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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미모로 정의 구현 (46)화 (46/120)

46화

세 팔불출의 눈이 이글거렸다.

“잘 생각했다. 과연 우리 레아로구나. 이 아빠가…… 헬릭스에게 줄 좋은 작위를 구해 오겠다.”

“내탕금 금고를 내줄 테니 사교계를 아주 쓸어버리고 오렴.”

“예법과 춤을 가르칠 최상급 선생을 모셔 오마.”

레아가 세 팔불출의 분노에 동참했다.

“맡겨 주세요. 사교계의 시시콜콜한 시비 따위, 제가 돈과 미모로 다 밀어 버리고 올게요!”

그녀는 자신 있었다.

헬릭스를 볼 때마다 자신감이 뿜뿜 솟아났으니까.

레아가 헬릭스를 돌아봤다. 만날 봐도 면역이 생기지 않는 얼굴이었다.

“헬릭스, 같이 출격해도 괜찮지?”

“물론이다.”

뜻밖에 헬릭스도 조용히 불타오르고 있었다.

“레아 네게 처신을 바로 하라니……. 무례한 놈들이 내 소중한 계약자에게 그따위 말을 갖다 붙인단 말인가.”

그가 나직하고 힘있게 말했다.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시켜 다오.”

❀ ❀ ❀

헬릭스의 허락과 가족들의 지원도 받았겠다, 레아는 거칠 것이 없었다.

파란 눈이 의욕으로 가득 차 반짝였다.

“헬릭스의 저세상 미모를 제대로 보여 주겠어!”

그녀가 신나게 외치며 손뼉을 딱딱 쳤다.

레아의 박수 소리에 맞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방으로 들어왔다. 착착 열을 맞춰 들어온 이들은 질서정연하게 헬릭스를 둘러싸고 치수를 재기 시작했다.

“레아…….”

헬릭스는 약간 질린 얼굴로 그 사람들과 레아를 번갈아 쳐다봤다.

“이건 또 뭘 준비한 건가? 이 사람들은 누구고?”

“헬릭스 네가 가장 돋보일 옷을 맞춰 줄 사람들이지.”

페이런 왕국에서 남성복 분야 최고의 장인들이었다.

리케일과 루얀도 단골로 삼은 의상실답게, 장인들과 그의 조수들은 물 흐르듯 헬릭스의 치수를 재고 옷감을 그의 얼굴에 대 보며 분주히 일했다.

헬릭스가 반쯤 얼이 나가 물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어. 이렇게 해야 해.”

레아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녀는 자신과 헬릭스 옆에서 사교계의 날파리들이 왜앵거리는 꼴을 보고 있을 생각이 없었다.

이왕 헬릭스의 미모를 공개할 거면 아주 압도적으로 해 버릴 작정이었다.

최상의 모습으로!

돈도 듬뿍 발라서!

‘저렇게 근사하니 피어트 공작가에서 침 발랐구나 하고 다들 포기할 만큼!’

레아가 불타올랐다.

“최고로 해 주게!”

❀ ❀ ❀

신난 건 레아만이 아니었다.

묵묵히 손을 재게 놀리는 재단사와 다른 장인들도 신이 났다.

‘이분은 신이다! 남신이야!’

‘예술작품의 의상을 내 손으로 만들게 되다니!’

‘크흡, 다 잘 어울려. 모두 소화하셔서 도대체 뭘 권해 드려야 할지…… 너무 힘들다!’

고객님 앞이라 티를 못 낼 뿐, 그들은 인생 최대로 넓어진 코 평수로 콧김을 팡팡 뿜으며 열중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피사체를 만난 것도 재단사 인생에서는 엄청난 행운이었으니까!

‘영감이, 영감이 솟아난다아!’

재단사는 밤을 새워 예술혼을 폭발시켰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도착한 날.

“어떻게 이렇게 근사해?!”

생각보다 일찍 온 헬릭스의 연미복을 보고 레아는 대감동했다.

푸른빛이 도는 고급스러운 광택의 회색 연미복은 헬릭스의 장점만을 부각시키고 있었다.

“헬릭스, 북부에서 온 겨울의 신 같아. 엄청 멋있어!”

차갑게 잘 벼린 아름다움과 위엄이 그의 전신에서 피어오르는 듯했다.

“…….”

