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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미모로 정의 구현 (41)화 (41/120)

41화

그가 중얼거렸다.

“아즈라의 바람 아닌가.”

“아즈라?”

헬릭스는 레아를 붙들고 급히 물었다.

“레아, 혹시 지금 책갈피를 가지고 있나?”

책갈피?

갑자기 나온 말에 당황했던 그녀가 기억해 냈다.

“아즈라의 마나 조각 말이야?”

“그래. 그것 말이다.”

레아가 제 드레스에 매달아 둔 주머니를 꺼내 움켜쥐었다. 쥐고 있는 손 위로 바람이 부는 느낌이었다.

“……이거 진짜 써도 괜찮아?”

그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드래곤로드 아즈라. 멸망의 날에 그를 배신하고 결계를 위해 봉인한 옛 친우이자 원수.

레아를 속여 자신을 깨우라고 한 걸 보면 어딘가 살아 있을 터인데, 아무리 찾아도, 레어를 뒤져도 마나의 흔적을 쫓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마나 조각은 그런 아즈라의 행방을 찾을 단서였다.

그렇지만 헬릭스는 그 말을 삼켰다.

“지금의 너라면 잘 쓸 수 있을 거다.”

그는 짧게 설명했다.

드래곤로드 아즈라는 바람을 다루던 마법사였다고. 레어의 도서관에 갔을 때 느껴졌던 바람의 힘이 그 책갈피에 담겨 있을 거라고.

“레아 네가 더블코어의 마법사가 되었지 않나. 코어가 둘이니, 속성 또한 두 가지를 담을 수 있다.”

바람 속성이라.

레아가 주머니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필요했다. 필요했지만…….

‘헬릭스를 배신했다던 악덕 감금범의 힘을 써야 하다니.’

그녀가 입술 끝을 잘근 씹으며 불길을 노려봤다.

화르르…….

야영지의 북쪽에서 열풍이 불어오고, 화마가 어느새 야영지 근처까지 다가와 날름대고 있었다.

‘누가 놓은 불인지는 몰라도, 이미 커질 만큼 커졌어.’

저 불이 자연 소멸하거나 적은 양의 물에 꺼질 일은 없을 것이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모두를 지킬 방법은 이것뿐이야.’

그녀가 주머니 안에 손을 넣어 푸른 책갈피를 꽉 움켜쥐고 빼냈다.

파르르.

손에 쥔 책갈피가 기쁜 듯이 팔랑이며, 어서 자신을 받아들이라는 것처럼 반짝였다.

“…….”

그렇지만 레아는 망설였다.

헬릭스의 원수, 아즈라.

그 아즈라의 마나를 자신이 받아들이면 어떻게 되는 걸까.

헬릭스와 자신도 적이 되는 건 아닐까?

“레아.”

망설이는 레아의 손을 헬릭스가 감싸 쥐었다.

“드래곤의 마나를 받았다고, 네가 그 드래곤의 뜻에 꼭 따라야 하는 건 아니다.”

레아가 헬릭스를 마주 보았다. 그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그녀의 손 위에서 춤추듯 팔랑이는 마나 조각을 가리켰다.

“봐라. 이것 또한 너를 허락했지 않나.”

헬릭스는 힘주어 말했다.

“이 힘은 이미 네 것이다, 레아.”

“……나중에 아즈라인지 뭔지가 쫓아오면 어쩌려고?”

그가 미소 지었다.

“내 계약자가 잘하는 말이 있잖은가.”

“무슨 말?”

“어떻게든 될 거다. 내가 곁에 있지 않나.”

레아는 크게 숨을 쉬었다.

제 입에서 나갈 때는 용기를 돋우려는 말이었는데, 헬릭스의 입에서 저 말이 나오니 정말 어떻게든 될 것 같았다.

“……그 말 무르기 없기야?”

그녀는 책갈피를 손에 콱 쥐었다.

푸른 마나 조각이 나비 날개 가루처럼 부서지며 손바닥으로 흡수되었다. 레아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화염 마나를 먹었을 때와는 다르잖아?’

화염 마나가 독처럼 레아의 몸을 휩쓸었다면, 바람의 마나는 적극적으로 그녀의 혈관과 마나 코어에 섞여 들었다.

헬릭스의 말이 맞았다.

‘이 힘은 내 거야.’

