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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미모로 정의 구현 (14)화 (14/120)

14화

안겨 있던 아기가 몸을 비틀었다.

“뺘!”

“에구, 왜 그래요? 귀여운 아가가 놀랐어요?”

아기에게도 까르륵 웃으며 말을 거는 레아를 보며, 헬릭스는 어쩐지 기운이 빠졌다.

가슴속에서 빵반죽이 부풀어 오르다 푹 꺼진 느낌이었다.

그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웃지 마라.”

“엥?”

“레아 너는 너무 많이 웃는다.”

“아니, 왜 시비야?”

❀ ❀ ❀

레아는 헬릭스와 투닥대다가 집으로 들어갔다.

“분위기 괜찮은 거 같으면 부를게. 거기서 아기 재우고 있어.”

“알겠다.”

헬릭스는 잠든 아기를 느리게 흔들며 마당을 천천히 돌았다. 평화로운 오후였다.

“크흐흠!”

담 밖에서 누군가 헛기침 소리를 내기 전까지는.

웬 중년남자가 그와 품 안의 아기를 번갈아 보며 눈을 홉뜨고 있었다.

“네, 네놈은 누구냐?”

“그러는 네놈은 누구냐.”

헬릭스의 말에 중년남자가 버럭했다.

“네, 네놈? 감히 나한테!”

“네놈이 먼저 했지 않느냐.”

헬릭스는 태연했다.

중년남자가 콧김을 뿜었다.

“몹쓸 놈이군! 네 이놈! 네가 왜 루이지의 아이를 안고 있는 거냐? 그년과 무슨 사이야!”

루이지가 누군가.

잠시 생각하던 헬릭스는 깨달았다.

이 집 주인이자 아기엄마의 이름이 루이지인 모양이었다.

남자가 씩씩댔다.

“과부가 된 지 얼마나 됐다고 다른 남자를 끌어들여선! 헤픈 년 같으니!”

“루이지 씨는 나를 끌어들이지 않았다. 내가 신세 지고 있는 거다.”

“그게 그거지!”

“다르다.”

헬릭스가 서늘해진 눈으로 남자를 내려다봤다.

“네놈은 누구인데 내 은인에게 말을 함부로 하는 건가?”

꿀꺽.

순간 헬릭스에게 기로 밀린 중년남자가 마른침을 삼켰다.

보통 놈이 아니다.

가까이서 보니 로브로 감싸고 있는 체격도 압도적이었다.

“……루이지에게 전해라! 후회하게 될 거라고!”

남자가 표독스레 외치며 도망쳤다.

헬릭스가 그 찌질한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저놈은 뭔가?”

❀ ❀ ❀

“우리 언니한테 껄떡대는 놈이에요.”

이야기를 들은 소녀의 말에 언니인 루이지가 식겁했다.

“얘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맞잖아.”

“마을 사람들이 들으면 다들 뭐라고 하겠니? 언니랑 너만 이상한 여자 되고 말아.”

듣고 있던 레아가 슬쩍 끼어들었다.

“그 껄떡대는 놈이 마을에서 높은 사람인가 봐?”

“맞아요.”

소녀가 한숨을 푹 쉬며 설명했다.

언니에게 껄떡대는 그 중년남자는 마을의 신관이었다.

“……신관이?”

“자기네 교단에는 신관이 여자를 취하지 못한다는 가르침은 없대요. 무서워 죽겠어요. 그놈은 촌장님도 함부로 못 하거든요.”

이 마을은 두메산골이라 외부와 고립되다시피 한 곳이었다.

그러니 신전이 마을 사람들의 신앙과 교육을 책임지고, 외부와의 연락도 도맡고 있었다.

신관은 마을의 엘리트이자 실세인 셈이었다.

“다른 사람들한텐 얼마나 세상 자비롭고 똑똑한 척하는지 몰라요. 근데 우리한테만…….”

소녀가 서럽게 코를 훌쩍였다.

그들은 약초를 캐서 약과 연고를 만들며 살아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형부가 죽은 뒤부터 신관은 신전 환자들에게 처방할 연고가 필요하다며 들락거렸다.

노림수가 빤했지만 자매들로선 오지 말라고 할 수가 없었다.