헬릭스는 두 손을 맞잡고 감격해서 자신을 올려다보는 레아를 내려다봤다.

겨울의 신은 무슨.

지금 레아의 눈빛을 보고 있자니 마음속 얼음 한 조각도 다 녹아서 흐물흐물해질 것 같았다.

‘녹고 있는 건 내 이성인가.’

아무래도 자신은 요즘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수호자님 감사합니다!’라고 고마움을 표하던 목소리보다 겨울의 신 같다는 레아의 말이 더 듣기 좋다니, 말이 되는 일인가.

헬릭스가 속으로 저를 꾸짖는 동안 레아는 장인들에게 약속한 보수보다 더 크게 값을 치렀다.

“수고했네. 자네들의 실력이야 믿었지만, 정말 이건 작품이야.”

화끈한 반응에 재단사와 장인들도 흐뭇해했다.

“과찬이십니다. 워낙 멋있는 분이라 작업하는 저희도 보람찼습니다.”

그녀와 장인들의 시선이 마주쳤다.

‘역시 자네들, 심미안이 좀 있구먼!’

‘눈이 있으면 저분의 미모를 인정할 수밖에 없지요!’

눈빛으로 통한 그들이었다.

레아가 말했다.

“이제 여기에 어울리는 모닝코트랑 슈트랑 셔츠랑 구두랑, 다 맞춰 주게!”

지켜보던 하녀들도 끼어들었다.

“공녀님, 크라바트랑 보타이랑 손수건까지 싹 하세요!”

“회색만이 아니라 흰색이나 보라색도 잘 어울리실 거 같아요. 치수도 있으니 몇 벌 더 맞추세요!”

레아가 하녀들의 제안에 오호라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까?”

“뭐가 그렇게 많나?!”

헬릭스가 기겁했지만 그의 외침은 아무에게도 닿지 않았다. 장인들의 눈이 번쩍 빛났다.

“맡겨 주십시오!”

“걸어 다니는 빛, 그 자체가 되게 해 드리겠습니다!”

❀ ❀ ❀

헬릭스의 수난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놀러 간 암흑길드 사무실에서 마스터가 손뼉을 치며 말했던 것이다.

“사교계라! 수호자님께는 양날의 검인 곳이라 생각했는데, 레아 공녀님과 함께라면 아주 딱이겠습니다.”

“역시 그렇지?”

“예. 사교계를 평정하시도록 제가 성심성의껏 돕겠습니다. 두 분의 이름이 높아지실수록 얻을 수 있는 정보도 늘어날 테니까요.”

어쩐지 피로에 절어 있던 헬릭스의 표정이 바뀌었다.

“얻을 정보가 늘어난다?”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질도 달라질 테고요. 드래곤의 멸종이라든지 드래곤로드 아즈라의 행방이라든지, 얻기 쉬운 정보는 아니잖습니까. 발 넓은 고위층이 필요하죠.”

마스터의 말에 헬릭스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일리 있는 말이었다.

오래전 수호자일 때에는 그의 직함 그 자체가 프리패스였기에, 고위층의 정보가 그다지 아쉽진 않았다. 귀족들보다는 그가 자주 만나는 마탑 관계자나 드래곤들이 더 잘 알고 있기도 했고.

그가 생각하는 사이 마스터는 레아에게 다른 정보를 주고 있었다.

“공녀님, 수호자님한테는 요즘 유행한다는 테일러샵 스타일도 잘 어울리실 거 같습니다.”

“테일러샵?”

“예.”

마스터가 말했다.

“요즘 젊은 영식들한텐 테일러샵이 인기라고 합니다. 고전적인 스타일만 하지 않아서 좋다고 하더군요.”

“고전적인 스타일이 아니라고? 으음…… 헬릭스는 정석미남이라 고전적인 스타일이 더 잘 받을 거 같은데.”

“꼭 그렇게 보실 일도 아닙니다. 가끔은 변화를 주는 것도 좋으니까요.”

하긴 사교계를 압살하려면 헬릭스의 미모를 이리저리 다양하게 뽐내는 편이 유리할 터였다.

‘난 봐도 봐도 안 질리지만, 남들은 같은 스타일만 고수한다고 흉볼 수도 있으니까.’

우리 헬릭스를 흉보게 할 순 없지. 레아는 어느새 마스터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뭐라더라…… 우리 고객 영애 하나가 그러더군요. ‘테일러샵은 이국적인 패턴과 과감한 디자인 등 기존 의상실에서는 하지 않던 새로운 시도들을 하고 있다’라고 말입니다.”

