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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미모로 정의 구현 (98)화 (98/120)

98화

몸에 불이 붙은 사병들이 비명을 질렀다.

“뭐, 뭐 하는 거냐!”

트로우 백작의 기사들이 상황파악 못 하고 외치는 사이, 뱀 기사단원들은 고개를 들고 입을 떡 벌렸다. 금빛 마법 방어막이 건물 전체를 감싸고 번쩍이고 있었다.

“망할! 물러나!”

“예? 방금 불을 붙였는데!”

“저게 그 불을 튕겨 낸단 말이다!”

무슨 소린가 하고 돌아보던 기사에게로 기름통에서 치솟은 불길이 달려들었다.

“으악!”

“저 등신이!”

혼란통에 우왕좌왕하는 사이, 골목 양쪽에서 타다닥 발소리들이 들렸다.

“저 새끼들 잡아!”

피어트 기사단과 루얀 피어트였다. 카라이가 방어막을 성공적으로 가동하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그들이 일망타진하러 우르르 출동한 것이다.

뱀 기사단원이 당황해서 소리쳤다.

“루얀 피어트가 여기 왜!”

트로우 백작도 뱀 기사단원들도 바보가 아니었다. 그들은 이 작전을 시작하기 전에 루얀 피어트의 기척을 수도 없이 확인했다.

‘피어트 기사단 놈들이 좀 있긴 하지만, 트로우 백작 놈 사병들 좀 던져 주고 튀면 되겠지.’

‘약간의 희생으로 일을 치르고 빠져나올 수 있을 것 같군.’

그런데 루얀 피어트가 왜 여기 있단 말인가!

루얀이 천사 같은 백금발을 쓸어 올렸다. 느슨한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니들이 소드마스터의 경지를 알아?”

“이런 샹!”

배 속 깊은 곳에서 들끓는 나머지 욕들을 삼킨 채, 놈들은 도주하기 시작했다.

❀ ❀ ❀

루얀 피어트는 말 그대로 악귀처럼 쫓아왔다.

제 움직임이 만들어 낸 바람에 환한 백금발이 물결치고, 녹색 눈동자는 목표를 놓치는 법 없이 번쩍였다.

남들이 보기엔 아름다운 모습일지 몰라도 놈에게 쫓기는 입장에선 전혀 아니었다.

‘천사처럼 생긴 놈이 저러니까 괴기스러워!’

‘왜 숨은 하나도 안 흐트러지는데! 왜 웃고 있는 건데, 미친놈처럼!’

꿈에 볼까 두려운 광경이었다.

“으아아아!”

공포에 질린 트로우 백작가의 기사 하나가 강으로 뛰어들었다.

“저놈이!”

“저건 나한테 맡겨, 오빠!”

어느새 루얀 옆으로 달려온 헬릭스. 그에게 업혀 있는 레아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오빤 다른 놈들 쫓아야지!”

“그래. 맡긴다!”

루얀은 다른 놈들을 추적하느라 바삐 사라졌다. 헬릭스에게 착, 업혀 있던 레아가 외쳤다.

“헬릭스, 우리 저기 다리 중앙으로 가자!”

“알겠다!”

헬릭스가 레아를 업은 자세를 한번 추스르더니 쏜살같이 달렸다.

“어푸, 어푸!”

얼음물에 빠져 꼴깍대는 기사가 발버둥 쳤다.

다리 중앙에 선 레아는 그를 집중해서 노려보았다. 바람이 그녀의 손끝에서 소용돌이치듯 불었다.

휘아아아……!

바람 소리가 강력했다. 생각보다 센 출력에 레아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까 헬릭스가 마나 뿜어내더니…… 나도 더 강해졌나 봐!’

생각 같아선 돌아서서 넌 왜 이렇게 복덩이냐고 뽀뽀세례를 해 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물에 빠진 놈부터 건져 올려야 할 때였다.

‘얼른 해치울 거야!’

레아가 저도 모르게 집중력을 발휘했다.

휘이이잉!

“으거어억!”

갑자기 바람에 휩쓸려 끌어 올려진 기사가 놀라 다리를 버둥거렸다. 레아가 그 모습을 보며 손끝에 더 힘을 줄 때였다.

“……에치!”

갑자기 터져 나간 재채기!

“꾸에엑!”

