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화 (2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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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비안느는 저택의 시녀들에게 도움을 받아 목욕하고, 그들이 준비해 준 옷을 입은 뒤 전화기가 있는 에드문드의 집무실으로 안내받았다.

    시녀들 또한 비비안느가 어제 만난 이곳 사용인처럼 제국어를 거의 못 하는 건 마찬가지라 그녀는 어색한 정적을 견뎌 내야 했다. 다행인 건 그들이 그녀의 몸가짐을 포함해 그녀에게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비비안느는 오늘따라 자신이 걷는 자태가 어째서인지 레이디답지 않아 보여 부끄럽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였다.

    에드문드의 집무실 문이 열리고 널찍한 공간이 펼쳐지자, 비비안느는 그곳을 한번 훑어보았다. 햇볕이 드리운 공간은 멀끔히 정돈되어 깔끔했는데, 모두 좋은 가구로 채워져 있었다.

    그때 비비안느는 1년 전 요원이 한 말을 마음 깊은 구석에서 꺼내 곱씹어 보았다.

    “추우실 테니 말씀하신 대로 제 저택으로 안내 드리겠습니다.”

    그녀는 곧 그 요원이 ‘저택’이라는 단어를 빌라를 가리키는 ‘집’으로 바꾸었던 걸 떠올렸다. 비비안느는 그 요원이 말한 저택이 이런 곳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다. 이러한 저택에서 그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면.

    이제 그 생각도 그만해야겠다는 다짐으로 비비안느는 손에 끼워진 반지를 한번 훑고는 책상 위의 수화기 앞으로 다가갔다. 이제는 그때 요원을 처음 만났을 때, 공중전화에서 머뭇거렸던 것과는 달리 집에 전화해야 할 때였다. 메르고빌 저택으로.

    그때 전화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어제 그녀를 이곳에서 맞이한 여인이 그 강한 손힘으로 재빠르게 수화기를 들었다 내려놓았다. 전화가 여러 차례 걸려 왔기에 그녀는 그 행동을 반복했다. 비비안느는 그렇게 수어 분이 지나고서야 수화기를 집어 들어 전화국에 메르고빌 저택에 연결해 달라 말할 수 있었다.

    전신국 직원의 목소리에는 외국 억양이 묻어 있었다.

    곧 메르고빌 저택으로 전화가 연결되고 누군가가 받았다. 비비안느는 숨을 죽였다가, 작은 목소리로 ‘여보세요.’ 하고 입을 열었다.

    - 이렇게 나랑 이야기할 거면서 왜 자꾸 끊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비안느는 손을 떨면서도 수화기를 꽉 쥐며 심호흡을 했다.

    뤼드빅.

    그녀는 상대의 이름을 속으로 읊조려 보았다.

    - 역시 백작저에 있었군.

    수화기를 다시 귀에 가져다 대자 뤼드빅 렉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비비안느는 답했다.

    “파혼 서류 봤어요. 그 일로 제 저택에 계신 거죠?”

    - 아니. 그 일은 이미 끝났지. 네가 네 부모의 허락을 받아 내기만 하면 약혼 관계는 이제 정리하는 게 맞아, 명령받은 대로지. 그런데.

    “…….”

    - 그냥, 네가 그 집에서 잘 있나 궁금해서.

    그 말이 남기는 섬찟한 느낌에 비비안느의 심장이 괜히 빠르게 뛰었다. 그녀는 애써 여상한 목소리로 답했다.

    “잘 있어요. 그럼 이만 제 어머니를 바꿔 주시겠어요?”

    금방 후작 부인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비비안느는 모든 걸 저택에 가서 설명 드리겠다 말했다. 후작 부인은 파혼 같은 이야기는 얼굴을 보고 나누고 싶으니 집으로 어서 오라는 말로 답했다.

    그러자 비비안느는 백작에게 함께 갈 건지 의사를 물어보겠다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머니도 알 것이었다.

    비비안느는 천천히 그녀가 걸어 올라왔던 거대한 계단을 내려가 저택의 홀(Hall)로 향했다. 에드문드는 마침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외양으로 봤을 때는 이방인인 것 같았다.

    “다이아몬드 반지 구매 자금 관련하여….”

    그 이방인 사내는 비비안느를 한번 훑더니 언어를 바꾸어 에드문드와의 말을 이어 갔다.

    […현금을 확보하고자 저희 신디케이트에 개인적으로 보유하고 계신 군수업체 주식을 매각하는 건으로 연락하신 거로 압니다, 에드문드 콜트 백작. 반지가 꽤 값나가는 물건이었을 테니까요.]

    그러자 에드문드가 똑같은 언어로 대답했다.

    [예.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요즘 방위 산업에 유독 더 재미를 붙이셨다 들었습니다.]

    말의 내용으로 보아선 두 사람은 원래 서로를 모르는 것 같았다. 그 점에서는 이상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비비안느는 이상하게도 메칼렌티아어를 말하는 에드문드의 목소리가 낯설지 않다 생각했다.

    저 목소리를 어디서 들었는지 곰곰이 회상하던 비비안느는 이내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이 제국의 암흑가, 미라볼타 거리의 그 약국에서였다.

    [넬비노스 패밀리의 둘째가 여기에 숨어 있거든.]

    기억 속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아니겠지. 비비안느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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