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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미모로 정의 구현 (101)화 (101/120)

101화

‘저딴 놈이라니? 카라이 님이 우리 연구소를 지켜 주신 거 모르나? 저분 아니었으면 트로우 백작가 놈들이 지른 불에 우리 다 죽었어!’

그러면서 하는 말들이라니.

‘마법 방어막이 금빛으로 번쩍했다더라.’

‘트로우 부하 놈들이 지른 불이 반대쪽으로 튕기기만 해서 놈들이 오히려 불에 당했다던데?’

뭔 말도 안 되는 얘기들뿐이었다. 신입 연구원은 속으로 비웃었다.

‘인간들이 나이도 먹을 만큼 먹어서 마법을 믿나?’

그는 레아 피어트가 마법사라는 세간의 소문도 믿지 않았다.

공녀를 보호하기 위해 피어트 공작가에서 뿌린 헛소문일 거라고, 저 마나의 수호자라는 헬릭스와 마법 방어막 능력자라는 카라이도 실은 공녀의 정부일 거라고 여겼다.

‘쯔. 다들 그런 뻔한 수작에 넘어가는 꼴들 하고는!’

그가 혀를 차며 레아 피어트와 헬릭스의 뒤를 쫓아 병실에 들어갔다. 주치의가 한 환자를 가리키며 말하고 있었다.

“체력도, 중독 상태도, 이 환자가 제일 좋은 편입니다.”

“좋아. 헬릭스, 해 보자.”

레아의 말에 헬릭스가 주의 깊게 손을 뻗었다.

“읏…….”

레아가 얼굴을 약간 찌푸리며 신음했다.

“헬릭스, 헬릭스. 출력을 좀 낮춰 봐.”

“이렇게 말인가?”

“조금만 더…….”

연구원은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투덜댔다.

‘뭐 하자는 거야? 지들 소꿉장난하러 왔나?’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

“쿨럭!”

의식을 잃고 있던 환자가 시커먼 피를 토하며 깨어난 것이다. 주치의가 급히 환자를 일으켰다.

“쿠, 쿨럭!”

“뭘 하나! 얼른 양동이를 가져오게!”

“어……? 예!”

연구원이 다급히 양동이를 들고 돌아왔다.

딱 봐도 독과 죽은 피가 뒤섞인 액체를 게워 낸 환자의 눈에 빛이 돌아왔다.

심지어 바싹 마른 입을 떼어, 더듬더듬 묻기까지 했다.

“여기가…… 어딥니까?”

의식도 없던 환자가 정신을 차린 것이다. 연구원이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이게 무슨 일이야?’

그런데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으…….”

옆 침대에 누워 있던 의식불명 환자도 몸을 뒤틀며 신음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 여기 환자가……!”

주치의가 급히 말했다.

“다른 연구원들과 간호 하녀들을 깨우게!”

연구원은 어안이 벙벙해서 사람들을 깨우러 뛰어나갔다.

‘이게 말이 되나?’

말도 안 되는 일이 연달아 눈앞에서 일어나자 머릿속이 멍했다. 꿈에서도 안 믿을 일이 저 헬릭스란 자의 손끝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뭐? 환자들이 깨어났다고?”

“그럴 리가? 여기 병실로 옮기고 나서 한 번도 깨어나지 못하던 환자들인데?”

눈을 비비며 반신반의해서 달려온 연구원들도, 간호 하녀들도 놀랐다.

“쿨럭!”

“으으……!”

“우어어…… 엄마…….”

의식을 잃고 있던 환자들이 피 섞인 가래침을 토하고, 식은땀을 흘리고, 줄줄 울면서 깨어나고 있었다.

“어? 어?”

의사나 약재사 출신인 연구원들이 눈앞의 광경에 눈을 비볐다.

비비고 다시 봐도 환자들이 깨어나 있자 그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현상의 원인은 아무리 봐도 단 하나, 환자들을 향해 손을 뻗고 있는 헬릭스였다.

“뭐…… 뭘 하신 겁니까?”

가장 경력이 오래된 연구원이 나서서 물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헬릭스가 태연히 대꾸했다.

“환자 안의 독을 밀어내려고 시도해 봤다. 잘되었는지 모르겠군.”

연구원들은 제 귀를 의심했다.

‘환자 안의 독을 밀어내려고 시도해 봤다.’