무슨 패션 에디터급 영애로다. 레아는 속으로 감탄하며 솔깃해했다.

그녀는 암흑길드에서 나오자마자 헬릭스에게 제안했다.

“헬릭스, 여기까지 나온 김에 테일러샵을 돌자.”

“테일러샵? 거기 가서 뭘 하려고 그러나.”

“뭘 하긴. 네 옷을 더 맞추는 거지.”

그의 얼굴이 조금 질렸다.

“……여기서 더 말인가?”

“훗.”

레아가 팔짱을 끼며 거만하게 웃었다.

“이번 시즌에 내 드레스를 몇 벌 맞췄게?”

굳이 듣지 않아도 자신과는 단위가 다를 것 같았다. 헬릭스가 곤란한 얼굴로 그녀를 내려다봤다.

“레아 너는 공작 영애이지 않은가. 내가 꼭 너와 비슷하게 맞출 필요가 있나?”

“무슨 소리야. 그럼 나랑 파티 갈 때마다 매번 똑같은 옷을 입겠다고?”

“……안 되나?”

“당연히 안 되지. 사람들이 ‘어머, 공작가가 사람 차별하나 봐요’, ‘요즘 돈이 없나 봐요’ 하고 떠들걸?”

그 말에는 할 말이 없었다. 헬릭스는 울며 겨자 먹기로 끌려갔다.

“어서 오십시오!”

한눈에 귀빈들임을 알아본 매니저가 뛰쳐나와 둘을 맞아들였다. 레아는 안내받은 휴게실에 앉아 샵을 흘깃 둘러보았다.

“오호.”

과연 테일러샵은 그 나름대로의 묘미가 있었다.

의상실에서 가져온 옷만큼 고급스럽고 품위 넘치진 않았지만, 대신 색다른 디자인이 많았던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어떠십니까?”

금욕적인 사제 스타일의 코트를 입고 나온 헬릭스를 보고 레아는 저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헬릭스의 손대면 안 될 것 같은 고고하고 금욕적인 이미지에 저런 코트까지 입혀 놓으니 없던 배덕감도 생길 것 같았다.

‘이건 반칙이야! 어떻게 이 얼굴에, 이 분위기에, 이런 옷까지 입힐 수가 있어?’

역시 전문가는 전문가였다. 레아는 테일러샵 매니저의 안목에 감탄했다.

“세상에…… 헬릭스, 그 옷 입고 태어난 거 같아.”

“옷을 입고 태어나는 사람도 있나.”

정말 얼굴이 깡패구나. 그녀는 깊이 실감했다.

저 얼굴 말고 다른 사람이 했으면 ‘그 센스 없는 입 다물라’ 했을 말인데, 지금 금욕적인 코트를 입고 긴 은발을 풀어 내린 헬릭스한텐 너무도 잘 어울렸다.

“이것도 입어 보시지요.”

샵 매니저가 다음으로 권한 건 야회복이었다.

남국의 왕자가 입어야 할 듯한 화려한 색감의 비단에, 헐렁하고 품이 넓어 차르르 미끄러지며 몸의 굴곡을 드러내는 디자인이었다.

“레아…… 이건 실내복이 아닌가.”

노출에 곤혹스러워하는 표정과 헐렁한 상의 사이로 드러나는 단단한 가슴 사이의 갭이라니…… 맑고 고운 정신에 치명적이었다.

그녀는 몽롱해지는 마음으로 세상을 향해 속으로 외쳤다.

‘감사합니다……!’

딱딱한 기사단복 스타일의 제복도 잘 어울렸다.

헬릭스의 은발을 위로 묶고 가죽 부츠까지 갖춰 신으니, 레아는 기사단을 하나 더 만들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게 바로 아이돌 프로듀서의 기분인가.

새로운 기쁨에 눈떠 버린 레아였다.

‘뭘 입어도 잘생겼으니 다 살 수밖에 없잖아!’

다 주세요를 외치는 레아를 테일러샵 직원들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단순한 큰손 고객님을 보는 시선과는 다른 시선이었다.

‘고객님, 이해합니다!’

‘그럼요, 다 사 가셔야죠!’

마음속 동지애가 느껴지는 시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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