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4화 (3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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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시각, 뤼드빅의 사무실.

    “에드문드 콜트 백작, 그 작자가 경영학 석사를 마치고 신대륙의 가장 이름 높은 투자 은행에서 일했다는 데까지 말씀하셨습니다, 부르크너 씨.”

    뤼드빅이 말을 마치자 ‘부르크너 씨’라고 불린 이가 라디오 쪽으로 향했던 시선을 다시 그쪽으로 옮겼다.

    “그나저나 이름이, 뤼드빅 렉스 씨라고 하셨소?”

    부르크너가 조심스럽게 물어보며 확인했다. 그의 눈이 방금까지 라디오를 담고 있었던 정황을 고려해 보자면 단순한 질문만은 아니라는 걸 이곳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뤼드빅은 대답하는 대신 턱짓했다. 그러자 벽 쪽에 서 있던 사용인 하나가 다가와 그들 사이에 놓인 책상, 그 위에 놓인 슈트 케이스(여행 가방)를 열었다.

    그러자 그 안에 가득 채워져 있는 돈이 모습을 드러냈다.

    뤼드빅이 입을 열었다.

    “예. 그리고 저와 제 가문은 저희의 친구들에게 관대합니다.”

    “흠흠, 그러셨소. 이거 몰라본 내가 참 실례했구먼. 일주일 전 그 선상 파티에서도 말했듯 그 당시 에드문드 콜트는 내 부사수였소. 그가 달라진 건 어느 날 옛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한 날이었는데… 그가 만나러 가는 상대가 다아트로 제국, 그러니까 이곳에서 해밀턴 스쿨을 다녔을 적 인연이라고 하더군.”

    “계속 말씀하시죠.”

    뤼드빅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부추겼다. 부르크너는 말을 이어 갔다.

    “그자는 신대륙의 국제 변호사로 일하던 이였소. 알음알음 아는 사실인데 완전히 양지에서 일하는 사람은 아니었고, 금주법으로 성장한 신흥 갱에 속해서 보스의 법적 문제들을 해결해 주었다지. 업계에서 최고라 다들 탐을 냈다고 들었소. 물론 이곳 암흑가로 은둔했다는 말이 돌기도 했는데… 듣기로 그의 가명이.”

    “이카로스, 맞습니까?”

    에드문드 콜트가 운영하고 있는 암흑가 조직의 고문 변호사였다.

    그 말에 부르크너는 고개를 끄덕였다. 뤼드빅의 미소가 짙어졌다.

    에드문드 콜트가 어떤 수작을 부리든 그는 백작을 능가할 자신이 있었다.

    “보스.”

    이카로스가 백작저의 방문을 노크하고 열었을 때 에드문드는 방의 사이드 테이블에 앉아 기물들이 정렬된 체스 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라디오 소리가 적막한 방 안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굳이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언급되는 인물만으로, 이카로스는 그게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있었다. 그야. 이 모든 건 저 속 모를 보스가 벌린 판이었으니까.

    에드문드가 까만 킹을 들어 하얀 비숍과 하얀 폰을 내리쳤다.

    ‘귀족원 의장이 비숍 정도라면 높게 쳐준 건데… 렉스가의 차남은 고작 폰이라니.’

    이카로스는 에드문드의 기색을 살피며 그쪽으로 가까이 향했다. 방에 불을 켜지 않아서 그는 저 멀리서부터 죽 늘어진 창문 그림자에 덮여 있었다.

    그의 훌륭한 얼굴과 신체 윤곽을 어둠과 분간해 주는 유일한 빛이었다.

    “이럴 때가 아닙니다. 렉스가 놈이 부르크너와 접선했단 말입니다. 부르크너라고 하면 보스께서도 아시다시피….”

    그쯤 말한 이카로스는 에드문드 앞의 테이블에 놓여 있는 게 체스 판뿐만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이카로스가 체스 판을 살짝 들어 아래에 깔린 종이를 꺼내 확인하였다. 활자를 훑던 그의 입술 새로 그걸 읽는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1923년에서 1924년, 에드문드는 이카로스에게 다아트로 제국으로 돌아가 함께 사업을 하는 건 어떤지 물음. 그는 거절하지만 ‘이카로스’는 에드문드 콜트의 거듭된 설득에 의해 뜻을 같이하는 변호사 몇을 데리고 신대륙의 암흑가 조직에서 나오게 됨.”

    그 종이를 에드문드가 뺏어 들고 이어 읽었다.

    “이로 인해 에드문드 콜트는 피의 복수를 당할 뻔했지만, 신대륙을 지배하는 암흑가의 보스에게 골치 아픈 세금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고 설득해 신임을 받게 됨. 밑줄. 에드문드 콜트는 학부 때 법학과 정치학을 배웠고, 경영학 석사 과정을 마쳤으며 세법은 독학.”

    그 말에 이카로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저나 보스 모두가 다 아는 얘기지요. 그게 뭡니까?”

