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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미모로 정의 구현 (50)화 (50/120)
  • 50화

    “저도 옆에서 공녀님을 잘 보필해야 하는데…… 죄송해요.”

    “자넷, 네 탓이 아닌데 왜 그래?”

    “그래도 죄송해요…….”

    레아는 마음이 안 좋았다.

    ‘애가 그사이에 기가 죽었잖아.’

    산골 소녀인 자넷을 피어트 공작가 하녀로 꽂아 놓은 뒤, 그녀도 은근 신경을 썼더랬다.

    ‘텃세에 시달리진 않을까, 무시당하진 않을까 지켜보면서 전속하녀로 열심히 키우고 있었는데.’

    그런데 그놈의 빌어먹을 수면마법 때문에 도로아미타불이 되어 버렸다. 레아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하긴 자넷만 문제가 아니야.’

    그때 수면마법에 당했던 이들은 모두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자넷을 비롯한 고용인들, 호위하던 기사들, 마법능력자 카라이와 소드마스터 루얀조차도 가끔 기면증처럼 픽픽 쓰러져 잠들었던 것이다.

    소공작 리케일도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아직은 우리 가문 선에서 숨기고 있지만, 수면마법에 걸린 게 소문나는 건 시간문제다.”

    “얼른 해결하지 않으면 조만간 새어 나가겠네.”

    레아가 흘깃 루얀을 보며 말을 이었다.

    “게다가 작은오빠가 소드마스터가 된 것 같던데…….”

    “뭐?”

    두 오빠가 눈을 부릅떴다. 그녀가 손을 저었다.

    “헬릭스가 말했으니까 틀림없어.”

    “헬릭스, 정말인가?”

    “확실하다.”

    입을 벌린 두 오빠를 향해 레아가 말했다.

    “작은오빠는 원래도 왕국제일검으로 유명하잖아. 우리 가문 군사력의 상징 같은 존재고. 그런데 소드마스터가 됐고, 그 소드마스터가 툭하면 쓰러져서 잠든다고 하면…….”

    “……가문에 미칠 타격이 상당하겠군.”

    리케일이 근심스럽게 말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작은오빠가 검기를 막 뿌리면서 날뛰다가 갑자기 잠들기라도 해 봐. 난리가 날 거야.”

    “……사람을 너무 몬스터 취급하는 거 아니냐?”

    “작은오빠는 이제 몬스터가 아니라 자연재해라니까?”

    레아의 말에 루얀은 억울한 듯 투덜거렸다.

    “꼭 그러란 법은 없잖아. 수면마법이 위험하면, 사람 없는 곳에서만 수련해도 되는 거고.”

    “그건 그렇지가 않다.”

    헬릭스가 끼어들어 설명했다.

    수면마법에 걸렸다는 게 새어 나가면 트로우 백작가에서 어떤 짓을 해서 도발할지 모른다. 갑자기 새벽에 공작 가족을 노리고 암살자가 들이닥치거나 하면, 루얀은 수면마법이고 뭐고 가족을 지키려고 뛰어들었다가 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었다.

    “암살자를 향해 검기를 내뻗는 순간 잠든다고 생각해 봐라. 그 검기가 어디로 향할지, 암살자가 검기 앞으로 누굴 끌어당길지 모르는 거다.”

    과연 오래 살면서 이 꼴 저 꼴 다 본 사람의 예시는 흉흉했다. 리케일과 루얀과 레아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러니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헬릭스가 진지하게 말했다. 레아가 달달 떨며 물었다.

    “무슨 방법이 있어?”

    “드래곤 마법 해제는 드래곤의 힘으로 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지금 드래곤은 거의 멸종상태가 아닌가. 느껴지는 드래곤의 힘이라곤 수면마법을 건 그자 외에는 없으니…….”

    “그럼 수면마법 건 놈한테 풀어 달라고 하는 수밖에 없단 말이야?”

    레아의 말에 헬릭스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여기서 더 그놈에게 약점을 잡힐 수는 없다. 내가 북부에 다녀오겠다.”

    그녀는 놀라 저도 모르게 그의 옷자락을 잡았다.

    “북부에?”

