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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미모로 정의 구현 (35)화 (35/120)
  • 35화

    머릿속에서 본능이 쩌렁쩌렁 울렸다.

    레아는 헬릭스의 옆모습을 힐긋 쳐다봤다. 새삼 그의 장점이 눈에 들어왔다.

    얼굴이고 마음씨고 몸이고, 잘생기지 않은 데가 없었다.

    게다가 아닌 척하면서 그녀에게 만날 져 주고 늘 레아가 우선이었다.

    한마디로 안 잡을 이유가 없는, 그런 남자!

    그녀의 파란 눈이 목표물을 발견한 고양이처럼 번득였다.

    ‘확 잡아야겠어. 내 옆에 꽉 묶어 놔야지!’

    물론 헬릭스 의사도 물어봐야겠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는 수호자로서 약자를 보살피긴 해도 모두에게 친절한 이는 절대 아니었다.

    ‘그런데 나한테는 무한대로 퍼 주고, 늘 신경 쓰고 다정하잖아?’

    자기와 같은 마음인지는 몰라도 헬릭스가 자신을 싫어하지 않는 건 확실했다. 인간적으로 좀 좋아하는 것도 같았다.

    ‘일단 계약도 있고…… 인간적인 호감도 있으니까.’

    같이 다니면서 얼마든지 기회를 만들 수 있었다. 레아는 결심했다.

    ‘꼬셔야겠다!’

    ❀ ❀ ❀

    그녀가 결의를 불태우고 있을 때, 헬릭스는 레아의 뜨거운 시선에 의아해하고 있었다.

    ‘왜 저러는진 모르겠지만…… 잘됐군.’

    모처럼 축제까지 와서 춤도 제대로 못 추고 창피당했다고 의기소침해질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이었다.

    그가 그녀를 힐끔 살폈다.

    축제에 맞춰 준비하느라 시골풍 원피스를 입은 모습이 어여뻤다. 그래도 전혀 시골 아가씨처럼은 보이지 않았지만.

    ‘레아는 더 화려한 드레스가 어울리지.’

    장소도 그랬다. 그녀에겐 북부 시골보다 수도가 더 어울리고 익숙할 터였다.

    “헬릭스, 왜?”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예뻐서 보는구나? 헬릭스가 나 좋아하는 거야 알지.”

    순간 헬릭스는 마시지도 않은 물로 사레들릴 뻔했다.

    “……무슨 소린가.”

    “나 예쁘잖아? 헬릭스, 나 안 좋아해?”

    그가 움찔했다.

    “아니 안 좋아한다는 게 아니라…….”

    “응. 나도 헬릭스 좋아해.”

    헬릭스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새로운 칭찬타임인가?”

    “칭찬할 거야 아직 잔뜩 있지. 아이참 잘생겼다.”

    그렇게 말하며 배시시 웃는 레아가 쓸데없이 예뻐서 더 말문이 막혔다. 그가 급히 말을 돌렸다.

    “레아, 수도로 돌아가지 않겠나?”

    “수도?”

    헬릭스가 열심히 설명했다.

    마스터가 드래곤 흔적을 찾으려면 자기 활동 근거지 가까운 곳에 있는 게 좋다고 했다고. 레아도 건강해졌으니 수도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고, 공작가도 뒤에 있으니 여러모로 유리할 거라고 제안했다고 말이다.

    “흐음.”

    레아도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수도로 가면 헬릭스랑 이거저거 해 보고 싶은 거 많은데.’

    흑심이 모락모락 피어났다.

    수도는 즐길 거리가 꽤 많았다. 피어트 공녀답게 돈을 뿌리며 맛있는 거 먹이고, 좋은 데 데려가고, 멋진 거 입히고…….

    ‘좀 더 다양하게 꼬실 수 있을 거 같아!’

    그녀의 가슴이 기대로 부풀었다.

    그리고 헬릭스 말처럼 수도가 활동하기 유리한 것도 맞았다.

    어차피 자기 건강은 헬릭스와 마법에 달려 있으니, 꼭 북부에서 요양하는 걸 고집할 필요도 없었고.

    “다 좋은데 마법학교가 좀 걸려.”

    “주치의와 카라이가 이미 잘하고 있으니, 그 둘을 남겨 두면 어떤가?”