확신이 생긴 레아가 손을 들어 크게 휘저었다.

“파이어 월!”

화르륵!

야영지의 경계를 따라 화염이 솟구쳤다.

그녀가 화염을 향해 손끝을 뻗었다.

“윈드!!”

솨아아…….

레아의 손끝에서 기쁜 듯이 바람이 일었다.

강한 바람에 화염의 벽이 해일처럼 솟아오르며, 다가오는 불길을 향해 쇄도했다.

“맞불이다!”

그녀의 마법을 지켜보던 헬릭스의 눈동자가 떨렸다.

‘이 아가씨가……!’

이런 상황에서 맞불이라니.

‘뭐가 이렇게 대담한가!’

너무 겁이 없어서 옆에서 지켜보는 그가 어질어질했다.

말이 쉽지, 눈앞에 불길이 덮쳐 오는데 이쪽에서도 불을 질러 막겠다는 발상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레아는 헬릭스의 눈길을 받는 줄도 모르고, 긴 머리를 휘날리며 두 불길이 마주치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화르르르르!

멀리서 다가온 불길.

그녀가 둘러친 화염의 벽.

양쪽이 숲과 하늘을 불사르며 밤의 공기를 달구었다.

화르르…….

“어?”

이쪽 불이 밀리고 있었다.

헬릭스가 레아 옆에 붙어 섰다.

“레아 너는 은근히 손 많이 가는 계약자다. 알고 있나?”

“헬릭스, 솔직히 말해도 돼.”

그녀가 말했다.

“난 은근히가 아니라 대놓고 손 많이 가는 사람이라고!”

“……내가 말을 말겠다.”

헬릭스는 레아의 한쪽 손을 잡았다. 이제는 익숙하게 느껴지는 그의 마나가 흘러들어 왔다.

화르르르!

이쪽 불길이 솟구쳤다.

금세 나타나는 효과에 레아가 화색이 되어 헬릭스를 올려다봤다.

“이거 될 거 같아!”

“너는 늘 해내지 않나.”

헬릭스의 말에 레아가 눈을 크게 떴다.

아무도 없는 산중.

불길로 데워진 공기가 뜨겁고, 막막한 이 상황을 어떻게든 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움직였다. 잘해 낼 거라는 확신보다 이것밖에 방법이 없다는 마음으로 했다.

‘너는 늘 해내지 않나.’

불길처럼 달궈지는 기분이던 단전과 심장이, 긴장으로 조여들던 배 속이, 헬릭스의 말에 담긴 신뢰에 몽글몽글 가라앉았다.

뭐든 해결될 거란 희망이 솟았다. 불타는 하늘도, 서로 엉겨 붙은 불길도 겁나지 않았다.

“그러게?”

레아가 그의 손을 꽉 잡았다.

“계약자가 너무 믿음직하니까 마법이 잘되나 봐.”

헬릭스의 심장이 크게 뛰었다.

모두가 깨어나지 못하는 산중의 밤.

어둠 속에서 불빛을 정면으로 받은 레아의 존재만이 환했다.

바람에 헝클어진 백금발 사이로 열기에 달아오른 뺨이 발그레했다. 그녀가 그 뺨에, 잡은 그의 손을 갖다 대었다.

순간 움찔하며 굳는 헬릭스의 손을 레아가 더 힘주어 잡았다. 뺨 안쪽에서 포로록 한숨이 새었다.

“퓨우, 좀 살 거 같다.”

“……뭘 하는 건가.”

“충전.”

레아가 눈을 감은 채 제 뺨에 헬릭스의 손을 누르며 말했다.

“충전?”

“응. 나 지금 기운 받는 중이야.”

헬릭스의 눈빛이 안쓰럽게 바뀌었다.

“마나를 좀 더 주는 게 낫겠나?”

“아니야. 그건 좀 더 있다 주라. 지금은 헬릭스가 이러고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살 것 같아.”

난 죽을 것 같다.

헬릭스는 미친 듯이 뛰는 심장 때문에 눈썹을 찡그리며 생각했다.

이상했다. 레아를 만나기 전엔 겪어 본 적 없는 가슴 통증이 날로 거세지고 있었다.

‘더 이상한 건…… 점점 더 이 통증에서 벗어나기 싫다는 거다.’

통증에 중독이 되어 가다니 정말 위험한 증상 아닌가.

