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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미모로 정의 구현 (57)화 (57/120)

57화

레아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기껏 급습했는데, 재수 없게 비약을 안 가지고 있으면 다시 시도해야 하잖아. 그러니까 처음부터 때리면 안 되지.”

“역시 내 동생. 의외로 치밀하다니까.”

남매의 대화에 카라이가 끼어들었다.

“기습 타이밍은 제가 확실한 때를 알고 있습니다.”

카라이는 설명했다.

트로우 경의 기벽은 술에 취해 매춘부를 살 때 정점을 찍는다고 했다.

“얀 트로우의 호위를 맡았던 놈이 그러는데, 놈은 비약을 가지고 다니다 함께 밤을 보낸 매춘부에게 먹인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놈이 단골인 비밀클럽에 갔을 때를 노리면…….”

헬릭스가 분노했다.

“극악무도한 변태 아닌가!”

루얀도 벌떡 일어났다.

“그 새끼, 그런 걸 우리 레아한테 먹였다고?!”

“작은오빠, 진정해. 그놈이 범인인 게 확실한 건 아니잖아.”

“정황이 이렇게 확실한데 뭐가 더 확실해야 되냐? 네가 비약인지 뭔지 먹고 죽을 뻔하고 나서 마법사가 된 거라며!”

“아니, 그렇지만 트로우 경이 주는 걸 내가 받아먹었을 거 같진 않단 말이야.”

그건 그랬다.

“트로우 백작가가 날 얼마나 눈엣가시로 여기는지 나도 아는데.”

“다른 이를 이용해서 널 해치려 든 걸 수도 있지.”

리케일의 말에 레아 일행의 표정들이 음습하게 변했다.

“그런 자들은 죽이는 게 좋겠다.”

“대찬성입니다.”

“곱게 죽이지 않고 포를 떠 주마.”

“무슨 소리. 큰 빚을 지워서 바짝바짝 말린 뒤에 죽여야지. 단칼에 편히 죽일 셈이냐.”

레아는 흉흉한 일행들 앞에서 손을 저었다.

“그런 건 이기고 나서 해. 지금은 이 정보를 활용하자고.”

그녀가 카라이를 칭찬했다.

“잘 말해 줬어, 카라이.”

카라이의 얼굴이 붉게 타올랐다.

“주인…… 공녀님께서 원하신다면 트로우 백작의 변태 행각도 다 알려 드리겠습니다!”

“아니 그건 좀. 내 귀는 소중하니까.”

루얀도 소파에 비뚜름하게 몸을 기대고선 한마디 했다.

“첩자 놈 거둬 준 게 도움 될 때도 있군.”

“얀 트로우에게서 비약을 훔쳐 오면, 헬릭스가 수면마법 해제에 쓸 수 있을 거야.”

“비약만 얻으면 가능하다.”

헬릭스의 말에 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놈의 단골이라는 비밀클럽에 잠입하면 되겠네.”

레아가 산뜻하게 결론을 내렸다.

“우리가.”

❀ ❀ ❀

“꼭 레아 네가 직접 가야 하냐?”

리케일이 심각한 얼굴로 안경을 만지작거렸다.

문서 볼 때만 쓰는 안경이었다. 일하다 안경 벗는 것도 잊고 말리려고 달려온 것이다.

역시 땀범벅 연습복 차림 그대로 달려온 루얀도 형 옆에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레아 네가, 어? 비밀클럽? 그딴 곳에, 어? 더러운 놈팡이가 얼마나 많은데!”

“그러니까 변장하고 갈 거라니까.”

“너는 네 외모를 잘 몰라! 변장한다고 그게 가려지냐고!”

“가면도 쓸 거야.”

“비밀클럽에서 가면 쓰는 건 고급 창부들이나 하는 짓이라고오!”

루얀이 포효했다.

“비약이 진짜인지 마나로 감별하려면 나하고 헬릭스가 가야 한다니까? 둘 다 변장하고 갈 거고.”

“너무 걱정 마라. 내가 레아를 잘 보필하겠다.”

헬릭스의 말에 리케일과 루얀이 대번에 얼굴을 구겼다. 제 동생과 헬릭스는 자기들 외모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너희는 너무 미끈하게 생겨서 눈에 띈다고!”

“루얀 말이 맞아. 둘 다 너무 눈에 띄고, 특히 레아 너는 알려진 얼굴이잖냐.”

“가면을 쓰면 되지 않나.”

