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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미모로 정의 구현 (8)화 (8/120)

8화

며칠 후 트로우 백작의 집무실.

백작은 제 눈치를 보는 장남을 노려보며 혀를 찼다.

“더포드 남작이 네게서 훔친 비약으로 레아 피어트를 어떻게 해 보려다 실패했다고?”

트로우 백작은 피어트 공작가에 심어 둔 첩자의 서신을 떠올렸다.

레아 피어트가 요양지에서 쓰러져 사흘간 앓다가 깨어났다더니, 비약을 먹은 모양이었다.

“살아나다니, 운 좋은 계집이로구나.”

“남작은 속이 타는 모양입니다.”

며칠 전.

레아가 먹은 쿠키를 판 제과점 주인은 귀갓길에 공격당해 쓰러졌다.

트로우 백작가에선 제과점 주인을 때린 범인을 찾아냈고, 놈은 사주한 사람을 냉큼 불었다.

더포드 남작이었다.

“남작이 이제야 뒤처리에 나섰군.”

“어찌나 겁을 먹었는지 보셨어야 했는데. 할 수만 있다면 레아 피어트까지 죽여서 증거 인멸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습니다.”

백작의 눈이 빛났다.

“……못 할 것도 없지 않으냐?”

“예?

트로우 경이 저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렸다.

더포드 남작처럼 겁 많은 놈이 그 정도 일을 해낼 수 있을 리가.

“아버지, 진심입니까? 남작은 수가 너무도 빤한 놈입니다.”

이번에도 입 가벼운 건달 놈을 써서, 제과점 주인을 누가 공격했는지 훤히 알 수 있었다.

자신들이 먼저 찾아내 처리했으니 망정이지, 금방 피어트 가문에게 들켰을 일이었다.

“꼬드기고, 우리가 뒷세계 줄을 연결해 주면 알아서 사고를 치지 않겠느냐.”

트로우 경이 찜찜해했다.

“그런 멍청한 놈과 그렇게 깊게 연관되어도 괜찮을까요?”

되려 제 발등 찍는 게 아닐지 걱정스러웠다.

“멍청한 놈은 멍청한 대로 쓸 데가 있지.”

트로우 백작이 당부했다.

“너는 그자를 잘 부추겨 놓도록 해라. 직접적인 증거는 남기지 말도록 하고.”

잘될까?

트로우 경은 미심쩍었지만 달리 수가 없었다.

남작이 비약을 훔쳐 가게 만든 큰 실수를 만회해야 했으니까.

“알겠습니다, 아버지.”

❀ ❀ ❀

레아는 의욕에 가득 찼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우리 레아는 꿈이 뭐니?’

‘장수요.’

냅다 대답해 놓고는 ‘이룰 수 없는 꿈이겠죠?’ 하고 썩은 미소를 짓던 레아 피어트(7세).

이후 인생 목표는 하나였다.

꿀 빨며 오래 살다가 늦게 죽기!

“빨리 수업 시작하자.”

그녀가 재촉하자 헬릭스가 미소 지었다.

“오랜만에 가르치는 제자가 의욕이 넘치니 기쁘군. 오늘은 마법의 기초를 알려 주겠다.”

그가 설명을 시작했다.

“다들 처음 마법을 접하면 착각하는 게 있는데.”

헬릭스가 단호하게 말했다.

“마법은 정신력, 의지, 감정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아니야?”

“아니다.”

재차 확인해 준 헬릭스가 말을 이었다.

“마법의 벽이 느껴질 때나 위기상황에서는 간혹 그런 것들이 도움이 될 때도 있다. 하나 보통의 경우엔 오히려 해가 된다.”

“왜?”

“마법을 도박처럼 쓰면 결국 마법사 손해니까.”

헬릭스가 벽난로 옆에 쌓인 장작더미를 가리켰다.

“네가 파이어볼 한 번에 장작 다섯 개를 태운다고 정확히 알고 있으면, 너는 장작 스무 개를 태울 일이 생겼을 때 바로 파이어볼 네 번을 쏘면 된다.”

“그렇지.”

“하지만 네가 감정과 컨디션에 영향을 크게 받는다면, 네 파이어볼은 어떨 때는 서른 개를 태우고 어떨 땐 한 개를 태우겠지. 그런 식으로 자신의 힘을 예측하지 못하면 마법사 본인도 위험해진다.”

