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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미모로 정의 구현 (25)화 (25/120)

25화

강도질을 하고 얕은꾀로 흔적을 지우려는 도적들이어도 교수형 감인데, 놈들은 아무래도 의뢰를 받고 체계적으로 움직이던 것 같았다.

‘몬스터 현상의 원인을 제대로 알기도 전에, 몬스터를 이용해 죄를 감추려는 음모부터 발견하게 되다니.’

본 업무가 벽에 막혀 있는데 대형 일거리가 추가된 셈이었다.

게다가 아무리 들쑤셔 봐도 사정을 제대로 아는 놈은 저 죽은 흉터 하나였던 모양이다. 답답해진 왕자가 토벌대 기사들을 둘러보았다.

“경들은 뭘 노리고 이런 짓을 벌인 것 같나?”

토벌대도 고민했다.

대체 누가, 왜, 이 정도 되는 놈들을 써 가며 이런 아무것도 없는 시골 마을을 몰살시키고 몬스터의 소행으로 위장해 빠져나가려 한단 말인가?

“뭔가 꼬리 잡히기 싫은 게 있는 게 분명합니다. 그런데 사주한 놈을 알 수가 없으니…….”

“이놈들에게서 정보를 얻긴 그른 것 같습니다. 차라리 마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촌장을 불러다 조사할까요?”

토벌대 기사들의 의견을 듣던 패트릭 왕자가 고개를 돌렸다.

“피어트 경은 어떻게 생각을…… 경?”

왕자가 눈을 크게 떴다. 루얀의 얼굴이 새파랬다.

“경, 어디 안 좋나?”

루얀은 대검을 닦고 일어섰다.

“경? 어딜 가나?”

“아무래도 걱정돼서 안 되겠습니다.”

“뭐가 말인가?”

루얀이 급히 말했다.

“이 근처에서 레아가 요양하고 있잖습니까. 그 애가 무사한지 확인해야겠습니다.”

“아니 그렇다고 지금 가겠다고?”

되묻던 왕자도, 다른 기사들도 얼이 빠졌다. 루얀은 그런 토벌대 동료들을 내버려 두고 달리기 시작했다.

바람처럼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보고 토벌대 사람들이 부르짖었다.

“경? 피어트 경!”

“누가 저 미친 팔불출 좀 붙잡아 보게!”

❀ ❀ ❀

한편 피어트가의 별장에선 레아가 평화롭게 이른 아침을 들고 있었다.

요즘 레어로 출근(?)을 같이 하는 헬릭스도 함께였다. 그녀가 꿀이 든 요거트를 떠먹는 동안, 맞은편에 앉은 헬릭스는 부드러운 오믈렛을 자르면서 말했다.

“어제 레아 네 말을 듣고, 애들을 가르치려면 뭐가 필요할지 생각해 봤다.”

그가 제 오믈렛 조각을 레아의 접시에 덜어 주며 말했다.

“일단 아이들에겐 건강한 물주가 필요하다. 좀 더 먹어라.”

너무 적게 먹는다, 그래서 언제 건강해지겠냐, 걱정 어린 잔소리를 하더니 방법을 바꾼 모양이었다.

“나 대놓고 물주 된 거야?”

“네 입으로 그러지 않았나. 제일 부드러운 부분이니, 먹어 보면 계란맛 푸딩 같을 거다.”

내가 푸딩 좋아하는 건 또 어떻게 알았지.

레아는 그가 덜어 준 오믈렛을 푸욱 떴다.

크게 떠서 입안에 넣으니 부들부들했다. 씹을수록 따뜻하고 몽글거리는 게 배 속에서 퍼져 나가 몸이 깨어나는 기분이었다.

“진짜네. 내가 좋아하는 맛이야.”

“다행이군.”

“아침은 잘 안 먹혔는데 이렇게 먹으니까 맛있다. 헬릭스 정말 볼수록 배려왕이라니까.”

불시에 칭찬받은 헬릭스는 약간 당황했다.

“……또 칭찬타임인가?”

“응.”

“……그건 왜 시도 때도 없나?”

“헬릭스가 시도 때도 없이 칭찬받을 일을 하니까?”

그렇게 치면 레아 너도 시도 때도 없이 놀라운 일을 하지 않나. 그는 속으로 고개를 저으며 말을 돌렸다.

“아무튼 애들 가르치는 일 말이다. 아이들이 마법을 배울 만한 책이 있으면 어떻겠는가?”

