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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미모로 정의 구현 (102)화 (102/120)

102화

대담한 발상에 리케일은 아연해졌다.

‘사고방식이 다르다.’

기본적으로 숫자부터 떠올리는 자신은 아까워서 못 할 짓이었으니까.

“……가능한 건가?”

리케일의 질문에 주치의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이미 출시 명령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정말 가격도 낮춰서?”

“예.”

레아가 끼어들었다.

“이게 다 헬릭스가 가격 내리는 제조법을 만들어 준 덕분이지.”

“…….”

해사하게 웃으며 헬릭스 자랑을 하는 레아를 보자 어쩐지 대견하면서도 속이 불편해진 표정의 오라버니들이었다.

퐁.

헬릭스가 레아의 팔꿈치에 슬쩍 마나를 흘려 넣었다. 그가 입 모양으로 재촉했다.

이만 일어서자.

팔불출 가족을 잔뜩 둔 레아와 연애하면서 본의 아니게 눈치가 느는 헬릭스였다.

“우리는 먼저 가서 병실을 둘러보겠다.”

“그럼 오빠들만 믿는다!”

❀ ❀ ❀

오빠들에게 일거리를 홀랑 떠넘겨 놓고, 레아는 헬릭스와 손을 잡고 강변을 걸었다.

“레아, 잠이 모자라는 건 아닌가. 눈이 가물가물하다.”

“아직은 버틸 수 있어.”

레아가 헬릭스의 손을 꼭 잡았다.

“이렇게 둘이 여유 있는 거 진짜 오랜만이잖아.”

그녀의 말에 그가 미소 지으며 손에 살짝 힘을 주었다.

퐁. 퐁. 퐁.

간질이는 손바닥에서 맑은 마나가 잔뜩 쏟아져 들어왔다. 레아의 뺨에도 발그레 생기가 올랐다.

“…….”

그 얼굴을 내려다보던 헬릭스의 손이 멈췄다.

“응? 왜 그만둬?”

“더 예뻐져서 곤란하다.”

헬릭스가 레아의 손을 강하게 잡았다.

“나중에 둘만 있을 때 더 주겠다.”

“지금도 둘만 있는데.”

“아니다.”

단호하게 말한 헬릭스가 다리 쪽을 노려보았다. 레아를 힐끔대던 한 무리의 남자들이 그의 기세에 질려 걸음을 서둘렀다.

“……눈에서 마나 나가겠다.”

“음. 할 수도 있을 듯하다.”

“아니, 그거까지 안 해도 되거든. 지금도 충분히 엄청나거든요?”

“그런가.”

레아의 말에 헬릭스가 잡지 않은 손을 꾹 쥐었다 놓았다.

“힘이 제대로 돌아온 건지, 실감이 나질 않는다.”

“그래도 달라진 건 확실하잖아.”

헬릭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느끼기에도, 마치 둑이 무너진 것처럼 마나가 저를 중심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힘이 조금씩 돌아오고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확실히 봉인이 깨지기 시작하니 다르군.”

“나 새벽에 네가 해독하는 거 보고 놀랐잖아. 환자 한 사람 한 사람 돌면서 손대는 게 아니라, 한 사람 하면서 파장이 옆에까지 막 미치고. 나중엔 손 안 대고도 병실 사람이 전부 해독되고.”

“비약의 농도가 약한 편이고, 중독된 지 얼마 안 돼서 가능했다.”

헬릭스가 레아를 돌아보았다.

“그러고 보니 우리 연구소에 있던 사람들 말고도 다른 중독자들이 있지 않았나?”

“응. 다른 병원들에도 있는 것 같고…… 빈민가에도 많다고 들었어.”

헬릭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힘이 더 돌아오면 빈민가를 돌면서 해독할 수 있을 듯하다.”

“와아, 진짜?”

그러면 가짜 약과 비약 사건으로 고통받았던 사람들을 모두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레아가 눈을 반짝였다.

“힘이 더 돌아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

헬릭스는 잠시 고민했다.

“……지키고자 하는 마음을 진짜로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럼 이미 다 된 거 아냐? 헬릭스가 날 얼마나 열심히 지켜 줬는데.”

