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5화 (45/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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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느가 뤼드빅과 결혼을 해 안전한 삶을 영위하는 데에는 한 가지의 전제 조건이 있었다.

그녀가 에드문드 콜트 백작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것.

무엇으로부터 자유롭냐 묻는다면 비비안느는 참 많은 것들을 댈 수 있었다.

그의 동정으로부터. 그가 자신을 다시 한번 죽이리라는 공포로부터. 그가 또다시 그녀를 홀리리라는 두려움으로부터.

그러기 위해 비비안느는 뤼드빅이 그를 무너트리기를 바랐다. 마침 뤼드빅은 에드문드의 정보를 캘 수 있는 모임이라면 가리지 않았고, 부모님은 그런 자리에 비비안느를 떠밀었다.

이번 무도회는 살렌너 호텔의 연회장에서 열리는 것으로, 저번 선상 파티에서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참석한다고 했다.

이러한 침체의 시기에 누가 제도 사교계를 부흥시켰는지 다들 궁금했던 것이다.

몇몇은 주최자 부의 원천을 궁금해했고 몇몇은 그가 혹시 신붓감을 찾고 있는 젊은 사내일지를 궁금해했다.

게다가, 스캔들!

한즈버리 부인이 수다쟁이였던 터라 사람들 모두 비비안느가 두 남자에게 청혼 반지를 받았으며, 심지어 그중 하나는 그녀가 웨딩드레스를 입은 날 찾아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 일의 진상에 대해서 더 알고 싶었던 사교 명사들은 이 파티에 참석할 것을 선언했다.

파티가 열리는 당일 밤.

비비안느는 렉스가에서 보내온 드레스를 입고는 살렌너 호텔로 떠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맞은편에는 그녀의 어머니가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내가 오늘 밤 처신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했지?”

달칵, 메르고빌 부인이 찻잔을 티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짐짓 엄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비비안느는 그녀의 앞에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앉아 마치 태엽 인형처럼 설계된 바를 말했다.

“눈에 띄지 않고 제 약혼자의 일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잠자코 내조하는 거요, 어머니.”

“그래. 제도에서 내로라할 사람들은 오늘 모두 살렌너 호텔의 연회에 참여할 게다.”

후작 부인은 오늘따라 더 아름다운 비비안느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었다.

“그리고 온 사교계는 네 부정을 확신하기 위해 눈에 쌍심지를 켜고 너를 좇을 거고.”

“…….”

“하지만 넌 가십거리가 아니다, 비비안느. 넌 내 딸이야. 메르고빌가의 유일한 여식이자 가장 고결한 피란다. 네 이름은, 감히, 그런 저급한 작자들의 장난감이 되어서는 안 돼.”

“예, 어머니.”

“그간 춤 연습은 완벽히 해냈겠지?”

날카로운 후작 부인의 질문에 비비안느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다행이구나. 그 몹쓸 다리가 부어서 움직임이 흉측해 보일 줄 알았더니, 네 춤 선생도 그쯤이면 만족한 것 같고.”

후작 부인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생각을 정리하며 오늘 밤 무도회에서의 변수를 찬찬히 점검했다.

생각을 마친 그녀의 시선이 다시 한번 제 딸에게로 향했다.

“오늘 네게 가장 중요한 일이 뭔지 아느냐, 비비안느?”

“제 위치를 지키며 약혼자가 콜트 백작의 진짜 정체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요.”

“아니.”

후작 부인은 고개를 저었다.

“눈에 띄지 않는 거란다.”

“…….”

“남자들은 너처럼 가련하고 딱한 것들에게 약하거든.”

후작 부인이 안쓰럽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비비안느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것만 제대로 해 주어도 난 네가 많이 자랑스러울 거란다.”

비비안느는 붉은 입술을 베어 물었다. 그다음 고개를 들어 올려 말했다.

“최선을 다해 볼게요.”

이번에는 그녀도 진심이었다.

에드문드와 마주치면 아무리 단단해지려 해도 그녀는 스스로를 잃게 되었다.

이성을 감정이 압도했다.

이런 밑바닥까지 그가 알 필요는 없었다.

그러니 제 약혼자가 에드문드에 대한 정보를 얻어 낼 수 있도록 저는 자리만 채워 주면 되겠지 하는 생각뿐이었다.

“춤 연습했다며.”

메르고빌 후작 부처로부터 비비안느를 구한 것은 뤼드빅이었다.

그는 렉스가 랭스턴 리무진 뒷좌석에 그녀와 함께 탄 채, 운전 기사에게 살렌너 호텔로 가 달라 지시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뇌리에 강하게 남은 비비안느의 모습을 지워 내려 애를 썼다.

몇 번을 머릿속에서 돌려 보아도, 저택의 계단을 내려와 현관을 등진 자신에게 향하는 비비안느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그 기억 속 비비안느는 지금 자신의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아까는 조명 때문이었고, 지금은 그저 그럴 거라는 생각으로 한번 흘끔 쳐다보았으나 그 순간 뤼드빅은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다시 한번 비비안느를 바라보았다.

마치 환상 같아 보이는 여자가 입을 열었다.

“네. 이번 연회는 가장무도회라면서요. 다들 짝지어서 춤추는 분위기일 텐데 겉돌 수는 없으니까요.”

“네 백작이 파트너를 대동하게 만드는 데에는 도가 텄어. 그렇지 않나?”

“…….”

“무도회라니까 나 혼자 사업차 갈 수는 없겠지.”

뤼드빅의 말에 차 안에 정적이 맴돌았다.

그게 누구를 노린 수인지 뤼드빅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백작은 비비안느의 얼굴을 이렇게라도 한 번 더 볼 생각인 것이 틀림없었다.

비비안느 또한 이해했다는 듯 덧붙였다.

“가면무도회인 탓에 사람들 얼굴 확인하는 게 더 어려워지기도 했어요. 그쪽이 콜트 백작 주변 사람들에게 접근하는 데 시간 지체가 생길 거라는 말이기도 하겠죠.”

“그래. 찾는다고 해도 춤을 추고 있는데 가서 말을 걸 수는 없겠지.”

“콜트 백작 쪽도 당신 수를 다 읽고 있는 거로 보여요.”

“그래서 이 일의 관건이 너야.”

비비안느의 표정이 미세히 굳어졌다는 걸 파악했는지 뤼드빅이 말했다.

“…그냥 평소대로 행동해. 계획대로 가자고. 네가 네 주변 사람들과 떠들면 콜트 백작은 너를 쳐다볼 거고, 나는 내 리스트에 있는 사람들에게 접근해서 내 명함을 건넨다. 너 사교계에서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거 잘하잖아.”

“네. 몇 안 되는 장기죠.”

비비안느가 답하자 뤼드빅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제 계획을 공유했다.

“그렇게 사람들 시선만 의미 없이 끌어 줘. 내가 뭘 하는지 네 남자가 모르도록.”

“콜트 백작은 제 남자가 아니에요.”

“그러게.”

뤼드빅은 허공으로 시선을 옮기고는 이었다.

“그럴 수 있게 내가 도와야지.”

그렇게 곧 그들 앞으로 화려한 빛무리가 밀려와 닥친다.

기자들이 만들어 내는 열기에 두 사람은 함께 닳고 닳은 표정을 지으며 서로 다른 쪽 차창을 바라보았다.

그 시끄러운 빛무리의 이름은 하나다.

살렌너.

목적지로의 도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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