“마법교재?”

레아가 눈을 빛냈다.

“그거 진짜 있으면 좋겠다. 그런데 마탑도 없어졌다면서 그런 책이 남아 있어?”

“있다.”

헬릭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에 대한 건 드래곤이 전문이지. 드래곤의 도서관이라면 입문자용 교재도 있을 것이다.”

“드래곤의 도서관? 그게 어디 있는데?”

“뒷산에 있다.”

식탁 위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어디라고요?”

“뒷산에 드래곤 레어가 있지 않나.”

헬릭스가 태연하게 말했다.

“그곳에 도서관으로 가는 비밀통로가 있다.”

❀ ❀ ❀

헬 산 아래 깊숙한 곳.

드래곤로드 아즈라의 레어 안에서도 깊고 깊은 곳.

레아와 헬릭스는 그곳에 있는 거대한 도서관에 도착했다.

수십 층 건물 높이로 쌓인 책장의 탑을 보며 레아가 입을 벌렸다.

“……여기서 책을 어떻게 찾아?”

높이가 너무 까마득해서 무섭기까지 했다.

“아즈라는 바람을 다루는 드래곤이었다. 날아서 돌아다니곤 했지.”

“그럼 우린 어떻게 하지?”

설마 헬릭스 너 날 수도 있냐.

레아가 미심쩍은 눈빛으로 올려다봤다.

“나는 허가받은 자라 괜찮다.”

“허가?”

“이 도서관에 걸려 있는 마법의 힘을 이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헬릭스가 손을 내밀었다.

“꽉 잡아라.”

“……떨어트리면 죽일 거야.”

소심하게 협박한 레아가 헬릭스가 내민 손을 잡았다.

“더 꽉.”

“왜 겁주는 것처럼 들리지?”

꽁알대면서도 손을 꽉 잡은 레아를 확인하고, 그가 입술을 열었다.

[마법의 기초.]

순간 바닥도 벽도 없는 엘리베이터를 탄 듯 몸이 그대로 위로 솟구쳤다.

“으아아아악!”

레아가 헬릭스에게 매달렸다.

“엄마! 엄마야!”

“레, 레아?”

헬릭스는 당황했다.

화염마법을 난사하면서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던 그녀가 이렇게 무서워할 줄이야.

“레아, 진정해라. 괜찮다.”

그가 손을 놓고 끌어안으려 하자, 레아가 비명을 질렀다.

“놓지 마!”

그녀가 공포에 질려 손을 휘저었다.

“이렇게 무서워할 줄이야.”

중얼거린 헬릭스가 레아를 들어 올렸다.

“꺅!”

갑자기 공중에서 공주님 안기 자세로 안기자 레아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헬릭스가 고개를 숙였다.

“내 목에 팔을 감아라.”

나직한 목소리가 하라는 대로, 그녀는 헬릭스의 목에 매달렸다.

긴 머리카락이 뺨으로 쏟아져 내렸다. 커튼처럼 시야를 가리는 은발 사이로, 헬릭스 특유의 체향이 훅 끼쳐 왔다.

“……아직 무섭나?”

속삭이듯 묻는 입김에 이마가 간지러웠다.

“아, 아니거…… 무서워.”

센 척하려다가 금세 솔직하게 실토하는 레아의 모습에, 헬릭스가 잘게 웃었다. 어깨의 떨림이 목을 감은 팔에도 전해져서 그녀가 괜히 투덜댔다.

“스, 승차감이 별로잖아.”

“이렇게 하면 되나.”

그가 단단한 팔에 더 힘을 주며 레아를 고쳐 안았다. 졸지에 헬릭스의 가슴에 밀착하게 된 그녀가 눈을 깜박였다.

“어…… 어?”

지금 뭔가 좀 당한 거 같은데?

“무섭나? 더 꽉 안는 게 낫겠나?”

그런데 그렇게 묻는 목소리는 평온하고 자상해서.

그렇지만 넓은 가슴 가득 울리는 심장 소리가 북소리 같아서.

레아는 어느 쪽을 지적해야 할지 헷갈렸다.

쿵. 쿵.

그런데 이 북소리를 듣고 있으니 왜 안심이 되는 걸까.

그녀가 헬릭스의 목을 더 꼭 감았다.

‘내 동아줄.’

내 목숨줄. 절대 나를 떨어트릴 리 없는 내 계약자.

