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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미모로 정의 구현 (15)화 (15/120)

15화

“이 사악한 년!”

“저 마녀를 죽여!”

“퉤!”

누군가 루이지를 향해 침을 뱉었다.

그것을 신호로 사람들이 그녀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얼른 화형대에 묶어 태워 버립시다!”

“아, 안 돼!”

조카를 안고 뒤늦게 달려온 소녀가 비명을 질렀다.

“우아아아앙!”

아기가 소녀의 품에서 울부짖기 시작했다.

“마녀, 마녀의 동생과 자식이다!”

“붙잡아! 같이 붙잡아서 태워 버려!”

마을 사람들의 우악스러운 손길이 소녀에게 뻗어 왔다.

소녀는 조카를 꽉 끌어안았다.

자지러지는 아기의 몸부림을 막으면 살 수 있는 것처럼.

뜨거웠다.

광장에서 달까지 치솟듯 타오르는 불길도.

쉴 새 없이 뺨으로 흐르는 눈물도.

품 안에서 버둥대는 아기의 체온도.

뜨거워서 죽을 것 같았다.

‘누구라도.’

소녀가 빌었다.

‘누구라도 제발 도와주세요!’

그 순간이었다.

위엄에 찬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감히 페이런의 땅에서 마녀사냥을 하는 게 누구냐?”

긴 옷자락을 펄럭이며, 누군가 불길 앞으로 걸어 나왔다.

❀ ❀ ❀

화형대 앞으로 나선 사람은 레아였다.

자매와 아기가 엉망이 된 몰골로 울고 있는 걸 보자, 그녀는 너무 화가 나서 머리끝이 곤두설 지경이었다.

조난당한 자신들을 구하고 대접해 준 친절한 이들이었다.

헤어질 때만 해도 손을 흔들며 웃고 있었는데.

옆에 선 헬릭스가 속삭였다.

“레아, 진정해라. 지금 왕국 이름까지 들먹일 건 없지 않나.”

“저 새끼는 신의 이름을 파는데, 이쪽도 큰 걸로 질러야지.”

레아가 이를 갈며 작게 대꾸했다.

조금 전.

같이 떠나겠냐는 레아의 제안에 루이지는 말했다.

너무도 감사하지만, 나고 자라고 남편 무덤이 있는 마을을 떠날 수는 없다고.

그래서 일단 돌아가서 보답 물품을 보내야지 하고 떠났는데, 이딴 일이 일어나고 있을 줄이야.

‘뒤돌아봤다가 불길을 봤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어쩔 뻔했어.’

레아가 신관을 노려보았다.

뭔가 저지를 놈이라 생각했지만 이따위 수법으로 사람을 죽이려 들 줄이야.

“어…….”

갑자기 나타나 귀족처럼 말하는 로브 입은 남녀를 보고, 마을 사람들은 어버버 굳었다.

그 틈에 레아는 루이지에게 다가가 손을 잡았다.

“일어나라.”

또르륵.

넋 나간 루이지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지금은 울지 마라. 우는 건 나중에 실컷 해도 된다.”

레아는 단호하게 말하며 루이지가 옷매무새를 정돈하도록 기다려 주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을 향해 서슬 퍼렇게 물었다.

“페이런 땅에 사특한 술법을 부리는 이들이 없다고 국왕 전하께서 공언하셨거늘, 누가 감히 이 무고한 여인을 마녀로 몰았느냐?”

쟤요.

쟤인데요.

마을 사람들이 눈빛으로, 소심한 손짓으로 신관을 가리켰다.

얼이 나가 있던 신관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어, 어느 가문의 어떤 높은 분이신진 모르겠으나…… 세속의 뜻과 신의 뜻은 다른 법입니다. 저 여자는 마녀가 맞습니다!”

혓바닥 하나는 잘 돌아가는 놈이었다.

‘저런 식으로 애엄마를 마녀로 몰았군?’

레아는 화를 누르며 차갑게 물었다.

“그래? 이 여자를 마녀라 확신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저 여자 때문에 몬스터가 마을을 위협했습니다!”

“그녀 탓이라는 증거가 있느냐?”

없었다.

그렇지만 이대로 물러날 수도 없었다.

신관은 마을 사람들에게 했던 대로, 루이지가 남편을 잃고 나서부터 몬스터가 많아졌단 헛소리를 지껄였다.

레아가 말을 잘랐다.

