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과 미모로 정의 구현 (16)화 (16/120)
  • 16화

    “산삼?!”

    “이 약초를 아시나요?”

    루이지가 놀라 물었다.

    “알고말고. 이 귀한 걸 어디서 구했어?”

    삼은 이 세계에서 알려진 약초가 아니었다.

    레아도 빙의한 뒤 피어트 가문에서 온갖 약재를 먹어 왔지만 삼은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런 산골에 산삼밭이 숨어 있다니!

    “심 봤다!”

    “예?”

    심마니처럼 소리치던 레아가 정신을 차렸다.

    “이 약초를 어떻게 구했어? 이거 정말 귀하고 좋은 건데!”

    루이지는 설명했다.

    원래 자신도 모르는 약초였는데, 동생이 산에 기운 없는 염소를 풀었다가 건강해지는 걸 보고 따라가서 염소가 먹는 걸 캐 왔다고.

    시험 삼아 먹어 보자 기운이 솟고 정신이 맑아지는 등 효능이 좋아 길러 보고 있다고 했다.

    “진짜 잘 가꿨네…….”

    레아는 떨리는 눈동자로 삼밭을 열심히 살폈다.

    아직은 소규모에 잘 자라지 못하고 있지만, 이 정도도 대단했다. 한국에서도 인삼은 전문적인 지식이 있어야 키울 수 있었으니까.

    “이런 걸 숨겨 기르고 있었으니 마을을 못 떠난다고 했구나.”

    루이지가 고개를 숙였다.

    “예. 어리석었지요. 이걸 가꿔서 아이를 잘 키워 보겠다는 욕심에…….”

    혹시 돈벌이가 될까 하고 키우고 있었는데, 갑자기 남편이 죽고 나자 이게 구명줄로 여겨졌다고 했다.

    충분히 이해 가는 일이었다.

    ‘삼밭을 어떻게 버려, 삼밭을!’

    저 정도로 키우려면 못해도 몇 년은 애지중지 보살폈으리라.

    레아는 고민했다.

    ‘그 신관 놈이 있는 한 이 마을은 위험해. 자매랑 아기랑 데리고 여길 뜨려고 했는데, 어떡하지.’

    옮겨 심을 수도 있겠지만 너무 위험부담이 컸다.

    다 말라 죽어 버릴 수도 있으니까.

    ‘기껏 만난 산삼을 죽이다니, 절대 안 될 일이야.’

    레아가 고민에 빠져 있자 헬릭스가 조심스레 잎을 따서 씹어 보았다.

    “……이 약초는 뿌리에 효능이 있군.”

    “맞아. 바로 아네?”

    레아가 고민하다 말고 신나서 설명했다.

    먹으면 건강해지고, 몸에 좋고, 뇌에 좋고, 폐에 좋고, 면역력에 좋고.

    “그건 거의 만병통치약이잖나.”

    “만병통치약인데?”

    “아니다.”

    헬릭스가 엄격하게 고개를 저었다.

    “열을 일으키는 불 속성의 약재라, 화염마법 익히는 너와는 상극이다.”

    “헉.”

    여기서 산삼을 발견했는데 내 보약으로 쓸 수 없다니.

    레아가 눈에 띄게 풀이 죽었다.

    “크흠. 일단 좋은 약초긴 하다.”

    헬릭스가 달래듯 덧붙였다.

    “좀 더 노련한 마법사가 되면 더 상승작용을 일으킬 수 있을 거다. 지금은 육체에 부담이 되니 참아라.”

    “으으, 삼인데. 닭이랑 같이 고면 국물도 엄청 시원한데.”

    “……약이 아니라 요리로 먹을 셈이었나?”

    “요리로 해도 약이란 말이야.”

    아쉬워서 툴툴대던 레아가 자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 약초를 사지.”

    “아직 팔기에는 작아서…… 그리고 보답으로 드리고 싶어서 보여 드린 건데요.”

    “내가 말을 덜 했네.”

    레아가 말했다.

    “이 약초와 약초밭, 둘러싼 집, 약초 관리할 집주인까지 다 사겠단 말이야.”

    ❀ ❀ ❀

    내 고용인이 되어라.

    집도 약초밭도 다 사고 피어트 상단 연구소에 연락해서 약초 전문가도 파견하겠다.

    보낸 전문가랑 같이 잘 키워서, 때 되면 상단에 독점으로 넘겨라.

    “……예? 약초가 아니라, 약초밭이랑 집이랑 저까지요?”

    “그래.”

    단위가 다른 돈지랄에 자매의 정신이 혼미해졌다.

    “가격은 잘 쳐 줄게.”

    “공녀님!”

    동생인 소녀가 고개를 저었다.