그가 레아를 흘깃 쳐다봤다. 올려다보는 눈빛에 애정과 신뢰가 넘쳐 흘렀다. 헬릭스는 새삼 자신이 없어졌다.

‘지키는 것 말고 다른 마음도 섞이면 안 되는 건가……?’

예뻐 죽겠는 걸 어쩌란 말인가. 순수하지 못한 마음이라 봉인이 풀리지 않으면 어쩌나.

그는 속으로 근심이 깊어졌다.

❀ ❀ ❀

“소드마스터가 이긴다니까!”

“어허, 마법사가 이긴대도 그러네?”

페이런 왕국 수도 번화가의 한 술집. 두 술주정뱅이가 테이블 양쪽을 두드리며 열을 내고 있었다.

“때려 본 놈이 잘 때린다고, 뭘로 보나 왕국제일검에서 소드마스터까지 된 루얀 님이 압도적이지!”

“너는 인마, 생각이 꽉 막혔어. 마법이 나온 이상 싸움이 그런 걸로만 결정될 때는 지났다, 이거야! 검기를 샥샥 휘둘러도 바람마법으로 막으면 무슨 소용이겠냐? 공격력은 또 어떻고! 화염마법을 멀리서 쏴 버리면 답이 없다, 이거야!”

쾅! 두 주정뱅이 앞에 큰 맥주잔들을 내려놓은 여주인이 말을 잘랐다.

“시끄러우니까 그만들 해. 뭔 시답잖은 걸 가지고 계속 난리야?”

“시답잖다니!”

“시답잖은 게 맞지!”

주정뱅이들의 항의에 여주인이 허리에 손을 얹고 눈을 부라렸다.

“애초에 그 싸움은 말이 안 되니까!”

“왜, 왜?”

“루얀 피어트 님이 레아 피어트 님한테 검기를 쏘겠어, 검을 휘두르겠어?”

순간 두 주정뱅이는 깨달은 표정이 되었다.

주인이 하는 양을 지켜보고 있던 다른 손님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맞네! 그 팔불출 루얀 님이 여동생한테 해코지하려 들 리가 있나!”

“그러게 말이야! 아주 금이야 다이아야 애지중지하더구먼!”

“그런 여동생이면 나라도 그러겠네. 예뻐, 씩씩해, 마법사 돼서 오빠도 도와.”

“남매가 우애가 좋더라고. 보기 좋아.”

사람들은 루얀의 팔불출 면모도 좋다고 칭찬했다.

천사 같은 얼굴로 검기를 휘두르며 건물을 부수는 소드마스터가, 여동생을 보는 눈에선 꿀이 떨어지고, 여동생 말이라면 일단 듣고 보는 모습이 인간적으로 느껴진다나.

얼마 전 루얀의 더포드 남작 살해혐의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사람이 그 정도 말도 못 하나? 여동생 일이라면 저렇게 감정적으로 굴어서야.’

‘그러게 말이오. 검 쓰는 기사의 마음이란 훨씬 냉정해야 하는데, 저런 팔불출이 왕국제일검이라니…….’

그때에는 그의 팔불출 성격이 큰 흠이 되었는데, 지금은 인간적인 매력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사이 피어트 공작가의 위상이 달라진 덕분이었다.

“정말이지…… 얼마나 큰일 날 뻔했어?”

술집 안의 누군가 내쉰 한숨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몇 년 만의 한파까지 밀어닥친 이 잔인한 계절에 일어난 가짜 감기약 사건. 그리고 뒤이어 일어난 많은 독 중독 사건들.

얼마나 많은 이가 고생하고 목숨을 잃을 뻔했던가.

그런데 피어트 공작가에서 드디어 일을 해결하고 밝혀낸 것이다.

‘모두 트로우 백작이 꾸미고 지시한 일이오!’

‘페이런의 불꽃인 레아 피어트 님에게 오켄의 황태자가 청혼할 때부터, 트로우 백작은 계속 제국의 수상한 놈들과 협조하며 악행을 꾸미고 있었소!’

트로우 백작가의 사병들과 기사들의 쏟아지는 증언들!

그러잖아도 더포드 남작의 살해미수 재판에서 그간의 악행들이 일차로 털렸던 트로우 백작가였다. 그런데 이차로 또 줄줄이 악행 고구마줄기가 쏟아져 나온 것이다.

