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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나랑 맞춰 볼래요?-107화 (107/110)
  • 18.

    펠릭스의 말에 리첼은 가슴이 찡해졌다. 상처를 주었는데도 자신의 행복을 바라다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패트릭에게 전한 말처럼 당신의 마음속에 남은 저에 대한 추억이 조금 더 아름다웠으면 하는 바람일 뿐이에요. 제가 베스 대신 당신에게 끌렸다는 오해받은 채로 있긴 싫어요. 가끔 당신이 저에 대해 떠올릴 때 떠나보내기 아까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펠릭스의 입가엔 희미한 미소가 맴돌았다.

    “이미 제 안의 펠릭스 님은 제가 선택하지 못한 아쉬움이 넘치고도 남는 남자예요.”

    “말이라도 고마워요.”

    펠릭스의 입가엔 희미한 미소가 안도의 미소로 바뀌었다. 그는 잠시 결심이라도 하는 듯 침을 꾹 삼키며 입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당신을 안아 봐도 될까요.”

    리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펠릭스가 다가와 그녀를 일으켜 세운 후 그대로 제 품 안에 넣었다.

    “다음에 저를 마주치더라도 반갑게 인사해주세요. 저도 그럴게요.”

    “당연하죠. 펠릭스 님도 제 인사 무시하면 안 돼요.”

    리첼은 펠릭스를 더욱 끌어안으며 대답했다. 그의 품 안에선 향긋하고도 싱그러운 장미 향이 맴돌았다.

    ‘한때 이 향을 좋아했던 적도 있었지.’

    리첼은 장미 향을 좋아한 적도 있었다. 물론 지금도 좋아하지만 청량한 향을 더 좋아할 뿐이었다.

    “미안해요. 그리고 고마워요.”

    리첼은 펠릭스의 품 안에서 그의 향을 실컷 맡았다. 앞으로 그의 체향을 맡을 일은 없을 테니.

    그녀에겐 그는 향긋한 장미 향이 나는 남자라고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 * *

    메리오너스가에서 돌아오자 카일이 리첼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부터 밝지 않았던 그의 얼굴은 여전히 어두웠다. 어딘가 불만이 가득 차 보였다.

    리첼은 그를 자신의 방으로 데려갔고, 문이 닫히자마자 등 뒤에서 따뜻한 감촉이 느껴졌다. 카일이 그녀를 끌어안은 것이다.

    갑자기 귓가에 다가온 촉촉한 감촉에 리첼은 저도 모르게 입안에서 소리가 흘러나왔다.

    “갑자기 뭐예요?”

    리첼이 뒤를 돌며 카일에게 항의하려는데 그녀의 귓가에 달콤하고도 감미로운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공녀님의 몸에서 다른 남자의 향이 납니다.”

    그 말을 듣자 리첼의 귓가가 후끈거렸고, 몸은 갑자기 굳어버렸다.

    펠릭스와 마지막 포옹을 했을 때 그의 향기 그녀에게 잠시 남은 듯 보였다.

    “아무 일….”

    펠릭스와는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을 하려는 순간 또다시 리첼의 귓가에 달콤한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어떻게 하면 저만을 바라봐 주실 겁니까?”

    “네?”

    리첼은 너무 놀라 뒤를 돌아 카일을 바라보았다. 질투로 뒤섞여 탁해진 그의 흑안을 보니 리첼은 웃음이 났다.

    “당신은 욕심쟁이예요. 독점욕도 심하고요.”

    그녀는 카일을 쏘아보며 말했다.

    “이제 아셨습니까?”

    카일은 리첼의 말에 인정하며 미소로 답했고, 이어서 말했다.

    “당신이 내 손에 들어왔으니 이제 전 절대로 안 놓칩니다. 이런 저를 택한 걸 후회하십니까?”

    “그럴 리가요.”

    리첼은 카일의 옷깃을 잡고 그대로 그의 얼굴을 내려 서로의 입술을 맞대었고 곧바로 떨어졌다.

    “저도 당신 안 놓칠 거예요.”

    리첼이 싱긋 미소를 보이자 카일의 입술이 다가와 그녀의 입술에 쪼아대듯 짧은 키스를 반복했다. 마치 그녀가 그의 것임을 다시 흔적을 남기려는 듯했다.

    곧이어 그의 입술은 서서히 내려와 그녀의 목 근처에 또다시 쪼아대는 키스와 짙은 여운이 남는 키스를 반복했다.

    리첼은 짧은 키스에 간지러워 몸을 비틀기도 하고, 짙은 키스에 몸을 살짝 떨며 저릿함을 느꼈다.

    “인간 장미를 만들 셈이에요?”

    카일의 입술이 떨어지는 순간 리첼은 손으로 그의 가슴을 살짝 누르며 쏘아보았다.

    “그것도 나쁘진 않군요.”

    카일의 입가엔 심술궂은 미소가 걸렸다. 또다시 그녀의 목덜미에 그의 입술이 닿았고, 얕은 숨결이 느껴졌다.

    펠릭스에게 질투하는 카일의 모습이 귀여워 리첼은 참을 수 없었다.

    물론 여전히 그녀를 놀리는 행동은 여전했지만, 그를 그녀의 발밑에 굴복시킨 것만 같았다.

    처음에 그녀를 경계하며 차가웠던 카일의 눈빛은 이제 리첼의 앞에선 찾아볼 수 없었다.

    냉랭했던 그 시선은 이제 뜨겁고, 열렬한 눈빛으로 바뀌어 있었다.

    순결하고 부드러웠던 성직자의 모습 또한 어디에도 없었다.

    지금 리첼의 눈앞엔 먹잇감을 놓치지 않으려 맹렬한 기세로 그녀에게 돌진하는 한 마리의 맹수만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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