‘그게 상식적으로 시도해 볼 일인가?’

‘독을 손으로 어떻게 밀어내는데?’

‘멍청아, 손으로 방향을 짚고 마나로 밀어냈겠지……. 근데 마나로 독이 밀어내지나?’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얼이 나간 연구원들을 보며, 헬릭스 옆에 있던 레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성공인 거 같은데?”

“그 정도가 아닙니다!”

주치의가 흥분으로 벌벌 떨며 외쳤다.

“이 환자뿐 아니라, 이 방에 있던 환자들도 다들 같이 치료됐어요!”

“……설마?”

레아의 반응에 그나마 이성이 돌아온 연구원들이 깨어난 환자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헉…….”

“세상에. 말도 안 돼.”

“의학적으로 이게 말이 됩니까?”

레아가 제 가슴을 쳤다.

“그래서 성공이란 거야, 아니란 거야?”

“독이 해독됐습니다!”

연구원 하나가 소리 높여 외쳤다.

막 침대에서 일어난 환자들이 따라 외쳐 대기 시작했다.

“이건 기적이야!”

“성자시다!”

“성자님이 나타나셨다!”

신입 연구원은 아연해졌다.

헬릭스의 능력은 진짜였다. 그가 깨운 환자들이 그 증거였다.

‘정말 저 사람이 마나의 수호잔가 그거란 말이야?’

그렇다면 선배 연구원들이며 다른 사람들이 하던 소리가 정말이었단 말인가?

‘척 보기만 해도 약품 성분이며 상태를 알아맞히시더라고!’

‘마나의 흐름 어쩌고 하면서 환자 몸 상태도 귀신같이 보시더라니까?’

신입 연구원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헬릭스 님의 능력이 진짜라면, 카라이 님의 능력도 진짜란 소리잖아?’

그것도 모르고 지나갈 때마다 ‘저건 왜 여기 있는 거야?’ 하는 눈빛을 쏘아 댔는데. 그런 자신이 얼마나 같잖아 보였을 것인가.

‘게다가.’

신입 연구원의 고개가 끼릭끼릭, 고장 난 것처럼 레아에게로 향했다.

‘공녀님이 마법사란 소문도……!’

그가 딸꾹질을 시작했다.

“성자님!”

어느 틈에 모두 깨어난 환자들이 헬릭스를 둘러싸고 기도라도 할 분위기였다.

헬릭스가 점잖게 부정했다.

“……오해다. 난 수호자다.”

“수호하는 성자님이 나타나셨다!”

“…….”

그 북새통에 신입 연구원이 딸꾹질을 하며 조용히 병실 밖을 향해 뒷걸음질 칠 때였다. 큰 손이 조용히 그의 어깨에 얹혔다.

“히익! 따, 딸꾹!”

“저런, 놀랐나. 괴로울 텐데 좀 도와주겠다.”

헬릭스의 목소리였다. 신입 연구원이 필사적으로 목소리를 쥐어짰다.

“아, 아니…… 딸꾹! 저는 괜, 딸꾹!”

“어허! 어디 성자님의 은총을!”

“성자님의 은혜를 거부하는 거냐!”

어느새 헬릭스 성자 추종자들이 된 환자들이 신입 연구원을 꾸짖었다. 연구원은 해쓱하게 질린 얼굴로 강제 마나 투여를 받아야 했다.

겁에 질려 딸꾹질에서 벗어난 그를 보고 환자들이 환호했다.

“역시 성자님의 축복은 딸꾹질에도 듣는구나!”

“수호하는 성자님 만세!”

❀ ❀ ❀

소식을 듣고 연구소로 달려온 리케일은 놀랐다.

“모두?”

그가 되물었다.

“헬릭스가 연구소 안에 있는 병자들을 모두 해독시켰다고?”

“그렇다니까.”

레아가 에헴 하고 뻐기는 얼굴로 대답했다.

주치의는 기적을 본 표정으로 그 옆에서 고개를 미친 듯이 끄덕이고 있었고. 루얀도 팔짱을 낀 채 ‘그렇다더라고’ 하고 거들었다.

“그러고 보니 작은오빠, 어제 트로우 백작 놈의 잔당들은 어떻게 됐어?”

“어떻게 되긴.”

루얀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싹 다 잡아들였지.”

