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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미모로 정의 구현 (28)화 (28/120)

28화

레아는 꿈속에서 열기에 휩싸여 있었다.

‘더워…….’

바짝 마른 뜨거운 바람이 불며, 그녀의 긴 머리와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바람에서 익숙한 향기가 났다.

‘……달고나 냄새?’

레아가 꿈속에서 눈을 번쩍 떴다.

멀리 하늘이 불타고 있었다.

예전 드래곤의 마나가 든 쿠키를 먹었을 때처럼.

“어?”

그녀는 어느새 자기 손에 들린 무기(?)를 내려다봤다.

이번에는 티포크가 아니라 티스푼이었다.

“이거 뭔데?”

“대장님!”

아래에서 부르는 소리에 레아가 내려다봤다.

동그란 몸통에 팔다리가 달린 마카롱 병사들이 올려다보며 비장하게 말했다.

“이대로라면 단전 성이 함락될 것 같습니다!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네?

이거 무슨 상황이지.

“대장님! 어서 명령을!”

마카롱 병사들이 재촉했다.

너네 동글동글 마카롱 주제에 왜 그렇게 비장한데.

웃음이 나오려던 그녀의 입가가 굳었다.

마카롱들의 꼬끄 가장자리가 탄 모습이 보였던 것이다.

“성벽이…… 녹는다!”

“다들 설탕을 더 부어!”

저 멀리서 머랭 성벽을 사수하기 위해 쿠키 병사들이 애를 쓰고 있었다.

새하얗고 꾸덕꾸덕한 머랭 성벽.

마치 살아 있는 진흙처럼 치덕거리며 단전을 보호하던 성벽이, 적의 화염에 하얗게 구워져서 바삭바삭 부서져 내렸다.

“안 돼!”

“오버쿠킹이잖아!”

우왕좌왕하는 쿠키 병사들을 비웃듯, 성벽에 구멍이 뚫리며 화염이 들어왔다.

화르륵!

한층 더 진해진 달고나 냄새와 함께 쿠키들이 까맣게 타며 날아갔다.

“아, 안 돼!”

레아가 안타깝게 소리쳤다.

“내 쿠키…… 내 병사들이!”

충격에 바들거리는 레아에게 뚱카롱 장교가 다가왔다.

“대장님, 놈이 옵니다!”

놈?

레아는 눈을 가늘게 뜨고 성벽 쪽을 주시했다.

하얀 머랭 성벽을 녹이는 화염 뒤로, 언뜻 인영이 보였다.

“넌 뭐야?”

레아가 중얼거리며 손에 쥔 대형 티스푼을 꽉 쥐는 순간, 화염 너머 이쪽을 빤히 보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마법사……?]

검은 머리의 남자였다.

너무 멀어서 표정도 생김새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남자가 손끝에 감긴 화염을 과시하듯 들어 올렸다.

[네 것인 줄 알았겠지.]

그가 레아 뒤쪽을 가리켰다.

레아가 반사적으로 돌아보자, 새빨갛게 과열되고 있는 오븐 모양의 마나 코어 탑이 보였다.

[남의 마나 조각을 받아, 코어를 만들고 마법을 쓰니, 그게 네 힘인 줄 알았느냐?]

흑발 남자가 오만하게 말했다.

[착각하지 마라, 인간.]

그의 손짓 한번에 화염은 성벽을 생크림처럼 녹였다.

남자는 말했다.

마법은 자신 같은 이들이 쓰는 것이라고.

하찮은 독 몇 방울에도 죽네 사네 하는 인간의 몸으로는 이런 불 속성 마나를 통제할 수 없다고.

레아가 티스푼을 꽉 쥐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마나 받아들이다 죽을 뻔하고, 헬릭스랑 마나 수련도 엄청 열심히 했는데.

저 흑발 남자는 몇 마디 말로 레아의 마법을 가치 없는 걸로 만들고 있었다.

“……남의 일이라고 되게 쉽게 말하네?”

열받은 그녀가 남자 쪽을 노려볼 때였다.

휘이이…….

차가운 바람이 그녀를 감쌌다.

칼바람이 열기를 몰아내며 단전 성을 휘돌았다. 레아는 저도 모르게 찬 바람에서 나는 향기를 맡았다.

청량한 숲의 냄새.

헬릭스의 체향과 비슷한 향기였다.