기사가 꼴사나운 비명을 지르며 아래로 떨어졌다.

풍덩!

“뭐야, 저거?”

강변을 걷던 사람들, 다리를 건너던 사람들이 휘둥그레져서 그 모습을 쳐다봤다.

“누가 밀었나?”

“아니, 아깐 끌어 올리는 거 같던데?”

“밧줄도 없는데? 뭐여?”

사람들이 수군대며 강가로 몰려들었다.

그렇지만 헬릭스는 그 모습이나 시선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기색이었다. 그는 다만 레아가 걱정된다는 듯이 두꺼운 망토를 그녀의 어깨에 둘렀다.

‘따뜻해.’

레아가 어깨를 폈다. 망토의 무게가 묵직하게 어깨에 얹히고, 새삼 등 뒤에 선 헬릭스의 존재감이 든든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한결 차분해진 마음으로 손을 내밀었다.

휘이이.

레아의 손끝에서 일어난 바람마법이 기사를 감싸 끌어 올렸다. 조금 전보다 훨씬 더 능숙해진 모습이었다.

“흐으으…….”

바람에 휩싸인 기사는 허공에서 덜덜 떨었다. 이 겨울에 난데없이 얼음물 퐁당퐁당 고문을 당한 셈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렇지만 그의 수난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멀리서 루얀 피어트가 달려오며 외쳤던 것이다.

“레아야! 그놈 잡았냐?”

“히익!”

다리 중간쯤에 대롱대롱 매달린 기사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그거 트로우 가문 기사 맞지?”

이어서 들려온 루얀의 말에, 강변과 다리 위에서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의 눈빛이 돌변했다.

“뭐? 트로우 백작가 기사라고?”

“또 뭔 짓을 한 거야? 악당 놈이?”

❀ ❀ ❀

파들파들. 대중의 눈빛 공격을 당한 기사의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아, 아닙니다!”

그렇지만 상대가 누군가. 얼굴은 천사, 재능은 악마, 성격은 지랄 그 자체라는 루얀 피어트였다.

루얀은 기사가 살려고 내뱉은 거짓말을 봐주지 않았다.

“내가 두 번 물을 거 같았냐?”

그가 번개같이 검을 뽑아 허공을 그었다.

“히에엑!”

루얀의 시퍼런 검기가 기사의 옆구리를 스쳤다.

덧입은 위장복 아래 숨어 있던 가죽갑옷과 제복이 드러났다. 실눈을 뜨고 봐도 트로우 백작가 기사단의 제복이었다.

“이래도 아니냐?”

기사는 루얀의 말에 대답할 수 없었다. 두려움에 기절한 것이었다.

“그놈을 거꾸로 매답시다!”

“강물에 담가 버립시다!”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이 외치기 시작했다. 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여론에 맞춰 행동해 볼까?”

그녀가 손을 탈탈 털었다.

풍덩!

“어푸푸!”

강제로 깨어난 기사가 허우적댔다.

휘이잉.

레아의 바람마법이 다시 그를 휘감아 위로 띄워 올렸다.

“거꾸로 매답시다!”

“매달아서 흔들어 버려요!”

“매달아서 매우 칩시다!”

점점 더 올라가는 요구들에 기사는 다리 밑 허공에 대롱대롱 거꾸로 매달렸다. 기사가 허옇게 뜬 얼굴로 사정했다.

“사, 살려 주십쇼! 제발 살려 주십시오!”

“다 말할 거야?”

레아가 조용히 물었다. 나긋하지만 위협적인 목소리였다.

“뭐, 뭘…… 으아아!”

그녀가 손가락을 튕기자 기사가 시계추처럼 흔들렸다. 한 번 흔들릴 때마다 그의 머리가 다리의 돌난간에 가까워졌다.

뎅…… 뎅…….

마침 근처의 종탑에서 종소리가 울렸다.

데엥…….

기사의 인생에서 가장 섬뜩하게 들리는 종소리였다.

‘이대로 있다간, 내가 저 종처럼 흔들리면서 다리에 부딪힐 거야!’

죽을 것이다. 머리가 깨져 죽을 게 분명했다.

데에엥…….

기사가 공포에 질렸다.

“마, 말하겠습니다! 다 말하겠습니다!”

기사는 다리와 강변에 모인 사람들 앞에서 남김없이 불기 시작했다.

