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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미모로 정의 구현 (113)화 (113/120)
  • 외전 3화

    “좋겠다!”

    레아가 처음 마법학교를 세울 때부터 있던 필과 마법사 아이들이 외쳐 댔다.

    “나도 캠프! 모험!”

    “와…… 오염된 땅은 아직 아무도 안 가 본 데라던데, 너네가 먼저 가는 거야?”

    “우리 할머니가 거긴 몬스터도 많다고 그랬어. 위험해.”

    “크앙. 쿠쿠앙.”

    “삐비비 삐삐.”

    쿠앙이와 다른 해츨링들이 뽐내듯 우쭐거리며 울었다.

    ‘그러니 우리가 가는 거다. 은색 인간도 우린 괜찮을 거랬다.’

    ‘맞다. 수호자님이 인간은 약해서 안 된댔다.’

    ‘우리가 먼저 가서 정화해 놓을 테니 나중에 너희 약한 인간들도 놀러 와라.’

    “…….”

    마법사 아이들의 얼굴이 구겨졌다.

    숨 쉬듯 잘난 체하는 드래곤 화법에 적응된 아이들이었지만, 이번에는 좀 울컥했다.

    “나도 강해질 거야!”

    필이 외쳤다.

    “나도 오염된 땅 정돈 아무렇지 않을 정도로 강해질 거야! 대마법사 돼서 나도 다 할 거야!”

    다른 애도 아니고 필이 하는 소리에 해츨링들도, 아이들도 약간 놀랐다.

    “쿠앙?”

    “필, 너는 이미 우리 중에서 제일 강하잖아?”

    “삐이삐.”

    “맞아. 저번에 탑주님이 네가 최연소 대마법사가 될지도 모른다고 하셨는데.”

    “아니야, 모자라.”

    필이 비장하게 말했다.

    “다들 지난 전쟁 기억 안 나? 탑주님 도와 드리러 갔는데 우린 놀라고 겁먹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잖아.”

    “…….”

    “난 그때 진짜 충격이었어. 이젠 우릴 구해 주신 탑주님한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때도 결국 탑주님이 우릴 구해 주셨잖아.”

    “쿠앙.”

    역시 레아에게 구해진 해츨링들도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숙연해진 분위기 속에서 필이 재차 다짐했다.

    “강해질 거야! 강해져서 탑주님 오른……. 아니 왼팔이 될 거야!”

    “쿠아앙!”

    쿠앙이가 분개하며 꼬리로 바닥을 쳤다.

    ‘그건 내 자리다!’

    쿠앙이도 진지했다.

    ‘은색 인간한테 오른팔을 빼앗겼는데 다른 인간에게 왼팔까지 빼앗길쏘냐!’

    “둘 다 조용히 해라.”

    온몸에서 김을 뿜는 근육질의 남자가 들어섰다.

    귀여운 미소년의 얼굴과 강아지 같은 큰 갈색 눈망울, 그에 안 어울리는 돌덩이처럼 탄탄한 육체.

    갈수록 수련에 미쳐 가는 카라이였다.

    “아직은 내가 탑주님의 왼팔이다.”

    “치사해요. 형!”

    “쿠왕!”

    필과 쿠앙이가 항의했지만 카라이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억울하면 마탑의 방패가 되든가.”

    이제 그는 명실공히 마법의 탑을 방어하는 선봉장이 되어 있었다.

    ‘뭐? 레아를 지킨다고? 그런 비실비실한 몸으로 되겠냐?’

    ‘저는 마법방어막으로 주인님을 지킬 겁니다!’

    ‘이 애송이 자식이 마법만 들어가면 물리력도 다 바르는 줄 아나 보네.’

    ‘…….’

    ‘그 잘난 마법방어막으로 내 검을 막나 한번 보자. 검기 안 쓰고 딱 열 번 칠 테니까 어디 막아 봐.’

    그렇게 루얀에게서 열한 대를 검집으로 맞고 죽을 뻔한 뒤.

    카라이는 루얀 밑에서 정말 개처럼 굴렀다.

    이제 한 사람 몫을 하며 레아를 지킬 수 있겠거니 하며 돌아온 마법의 탑에선 헬릭스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뭐? 마법방어막으로 레아 한 사람밖에 못 지킨다고? 제정신인가?’

    ‘그…… 위급할 때에는 전쟁 때처럼 헬릭스님께서 마나를 넣어 주시면…….’

