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6화 (36/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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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일 뒤.

    “어머, 메르고빌 영애…!”

    비비안느는 그날의 일을 잊기 위해서 부러 여러 모임에 참석했다. 그러니까 정확하게는 비가 오던 그날, 에드문드가 그녀를 찾아온 날의 일을.

    이 티 파티도 그 노력의 일환 중 하나였다.

    “맞아 주셔서 고마워요, 귀부인.”

    비비안느는 인사하고는 자리에 앉아 제도의 사교 모임에 속한 이들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참석자 구성이 꽤 오래전과 같았다. 그때 그녀는 이들과 오빠의 승진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녀의 약혼에 대한 겸양을 떨었었다.

    꽤 긴 시간이 흐른 뒤에 이들을 다시 만나다니. 비비안느는 그새 참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는 걸 상기했다.

    하지만 오롯이 하나 바뀌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건 그녀의 약혼자였다.

    뤼드빅 렉스.

    그녀가 그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읽기라도 했는지,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약혼자에 대한 소식으로 심려 많으실 텐데도 자리를 빛내 주셔서 고마워요.”

    누군가, 하고 보았더니 한즈버리 부인이었다. 약혼 발표 연회에서부터 선상 파티까지, 그녀와 근래에만 벌써 세 번째 마주치는 것이었다.

    “아니에요. 이런 귀한 자리에 참석할 수 있어서 저야말로 영광이죠.”

    비비안느는 기계적으로 답하며 오늘도 그녀가 자신을 피곤하게 하지 않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그 기대는 너무나도 쉽사리 배반당했다.

    한즈버리 부인이 자신의 옆에서 장미가 음각된 담뱃대를 물고 있는 귀부인을 바라보며 말한 것이다.

    “참, 그거 들으셨나요?”

    매우 불길한 어조였다. 좋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한즈버리 부인은 말을 이어 갔다.

    “세간에 오르내리는 말로는 그 화제의 선상 파티에서 비비안느 영애와 콜트 백작이 같은 휴게실 방으로 향했다는데.”

    비비안느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반지를 돌려주기로 해서였어요. 콜트 백작이 저와 새로이 약혼하길 원한다 말씀하셨거든요.”

    “약혼반지요?”

    그 말에 사람들이 눈을 반짝이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에드문드와의 긴 역사를 생각하면 전혀 설렐 것 없는 이야기라 생각했는데. 비비안느는 그걸 말하면서도 마음이 조금 간질거렸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를 잊을 생각이었기에. 그의 복잡한 삶에 더 이상 개입되고 싶지 않은 마음뿐이었기에, 그 마음을 억누르고는 답했다.

    “콜트 백작이 제게 그렇게 제안한 건 책임감으로였어요.”

    비비안느는 그렇게 말하고는 백작과의 키스를 떠올렸다. 그는 자신을 먹어 치우기라도 하듯 그녀의 입 안으로 제 입 속 살덩어리를 밀어 넣었다. 그렇게 그녀의 마음을 헤집기라도 하듯 입 안을 거칠게 훑고는 탐색했다.

    그때 서로를 마주 보며 나누었던 숨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생각했던 그녀는 스스로에게 자중하라 타일렀다.

    책임감치고는 꽤 질척한 책임감이었다.

    “제가 한때 암흑가 보스에게 보내려던 편지를 수상 각하께 전하게 되었으니, 저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고 하신 거였거든요.”

    비비안느는 점잖은 투로 귀족 영애답게 말했다. 한즈버리 부인이 그녀에게 물어 왔다.

    “혹시 그 편지 내용이 왓킨스의 폭로와 관련된 이야기인가요?”

    “아뇨, 제 약혼자가 암흑가와 관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였죠.”

    비비안느가 정정해 주자 의아함을 품은 목소리가 그녀에게 다시 되돌아왔다.

    “뤼드빅 렉스 씨가 증거 불충분으로 경시청에서 풀려나온 뒤에도, 그리고 다시 한번 왓킨스의 폭로에 모두가 주목하는 지금도, 혹시 그 생각은 여전하신가요?”

    “그건 제가 아니라 본인에게 사실 여부를 직접 물으셔도 되겠네요.”

    비비안느가 답하자 모두의 시선이 비비안느의 눈길이 향하는 곳으로 돌아갔다.

    정작 그가 가장 필요했을 때는 비비안느가 한 번도 주위에서 본 적 없었던 그녀의 약혼자.

    뤼드빅 렉스가 모임 장소에 걸어 들어와 그들에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재미있게 놀고 있었어?”

    뤼드빅이 그녀의 옆자리에 서 그렇게 속삭였다.

    그러고는 자신을 바라보는 귀부인들에게 말했다.

    “제 피앙세에게 줄 것이 있어서요. 좋은 시간을 방해해 죄송합니다.”

    “아유,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우리네들이야 나이 창창한 젊은이들이 연애하는 걸 보면 풋풋하고 좋지.”

    그러자 한 귀부인이 넉살 좋게 이야기했다. 뤼드빅은 근사한 미소로 화답하고는 테이블 위에 무언가를 내려놓았다.

    자그마한 보석 상자였다.

    그러자 주위가 술렁이며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커졌다.

    비비안느는 상자를 들어 올려 열어 보았다. 당연히 예상했던 대로 안에 든 것은, 언젠가 그에게 돌려주었던 약혼반지였다.

    “결혼하자.”

    뤼드빅이 그렇게 말한 순간 비비안느는 깨달았다.

    에드문드가 그녀에게 내민 반지가 그녀에게 어떤 감상을, 감각을 남겼는지를.

    그게 이 반지에 비하면 얼마나 특별했는지를.

    그를 사랑하는구나.

    비비안느는 그 순간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 남자가 아닌 에드문드 콜트 백작을.

    그러면서도 그녀는 뤼드빅을 바라보고는 행복한 새 신부처럼 아름답게 웃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전혀 모른 채, 제가 그 남자, 에드문드 콜트를 버렸다는 안도감에 온전히 도취되어 있었다.

    이렇게 하면 마음을 굳힐 수 있을 거라 강박적으로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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