    “너무 과, 과해요.”

    소녀는 파들파들 떨었다.

    “공작가에 이렇게 많은 은혜를 입으면 누가 또 저희 자매를 노릴까 봐 무섭습니다!”

    레아는 소녀를 지그시 쳐다봤다.

    일리 있는 말이었다.

    이번 신관의 마녀 소동으로 마을 사람들은 힘없는 자매를 얼마든지 몰아붙일 수 있다는 걸 알았을 테니까.

    레아의 특혜가 돈이 되고, 보호가 느슨하다 여겨지면 언제 또 돌변할지 몰랐다.

    역사적으로도 마녀사냥은 돈 많은 과부들을 노린 경우가 많았고.

    ‘똑똑하네.’

    레아가 빙긋 웃으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네 이름을 못 들었네. 이름이 뭐니?”

    “자넷이라고 합니다.”

    “자넷.”

    레아가 말했다.

    “너도 고용할게.”

    “예?”

    “너 내 하녀가 돼라.”

    자넷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제가 공녀님의 하녀요?”

    공작가의 고용인 자리는 평민들에게는 꿈의 직장이었다.

    빨래와 허드렛일하는 하녀도 콧대를 세우는 자리인데, 공녀님의 하녀라니.

    “저, 저 같은 애가, 이, 이렇게 막 될 수 있는 건가요?”

    “내가 고용주인데 무슨 상관이지?”

    가볍게 말하는 레아 뒤에서 금수저의 후광이 비쳤다.

    “일은 많을 거야. 내가 좀 손 가는 사람이거든.”

    레아가 씩 웃었다.

    “그래도 복지는 책임져 줄게. 자넷 네가 공작가에 내 하녀로 간다고 하면, 마을 사람들도 네 언니를 좀 다르게 볼 거고.”

    “……!”

    “물론 우리 연구원과 약초를 지켜야 하니까 상시 주둔할 경호원도 보낼 거야.”

    자넷의 눈이 흔들렸다.

    “저희에게 왜 이렇게까지 해 주시나요……?”

    레아가 빙긋 웃었다.

    “나도 얻는 게 있으니까.”

    산삼도 포기할 수 없었고, 믿을 만한 직속 하녀도 필요했다.

    레아는 직속 하녀가 없었다.

    처음 빙의해서는 시중받는 걸 부담스러워해서 없었고, 적응한 뒤에는 여러 번 앓는 사이에 또래 직속 하녀를 뽑을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지금까진 하녀들이 돌아가며 일해도 별 불만이 없었다.

    그렇지만 이번에 독 바른 쿠키를 가져다 놓은 게 내부 사람이라는 보고를 받자 생각이 바뀌었다.

    ‘신뢰할 수 있는 직속 하녀를 둬야겠어.’

    레아가 말했다.

    “약초와 약초사도, 하녀도, 내가 필요해서 비싸게 사는 거야.”

    “…….”

    자넷이 그런 레아를 올려다봤다.

    이상한 공녀님이었다.

    귀족을 만난 적은 없지만 알 수 있었다.

    감자스튜 한 그릇에 목숨을 구해 주고, 은혜를 갚으라는 말은커녕 ‘내가 필요해서 사는 거야’라고 말하는 이런 귀족은 절대 흔하진 않을 것이다.

    “비싸게 사 주셨으니.”

    자넷은 눈물 고이는 눈을 슥슥 문질렀다.

    “제 목숨을 바쳐서 공녀님을 모시겠어요.”

    레아가 식겁했다.

    아니 목숨 같은 거 바치지 마.

    “그냥 일을 잘해 줘.”

    “목숨도 바치고 일도 잘할게요!”

    부, 부담스러워.

    레아가 시선을 피하며 대꾸했다.

    “……어, 그래. 힘내.”

    “네!”

    ❀ ❀ ❀

    “그럼 촌장, 내 약초사를 부탁하네. 곧 사람을 보내지.”

    “예. 걱정 마십시오, 공녀님. 제 딸처럼 보살피겠습니다.”

    촌장이 굽실거리며 약속했다.

    마을 사람들은 부러운 눈으로 루이지와 자넷을 쳐다봤다.

    “루이지의 약초가 공녀님 맘에 들어서 여기까지 상단을 보내 주신다며?”

    “와아! 상단은 헬칸 같은 동네에나 오는 건 줄 알았는데.”

    “누가 아니래. 루이지는 좋겠다. 피어트 상단에 물건도 팔고…… 출세했네.”

    “출세는 자넷이 더 했지. 글쎄 공녀님의 직속 하녀로 간다잖아?”

    마을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들으며 헬릭스는 생각했다.

    ‘내 계약자의 방식은…… 정말 내 상식을 뛰어넘는군.’