“들을 가치도 없군. 몬스터는 이 마을만이 아니라 북부 전체에 들끓고 있다. 이건 뭐라고 설명하겠나?”

“그…… 하지만……!”

말을 못 잇는 신관을 보며 마을 사람들은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그러고 보니 이 소동은 너무도 급작스러웠다.

난데없이 마을의 젊은 과부를 마녀로 몰고 가고.

몬스터 얘기를 하면서 겁을 주고.

모두 신관의 주장일 뿐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숙덕대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신관님이 루이지를 노리지 않았어?”

“나도 기억나네. 저번엔 언뜻 자기 정부로 삼고 싶다고 했다니까. 난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지!”

“가만. 루이지 남편도 저 신관이 손 써서 죽인 거 아니야?”

수군수군.

분위기가 역전되었다.

마을 사람들이 의심의 시선으로 쳐다보자, 신관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수세에 몰린 그가 카랑카랑하게 악을 썼다.

“저 마녀의 얼굴을 보십시오!”

“얼굴이 뭐?”

“저 반반한 얼굴! 마녀가 분명합니다! 분명 남자들을 홀리기 위해 저렇게 가꾼 걸 겁니다!”

뭐 인마?

레아가 빡쳐서 되물었다.

“그러니까 예뻐서 마녀라고?”

그녀가 로브의 후드를 휙 내렸다. 긴 백금발이 물결치듯 흘러내렸다.

“그럼 난 대마녀냐?”

❀ ❀ ❀

불길을 후광처럼 두른 긴 백금발이 매끄럽게 흩어졌다.

늘씬한 몸의 자태는 우아했고, 드러난 얼굴은 순간 모두의 숨을 멈추게 했다.

갑자기 드러난 절세미모에 그 자리의 사람들은 얼이 빠졌다.

“……여신님이세요?”

루이지가 두 손을 모으며 물었다.

레아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피어트 공작가의 공녀, 레아 피어트다.”

신관의 입이 떡 벌어졌다.

다른 마을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피어트 공작가.

이 오지 산간까지 알려진 페이런 왕국의 대표적인 명문가!

촌장이 후다닥 달려와 무릎을 꿇었다.

“이, 이런 누추한 곳에 귀한 분이……!”

“거짓말이오! 이런 산골에 왜 피어트 공녀가 있단 말인가!”

신관이 바락 악을 썼다.

“저 계집도 제 입으로 말한 것처럼 대마녀일 게 분명합니다!”

확 그냥 파이어볼로 머리를 태워 버릴까.

레아는 꾹 눌러 참았다.

여기서 마법을 썼다간 기껏 구해 낸 루이지까지 다시 마녀로 몰릴 수 있었다.

그래도 저 신관 놈은 좀 기를 눌러 놔야겠는데 어떡하지.

쿡쿡.

갈등하는 레아의 팔을 누군가가 찔렀다. 그녀의 뒤에서 여전히 후드를 뒤집어쓴 채 대기하고 있던 헬릭스였다.

그가 눈빛으로 말했다.

‘내게 맡겨 다오.’

끄덕.

레아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를 받은 헬릭스는 자연스럽게 손을 뻗었다.

쓰윽.

그의 큰 손이 레아의 은발 위로 후드를 다시 내리덮었다.

“귀하신 존안을 오래 드러내실 필요 없습니다.”

낮고 공손하게 말한 그가 모여 있는 마을 사람들을 슥 훑어보았다.

놀라움과 경외심이 지나간 뒤. 어느새 욕망의 시선으로 레아를 쳐다보던 사람들 몇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척.

충분히 경고했다 여긴 헬릭스가 그녀의 앞으로 나섰다.

“감히 공녀님께 무례하게 혓바닥을 놀리다니.”

그가 낮게 말했다.

“공녀님의 자비로운 성품만 아니라면, 그 혀를 뽑아 본보기를 보이고 싶으나…….”

헬릭스가 신관을 노려보았다.

저런 질 나쁜 놈을 응징하는 건 수호자로서도 기꺼운 일이었다.

저벅저벅.

그가 신관에게 다가가 놈의 머리를 무 뽑듯 들어 올렸다.

“네, 네놈은…… 으갸갸아악!”

머리채를 잡혀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린 신관이 발버둥 쳤다.

“놔, 놔라! 신께서 네놈을 가만두지 않으실 거다!”