레아는 헬릭스의 말에 동의했다.

만약 괴한과 마주쳤을 때, 회심의 일격으로 날린 불덩이가 재수 없게 성냥불이라면?

에잇, 죽어라!

앗, 따가워! 이게 진짜 곱게 죽기 싫은가!

상대의 화만 돋우는 꼴이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돼?”

그녀의 질문에 헬릭스가 대답했다.

“마법을 몸에 익게 만들어야 한다.”

검사들이 머릿속으론 수 싸움을 하면서도 몸은 훈련했던 대로 나가듯이, 마법사도 머리론 가능한 방도를 생각하면서 마법은 몸에 익은 감각대로 하는 게 좋다고 했다.

“감이 잘 안 오는데.”

“구체적인 심상을 만들고 반복훈련을 하다 보면 절로 알게 될 거다. 네가 마법지팡이를 들었다고 생각해 봐라.”

“이렇게?”

“좀 더 허리를 펴고.”

그가 레아의 뒤로 다가와 자세를 교정하려다 멈칫했다.

“잠시 실례하겠다.”

헬릭스가 레아의 손을 잡고는 뭔가 청량한 기운을 흘려보냈다.

“이게 뭐지?”

“내 마나다.”

“마나도 느낌이 다 다르구나.”

손이 엄청 크고 단단하네.

레아가 무심코 생각할 때 헬릭스도 속으로 생각했다.

무슨 손이 이렇게 크림 같은가.

그가 슬그머니 손을 놓고 레아의 팔을 잡아 폈다.

퐁.

“으, 간지러워.”

헬릭스의 마나가 손바닥을 지나, 팔을 거쳐, 심장을 한 번 덧그리듯이 휘돌더니 단전으로 향했다.

“지금 마나의 흐름을 기억해라. 이 반대로 흐름을 돌린다고 생각하면서 연습해야 한다.”

레아가 고개를 끄덕이곤 그가 잡아 준 대로 팔을 내밀었다.

“팔은 이렇게 내밀면 될까?”

“자연스럽게, 이렇게.”

헬릭스는 그녀의 팔을 가볍게 잡아 폈다.

“이렇게?”

“마나 감응력은 좋은데 자세는 영 못 잡는군.”

“몸치라서 그래.”

헬릭스가 가볍게 한숨을 쉬며 레아의 자세를 잡았다.

긴 손가락이 등 아래쪽을 짚었다.

“이번에는 반대로 마나를 움직여 보는 거다.”

퐁.

헬릭스의 청량한 마나가 등에서 단전을 향해 들어왔다.

그의 마나가 레아를 인도하듯이 혈관을 타고 휘돌면서 심장으로, 양팔로 움직였다.

두근.

레아의 심장과 단전 쪽에서도 반응이 있었다.

“지금이다.”

헬릭스의 말에 레아가 더욱 집중했다.

“호흡이 불규칙하다. 힘의 기본은 순환인 법. 긴장하지 말고, 천천히.”

그가 따라 하라는 듯이 크게 숨소리를 냈다.

“후우.”

“후우우.”

“다시. 네 몸 안의 마나의 흐름대로 호흡하고. 후우.”

“후우.”

레아는 흐트러지려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제 안의 힘에 집중했다.

타닥 타닥.

불씨처럼 몸 어딘가에서 에너지가 일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조금만 더 하면 될 거 같은데……!’

헬릭스는 옆에서 그 모습을 조마조마하게 바라봤다.

참 열심히는 하는데, 육체를 어떻게 움직이고 활용하는지 기본기가 1도 없었다.

‘아무리 귀족 아가씨여도…… 춤 정도는 추지 않나?’

그렇게 쳐다보길 한 시간째.

결국 그는 끙끙대는 레아를 더 보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레아, 혹시 하던 운동은 없나? 춤이라든지?”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어릴 때부터 약해서 무도회 가서도 앉아만 있었어.”

“그럼 평소에 무슨 활동을 하나?”

“음…… 숨쉬기?”

“…….”

전생이나 현생이나 손가락만 움직이며 살던 삶이었다.

“안 되겠다.”

헬릭스는 비장하게 말했다.

“활동량부터 늘려야겠다. 마나가 몸에서 돌지를 않는다.”