    “하긴, 어차피 내가 자주 들여다보거나 더 인원을 붙이면 트로우 백작 측에 노출될 수 있으니까. 둘한테 맡겨 두고 정기적으로 보고를 받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

    레아의 말에 헬릭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대로 너를 주목하고 있는 이들이 많으니 이대로가 더 비밀을 지키기 어려울 거다. 정 도움이 필요하면 루이지와 딜런 경의 협조를 요청하는 게 어떤가.”

    “그것도 괜찮네.”

    계산을 마친 레아가 결심하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헬릭스를 쳐다보는 파란 눈이 반짝반짝했다.

    “좋아! 역시 헬릭스는 여러모로 든든하다니까.”

    “……오늘따라 칭찬이 좀 과한 게 아닌가?”

    쳇, 예리하기는.

    레아는 속으로 툴툴댔다. 그래도 그녀의 행동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게 싫지 않았다.

    “칭찬이 잦은 거지. 그동안은 연습이었다고 생각해 둬.”

    “……연습?”

    “응. 이제부턴 실전이거든.”

    레아가 방글방글 웃었다.

    “이제 안 참고, 하고 싶을 때마다 칭찬할 거거든? 헬릭스 쳐다보고 ‘아, 멋있다’ 생각하면 그냥 말할 거거든?”

    헬릭스가 당황해서 뻣뻣해졌다.

    “왜, 왜인가?”

    그녀가 한숨을 폭 쉬며 가슴을 짚었다.

    “너어무 멋있고 잘생기고 자상해서 참을 수가 없네. 이런 거 쌓아 놓으면 병 된댔어.”

    “……그런 거 쌓아서 병 되는 건 울화 쪽 아닌가?”

    ❀ ❀ ❀

    헬릭스는 축제 구경하고 약초밭을 돌아보고 마법학교를 돌아보는 내내 레아의 칭찬폭격을 맞았다.

    레아는 일할 때나 다른 이들이 있을 땐 딱 부러지게 굴다가도, 둘만 있으면 시도 때도 없이 그를 칭찬했다. 반짝이는 파란 눈을 그에게 맞추며 예쁘게 웃는 건 덤이었고. 헬릭스로선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레아, 이쪽으로 걸어라. 그쪽은 경사로라 위험하다.’

    ‘헬릭스는 어쩜 이렇게 주변 파악도 잘하면서 매번 나까지 잘 챙기지? 이렇게 유능하고 자상하면 내가 반해요, 안 반해요?’

    챙겨 줄 때마다 폭풍 칭찬은 기본이고.

    ‘헬릭스, 왜 날 그렇게 뚫어져라 봐? 내가 예뻐서 보는구나? 나 좋아하지?’

    ‘……뭐라는 건가.’

    ‘아니야? 난 헬릭스 좋아하는데. 어머, 계속 봐도 잘생겼다아.’

    가만히 시선을 두고 있으면 눈치채고는 쪼르르 치고 슥 빠지는 통에 혼이 빠졌다.

    “……레아, 그럼 쉬어라.”

    피어트가의 별장으로 돌아오자 헬릭스는 얼른 레아에게 인사했다. 뜻밖에 레아는 손을 팔랑팔랑 흔들며 가볍게 대꾸했다.

    “응. 헬릭스도 쉬어.”

    왜인지 발이 떼어지지 않아, 그는 레아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다.

    금세라도 그녀가 고개를 휙 돌리며 ‘헬릭스!’ 하고 다시 달려올 것 같았다. 왜 왔냐고 하면 떨어지기 아쉬워서 그런다고 종알거릴 것 같았다.

    그렇지만 레아는 한번 뒤돌아보고 손을 크게 흔들더니, 쏙 제 방으로 사라져 버렸다. 화답하며 손을 흔들던 헬릭스는 그 자세 그대로 멈춰 섰다.

    “……기분이 왜 이런 건가.”

    가슴 언저리가 허전한 느낌이었다.

    혼자 방으로 돌아오자 헬릭스가 돌아왔단 소리를 듣고 마스터가 찾아왔다.

    “출발하기 전에 수호자님을 뵈러 왔습니다.”

    마스터는 수도로 떠날 거라며 인사했다. 암흑길드를 오래 비워 둘 수 없었던 것이다.

    “곧 수도에서 뵙게 되겠군요. 오시면 바로 들러 주십시오. 저희가 먼저…….”

    이런저런 협조사항을 얘기하려던 그는 헬릭스의 정신이 딴 데 가 있는 것을 눈치챘다.