    ‘그따위 정신으로 할 거면 나가라.’

    ‘…….’

    ‘레아는 이제 마법의 탑 수장이며 드래곤로드다. 지키고 보호해야 할 사람이 많은 위치란 말이다. 그런 그녀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놈은 마탑에 필요 없다.’

    정말이지 졸아붙고 얼어붙으며 방어막 훈련을 받느라 죽는 줄 알았다.

    그 고생들을 이겨 내고, 이제 카라이는 마법방어막으로 마탑 전체를 둘러쌀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성과에 놀란 레아가 ‘마탑의 방패’라는 이명도 지어 주었다.

    그간의 고생을 떠올린 카라이가 부르르 떨었다.

    “탑주님의 왼팔이 되려면…… 날 쓰러트리고 해라!”

    필이 입을 쩍 벌렸다.

    “……형 미쳤어? 마탑 방어막을 쓰러트리면 어떡해?”

    “그러니까 내가 계속 탑주님의 왼팔이라는 거다.”

    득의양양한 카라이를 보고 필이 중얼거렸다.

    “와…… 치사한 건 알았지만 진짜 치사하다.”

    “쿠앙앙.”

    쿠앙이도 동의했다.

    “너네도 개고생해 봐라. 인생은 원래 치사한 거야.”

    “뭐래.”

    “쿠앙.”

    ❀ ❀ ❀

    “……그래서 다음 주쯤 해츨링들을 데리고 오염된 땅으로 정화하러 갈 생각이다.”

    “제일 더울 때 가네.”

    레아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헬릭스를 쳐다보았다.

    “레아, 너와 마탑 사람들이 고생하지 않도록 쌍둥이 탑의 냉각 마법 장치도 다시 점검했다. 내가 돌아올 때쯤이면 필요 없겠지만…….”

    헬 산맥 너머 오염된 땅에서 적당한 곳을 골라 캠프를 만들고, 그 주위 정화를 마무리하면 마탑으로 돌아오는 단순한 일정이었다.

    아직 드래곤들도 어리고 오염된 땅에 대한 정보도 적으니, 범위도 좁게 잡을 예정이었고. 걱정하거나 무리할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

    그렇지만 레아와 헤어져 있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무겁기만 했다. 헬릭스의 손이 그녀의 시무룩한 뺨 근처를 배회했다.

    이런 레아를 두고 어떻게 가나.

    생각 같아선 정화고 뭐고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안 된다.’

    그가 마음을 다잡았다.

    ‘레아가 더 안전한 세상에서 마음껏 마법을 쓰려면 오염된 땅도 정화하고 드래곤들의 조기 교육도 제대로 해야 한다.’

    오래전 과거와 달리 지금의 드래곤 해츨링들은 집단생활을 하며 사회성을 배우고 있었다. 마법의 탑에서 어린 마법사들과 어울리면서 저희보다 약한 생물들을 배려하는 법도 익혔고.

    ‘그렇지만 아직 모자라다.’

    특유의 자기중심적이고 오만한 습성이야 그렇다 쳐도, 어린 해츨링들은 제 힘이 주위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더 잘 알아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오염의 땅 정화는 해츨링 용성(龍性) 교육에 최적의 방법이 되리라.

    “레아.”

    헬릭스가 말했다.

    “네 미래를 위해서다.”

    “그거 싫어.”

    레아가 그의 손을 잡아 뺨을 비비며 불퉁하게 말했다.

    “우리 미래를 위해서라고 해.”

    말해 놓고 약간 뾰로통한 표정으로 올려다보는 얼굴에 심장이 욱신거렸다. 헬릭스가 견디지 못하고 그녀를 껴안았다.

    “……생각 같아선 너도 데리고 가고 싶다.”

    “나도.”

    레아가 그를 마주 껴안으며 말했다.

    “작아지는 마법 있으면 헬릭스 주머니에 들어가서 몰래 같이 갔으면 좋겠어.”

    “그건 안 된다.”

    “왜?”

    쪽. 무구하게 묻는 이마에 입을 맞추며 헬릭스가 진지하게 말했다.

    “너무 귀여워서 입에 넣어 버리고 싶으면 어쩌나.”

    “어…… 와랄랄라 하다가 다시 뱉어 주면 되지 않을까?”

    “진짜 입에 넣어 버려도 되나?”