“뭐? 마법사가 그런 거까지 신경 써야 해? 마나가 알아서 해 주는 거 아니었어?”

헬릭스가 드물게 한심하단 표정으로 레아를 쳐다봤다.

“건강한 몸에 올바른 마나가 깃드는 법이다.”

“……도덕 체육 합체본 같은 말 들으니까 기력이 막 깎이네.”

그는 그녀의 투덜거림을 무시했다.

“일단 뒷산 산책부터 시작하자.”

❀ ❀ ❀

“산책이라며!”

헬 산맥 산등성이에서 레아가 외쳤다.

“뭐가 문제인가.”

헬릭스가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태연하게 대꾸했다.

남들은 기어 올라가기도 힘들 산길을 휙휙 뛰면서,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 그였다.

레아는 질린 눈으로 올려다봤다.

“헬릭스 너 솔직히 말해…… 인간 아니지? 우리 작은오빠 과지?”

“레아 네 말엔 어폐가 있다. 너희 작은오빠를 본 적은 없지만, 네 오빠가 인간이 아니라면 레아 너도 인간이 아니지 않겠는가?”

고지식한 주제에 논리적이었다.

“아이고, 아무튼 난 더 못 가네.”

레아가 털썩 주저앉았다.

“이제 산등성이인데 무슨 소리인가.”

“산등성이는커녕 별장 한번 도는 산책도 못 하고 살았다고. 갑자기 무리시키면 나 탈 나.”

헬릭스는 혀를 차며 레아를 내려다봤다.

“조금이라도 더 걸어야 한다. 네 마나에게도 움직이는 법을 알려 줘야 하지 않겠나.”

“……으, 그래. 공으로 얻을 수 있는 건 없으니까.”

레아가 끙 하고 일어나는 걸 헬릭스가 의외라는 듯이 쳐다봤다.

“왜 그렇게 봐?”

“마나가 알아서 해 주는 거 아니냐고 하기에, 공으로 마법사가 되려는 줄 알았다.”

“그거야 한번 해 본 소리고.”

그녀가 다짐했다.

“건강해질 수 있다며. 다른 건 몰라도 마법만은 정말 열심히 할 거야.”

“……다 열심히 한다는 선택지는 없나?”

“그러다가 병날걸?”

레아가 웃었다.

장난스러운 말투와 달리 피로감이 느껴지는 미소였다.

“처음엔 하고 싶은 거 진짜 많았거든.”

그녀가 산 아래 피어트 공작가의 별장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맛있는 디저트도 잔뜩 먹고, 예쁜 드레스도 철마다 맞추고, 무도회 가서 멋진 파트너랑 춤도 추고…….”

레아의 목소리가 잠겨 들었다.

“근데 치즈케이크 두 조각 먹으니까 밤새 토하고 죽을 뻔했어.”

“…….”

“몇 번 더 그러고 나니까 알겠더라. 피어트 공작가에 얼마나 많은 부와 명예가 있건, 내 세상은 좁을 거라고.”

호화로운 침대에 누워서 열에 시달리고 통증을 참으며 보낸 시간들.

그 갑갑하고 괴로운 시간들이 레아로 살아온 인생의 대부분이었다.

“……그 마음 이해한다.”

헬릭스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갇혀 있었으니까.”

레아가 새삼스레 헬릭스를 쳐다보았다.

오랫동안 봉인되어 있던 남자.

그녀는 좀 미안하고 멋쩍어졌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은 기분이었다.

“아니, 내가 헬릭스 너처럼 많이 고생했다는 건 아니고.”

“고생한 세월이 얼마건 간에 고생은 고생이지 않나.”

뭐야.

레아는 속으로 가슴을 부여잡았다.

그렇게 갑자기 현자처럼 말하면 양심이 더 쑤시잖아.

그녀가 머뭇거리다 웅얼댔다.

“……아무튼 마법 열심히 한다고.”

“그래.”

헬릭스가 웃으며 레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할 때였다.

사락.

갑자기 두 사람의 머리 위로 뭔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눈?”

레아는 깜짝 놀랐다.

“이 계절에?”

초가을에 내리는 눈이라니.

헬릭스가 점점 더 많이 내리는 눈을 지켜보다 말했다.

“짐작 가는 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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