    “내가 전 사수셨던 부르크너에게 준 문서 사본. 다 외우기는 너무 많다고 불평했지만 워낙 비상한 인재다 보니 알아서 잘했을 거야.”

    “그렇다는 말씀은….”

    “곧 내 손에 렉스가 현금이 떨어지게 생겼다는 말이지. 그걸로 무얼 사 놓아야 더 즐거울지 생각하고 있었어.”

    “아니, 도대체 왜 이런 안 하던 일을 하신단 말씀입니까. 제게 언질도 하나 없이. 보스께서야 원체 세상일이 다 따분하다 느끼시겠지만, 제게는 매 순간이 수습해야 할 문젯거리였습니다.”

    “그래. 그랬겠지.”

    “아니, 이제는 어딜 가신단 말씀입니까.”

    “손님이 왔잖아. 이카로스.”

    에드문드가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향했을 때, 때마침 그쪽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와도 좋다는 그의 허락에 제도의 지부장과 메르고빌 저택의 시녀복을 입은 어느 여자가 들어왔다.

    시선이 마주치자 제도의 지부장은 모자를 벗어 이카로스에게 으쓱하며 인사를 해 보였다. 이카로스는 턱짓으로 그의 인사를 떨떠름하게 받았다. 보스는 여태껏 절대로 그의 저택에 이렇게 많은 암흑가 사람들을 부른 적이 없었다. 관심을 불러 모을 소란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은 걸음을 옮겨 에드문드와 가까워졌다.

    에드문드가 담배를 물자 제도 지부장이 성냥을 갑에 긁어 그에게 공손히 내밀었다. 담배 끝에 불을 붙인 에드문드는, 성냥을 흔들어 끄고는 지부장 쪽으로 턱짓했다.

    그러자 지부장의 보고가 물 흐르듯 이어졌다.

    “자넷 왓킨스의 안전한 망명을 도왔습니다. 제 사람들이 흔적마저 깨끗이 처리해 의장 가문이 손을 쓰려 해도 못 찾아낼 겁니다.”

    에드문드의 시선이 메르고빌가 시녀복을 입고 있는 여인에게로 향했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지시하신 대로 메르고빌 저택 앞의 정원을 정원사의 설계도대로 채웠습니다. 오늘 비비안느 아가씨께서 창밖을 내다보시는 모습을 저희 모두 보았습니다.”

    “표정이 어땠는지 궁금한데.”

    에드문드의 나직이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지부장이 제 옆에서 몸을 낮추고 있는 여인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보스가 그에게 사진 다섯 장을 줄 때도, 보스는 레이디 메르고빌의 표정을 궁금해했었다. 곧 여인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우는 듯하기도 했고.”

    “…….”

    “…웃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울었다는 거야, 웃었다는 거야.

    울면 우는 거고 웃으면 웃는 거겠지. 지부장이 속으로 중얼거리며 슬쩍 위를 올려다보았다.

    보스는 상념에 깊이 잠겨 계신 것 같았다.

    “지금 저택에 홀로 계십니다. 후작 부처께서는 렉스가와 약혼에 대한 논의를 하러 잠시 출타하셨고, 아가씨의 오빠이신 메르고빌 경사께서는 근무 중이십니다.”

    그 말을 마친 여인은 보스의 체향이 훅 끼치는 걸 느끼고는 고개를 들었다. 그가 담배를 문 채 큰 몸집으로 그녀의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는 무언가를 내밀고 있었다.

    잠시 벌어진 베스트 안의 탄탄한 몸을 살피던 여인은 위로 올린 시선이 마주치자 어색하게 눈을 깜박이고는 눈길을 아래로 내렸다.

    그의 손에 들린 건 500에포네짜리 지폐 몇 장이었다.

    가장 높은 액면가를 가진 지폐였다. 여인은 고개를 연신 숙여 가며 그걸 받아 들었다.

    “…가, 감사합니다.”

    그걸 마지막으로 에드문드는 그녀를 스쳐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카로스는 말없이 제 보스를 뒤따랐다.

    에드문드가 그렇게 저택의 정문으로 가 문을 스스로 열었을 때, 비가 물안개를 일으키며 땅에 쏴아아- 떨어지고 있었다. 이카로스가 주변에 있는 사용인에게 시선을 보내며 우산을 가져오라는 신호를 줬지만 그러기도 전에 에드문드는 걸음을 내디뎌 앞으로 나섰다.

    첨벙.

    그의 값비싼 구두가 주랑 현관 밖의 물웅덩이를 밟았다.

    어깨가 천천히 젖어 가고 있는데도 그는 개의치 않고는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새까만 머리칼도, 그와 같은 빛의 베스트도 셔츠도. 온몸이 그렇게 비와 하나가 되어 젖어 들어갔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 그는 제 손을 들어 올려 푸른 핏줄이 툭 불거진 손이 시퍼렇게 변했다는 걸 무감정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뒤돌아 들어와 사용인에게 랭스턴 리무진을 준비하라 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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