“헬릭스.”

그녀가 중얼거릴 때 차가운 것이 뺨에 닿았다.

레아는 고개를 들었다.

하늘에서 반짝반짝 설탕가루처럼 눈이 떨어지며 화염으로 달궈진 성 곳곳을 식혔다.

그녀가 눈을 깜박였다.

그러고 보니 마나 코어에는 드래곤 마나만 들어간 게 아니었다. 수련하면서 헬릭스의 마나도 수없이 들어갔었다.

그렇지만 헬릭스는 저 흑발 놈과 달랐다.

그녀가 제 마나를 다룰 자격이 없다고 비웃지도, 독에 마법을 잃을 판인 레아에게서 마나를 줬다 뺏지도 않았다.

오히려 지금도 그녀를 돕고 있었다.

‘헬릭스라면 말했을 거야.’

어떤 마나를 받았건, 마나 코어를 만들고 마법사로 각성한 건 레아 너라고.

네가 해낸 거라고.

레아가 불끈 손에 힘을 쥐었다.

“대장님, 후퇴하시지요!”

그녀는 마카롱들을 차분히 내려다보았다.

“안 돼.”

“대장님!”

“여길 방어하고 있어.”

레아가 고개를 들었다.

단전 성을 감싸던 눈보라는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녀가 눈보라가 향한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금방 다녀올게.”

“대장님! 무얼 하시려고요!”

“여기도 이미 위험합니다!”

“그래서 하는 거야.”

레아가 티스푼을 삽처럼 꽉 쥐었다.

“한 번 만든 거 두 번은 못 만들겠어?”

❀ ❀ ❀

“카라이!”

주치의는 레어로 달려 들어가며 다급히 그를 불렀다. 기다리고 있던 카라이가 몸을 일으켰다.

“큰일 났다. 공녀님이 위험하셔!”

주치의의 말에 카라이의 눈빛이 변했다.

“헬릭스 님은요?”

“헬릭스 님은 지금 지하실에 갇혀 계신다.”

주치의가 급히 설명했다.

레아를 노린 암살 시도, 마침 그 광경을 목격하고 미쳐 날뛰는 루얀 피어트. 아마도 레아를 구했겠지만 오해를 사고 지하실에 갇힌 헬릭스.

“공녀님이…… 독에 당하셨다고요?”

카라이가 되물으며 마른침을 삼켰다.

분명 트로우 백작이 얽혀 있을 터였다.

“그래. 다행히 알려진 마비독이라 내가 해독했다.”

카라이는 조금 놀랐다. 공작가에서 거금을 들여 영입한 의사라고 소문이 자자해 실력자일 줄은 알았지만, 트로우 백작이 암흑가에서 구했을 독을 이렇게 쉽게 해독하다니.

그가 감탄하는 줄도 모르고 주치의가 머리를 마구 긁어 댔다.

“그게 문제가 아니야. 미치겠군. 독 때문에 마나가 엉클어졌는지 공녀님의 열이 내리질 않는데, 해결할 헬릭스 님은 만날 수조차 없으니.”

“지하실에 있다면서요?”

“말이 지하실이지 지하감옥 취급이다. 앞에 기사들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어서 근처도 못 가게 하는데……. 이 미친놈들이 진짜! 이대로는 공녀님이 몸속부터 타 버리실 거라고!”

카라이의 눈에 확 불이 일었다. 답답해하던 주치의가 애걸하듯 물었다.

“너도 마법능력자라며? 무슨 수가 없겠냐?”

❀ ❀ ❀

그날 밤.

첩자들은 레아의 침실에 잠입했다.

요리와 술에 배탈약을 타 별장 사람들을 모두 쓰러트린 그들이었다.

“서둘러. 시간이 얼마 없어.”

처음 계획을 짠 첩자가 동료들을 독촉했다. 기사들과 루얀 피어트가 오기 전에 일을 해치워야 했다.

“그래도 조금은 즐겨야지.”

거구의 첩자 하나가 누워 있는 레아를 훑어보며 입맛을 다셨다.

“가까이서 보니까 더 끝내주네.”

놈이 레아의 뺨을 만지작댔다.

“이야, 귀족 아가씨는 역시 달라. 피부가 밀가루 반죽 같네.”

놈의 말에 다른 첩자도 과감하게 이불을 젖혔다. 그들이 레아의 잠옷을 벗겨 내리려는 순간이었다.

