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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미모로 정의 구현 (112)화 (112/120)
  • 외전 2화

    정말 살려 달라는 소리가 아닌, 투정 같은 한숨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헬릭스의 손은 레아의 뺨을 쓸었다.

    ‘걱정돼서 이러는 거다.’

    악몽이라도 꾸는지 확인해 보려는 것이다. 그가 속으로 되뇌며 말랑한 뺨을 매만졌다. 잠결에 그녀가 칭얼거리듯 그 손에 뺨을 붙였다.

    “…….”

    그러니까 이건 레아가 걱정돼서였다. 유교맨이 뭔지 궁금해서였다. 마나를 넣어서 회복시켜야 하니까 이러는 거다.

    헬릭스의 큰 손이 레아의 팔을 잡았다. 단단한 치아가 귓불을 살짝 무는 것과 동시에, 마나가 팍 하고 그녀에게 쏟아졌다.

    “……아, 아으?”

    잠결에 들이닥친 자극에 레아가 소스라쳐 눈을 떴다.

    “레아, 깼나.”

    깨운 장본인이 어느새 그녀를 양팔 사이에 가두고는 내려다봤다. 아직 흐트러진 머릿속에 물음표만 잔뜩 떠오르는 사이, 그가 이번엔 레아의 입술을 물었다.

    퐁.

    입술 끝으로 건네지는 마나가 청량해서 오히려 더 간질간질했다.

    “네가 일어날 때를 기다렸다.”

    안 기다렸잖아.

    깨웠잖아.

    반박하고 싶은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입술 사이로 내뱉는 헬릭스의 숨에 몸이 델 것처럼 뜨거웠다.

    “헬릭스…… 안 자?”

    그녀가 소심하게 반항해 보았다.

    “나중에.”

    그가 짧게 대꾸하며 레아의 목에 입술을 댔다. 잘근잘근 씹는 사이로 혀가 잇자국들을 느리게 훑었다.

    움찔, 그녀가 움츠릴 때마다 웃음과 초조한 숨이 엉켜 뜨겁게 간질였다.

    “나, 나는 더…… 자야 하는데…….”

    머릿속이 쾌감으로 다시 뒤엉키기 시작했다. 레아가 눈을 깜박이며 마지막 이성을 쥐어짜 말해 보았지만, 돌아오는 건 손끝에서 입술에서 그녀에게 전해지는 마나였다.

    “으…… 안 재우고…… 마나로 체력 채우려고?”

    “안 되나.”

    뻔뻔해졌어!

    레아가 뻐끔대다 투덜거렸다.

    “줬다 뺏는 거야……?”

    할딱이며 그의 입술을 막는 그녀에게 헬릭스가 대꾸했다.

    “얼마든지, 또 주겠다.”

    마나를 주겠다는 게 이렇게 달콤한데 무섭고 오싹한 말이었나.

    망설임을 눈치챈 그가 눈을 휘며 손끝으로 그녀를 간질였다. 허리에 닿는 뜨거운 손가락에서 마나가 파직 정전기처럼 튀었다.

    “앗……!”

    놀란 레아가 소스라치며 그의 입술을 막은 손을 떼었다. 헬릭스가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의 목을 깨물어 왔다.

    이렇게 또 잡아먹히는 건가. 포기한 레아가 흔들리며 중얼거렸다.

    “드시고 뼈라도 남겨 주세요…….”

    잘게 웃는 웃음소리와 함께, 그의 손에서 열기와 마나가 함께 건너왔다. 웃음과 달리 손길은 급하고 거세게 그녀를 휩쓸었다.

    ❀ ❀ ❀

    레아는 다음 날 늦은 아침이 되어서야 편지를 다시 읽을 수 있었다.

    “뭐라고 쓰여 있나?”

    헬릭스가 우유와 크루아상, 버터, 치즈, 잼, 꿀, 계란 프라이와 오렌지 등이 얹힌 브런치 접시를 가져오며 물었다.

    “차기 왕권 얘기뿐은 아닐 테고.”

    “응. 그건 당분간은 사업에 집중하고 싶다고 거절하고 있대.”

    “잘됐군. 소공작도 그걸 원하지 않나.”

    “응. 우리 마법의 탑이랑 연계해서 사업 확장해야 하잖아. 우리 핑계를 대니까 패트릭 왕자 쪽도 더 권하지는 못하나 봐. 그리고 또…….”

    그녀가 고개를 틀어 헬릭스를 올려다봤다. 눈이 생기로 반짝거렸다.

    “신상품이 아주 인기가 좋대!”