헬릭스의 말에 리케일과 루얀이 설명했다.

페이런의 귀족들은 드나드는 비밀클럽에선 의외로 가면을 잘 쓰지 않았다. 그들 특유의 경계심과 과시욕 때문이었다.

가면을 쓰는 경우는 대략 세 가지.

진짜 구린 짓을 벌이거나, 사실은 신분이 낮은데 한 번쯤 인맥으로 끼어들어 왔거나, 귀족의 정부나 고급 매춘부인 경우라고 했다.

헬릭스가 듣고 상황을 이해했다.

“우리가 너무 눈에 띄니까 가면을 써야 하지만, 가면을 쓰는 거 자체도 눈에 띈단 얘긴가.”

“바로 그거다.”

그렇다면 일리 있는 걱정이었다.

가면을 써도 시선을 받고, 시선을 받으면 가면으로도 숨길 수 없는 미모가 드러날 테고, 이래저래 결국 관심의 대상이 된다면 비밀스러운 작전을 진행하기 힘들었다.

‘우리 헬릭스가 정말 잘생기긴 했지.’

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가면도 쓰고, 변장도 아주 신경 써서 할게. 오빠들도 날 지원해 줘.”

❀ ❀ ❀

“결국 관건은 미모를 잘 숨기는 거야.”

비밀작전을 위해 하녀들도 다 물린 레아의 개인응접실.

헬릭스를 화장대 앞에 앉혀 놓고 레아가 의미심장하게 손가락을 흔들었다.

“못생기게 변장하겠다는 말인가.”

“응.”

단호하게 말한 레아가 화장도구함을 헬릭스 옆 테이블에 탁 놓았다.

“외모를 가장 빠르게 못생기게 만드는 방법은.”

그녀의 손에서 눈썹칼이 번쩍 빛났다.

“눈썹을 잘못 미는 거지.”

헬릭스가 뻣뻣해졌다.

레아도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처럼 긴장해서 손을 뻗었다.

바들바들.

“자, 잠깐.”

레아가 눈썹칼을 들이밀다 말고 가슴을 누르며 한 손을 들어 올렸다.

“레아, 왜 그러나?”

“모, 못 하겠어.”

차마 헬릭스의 눈썹을 밀 수가 없었다.

“이건 예술 테러야! 명작 훼손이라고! 인류의 손실이야!”

“진정해라, 레아. 눈썹은 다시 자란다.”

“다시 다 자랄 때까지 몇 주는 걸릴 거 아니야! 그동안 나는 어떡하라고!”

헬릭스의 이 완벽한 얼굴을 몇 주나 못 본다니. 생각만 해도 눈물이 앞을 가렸다.

“내 얼굴이 그렇게 좋나.”

“그걸 말이라고.”

레아가 얄밉다는 표정으로 헬릭스를 쳐다봤다.

“잘생기지 않은 데가 없는데 어떻게 안 좋아하죠?”

오랜만에 들어서 그런가.

그녀의 칭찬에 그간 내성이 쌓였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헬릭스는 가슴을 누르며 말했다.

“……얼른 변장하고 클럽 잠입계획을 짜야 하지 않겠나.”

“아차, 그렇지.”

궁리하던 레아는 타협해서 헬릭스의 인상을 바꾸기로 했다.

“헬릭스는 완벽한 냉미남 스타일이니까, 반대로 가면 이미지가 달라져서 미모도 좀 죽을 거야.”

그녀는 눈썹칼을 내려놓고 화장품을 집어 들었다.

날렵한 회색 눈썹을 검게 칠하면서 꼬리를 내려 그렸다. 해 놓고 보니 눈매와 안 어울려서 눈에도 티 안 나게 아이라인을 잡아 처진 눈매로 만들었다.

꼴깍.

결과물을 본 레아가 침을 삼켰다.

‘이건 또 이거대로 위험한데.’

헬릭스가 물었다.

“왜? 뭐가 잘못됐나?”

“……여전히 너무 잘생겼어.”

게다가 눈썹과 눈꼬리를 처지게 만들었더니 냉미남 분위기가 누그러져서 대형견 스타일로 보였다.

‘엘프왕이 사모예드가 됐다.’

둘 다 좋은데 다 가지면 안 될까요. 고민하던 레아가 끙 소리를 내며 헬릭스를 쳐다봤다.

“아무래도 눈썹을 조금만 밀어 봐야겠어.”

“자, 잠깐.”

“가만히 좀 있어 봐.”