    돈과 미모로 정의구현이라니.

    보통은 반대 아니던가.

    “…….”

    그뿐만이 아니었다.

    레아를 향한 마을 사람들의 감탄과 존경 어린 시선.

    옆에 착 붙은 자넷은 무슨 여신 보듯 레아를 숭배하며 올려다보았다.

    “…….”

    끝없이 이어지는 배웅과 인사를 받으며 마을을 떠나는 길.

    헬릭스는 저도 모르게 불퉁하게 말했다.

    “……왜 이렇게 인기가 많나.”

    “뭘 이 정도 가지고.”

    레아는 긴 백금발을 휙 넘겼다.

    수도에서 페이런의 백합, 페이릴리로 불리던 그녀였다. 추종자와 팬클럽을 몰고 다니던 세월이 얼만데 새삼 이 정도로.

    “나 원래 인기 많은데?”

    레아의 천연덕스러운 대꾸에 헬릭스는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런 그를 향해 그녀가 콧대를 세웠다.

    “영광으로 여기시오. 이런 인기쟁이한테 칭찬을 듣는 거랍니다.”

    장난스러운 말에 조금 웃음이 나오려던 것도 잠시, 그가 날카로운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쩐지 레아를 보는 열렬한 시선이 더 있는 것 같았다.

    “헬릭스,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다.”

    ❀ ❀ ❀

    헬릭스의 느낌은 틀리지 않았다.

    떠나는 레아 일행을 몰래 뒤쫓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루이지를 마녀로 몰다가 헬릭스에게 머리채 잡힌 채 탈탈 털린 신관이었다.

    하룻밤 사이에 탈모 말기 같은 모습이 되어 버린 그가 일행을 보며 이를 갈았다.

    ‘괘씸한 년들 같으니.’

    체면도 상하고 머리카락도 잃고, 당분간 마을 사람들이 흰 눈을 뜨고 보는 것도 참아야 된다고 생각하니 속이 뒤집혔다.

    존경받는 신관이던 자신이 이렇게 된 건 다 루이지와 저들 때문이었다.

    ‘이대로 당하고 끝낼 줄 알고.’

    생각 같아선 루이지부터 손보고 싶었지만 촌장이 옆에 딱 붙어 마크하고 있었다.

    마을의 돈줄이 되어 주리라 기대하며 어화둥둥 하는 꼴이라니.

    ‘쯔, 돈에 눈이 멀어선. 간사한 인간들 같으니.’

    신관은 촌장과 마을 사람들을 욕하며 복수의 타깃을 자넷과 레아 쪽으로 돌렸다.

    자신이 찾아갈 때마다 짜증 난다는 표정이던 자넷.

    갑자기 나타나 다 망친 공녀.

    ‘마을에서 멀어지면 그년들을 그냥…….’

    자신을 털어 대던 키 큰 놈은 좀 무서웠지만, 그래 봤자 여자 둘에 남자는 하나뿐이었다.

    신관은 품에 넣은 무기를 만지며 생각했다.

    남자가 빈틈 보일 때를 노리자고.

    ❀ ❀ ❀

    “피크닉 기분 난다.”

    레아는 들뜬 기분으로 자넷이 싸 온 샌드위치를 베어 물었다.

    피어트 별장으로 돌아가는 길은 생각보다 즐거웠다.

    초가을의 날씨는 선선했고, 북부의 맑은 공기는 마른 풀잎과 낙엽 냄새를 품고 있었다.

    “맛있어. 자넷, 요리도 잘하는구나.”

    “루이지 언니가 싸 준 거예요. 전 요리는 좀…….”

    말을 흐리던 자넷이 아차 싶었는지 급하게 덧붙였다.

    “그래도 눈썰미 있고, 손도 야무지고 빠른 편이에요. 꼼꼼하게 일 잘해요!”

    “내 전담 하녀 하려면 그거면 돼.”

    똑똑하고 눈치도 강단도 있는 것 같고, 레아를 잘 따랐다.

    공작저에서 교육받고 입단속까지 잘하게 되면 나무랄 데 없는 측근이 되겠지.

    레아는 새삼 제 선택에 흐뭇해져서 샌드위치를 신나게 먹었다.

    “하나 더 드실래요?”

    “아냐, 배불러. 못 움직이겠다.”

    “샌드위치 하나 가지고 이래서야 언제 튼튼해지겠나.”

    헬릭스의 걱정 어린 타박에 자넷이 웃으며 권했다.

    “제가 여기 치우고 짐 지키고 있을 테니 두 분은 소화도 시킬 겸 산책하고 오세요. 여기 근처가 가을에 무척 예뻐요.”

    “그럴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