    “신상품이라면, 루이지의 약초들로 마법사들이 연구한 화장품들 말인가?”

    “응응.”

    레아가 신나서 손을 꼽았다.

    “특히 프리미엄 산삼 에센스랑, 어성초 화장수랑, 마법 선크림 반응이 엄청 폭발적이래. 내가 이 아이템들은 잘 팔릴 줄 알았지!”

    옆에 앉아 그녀의 젖은 머리를 만지작대던 그가 물었다.

    “그럼 이제 급한 일은 마무리된 건가?”

    “그렇지? 이제 마탑 질서도 좀 잡혔고, 당분간 수입원도 고정적이니까.”

    둘만의 알콩달콩한 일상을 즐기기엔 지금까지 좀 많이 바빴었다.

    드래곤들과 마법사들 사이에 다툼이 나면 말리고, 마법 수업도 새로 짜고, 재능과 성격에 따라 공격형, 연구형 마법사를 나누고, 연무장과 연구실을 꾸려서 배분하고.

    사이사이 루이지의 약초밭도 들리고 확장하고, 약초 농장에 사람도 더 고용하고, 피어트에서 파견 나온 약재사들과 상품 회의도 하고.

    “이제야 좀 쉬는 것 같았는데…….”

    말하던 레아가 헬릭스를 원망스레 쳐다보았다. 그가 시선을 피했다.

    “……나도 그동안 네가 바빠 많이 자제했다.”

    “네?”

    그녀는 하마터면 입에 있던 빵과 혀를 같이 깨물 뻔했다.

    “할 건…… 다 하셨잖아요?”

    “무슨 소린가.”

    헬릭스가 정색했다.

    “참고 또 참은 거다.”

    그의 살짝 찌푸린 미간과 회색 눈동자가 ‘내가 그간 인내했다는 걸 보여 줘야 믿겠나. 얼마든지 증명해 줄 수 있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레아는 슬그머니 눈을 내리깔았다.

    이해가 안 가지만 대충 넘어가지 않으면 오늘도 침대에 갇혀서 보낼 것 같았다.

    ‘그, 그래. 헬릭스는 원래 나랑 체력이 다르니까.’

    애써 스스로를 납득시킨 그녀가 우유를 들이켰다.

    “맞다, 레아.”

    헬릭스가 물었다.

    “유교맨이 뭔가?”

    “푸웁!”

    우유를 뿜는 레아를 그가 재빠르게 안으며 잔을 대신 들었다.

    “레아, 괜찮나?”

    안 괜찮아!

    속으로 외친 그녀가 애써 심호흡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친 헬릭스가 손가락을 뻗어 입가에 묻은 우유를 핥았다.

    그가 그대로 레아의 입술을 누르며 얼굴을 붙여 왔다. 그녀의 눈이 흔들렸다.

    “유, 유교맨은 이런 짓 하지 않아!”

    “……대체 그 유교맨이 뭔가.”

    “……밥 먹을 땐 안 건드리는 남자?”

    헬릭스가 불신의 눈빛으로 레아를 쳐다봤다.

    “그러니까 유교맨은…… 음…… 막 노출도 싫어하고, 점잖은 거 찾고, 남자 여자가 한 공간에 있으면 안 되고…… 그런 건데.”

    “그 말도 레아 네가 전생에 들었다는 그런 말인가?”

    “응.”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근데 헬릭스가 유교맨을 어떻게 알고 있어?”

    “레아 네가 잠꼬대로 그랬다. 내가 유교맨인 줄 알았는데, 사기라고.”

    “…….”

    새어 나온 잠꼬대가 너무 진심이라 할 말이 없었다. 레아가 우물쭈물하는 걸 무슨 의미로 받아들인 건지 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레아, 혹시 그런 남자가 취향인가?”

    “네? 절대 아니거든?”

    그녀가 팔짝 뛰며 부인했다.

    “제 취향은 헬릭스인데요?”

    “그러니까 예전의 나를 좋아했던 거라면.”

    “아닌데? 반대인데? 나 원래 유교맨 싫어해.”

    “…….”

    “근데 헬릭스는 유교맨인 것 같은데도 좋았지 뭐야.”

    조금 무표정해졌던 헬릭스의 얼굴이 레아의 말에 풀어졌다.

    “그런가?”

    “응.”

    그녀가 헤실헤실 웃었다. 제 말 하나하나에 반응하는 그가 귀여워서 자꾸 웃음이 났다. 레아가 노래하듯 속삭였다.

    “점점 더 좋아. 자꾸 더 좋아. 어떻게 이러지?”

    “……나도 마찬가지다.”