    헬릭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드래곤들이 서로의 마법을 파훼하는 건 늘 있던 일이었다. 아즈라의 도서관에 기록이 있을 테니, 뒤져 보면 방법이 있을 거다.”

    “나도 같이 가.”

    “무슨 소리냐, 레아.”

    소공작 리케일이 얼른 말렸다.

    “레아 네가 지금 수도를 비우면 안 되지. 사교시즌인데.”

    “하지만.”

    “아버지가 지난번 제린느 영애의 일로 크게 놀라셨어. 그리고 헬릭스에게 고맙고 믿음직하다고, 더 좋은 작위를 찾아 주려고 애쓰고 계신다.”

    “…….”

    “네가 지금 사교계를 비우면 곧 있을 헬릭스의 데뷔에도 악영향을 끼칠 거야.”

    레아는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헬릭스가 자신의 옷자락을 아직도 잡고 있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퐁.

    다정하고 몽글몽글한 마나가 들어오는 걸 느낀 레아가 헬릭스를 쳐다봤다. 그는 그녀를 돌아보지 않은 채, 손을 가볍게 두드렸다.

    포퐁.

    그 손짓과 마나가 곧 돌아오겠다는 약속처럼 느껴져, 레아는 그의 새끼손가락에 제 손가락을 걸었다.

    ‘약속했어.’

    그러는 둘을 두 오빠는 짜게 식은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아주 둘만의 세계에 빠지셨구먼. 여기 앉은 오라버니들은 안 보이냐?’

    ‘진짜 동생 키워 봤자 소용없다더니…….’

    헬릭스가 레아 살려 준 횟수만 손가락이 넘어가니, 참고 넘기는 팔불출들이었다.

    ❀ ❀ ❀

    헬릭스가 떠난 사이, 레아는 혼자 사교계 활동을 하고 다녔다. 사교계에선 그런 레아의 행보가 한동안 화제였다.

    “같이 말 타고 돌아오고, 남자 옷도 맞추러 다니고, 티파티에 데리러 오기까지 했으면 공인된 사이 아닌가요?”

    “바꿔 말하면 그것뿐이잖아요. 어디 모임에서 정식으로 소개한 것도 아니고.”

    사교계 사람들은 일이 어떻게 된 건지 궁금했지만, 헬릭스가 계속 안 보이자 잊어버렸다. 계속 레아와 헬릭스에게 신경 쓰고 있는 건 트로우 백작과 장남 트로우 경뿐이었다.

    “그 북부에서 온 놈이 왜 갑자기 사라진 거지? 얀, 혹시 들은 바가 있느냐?”

    “저도 모릅니다. 그냥 어느 날 증발하듯 훌쩍 사라졌다던데요. 페이릴리도 계속 전처럼 혼자 다니고…….”

    “놈에게 페이릴리가 비참하게 차였다고 소문을 내 볼까?”

    “그러다 혹시라도 놈이 또 나타나면 어쩌시려고요?”

    트로우 경이 말리자 백작은 끙끙거리며 고민했다. 레아에게 새로운 추문을 엮어야 하는데 헬릭스가 정확히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없으니 답답했다.

    ‘계집애 하나 때문에 이게 무슨 꼴인지.’

    스스로도 한심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트로우 백작가를 위해선 레아가 입을 다물어야 했으니까.

    죽여서 입을 다물게 할 수 없다면, 사회적으로 매장해서 아무도 그녀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게 하는 수밖에.

    게다가 제국 쪽에선 레아를 조용히 제국에 넘길 방법을 찾아보라고 계속 압박하고 있었다.

    ‘제국의 높은 분이 레아 피어트를 손에 넣길 원한다고 했지.’

    트로우 백작가의 안위와 제국의 요구. 양측을 만족시키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페이런의 사교계에서 레아 피어트의 가치를 폭락시킨 뒤, 납치혼이나 실종으로 처리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사교계도 피어트 공작가도 레아의 일을 화제 삼지 않으리라. 사교계는 추문으로 명예가 떨어진 여자에게 냉혹했으니까.

    ‘방법이 문제로구나.’

    트로우 백작은 고심했다.

    ‘어떻게 하면 레아 피어트를 크게 흠집 낼 수 있을까?’