까마득한 높이와 그들을 둘러싼 바람이 어떻든 간에 헬릭스에게 딱 붙은 지금은 안전했다. 확신이 든 레아의 눈에 조금씩 총기가 돌아왔다.

그러는 사이에도 도서관의 마법 엘리베이터는 책장 사이를 누비며 위로, 위로 올라갔다.

휘이이.

높아질수록 강하게 부는 바람이 둘의 머리칼을 흩트리고, 오래된 책 특유의 냄새가 코에 스며들었다.

“와아…….”

그제야 그녀의 눈에 이 장대한 도서관의 위용이 들어왔다.

끝을 모르게 솟은 책의 탑.

금박과 보석으로 장식한 고색 찬연한 장서들.

“드래곤은 싫지만.”

헬릭스가 말했다.

“이 도서관만은 좋아한다.”

“응. 멋있어.”

레아가 황홀한 표정으로 책의 탑을 쳐다보다, 저도 모르게 밑으로 시선을 내렸다.

“으익!”

그녀가 괴상한 소리를 내며 헬릭스의 목을 감은 팔에 힘을 주었다.

“아, 아직 멀었어?”

“거의 다 왔다.”

더 멀리 꽂혀 있어도 되는데. 헬릭스가 책장 꼭대기를 불만스럽게 바라보았다.

거의 천장 가까이에 있는 책장에서 그들을 부르듯 마법서가 반짝였다.

“저거다. 마법의 기초.”

레아가 반색했다.

“그럼 이제 다 찾은 거야?”

“그럴 리가 있겠나.”

마법서를 빼 든 헬릭스는 그녀를 다시 고쳐 안았다.

[마법의 역사.]

“엄마아아아악!!!”

❀ ❀ ❀

레아는 기진맥진해서 헬릭스에게 업혀 별장으로 돌아왔다.

“공녀님!”

놀란 하녀들이 서둘러 목욕물을 준비하고, 자넷은 급히 약차를 우리러 달려갔다.

“공녀님, 피곤하시죠? 입욕제와 향유를 준비할까요?”

“지금은 혼자 쉬고 싶네.”

레아는 하녀들을 물리고는 욕조 안에 들어갔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니 긴장이 확 풀어졌다.

“아고고, 나 죽네…….”

죽는소리가 절로 나왔다.

헬릭스가 그녀를 안은 채 도서관 마법 엘리베이터를 타고 날아다니는 바람에 계속 그에게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여러모로 긴장했던 탓에 온몸이 쑤셨다.

‘그래도 나쁘지만은 않았어.’

레아는 노글노글해지는 기분으로 생각했다.

‘처음에는 진짜 놀랐지만…… 나중엔 좀 재밌었고. 진짜 멋있었지.’

거대하고 아름다운 탑과 같은 도서관 책장 사이를 빙빙 돌며 책냄새 나는 바람을 맞는 건 생각보다 신나는 일이었다.

‘그래도 더는 안 할래. 고소공포증 없어지면 모를까.’

레아는 제가 무섭다며 저질렀던 짓들을 떠올렸다. 헬릭스한테 매달리고, 목을 막 끌어안고, 품에 파고들며 비명을 지르고…….

“으아아아…….”

그녀가 목욕물에 퐁당 얼굴을 박았다. 더 떠오를 때마다 민망해서 죽을 거 같았다.

‘패닉 상태에서 저지른 짓은 좀 기억도 안 나고 그래야 되는 거 아냐? 왜 점점 더 생생하게 기억나는 건데?’

제가 매달릴 때마다 더 꽉 끌어안던 헬릭스의 품도 떠올랐다. 레아는 점점 막 나가는 기억을 막기 위해 고개를 흔들다가 멈칫했다.

‘그런데 헬릭스는 왜 그 고생을 해 놓고 쌩쌩해 보이지.’

발버둥 치는 그녀를 안던 단단한 팔도, 흔들림 없이 업어 주던 너른 등도, 지친 기색이라곤 조금도 없었다.

‘수호자는 역시 보통 사람하고 다른가?’

수호자에게 그 정도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라서, 그렇게 레아를 안고 업은 동안 이상할 정도로 힘이 넘쳤던 건가. 그래서 심장도 그렇게 크게 뛰고…….

쿵. 쿵.

그 북소리 같던 고동을 떠올리니 괜히 제 심장도 빨리 뛰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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