    헬릭스가 약하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레아 너는 원래도 사랑스러웠는데, 날이 갈수록 더하지 않나. 특히 내 품에서 마나를 넣어 줄 때는 정말…….”

    으아아아아.

    그녀가 새빨개진 얼굴로 그의 입술을 꾹 눌렀다. 말캉한 손바닥에서 크루아상의 버터 냄새가 났다. 헬릭스가 낮게 웃었다.

    “빵만 먹어서 되겠나.”

    그가 레아의 입에 오렌지를 까서 넣어 주었다. 오물거리는 입을 보며 헬릭스의 손이 바삐 움직였다.

    “……지금 나 찌워서 잡아먹으려는 거지?”

    “이제 알았나. 계란도 먹어라.”

    ❀ ❀ ❀

    쌍둥이 탑.

    한쪽은 마법사들을, 다른 쪽은 드래곤들을 의미하며 세워진 마법의 탑.

    한쪽의 상황이 정리되자 이제는 반대편 탑이 바빠질 차례였다.

    “조만간 해츨링들을 데리고 오염된 땅으로 정화하러 갈 생각이다.”

    헬릭스의 말에 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럴 때가 됐지.”

    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그녀가 무거운 분위기를 떨치듯 일부러 밝게 물었다.

    “얼마나 있다가 올 거야?”

    “가서 확인해 봐야 알 것 같다. 쿠앙이를 통해 편지를 보낼 테니, 걱정하지 마라.”

    “어떻게 걱정을 안 해.”

    레아가 약하게 한숨을 쉬었다. 그가 그녀의 손을 잡고 도닥였다.

    “나도 드래곤도 약하지 않다. 캠프를 만들고 조금씩 작업할 테니 위험하지 않을 거다.”

    “헬릭스가 그런 일을 허투루 할 사람인가? 내가 그냥 걱정돼서 그러지.”

    레아의 말에 헬릭스가 그녀의 어깨를 껴안았다.

    “레아, 너도 내가 안 보이기만 해도 걱정되고 그러나?”

    “당연하지.”

    그녀가 투덜대며 헬릭스의 옆구리를 찔렀다.

    “잊은 모양인데 헬릭스도 은근히 나 속 썩였거든?”

    “나도 여러 번 심장이 고장 난 줄 알았었다.”

    그의 말에 레아가 푸스스 웃었다.

    “우리 진짜 초반부터 서로 좋아했나 보다. 막 걱정하고 가슴 졸이고.”

    “그러게 말이다.”

    “왜 몰랐지? 이렇게 좋아했는데.”

    “너무 좋아해서 그랬던 것 같다.”

    헬릭스는 제게 기댄 그녀의 머리에 얼굴을 묻었다.

    머릿속이 레아로 꽉 차 있으면서 그녀를 사랑하는 줄 짐작도 못 했던 날들이었다.

    너무 좋아해서, 레아와 같이 있으면 천국에서 무저갱까지 기분이 오르내려서, 그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조여들어서.

    지금도 그랬다.

    제 몸에 따뜻한 체온이 맞닿아 있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찌르르할 정도로 행복했다. 그러면서도 긴 생 최초로 느껴 보는 이 행복이 사라질까 불안했다.

    레아에겐 말하지 못했지만 지금도 그의 가슴은 걱정으로 터질 것 같았다.

    ‘내가 오염된 땅에 정화하러 가 있는 동안, 레아가 위험해지면 어쩌나?’

    ❀ ❀ ❀

    헬릭스의 심란한 마음도 모르고, 해츨링들은 드디어 정화하러 간다는 소식에 기뻐 날뛰었다.

    “쿠와앙! 쿠왕!”

    흥분한 쿠앙이는 마탑 안팎을 계속 날아다니며 울부짖었다.

    “……쟤 뭐라고 하는 거냐?”

    “대충 ‘오염된 땅! 정화!’ 그러고 있는 거 같은데요. 시끄러워 죽겠네요.”

    해츨링들의 울부짖음을 얼추 알아듣는 마법사들이 더 괴로워했다.

    마법 능력자나 나이 든 어른 마법사들은 해츨링들의 야단법석에 고개를 저었다.

    “아이고, 난리 났구먼.”

    “곧 정화하러 간다니까, 참다 보면 저 소리도 끝나겠죠. 원래 애들은 낯선 곳에서 모험하고 그러는 거에 환상이 있잖아요?”

    “하하 그러네. 드래곤 해츨링도 애들은 애들이로군?”

    그랬다. 다른 애들은 해츨링들이 부러워 죽을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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