루이지가 조금만 쌀쌀맞게 대해도 신관은 마을 사람들에게 헛소문을 퍼뜨렸던 것이다.

“예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거든요.”

마을 양치기 하나가 술김에 신관에게 욕을 했다가, 몇 달을 악질적인 소문에 시달렸다고 했다. 결국 그 가족은 마을에서 도망치듯 떠나야 했고.

소녀가 말했다.

“그땐 몰랐는데, 그 소문들도 신관이 퍼트렸던 것 같아요.”

대놓고 거절했다간 그 꼴이 날까 봐 참을 수밖에 없었다.

자매가 기댈 데가 없다는 걸 확인하자 신관은 대놓고 루이지에게 치근대기 시작했다.

“으음.”

헬릭스가 곤란해하며 턱을 쓸었다.

“그럼 그자가 나와 루이지 씨를 오해한 건가?”

레아가 분통을 터트렸다.

“지가 오해할 주제나 돼? 아무 사이도 아닌데 왜 혼자 난리야?”

“그야 그렇지만, 주제 파악을 하는 놈이면 그런 욕망도 안 품었을 게 아닌가.”

팩트로 후려치는 헬릭스였다.

그건 그렇지. 레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매를 쳐다보았다.

그저 마을 신관이 말로 한 위협이었을 뿐인데, 둘은 눈에 띄게 불안해하고 있었다.

“두고 보자고 했다니. 언니, 어떡해? 깁슨한테도 욕 들은 직후에 그런 소리를 했다던데…….”

소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 작은 마을에서 그런 소문 들으면서 어떻게 살아?”

도대체 지난번에 소문을 어떻게 냈기에 저러지.

‘하긴 그런 놈일수록 수법도 저열하니까.’

은인의 상황을 꼬이게 만든 것 같아 영 찜찜했다.

고민하던 레아는 두 자매에게 제안했다.

“두 사람, 나와 함께 갈래요?”

“예?”

❀ ❀ ❀

한편 북부의 몬스터들을 토벌하고 있던 패트릭 왕자의 토벌대.

그들은 고된 하루를 마치고 묵을 곳을 찾는 중이었다.

“하루 정도만 더 가면 헬칸에 도착하겠습니다.”

길잡이의 말에 패트릭 왕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오늘은 여기서 야영을 할까.”

“왕자님, 여기서 가까운 곳에 작은 마을이 하나 있습니다. 누추하지만 노숙보단 나을 테니, 오늘은 그곳에서 묵으시는 게 어떠실지요?”

왕자는 토벌대 기사들을 돌아보았다.

쌩쌩한 건 루얀 피어트 하나뿐이고, 나머지 기사들은 꼬질꼬질해져서 ‘맥주! 구운 고기! 맥주!’를 영혼으로 외치는 상태였다.

여기서 노숙하자고 했다간 큰일 날 기세!

“……마을에 알리고 묵도록 하지. 그런데 이런 산중에 마을이 있나?”

“예. 약초 채집과 사냥을 업으로 하는 산골 마을입니다. 작지만 평화로운 제 고향인데…… 우어억!”

마을 쪽을 살피던 길잡이가 비명을 질렀다.

철컹!

루얀이 순식간에 방패로 왕자 앞을 막아서며 물었다.

“무슨 일이냐!”

그가 내민 검 끝이 정확히 길잡이의 목울대로 향했다.

길잡이가 덜덜 떨며 말했다.

“부, 불이 났습니다!”

❀ ❀ ❀

루이지의 집에서 헬릭스를 본 뒤, 신관은 마을 사람들을 모아 촌장 집으로 몰려갔다.

“촌장님, 신의 이름으로 마녀를 퇴치해야 합니다!”

“마, 마녀라니요?”

촌장이 눈이 휘둥그레져서 되물었다.

“우리 마을에 마녀가 있단 말입니까?”

“예! 틀림없습니다!”

신관이 힘주어 말했다.

“그 마녀 때문에 요즘 몬스터가 마을 근처에서 날뛰는 것입니다!”

촌장뿐 아니라 몰려온 마을 사람들의 표정도 심각해졌다.

요즘 마을 주변에서는 몬스터 울음소리가 자주 들려오고 있었다.

마을 사냥꾼도 산에 들어갔다가 몬스터에게 공격당해 죽을 뻔했다.