    ❀ ❀ ❀

    트로우 백작이 레아의 명성을 깎아내리기 위해 방법을 찾고, 피어트 공작가는 그런 트로우 백작가를 예의 주시하는 사이, 페이런 사교계에서는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더포드 남작이 새로 데뷔한 열여섯 살짜리 영애에게 꽂혀서 쫓아다니기 시작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다들 입방아를 찧었다.

    “그자가 어린 여자애한테 추근대는 게 어디 한두 번입니까? 새삼스럽지도 않습니다.”

    “그렇지만 더포드 남작 취향 아시잖아요? 상대가…….”

    “예? 그 거물의 딸을요? 페이릴리 때 정신 못 차렸답니까?”

    더포드 남작이 새로 빠진 상대는 올해 가을에 막 데뷔한 열여섯 살의 유리아 세이건 공녀.

    서부의 패자 세이건 공작의 외동딸로, 풍성한 붉은 머리와 장밋빛 뺨이 아름다워 서부의 장미라 불리는 사랑스러운 소녀였다.

    요즘 페이릴리에게 이런저런 수작과 암살까지 시도했다가 죄다 실패하고 불안해하던 차에, 그녀에게 남자까지 생겼다는 소문을 듣고 실의에 빠져 있던 더포드 남작.

    그가 오랜만에 파티에 참석해서 쭈뼛대던 때 하필이면 세이건 공녀가 다가가 인사를 한 게 화근이었다.

    유리아 세이건 공녀는 고향인 서부에선 공주처럼 떠받들렸지만 수도 사교계 소식엔 어두웠다.

    세이건 공작부인은 몇 년 전 세상을 떠났고, 집안에 고모나 할머니처럼 어린 그녀를 위해 샤프롱 역할을 해 줄 다른 여자 어른도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공녀는 ‘데뷔했으니 왕실 인사한테 인사를 해야 하나 보다’ 하고는 더포드 남작에게 다가가 인사하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토끼가 늑대 아가리 앞에서 앞발을 흔든 격이었다.

    “서부에서 온 장미! 나의 요정!”

    더포드 남작은 열과 성을 다해 유리아 세이건 공녀를 쫓아다니기 시작했다.

    “요정님!”

    그녀가 오는 파티마다 나타나서 큰 소리로 부르며 찾아오고.

    “요정님은…… 어쩌면 이렇게 몸매도 황홀하십니까?”

    열여섯 살짜리 공녀의 가슴골을 쳐다보며 침을 삼키면서 개소리를 늘어놓고.

    “장미의 요정…… 당신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이걸 입으시면 장미의 여신 같을 겁니다!”

    무희들도 안 입을 법한 야시시한 드레스를 선물이라며 갖다 안기면서 큰소리를 쳤다.

    유리아 세이건 공녀는 더포드 남작의 머리털만 보여도 경기를 일으키며 도망칠 지경이었다. 레아는 그 상황을 보면서 유리아를 조금 동정했다.

    ‘에휴…… 쟤도 저 미친놈한테 찍혀서 한동안 고생하겠네.’

    사교계의 여론도 비슷했다. 유리아 세이건 공녀를 동정하고 더포드 남작을 향해 혀를 찼다.

    “세이건 공녀도 어쩌다 데뷔하자마자 저런 놈에게 찍혀서…….”

    “더포드 남작은 참 꾸준하게 양심이 없네요. 사생아 왕족에, 재산이 많기를 해, 나이가 적기를 해…… 뭘 믿고 어리고, 가문 좋고, 엄청 예쁜 아가씨들만 노리는지 원.”

    “자기가 젊고 미남이던 때랑 아직 똑같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한 십 년 전까진 더포드 남작도 얼굴은 굉장했죠. 지금은 저렇지만…….”

    “그래도 남작인데, 자기가 공녀들을 노릴 급이 됩니까?”

    그렇지만 이 사태를 조금 다르게 보는 사람도 있었다.

    트로우 백작은 사교계에 도는 소문을 들으며 눈을 빛냈다. 여론전에 갈고 닦인 그의 촉이 반응하고 있었다.

    ‘……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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