“그러다 죽고 싶어?”

다른 첩자 하나가 으르렁댔다.

“언제 루얀 피어트가 올지 모른다고.”

“그놈 식사에도 배탈약은 잔뜩 탔잖아.”

“그럼 너나 죽든가.”

살벌한 기세에 놈들이 아쉽다는 듯 쩝쩝거리며 물러났다.

시간이 없었다.

루얀 피어트나 기사들 중에 배탈약이 안 통한 놈이 오면, 그들은 죄다 죽은 목숨이었다.

고개를 끄덕인 첩자들이 서로 눈짓했다.

“이렇게 됐으니 내가 하지.”

거구의 첩자가 칼을 들고 나섰다.

“저 예쁜 머리통을 백작한테 선물로 주자고.”

놈이 팔을 힘껏 휘둘러 누워 있는 레아의 목을 베었다.

텅!

레아의 침대에 닿기도 전에 칼이 허공에서 튕겼다.

“어?”

거구는 재차 레아 쪽으로 몸을 던졌지만 역시 밀려날 뿐이었다.

“비켜 봐, 내가 해 볼게.”

이번엔 작고 왜소한 첩자가 쌍칼을 들고 달려들었지만, 튕겨 나오는 건 마찬가지였다.

“뭐, 뭐야?”

“무슨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욕을 내뱉던 첩자들은 점점 두려움에 휩싸였다.

한 명도 빠짐없이 레아 근처에도 못 가고 튕겨 나왔던 것이다.

누군가 무기를 꽉 쥐며 말했다.

“다들 한꺼번에 덤벼! 무슨 귀신 수작인지 몰라도 이렇게 많으면 못 막겠지!”

놈들이 레아의 침대를 에워쌌다.

스르륵.

그 움직임에 내려져 있던 휘장이 펄럭였다.

“……너는!”

침대 휘장 뒤에서 사람을 발견한 첩자들이 숨을 들이쉬었다.

휘장 뒤에서 나타난 건 두 사람이었다.

긴 은발을 늘어트린 장신의 미남과, 갈색 머리에 큰 갈색 눈을 가진 강아지 같은 청년.

청년을 본 첩자들이 외쳤다.

“카라이!”

“이 배신자 새끼!”

“무슨 짓을 한 거야!”

헬릭스가 물었다.

“저놈들이 다인가?”

“예. 다 몰려왔습니다.”

둘이 나누는 대화를 듣고 놈들이 비웃었다.

“저 미친 새끼, 기껏 일러바친다는 게 공녀 애인이냐?”

“둘이 뭘 어쩌겠다고?”

헬릭스가 나직하게 말했다.

“레아에게 손대려면 나부터 죽여야 할 거다.”

“똥폼 잡고 있네!”

첩자들은 다시 한번 레아를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텅!

그들이 두 사람을 돌아보았다.

뭔진 몰라도 헬릭스와 카라이가 이 빌어먹을 일을 일으키는 건 분명해 보였다.

“너희부터 죽이고, 이년을 마저 죽여 주마!”

놈들이 한꺼번에 둘을 향해 덤벼들었다.

콰앙!!!

그 순간이었다.

카라이의 몸에서 금색 빛이 터져 나왔다.

그 빛이 첩자들의 칼날을 튕겨 내는 것과 동시에, 헬릭스가 번개처럼 움직였다.

“크악!”

바닥에 나뒹군 첩자들이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그렇지만 그건 시작이었다.

투명한 반구형에 금색이 감도는 방어막이 카라이와 레아를 빈틈없이 감싸자, 헬릭스는 검 한 자루 없이 첩자들을 몰아붙였다.

“으악!”

“저 새끼…… 저런 능력이 있었어?”

당황한 첩자들의 눈이 더 커졌다. 방어막 안에서 레아가 깨어났던 것이다.

첩자들이 소리쳤다.

“죽여!”

암살 시도까지 보였으니 이제는 돌이킬 수 없었다.

이를 악물고 레아에게 덤벼들던 첩자들이 다시 한번 방어막에 튕겨 나갔다.

“……헬릭스, 이거 어떻게 된 거야?”

레아가 막 깨어나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그 목소리를 들은 헬릭스의 눈매가 일그러졌다.

“깨어나서 다행이다.”

그녀보다 더 잠긴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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