“질긴 놈들. 죽지도 않고 또 이딴 일을 꾸며?”

“피어트 공작가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지난번에도, 이번에도, 피어트 공작가가 낱낱이 밝힌 거잖아?”

그냥 밝히기만 한 게 아니었다.

그 과정에서 수도 사람들은 피어트가의 삼 남매에게 더 깊이 매료되었다.

레아의 마법. 루얀의 검술. 이들이 보인 활약은 당장 이야기책에 실어도 손색없는 화려한 영웅담이었다.

거기에 더해 레아 옆 헬릭스에 대한 소문도 퍼져 나갔다.

‘손만 댔는데 독이 몽땅 치유됐대!’

‘세상에! 치유신관님들도 못 하신다던 일을!’

성자 같은 행보와 경건한 분위기의 초미모. 어떤 칭찬에도 ‘……수호자일 뿐이다’라고 대답하는 겸손함까지.

그야말로 사람들이 원하는 성자 같은 영웅상이었다.

게다가 소공작 리케일 피어트는 또 어떤가. 리케일 소공작이 시장에 새로 푼 파란 감기약은 효능도 뛰어날 뿐 아니라, 가난한 사람도 무리 없이 살 수 있는 가격이었다.

피어트 공작가가 페이런의 구원자로 등극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휴. 피어트 공작가를 위해 건배하자고!”

“여신께서 피어트 공작가를 지켜 주시길!”

“내가 오늘 여기 술값은 쏜다! 내 딸이 파란 감기약을 먹고 독감이 싹 나았으니까!”

❀ ❀ ❀

피어트 공작가가 폭발적 인기를 누리고 있을 때, 트로우 백작은 저택에 칩거 중이었다.

건물 한 동만 달랑 남은 저택 꼭대기에서 다리 두 개 달린 드래곤 깃발이 펄럭였다.

“저거 오켄 황태자 깃발 아니야?”

“그런 극악한 짓들을 해 대더니, 믿는 구석이 있어서 그랬구먼!”

지나가던 사람들이 침을 뱉었다.

저택 주위는 쓰레기장이었다. 원래 있던 저택의 나머지 부분이 모조리 건축 쓰레기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후…….”

트로우 백작이 집무실에 앉아 침음을 삼켰다.

백작부인은 딸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가 버리고, 제국에 유학 가 있는 차남과 테미라 여신 교단에서 수행과정을 밟고 있는 삼남도 모두 연락 두절이었다.

“아비가 이렇게 힘드니 돌아와서 도우라고 편지를 몇 번이나 보냈는데…….”

백작은 부들부들 분노에 떨었다.

“이놈들이 교육비와 용돈 대 달라고 할 때는 세상 효자인 척하더니! 이 아비 편지를 반송을 해?”

감정이 격해진 트로우 백작이 뒷목을 잡았다.

“아버지, 진정하세요.”

그나마 옆에 있는 트로우 경이 그를 말렸다. 백작이 울컥하는 심정으로 아들을 쳐다보았다.

“우리 장남…… 내겐 너밖에 없구나!”

얀 트로우는 저도 모르게 표정이 썩었다.

❀ ❀ ❀

‘우리 장남은 개뿔.’

얀 트로우 경은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엄하고 까다로운 아버지의 인정을 얼마나 갈망했는지 모른다. 평생 꿈꿔 왔던 일인데 별로 기쁘지 않았다.

‘휴.’

오히려 피로했다.

‘내가 이 꼴을 보자고 그 고생을 했나.’

트로우 경이야말로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제 아비지만, 솔직히 말해서 트로우 백작은 독사 같은 인간이었다.

사람들의 어두운 속내며 욕심을 이용해서 조종하려 들 때면 어디 지옥에서 수십 년 구르다 온 악마인가 싶어 섬찟할 지경이었다.

그런 인간인 줄 알면서도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커서, 백작 가문의 후계자로 자리매김할 욕심에, 무시와 홀대를 버티며 제 일처럼 아버지를 도왔다.

아비가 저 살자고 밀어 넣은 세이건 공작과의 결투에서 죽을 뻔도 했다.

‘그런데 지금 가문 꼴이 이게 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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