“네 신의 분노는 고작 그것인가.”

헬릭스가 차분하게 말했다.

“이것이 공작가의 분노다.”

탈탈탈탈.

신관이 머리채를 잡힌 채 아래위옆으로 신나게 털리기 시작했다.

“으억! 으컥! 우욱!”

“버텨라. 공작가의 분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으갸아악!!”

❀ ❀ ❀

“허어.”

패트릭 왕자는 덤불 사이에 숨어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을에서 불이 치솟자 무슨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길잡이를 보냈는데, 그는 뜻밖의 소식을 가져왔다.

신관이 마녀를 화형시키려고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마녀사냥.

무고한 이들이 워낙 많이 생겨 국왕이 금한 일이었다.

‘막아야 한다.’

죄없이 타 죽게 생긴 여자를 놔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왕자는 고심하다가 길잡이와 토벌대를 대기시키고 루얀과 둘이 몰래 들어왔다.

타이밍을 보다가 여자를 구할 생각이었다.

“피어트 경, 저 여자가 화형대에 묶이게 생기면 구출하세.”

“그 틈에 신관 놈도 죽이고 튀면 안 됩니까?”

“……여자만 구해 내세, 여자만.”

그런데 갑자기 레아 피어트 공녀가 등장한 것이다.

공녀는 빠르고 대담하게 신관을 제압하고 여자를 마녀 누명으로부터 구해 냈다.

옆에 있던 루얀은 레아 공녀가 얼굴을 드러낼 때는 당장 뛰쳐나갈 기세였지만, 뒤의 대처를 보더니 뿌듯한 얼굴이 되었다.

“경은…… 정말 팔불출이군.”

“우리 레아는 그럴 만합니다. 보셨잖습니까? 얼마나 똘똘하고 당차고 예쁘고 모자란 데가 없는지!”

“경의 말이 맞네.”

패트릭 왕자는 솔직히 감탄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마녀로 몰린 여자를 구해 내는 의협심과 배짱.

신관 놈을 상대할 때의 논리적인 냉정함.

공녀가 아니라 공자였다면 당장 제 측근으로 모셔 오고 싶을 정도였다.

‘아깝다고?’

루얀이 그런 왕자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왜 맞다고 하는데 그렇게 노려보나?”

“아닙니다.”

루얀은 왕자의 옆모습에서 눈을 떼었다.

동생을 보며 눈을 반짝이는 모습이 영 못마땅했지만, 지금 더 거슬리는 건 따로 있었다.

그는 레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옆에서 자비 없이 신관을 털어 대는 후드 쓴 키 큰 놈이 영 낯설었다.

루얀은 눈을 가늘게 떴다.

‘기사단에 저런 놈이 있었나?’

아무리 봐도 못 보던 놈인데, 레아와 꽤 친해 보였다.

‘저놈은 누구지?’

❀ ❀ ❀

마녀사냥에서 루이지를 구해 낸 뒤, 레아와 헬릭스는 자매를 집에 데려다주었다.

두 자매가 깊이 고개를 숙였다.

“정말 갚을 수 없는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이미 갚았는데.”

레아가 식탁 위에 아직 놓여 있는 감자스튜 그릇을 가리켰다.

“나도 도움을 받았으니까. 도울 수 있으니 했을 뿐이야.”

“공녀님……!”

“그런데 레아.”

옆에 조용히 있던 헬릭스가 물었다.

“말투가 평소와 좀 다르다.”

“음. 귀족다운 위엄을 내 보려고 해 봤어.”

가끔 이럴 때가 있었다.

‘고귀하고 위엄 넘치는 귀족’ 역할을 너무 열심히 하다가 메소드 연기에서 못 빠져나온다고나 할까.

“귀족다운 위엄?”

“종종 써야 될 때가 있어. 딱 헬릭스 너 같은 말투로 말하면 잘 먹히더라고.”

헬릭스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되물었다.

“굳이 그런 위엄을 연기해야 하나? 너는 진짜 대귀족이 아닌가.”

“대귀족이어도 젊은 여자는 깎아내리려는 놈들이 있으니까.”

그 말에 자매가 레아를 쳐다봤다.

찌르르.

강렬한 공감의 눈빛이었다.

둘이 레아를 보고, 다시 서로를 쳐다보더니 결심한 듯 말했다.

“공녀님, 조금이나마 은혜를 갚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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