리케일이 머리를 짚었다.

“구금하고 있을 곳이 마땅찮은데…….”

“걱정 마, 형. 오래 안 걸려.”

루얀이 설명했다.

그와 피어트 기사단이 잡아들인 트로우 백작의 기사와 사병들. 놈들은 하나같이 술술 불어서 뭐 더 고문하고 협박할 건덕지도 없다고 했다.

“기사들까지 그런단 말인가?”

“지금 트로우 백작가는 침몰하는 배나 마찬가지니까. 기사도 나이 들면 은퇴해야 하는데, 더 이상 미래도 없는 트로우 백작가에 언제까지 충성을 바치겠어?”

그래도 고용 관계가 있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일했던 그들이었다. 그렇지만 오켄 황태자가 남겨놓고 간 정체를 알 수 없는 제국 놈들은 아랫사람 취급하고, 백작은 소모품 취급하고.

이젠 놈들이 시킨 더러운 일을 하다 잡힌 마당에 의리를 지킬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레아가 씩 웃었다.

“온 수도 사람들이 다 알겠네.”

눈앞에서 트로우 백작가 기사의 자백을 들은 수많은 시민들.

손 씻기 위해 전 고용주인 트로우 백작의 욕을 하고 다닐 기사와 사병들.

소문이 퍼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헬릭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트로우 백작가로 몰려간 시민들도 소문낼 거다.”

“맞다, 작은오빠. 그 사람들은 어떻게 됐어?”

“내가 누구냐. 폭도로 변하기 전에 같이 놀아 주고 왔지.”

그 놀아 주는 게 같이 뿌셔뿌셔 뭐 그런 겁니까. 레아는 되묻고 싶은 걸 꾹 참고 루얀의 이야기를 들었다.

어제 강변에서 그 난리가 난 이후, 시민들은 질서정연하게 우르르 트로우 백작 저택을 향해 달려갔다.

루얀이 앞장서고, 피어트 기사단이 뒤에서 허튼짓 못 하게 막으면서 같이 달린 덕분이었다.

“다들 가서 저택을 포위했는데.”

“했는데?”

루얀이 이를 으득 갈았다.

“늙은 너구리 같은 트로우 백작이 아예 대놓고 드래곤 깃발을 꽂고 버티더라.”

“헉.”

레아는 경악했다.

“드래곤? 오켄 황제 깃발?”

“오켄 황태자 깃발.”

리케일이 허 하고 신음을 뱉었다.

“살려고 별짓을 다 하는군.”

“내 말이 그 말이야, 형.”

빤히 보이는 수였지만, 그걸 무시했다가 제국에게 빌미를 줘도 곤란한 일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했어?”

레아가 묻자 루얀이 뿌듯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 깃발이 꽂힌 건물만 내버려 두고.”

“내버려 두고?”

“나머지 담이며 건물이며 잘 다져 주고 왔다.”

이 무슨 선택적 파괴란 말인가.

“…….”

일행은 잠시 말을 잃었다. 그나마 빨리 정신을 차린 리케일이 말을 돌렸다.

“헬릭스가 치료한 환자들도 귀가하고 있으니, 성자 헬릭스의 기적 소문도 빠르게 퍼지기 시작할 거다.”

“성자라니…….”

“헬릭스, 그 정도는 양반이야. 너 페이런의 릴리나 페이런의 불꽃이라고 불려 봤어?”

“……레아 네 말이 맞다.”

소문에 단련된 걸로는 피어트 공작가에서 제일인 레아였다. 그녀는 씩씩하게 말했다.

“큰오빠 말대로, 이런저런 소문들이 퍼져 나갈 거야. 대개 우리에게 유리한 소문들이고.”

“그렇지.”

“가짜 약 사건을 오래 끌어서 우리 가문에 대한 신뢰도가 전보다 퍽 낮아졌을 텐데. 지금 좋은 소문들이 퍼지는 건 환영할 일이야. 난 이 기회를 이용해야 한다고 봐.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지.”

“뭐 생각해 둔 거라도 있는 거냐?”

리케일의 질문에 레아가 좌중을 둘러보았다.

“여론이 우리 편일 때 특단의 조치를 취하자.”

“특단의 조치?”

“새 파란 감기약을 대대적으로 출시하는 거야. 깜짝 놀랄 만큼 낮은 값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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