    그가 입을 벌려 레아의 머리를 깨무는 시늉을 했다. 간지러워 그녀가 키득거렸다. 가볍게 떨리는 동작이 품 안에서 고스란히 느껴져, 헬릭스는 저도 모르게 레아를 꽈악 껴안을 뻔했다.

    “……역시 너를 그냥 두고 가면 안 되겠다.”

    “응?”

    “레아, 가기 전에 해결해야 할 일이 생각났다.”

    “뭔데?”

    그녀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게 아직 남아 있었어?”

    “예전에 내가 약속했던 것 기억하나.”

    그가 말했다.

    “아즈라의 보물 창고에, 네게 딱 맞는 마법방어구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었잖나.”

    “어……?”

    레아가 눈을 깜박였다.

    “설마 지금 그거 찾자고?”

    “그렇다.”

    헬릭스는 진지했다.

    “그거라도 입혀 놓고 가야 내가 안심될 것 같다.”

    ❀ ❀ ❀

    둘은 마탑 아래로 연결된 아즈라의 레어로 내려갔다.

    “이쯤에 비밀문이 있었던 것 같다.”

    헬릭스의 기억을 따라 레어를 뒤지다 보니 숨겨진 보물 창고의 입구가 나타났다. 비밀문 위를 더듬던 그의 얼굴이 굳었다.

    “헬릭스, 왜 그래?”

    “……잠금장치가 꺼져있군.”

    헬릭스의 말에 레아도 놀라 그의 손을 꽉 잡았다.

    이제는 그녀도 드래곤의 습성을 좀 알고 있었다.

    드래곤은 욕망과 자의식이 아주 강한 생물이었다. 그들의 꺼지지 않는 욕망은 보통 마법과 보물에 몰려 있어서, 드래곤의 레어에는 황금과 마도구가 켜켜이 쌓이기 마련이었다.

    ‘보물 창고는 드래곤한테는 심장이나 마찬가지일 텐데.’

    그런 보물 창고의 잠금장치 마법이 꺼져 있다니.

    “……아즈라가, 죽은 걸까?”

    레아의 떨리는 목소리에 헬릭스가 침묵했다. 죽음을 확신하는 표정이었다.

    ‘얼마나 마음이 복잡하고 심란할까.’

    그녀가 그의 손을 놓고 두 손을 모았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고룡의 명복을 빕니다.”

    “……레아?”

    당황한 헬릭스에게 레아가 얼른 따라 하라는 듯 눈짓하더니 다시 눈을 감았다.

    “돌아가셨어도 헬릭스한테 한 짓이랑 저 속인 거는 용서해 드릴 수 없으니 편히 눈 감지 마시고요, 피해 보상으로 이 레어와 보물과 마법서와 마도구는 저희가 접수해서 천년만년 잘 써 드릴게요.”

    “…….”

    그녀가 눈을 감은 채 종알종알 말을 이었다.

    “그리고 헬릭스랑 저 조종하려고 엮은 건 아아주 괘씸하긴 한데, 덕분에 우리 잘생기고 성인군자고 몸도 좋고 다정한 헬릭스가 제 애인이 됐으니까 결과적으로 너무 남는 장사라 봐 드릴게요. 그래도 결과가 좋다고 과정이 다 용서되는 건 아니니까 유감 조금은 남겨 두고요.”

    “…….”

    “대신이라고 하긴 뭣하지만 그렇게 걱정하시던 드래곤 알들은 해츨링으로 무럭무럭 잘 크고 있으니까 안심하세요. 저랑 헬릭스가 잘 키워서 아즈라 댁이 북쪽 땅에 버리고 간 오염 쓰레기도 무사히 치우게 할 거예요. 조상님이 버린 쓰레기를 치우는 착한 드래곤들로 키울 테니 그러려니 하세요. 이게 다 업보 아니겠어요?”

    제 할 말을 야무지게 마친 레아가 눈을 뜨고 탁탁 박수를 두 번 쳤다. 그녀가 같이하자는 듯이 헬릭스를 돌아보았다.

    그가 픽 웃음을 흘리며 레아가 하는 대로 양손을 모았다.

    두 연인이 나란히 양손을 모은 채 고개를 숙였다.

    “그럼 안녕히.”

    “……잘 가라.”

    ❀ ❀ ❀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헬릭스는 비밀문을 열어젖혔다.

    아즈라의 보물 창고가 수백 년 만에 열리며 빛을 뿜었다. 레아가 아연실색했다.

    “……황금 쓰레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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