가짜 약 유통. 가짜 약에 독을 넣은 것.

약 유통이 막히자 제국에서 받은 특별한 독약을 여기저기 뿌려 댄 것.

조금 전 레아가 불을 낸 것처럼 위장하여 피어트 연구소에 불을 지른 것까지!

❀ ❀ ❀

한바탕 이어진 자백의 여파는 컸다.

“트로우 백작가를 쳐 죽이자!”

“백작을 매달자!”

“그 아들놈도 옆에 같이 매달아야 해! 똑같은 놈이야!”

강변과 다리 가득 모여든 사람들이 외쳐 댔다. 한 중년남자가 나서서 소리쳤다.

“놈들이 가짜 약을 뿌려서 우리 어머니가 감기약도 제대로 못 드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이 원수를 갚아야겠습니다!”

“옳소! 옳소!”

한 중년여자도 나서서 외쳤다.

“프라이팬 휘두를 힘이라도 있으면 갑시다! 우리 언니가 놈들이 가짜 약에 넣은 독에 당해 쓰러져 있어요! 조카가 넷이라고요! 백작 놈 수염이라도 잡아 뜯어야겠어요!”

“수염이 뭐야, 머리채를 다 뜯어 놔야지!”

왕년에 치안대였던 할아버지도 흥분했다.

“환자들이 있는 병동에 불을 내려고 하다니! 그게 사람이 할 짓인가!”

페이릴리 팬클럽에서 페이런의 불꽃 팬클럽으로 갈아탄 소년도 주먹을 쥐었다.

“우리 위대한 마법사님을 모함하려고 들다니, 마나의 저주를 받을지어다!”

아우성이 이어지자 의외의 사실들도 터져 나왔다.

“천벌받을 놈들이에요! 우리 언니가, 몇 달 전에 거리에서 얀 트로우 마차에 치였는데…… 놈들이 멋대로 치료한다고 싣고 가더니…… 시체로 돌아왔어요.”

원한 어린 새되고 높은 목소리였다. 아직 소녀티가 나는 어린 처녀가 말했다.

“치료해 보려고 했지만 상처가 깊어 죽었다면서요. 그렇지만…… 언니의 몸은 다리와 팔이 한 군데씩 부러진 거 말고는 멀쩡했는데! 의사도 그랬어요. 사인은 마차사고가 아니라고요. 목을 졸라 죽인 거라고요!”

처녀가 치를 떨며 외쳤다.

“얀 트로우 그놈이 마차로 언니를 치고, 납치해서 겁간하고 죽인 거예요!”

귀족이 상대여서 말 한번 못 해 본 억울한 일이었다.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한 사연에 놀라 입을 벌리는데, 누군가 끼어들었다.

“트로우 가의 장남 그거! 그건 그러고도 남을 놈이야!”

머리가 허옇게 센 노파였다.

“내가, 내가, 그 클럽인지 뭔지, 그런 놈들한테 여자 보내는 가게들 돌면서 빨래만 이십 년을 했잖아! 거기 여자들이 다들 욕하는 놈이었어! 어리숙한 신입이 들어왔다 하면 그놈이 불러서 죽어 나간다고! 여자 목숨을 아주 파리만도 못하게 여기면서 갖고 놀다 죽이는 놈이라고!”

사람들 사이로 경악과 분노가 술렁이며 퍼져 갔다. 누군가 소리쳤다.

“트로우 백작은 우리 평민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막 죽이려고 들더니, 그 아들놈도 똑같구먼!”

“악마여! 악마들이여! 찢어 죽여야 혀!”

“높이 매달아 버립시다! 매달아서 다들 돌팔매질을 합시다!”

“내가 그놈들 면상에 침을 뱉고 말 거요!”

성난 군중들의 아우성!

“레아.”

헬릭스가 속삭였다.

“이대로 두면 안 된다. 곧 폭도 무리로 변할 거다.”

“포, 폭도?”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분위기가 그렇다. 곧 횃불을 들고, 폭도로 변해 트로우 백작가로 달려갈 것이다.”

레아의 등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폭도로 변해서, 다들 얌전히 트로우 백작가로 일직선으로 달려가서 트로우 백작과 트로우 경만 패고 트로우 저택만 부수고 해산하진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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