 뤼드빅과 대화를 하며 그를 지나쳤다.
자신을 발견하고서야 에드문드가 느른히 걸음을 옮겨 홀에 들어섰다는 게 느껴졌고,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 중에 자신의 이름이 여러 차례 들려왔다.
하지만 비비안느는 아무것도 모르는 양 굴었다. 어머니가 말한 대로 그와 얽히지 않을 계획이었고, 그냥 소소하게 수다만 떨며 뤼드빅이 목적을 이루고 돌아오기를 기다릴 생각이었다.
비비안느는 지금 그녀의 등 뒤, 멀지 않은 곳에서 에드문드가 자신과 같은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무도회장 안으로 걸음을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