    “수호자님, 무슨 고민 있으십니까?”

    “…….”

    이런 걸 고민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가.

    이제껏 그가 고민하던 것은 수호자의 의무와 관련된 것들, 정의, 보호, 드래곤의 행방과 복수 같은 것들이었다.

    ‘오히려 그런 게 쉬울 것 같다.’

    헬릭스가 어렵게 입을 떼었다.

    “내가 도와주는 사람이 있는데…….”

    “그자가 또 은혜도 잊고 수호자님을 멋대로 이용하려 합니까?”

    “아니다. 그 반대다.”

    “반대요?”

    마스터가 의아해했다. 헬릭스는 적절한 말을 골랐다.

    “……감사표현이 너무 격해서 곤란하더군.”

    “부담스러우십니까? 그럼 안 도와주면 되겠군요.”

    “지켜보다 보면 손이 가던데.”

    “으음. 보지 않으면 될 일 아닙니까?”

    “…….”

    헬릭스는 침묵했다.

    맞는 말이었다. 합리적인 결론이었다.

    그런데 도저히 그럴 자신이 없었다.

    똑똑.

    “손님, 마부가 더 기다려야 하냐고 묻고 있습니다만, 어떻게 할까요?”

    시종이 문을 두드리며 출발준비가 다 되었다고 알려 왔다. 바로 나간다고 답하며 마스터가 일어섰다.

    “그래도 조금은 안심입니다.”

    “뭐가 말인가?”

    “수호자님께서 저희 막내를 살려 주셨단 얘기를 들었을 때, 여러 감정이 들었습니다. 워낙 오래 세월이 흘러 당신께서 어떤 모습이실지 걱정했었는데…….”

    마스터의 목소리가 더 부드러워졌다.

    “변하셨습니다.”

    “그런가?”

    “예. 좋은 쪽으로요. 레아 공녀 덕분일까요?”

    레아의 이름이 나오자 헬릭스가 반사적으로 빙그레 미소 지었다.

    마스터는 놀라서 굳었다. 저분이 웃을 줄도 아셨구나.

    “왜 그렇게 보는가?”

    눈을 몇 번 더 끔벅인 마스터가 고개를 저었다.

    “……수호자님이 웃으시는 건 처음 봤습니다.”

    “그런가?”

    ❀ ❀ ❀

    한편, 페이런 왕국의 남부 항구도시 리젤.

    “서둘러! 곧 물이 빠진다고!”

    “밧줄 이리 던져!”

    분주한 항구 한편에서, 귀족처럼 보이는 일행이 배에서 내렸다.

    검은 머리의 훤칠한 젊은 남자와 학자풍의 노인이었다. 흑발의 남자가 주위를 슥 둘러보았다.

    “이곳이 페이런의 가장 큰 항구라고.”

    “그렇습니다. 페이런 남부의 산물은 다 이곳에 모인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번화한 도심에서는 오켄 제국과 자유도시연합의 상인들이 흥정을 했고. 항구는 바다 건너에서 온 짐을 부리고 보낼 상품을 싣느라 계속 분주했다.

    “흐음.”

    흑발 남자는 흥미를 잃은 듯 항구에서 시선을 거뒀다.

    훤칠한 키와 균형 잡힌 체격.

    부드러운 인상의 얼굴선과 뚜렷한 흑발흑안이 대비를 이뤄, 호감 가면서도 어딘가 어려운 느낌의 미남이었다.

    남자가 비웃듯 입매를 끌어 올렸다.

    “이 정도가 가장 큰 항구라…… 변방의 소국다운 규모로군.”

    “아무래도 제국의 수준을 기대하긴 힘들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인재는 제국보다 낫지 않는가. 황실 마법학자들이 그렇게 용을 써도 못 만들던 마법사가 이 작은 나라에서 나오다니.”

    남자의 질책에 노인, 파이퍼스 자작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황실 마법학자들의 수장인 자작의 속내가 타들어 갔다.

    ‘이번 일로 아르카이크 황자님의 신뢰를 잃게 되면…….’

    아르카이크 오켄 황자.

    그는 오켄 제국의 일황자로, 유력한 황태자 후보였다.

    첫째임에도 불구하고 외가의 세력이 없어 후계구도에서 늘 열외였던 그가 급부상하기 시작한 건 몇 년 전.

    드래곤의 황금안을 지녔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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