그 몬스터가 마녀 때문이라니!

순식간에 바짝 긴장하고 흉흉해진 분위기를 눈치채고, 신관이 속으로 웃으며 목소리를 깔았다.

“산 바로 아래 사는 그 자매…… 특히 언니 쪽의 소행이 틀림없습니다.”

“루이지? 루이지가 마녀란 말씀입니까?”

“쉿.”

신관이 비밀이야기를 하듯 낮게 속삭였다.

“마녀의 이름을 자꾸 입에 올리면 몬스터가 반응할지도 모릅니다.”

겁에 질려 입을 다문 사람들과 달리, 촌장은 되물었다.

“정말 루…… 아니 그 애가 마녀입니까? 신관님, 그 애가 이 마을에서 나고 자라는 걸 제가 보았습니다. 그럴 애가 아닙니다.”

진심이 담긴 촌장의 말에 마을 사람 몇도 그렇다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쯔.

신관이 들으라는 듯 크게 혀를 차고는 촌장과 마을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럼 여태껏 잠잠하던 몬스터가 왜 날뛰며 마을을 노리겠습니까?”

“그, 그건…….”

“그 마녀가 남편을 잃은 게 이번 여름 아닙니까?”

아무 관계도 없는 우연이었다.

루이지의 남편은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었다.

마을 사람 모두가 아는 일이었는데 신관이 이렇게 말하자 뭔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 마녀가, 남편을 죽이면서 본색을 드러낸 것이지요.”

신관이 속살대며 솟아나기 시작하는 의심에 기름을 부었다.

“그래 놓고 남자며 몬스터들을 끌어들이기 시작한 겁니다.”

“그, 그런!”

“어쩐지 촌것 같지 않게 반반한 게 요사스럽더라니!”

“그러면 어째야 합니까, 신관님?”

신관이 엄숙하게 말했다.

“당장 마을 광장에 큰 불을 피우십시오. 그 마녀를 매달아 화형시켜야 합니다!”

❀ ❀ ❀

마을 광장에 불이 활활 타올랐다.

“이 마녀!”

“요망한 것!”

마을 남자들에게 끌려온 루이지는 그 불 앞에 내팽개쳐졌다.

공포에 질린 그녀가 소리쳤다.

“왜 이러세요!”

일을 꾸민 신관이 그런 루이지를 내려다보며 침을 삼켰다.

산발이 된 채 눈물 고인 예쁜 얼굴이며, 찢어져 허벅지까지 올라간 치마 사이로 보이는 뽀얀 허벅지.

‘내가 속았지.’

저런 얼굴과 몸을 가지고 남자를 끌어들이는 줄도 모르고, 순진한 과부라 착각했다.

공들여 손에 넣어 보려 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너처럼 헤픈 계집은 벌받아 마땅하지!’

신관이 근엄한 척 말했다.

“이 마녀야, 네 죄를 알겠느냐?”

“죄라니요! 하늘에 맹세코 저는 죄를 지은 게 없습니다!”

루이지의 호소에 마을 사람들이 술렁였다.

그들이 보기에도 그녀는 마녀 같은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신관은 분위기를 읽고 크게 소리쳤다.

“시끄럽다! 신께서 다 알고 계시다!”

신을 들먹이자 마을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신관은 이때다 싶어 밀어붙였다.

“마녀, 너는 평소 반반한 외모를 미끼로 남자들을 꾀어 왔지?”

“예? 아닙니다!”

억울하다는 루이지의 외침을 무시하고, 신관은 이런저런 죄를 그녀에게 뒤집어씌웠다.

애초에 젊은 여자가 산 근처에 살면서 약을 만드는 것부터가 수상하다.

그 약으로 무슨 짓을 했기에 멀쩡하던 남편이 죽고 몬스터가 산을 내려온단 말인가.

반반한 외모도 금지된 약이나 비술로 얻은 게 분명하다.

처음엔 긴가민가 수군대던 마을 사람들은 신관의 말에 점점 설득되었다.

신관이 핏대를 올리며 외쳤다.

“이 마녀를 놔뒀다간 몬스터가 계속 들이닥칠 거요! 그 몬스터에게 희생된 마을 남자들의 정기를 빨고, 마녀는 더 예뻐지고 젊어질 것이고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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