바짝 다가온 레아 때문에 헬릭스는 순간 숨을 멈췄다. 집중한 레아가 그에게 몸을 거의 붙이다시피 했다.

“아니, 저기, 잠깐.”

“가만있으래도? 움직이면 베인단 말이야.”

신중하게 헬릭스의 눈썹을 쓸어내리고 눈썹칼로 사각대며, 레아는 입술을 동그랗게 말았다.

“후.”

분홍색 입술에서 따뜻한 숨결이 흘러나왔다.

“후우.”

레아는 입으로 바람을 불어 잘린 눈썹을 날렸다.

약간 길게 잘린 눈썹이 헬릭스의 속눈썹 위로 떨어지려 했다. 그녀가 다급하게 그의 얼굴을 붙들었다.

“후우우.”

헬릭스의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더니, 갑작스레 열렸다.

회색 유리알 같은 눈동자에 비친 제 모습이 너무 가까웠다.

‘어?’

레아가 화들짝 떨어지려 했지만 헬릭스가 더 빨랐다. 뒤로 젖힌 허리를 지탱하듯 안아 끌어당기자, 그의 얼굴을 잡고 있던 손이 반사적으로 머리를 끌어안았다.

“넘어질 뻔했잖나.”

헬릭스가 그녀의 허리를 꽉 잡으며 안심한 듯 한숨 쉬었다.

얼결에 안아 버린 얼굴에서 훅 숨결이 닿자 맞닿은 배가 조여들었다. 레아는 마른침을 삼키며 그의 뒤통수에서 서서히 손을 떼었다.

“……괜찮아.”

괜찮지 않은 떨리는 목소리가 나와, 그녀는 눈을 내리깔았다. 눈썹을 다듬다 만 헬릭스가 레아를 올려다보며 시선을 마주쳐 왔다.

“정말 괜찮나?”

걱정하는 목소린데 묘한 열감이 느껴졌다. 그가 제 머리에서 손을 떼는 레아의 왼손을 스치듯 잡았다. 살짝 떨리는 손끝을 헬릭스의 두꺼운 손가락이 누르며 문질렀다.

“손이 차다.”

레아의 뺨이 달아올랐다.

손끝만 차갑게 식을 뿐이었다. 그녀는 새빨개진 얼굴로 아름다운 남자를 내려다보며 홀린 듯이 손을 뻗었다. 자유로웠던 오른손이 헬릭스의 뺨에 얹혔다.

“그럼 헬릭스가…….”

“…….”

“……마나 넣어 주면 되잖아. 따뜻하게.”

입술이 말랐다.

헬릭스가 레아의 왼손을 꽉 잡은 채, 얼굴에 얹힌 오른손을 감쌌다.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마나가 차가운 손끝으로 밀려들었다.

손끝이 뜨겁고 얼얼해서 헬릭스의 얼굴을 잡기가 겁났다. 제 얼굴에서 도망치는 하얀 손을 커다란 손이 재차 붙잡았다.

“…….”

잡아 놓고도 제 행동에 놀란 그의 눈이 흔들렸다. 레아는 놔 달라는 듯이 손을 움직였지만, 헬릭스는 혼란스러워하면서도 그녀의 손을 놓지 않았다.

기이한 대치에 둘 다 숨을 멈췄다. 그때였다.

“레아야!”

방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둘은 급하게 떨어졌다. 리케일이 서둘러 들어왔다.

“얀 트로우가 오늘 밤에 비밀클럽 예약을 넣었다고 한다.”

“오늘 밤?”

레아가 재차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했어? 우리 예약은?”

“위장한 신분으로 둘, 예약을 넣었다.”

“트로우 경에 대한 자료는?”

“……여기 있다.”

놈의 여자 취향, 요즘 만나는 매춘부, 즐겨 잡는 예약룸 등 더러운 알짜배기 정보들이었다.

제 손에 닿는 것도 더러운데 세상 하나뿐인 귀한 여동생에게 넘기려니 속이 안 좋았다.

리케일이 한숨 쉬었다.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레아가 자신만만하게 허리에 손을 얹었다.

“큰오빠, 날 믿어. 잘될 거야.”

그녀가 장담했다.

“여차하면 헬릭스한테 마나 받아서 마법 쓰고 도망칠게.”

“레아 너까지 루얀처럼 말하면 큰오빠 더 늙을 거 같은데…… 그래도 이번엔 그렇게 해라. 안 되겠으면 꼭 도망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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