헬릭스는 저도 모르게 온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그녀의 뺨에 얹힌 손을 빼지 않고 기다렸다. 심장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세게 뛰는 이 순간이 길고, 길고, 길어서.

끝나지 않았으면 했다.

❀ ❀ ❀

“…….”

아르카이크 황자는 말없이 야영지의 흔적을 쳐다봤다.

시커멓게 그을린 바닥뿐. 시체는 어디에도 없었다.

‘죽었을 줄 알았는데.’

어젯밤 부하들은 황자의 명에 따라 마법사의 야영지를 둘러싸고 불을 놓았다. 자칫하다간 산불로 번질 만큼 큰 불이었다.

아르카이크 황자의 수면마법 덕분에 잠에서 깨어 불 안에서 뛰쳐나오는 사람도 없어, 그들은 안심하고 불이 잦아들기만을 기다렸다. 혹시 모르니 시체 뒷수습만 좀 해 둘 요량이었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불길이 점점 더 커진다!’

‘망할! 이쪽으로 오잖아! 뒤로! 물러난다!’

불길이 점점 더 커져서 지키고 있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불을 피해 철수한 사이 마법사는 제 일행과 함께 감쪽같이 사라졌다.

‘도대체 어떻게 빠져나간 거지?’

황자가 흔적만 살필 뿐 말이 없자, 눈치를 보던 파이퍼스 자작이 나섰다.

“햇병아리라도 마법사는 마법사. 신출귀몰한 재주 하나 없어서야 어찌 드래곤의 마나를 다루는 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노여움을 푸시지요.”

“노여움이라.”

아르카이크 황자가 중얼거렸다.

확신이 없었다. 이 감정이 정말 노여움일까.

마법사의 시체를 확인해야겠다는 일념으로, 그는 불이 꺼졌다는 보고를 듣자마자 달려왔다.

‘시체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었을 때 황자는 저도 모르게 안도했다.

그런 자신을 자각한 그가 입술을 짓씹었다.

‘죽이라고 명하면서 죽지 않길 바라다니.’

이 무슨 모자란 짓이란 말인가. 모순된 감정에 놀아나는 건 인간들이나 할 짓이었다.

인간들에게 정을 준 적도, 죽이면서 미련을 느낀 적도 없건만…… 지금 이런 행동은 멍청한 인간들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

“황자님?”

파이퍼스 자작이 조심스레 그를 불렀다.

“황자님께서는 마법사가 어떻게 빠져나갔는지 아시는지요?”

“……수면마법을 깨고, 맞불을 놓았군.”

파이퍼스 자작의 눈이 커졌다.

“새 마법사는 대담한 자인가 봅니다.”

“잠재력이 큰 자다. 그런데 이 몸에게서 도망치려 드는구나.”

아르카이크 황자의 검은 눈 속에서 금빛 불꽃이 일렁였다.

역시, 아무리 생각해 봐도 결론은 하나였다.

“그 여자를 손에 넣어야겠다.”

“준비해 둔 방법이 있으십니까?”

황자가 느긋하게 미소 지었다.

“왜 없겠느냐?”

❀ ❀ ❀

수도를 향해 돌아가는 마차 안에서, 레아는 영 불편해하고 있었다.

여관에서 마주쳤던 흑발흑안의 미남자는 누구인가?

일행에게 수면마법을 건 범인은 정말 드래곤인가? 그럼 살아 있는 드래곤이 있는 건가?

그것만 해도 골치 아픈데 기사들과 고용인들이 요상한 눈빛으로 쳐다보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 공녀님도 사실 단장님처럼 인간이 아니셨던 건가…….”

“인간이 아니라서 저렇게 예쁘신 건가?”

아니야.

아니라고, 이놈들아!

맞불을 놓고, 수면마법에 걸린 일행을 짐짝처럼 마차에 실어 도망치느라 죽을 뻔했는데. 어쩐지 다들 괴상한 오해를 하는 것 같았다.

“내가 마법 쓰는 걸 보여 준 적 없으니까, 화염마법으로 맞불 놓은 건 모르겠지. 그건 그럴 수 있는데.”

레아가 헬릭스에게 말했다.

“왜 다들 맞불을 헬릭스가 질렀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왜 내가 사람들을 옮겼을 거라고 생각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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